저기가 거기인데
내일이면 삼월 첫날인 이월이 가는 마지막은 일요일이다. 아침 일찍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 모퉁이에서 삼진 방면으로 출발하는 농어촌버스를 타면 으레 서북산이나 여항산 일대 산행을 다녀왔다. 며칠 전에도 진북 대현에서 정현지구 임도 따라 걸어 베틀산을 넘어 서북동에서 나오는 버스를 탄 적 있다. 인적 드문 길섶에서 이른 봄 향기를 전해준 전호나물을 몇 줌 뜯어왔다.
이번에는 구산면 갯가로 가는 62번 버스를 탔다. 마산역 광장에서 구산 갯가로 가는 노선은 저도 연륙교가 인기 있다. 일명 콰이강의 다리로 불리는 명소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잘 가질 않는 나에게는 마음을 얻지 못하는 코스였다. 그 다음이 낚시꾼이 즐겨 찾는 원전이다. 건너가 거제 본섬이 빤히 쳐다보이는 갯가다. 나는 낚시에도 관심을 둔 바 없어 본체만체하는 곳이었다.
저도 연륙교와 원전 낚시터를 제외한 선택지는 한산한 갯가들이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난포다. 일제 강점기 지적부는 남루할 람(襤)자를 쓴 남포였는데 지역민들이 한자 뜻을 바꾸었다. 정상부에 가톨릭마산교육원이 위치한 봉화산이 진해만으로 뻗쳐간 산등선은 거북 형상이다. 구산은 거북 구(龜) 자다. 난포는 포구 포(浦)가 아닌 거북이 알을 품는 마을이라고 알 난(卵)에 품을 포(胞)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거친 버스는 밤밭고개를 넘었다. 우산 교차로에서 현동 아파트단지를 지나 수정으로 향했다. 구산 면소재지지만 매립지는 방치해두고 인근에 신도시가 형성되어 시골 같은 분위기다. 면 단위 관공서 외 보건진료소와 공립 유아원이 있기도 했다. 초등학교는 남겨져 있고 분교로 격하되어 명맥을 잇던 중학교는 현동 신도시로 옮겨가면서 교명을 그대로 승계했다.
백령고개를 넘으니 내포였다. 우산교차로에서 석곡을 거쳐 온 국도가 터널로 빠져나와 로봇랜드로 향했다. 5호선 국도는 마산이 기점이었는데 최근 거제 연초까지 연장되었다. 구산 심리까지는 우선 개통시키고 해상은 미 개통구간으로 남겨둔 상태다. 앞으로 진해만에 거가대교와 같은 해저터널이나 교량이 하나 더 생겨날 곳이다. 반동삼거리는 저도와 원전으로 가는 갈림길이었다.
로봇랜드를 지나 난포에서 내렸다. 포구에는 어로작업을 나서지 않은 고깃배가 몇 척 묶여 있었다. 건너편은 신설 국도가 끊긴 심리 입구가 보였다. 작은 조선소를 거쳐 난포 해안 오솔길을 따라 갯가로 향했다. 예전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길이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자갈돌이 쌓인 해변에는 여러 가지 부유물이 밀려와 어수선했다. 외진 곳이라 환경정비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다
방파제가 끝난 바위더미는 해상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였다. 거북의 목에 해당하는 지점이었다. 진해만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바다에는 홍합 양식장 하얀 부표가 줄지어 떠 있었다. 조업을 나서는 고깃배들이 간간이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건너편은 거제였다. 저 멀리 가덕도에서 침매터널로 빠져나온 거가대교가 중죽도와 저도를 거쳐 장목으로 건너갔다.
근무지가 바뀐 이후 이태를 보낸 거제로 이제 한 해를 남겨두었다. 주중 머무는 곳은 연초지만 이웃한 하청이나 장목으로도 곳곳에 내 발자국을 남겨두었다. 건너편 빤히 보이는 데는 장목 황포였다. 앞으로 5호선 국도가 구산 원전으로 해상구간으로 이어질 곳이었다. 그 곁에는 답답고개 드비치골프장이 보였다. 대봉산 둘레길 아래는 구영 포구와 낚시꾼이 많이 찾던 유호리다.
난포 해안 밖에서 진해만과 거제도를 바라보다 산언덕으로 올랐다. 봉화산이 바다로 흘러온 산줄기였다. 들머리는 근래 산악회에서 다녀간 깃이 달려 있었다. 산허리 임도에 이르러 옥계로 향해 걸었다. 양식장 부표가 뜬 합포만을 가로지른 마창대교가 아스라했다. 옥계 포구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더러 보였다. 한 젊은 어부는 도다리 조업을 나설 어구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2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