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4일 화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사랑과 공경함으로 효성을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효자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그래서 효경을 배우거나 효경에 있는 말을 해석 할 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효경의 오묘한 이치를 부분적으로나마 해석할 수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지 스스로 해석한 부분에다 살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모두가 엉터리였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가는 것은 이제야 겨우 철이 드는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우리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희망이며 간절한 갈망이기도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면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누가 겁을 내고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희망적인 말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좌절하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용기를 가지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오.” 솟아날 구멍은 정말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기적처럼 기사회생(起死回生)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이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말은 궁지에 빠진 사람들이 도저히 용기를 낼 수 없는 비참한 좌절의 순간에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기회라는 것이었습니다.
본래의 말은 “하늘이 무너져도 효자(孝子)날 구멍 있다.”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하늘이 무너지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살아날 사람이 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효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효자만 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죽는답니다. 그러나 유독 하느님께서는 효자(孝子)만 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평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효자’를 발음하면 일반적으로 구개음화(口蓋音化)법칙이 있어서 ‘효자’는 ‘소자’로 발음되고, ‘형’은 ‘성’으로 발음되고, ‘흉’은 ‘숭’으로 발음되곤 합니다. 그런데 효자가 소자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무식하게도 ‘솟아날’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사상과 충효사상을 강조한 세상에서 정답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효자로 살았는지에 대한 말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효자라고 하더라도 부모의 마음과 생각을 잘 아는 사람들은 드물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야 효성스러운 자녀가 될 수 있는지는 모두의 숙제입니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많은 것들을 삭제하고,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생각하면서 효의 개념도 바뀌고, 신앙의 가치관도 바뀌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사회 현실 속에서 많은 것들이 삭제 당하고, 많은 가치들이 사장(死藏)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효성은 낡은 가치관으로 알고 있고, 무엇이 효도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으며, 어쩌면 효에 대한 많은 것들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효성의 개념을 만들어가고, 그런 가치관을 사람들은 키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또 새로운 효도를 배우고 익히며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효도의 수준에 자신을 계속해서 맞추어 살아야 하는 도전을 계속하고 하늘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효자로서 선별되어 살아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효경 제2장 天子章(천자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子曰 ; 愛親者不敢惡於人(자왈 ; 애친자불감오어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감히 미워하지 아니하고
敬親者不敢慢於人(경친자불감만어인)
어버이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을 감히 업신여기지 아니한다.
愛敬盡於事親(애경진어사친)
사랑과 공경함으로 어버이를 섬기는데 다 한다면
而德敎加於百姓(이덕교가어백성)
이 도덕적 가르침이 모든 백성에게까지 미쳐서
刑於四海(형어사해)
천하에 모범이 되니
蓋天子之孝也(개천자지효야)
이것이 천자의 효도이다.
우리는 바로 하느님의 아들․딸들이니 이 효경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사랑과 공경함으로 효성스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새로운 효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지만 그 보다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효자의 가치기준은 사랑을 얼마나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기만을 바라지 말고, 사랑을 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효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들은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식들은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효도의 기준이 부모들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고, 형제가 되고, 누이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효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부모에게 효자도 되지 못했고,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고,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하였으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많이 우울하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축일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Francis de Sales)
신분 : 주교, 설립자, 교회학자
활동 지역 : 제네바(Geneva)
활동 연도 : 1567-1622년
같은 이름 : 방지거, 살레시오, 살레시우스,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또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프란체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1567년 8월 21일 이탈리아의 독립 공국인 사보이아(Savoia)의 토렌스(Thorens)에 있는 가문의 성(城)인 샤토 드 살(Chateau de Sales)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Paris) 인근 안시(Annecy) 대학과 클레르몽(Clermont)의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이탈리아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는 교회법과 일반법을 전공하여 불과 24세의 약관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 법률가 자격 제의와 상원 의원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도생활을 위하여 화려한 세속의 일과 전망을 모두 포기하고 1593년 12월 18일 안시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1594년 샤블레(Chablais) 지방의 선교사를 자원하여 5년 동안 활동하였는데, 그곳은 칼뱅주의자들이 약 50년간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고 프로테스탄트를 강요하던 지역으로 사보이아 공국이 되찾은 지 얼마 안 되는 선교 지역이었다. 암살자와 칼뱅교도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곳 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599년 5월 22일 그는 스위스 제네바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다가, 1602년에 선임 교구장이 사망하자 그를 계승하여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그는 곧 종교개혁자에 대항하는 지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의 지혜와 지식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뛰어난 고해신부이자 설교가인 그는 해박한 신학지식과 이해심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예비자들을 가르쳤으며 자신의 교구를 훌륭하게 다스렸다. 1604년 그는 부르고뉴(Bourgogne)의 수도인 디종(Dijon)에서 유명한 강연을 하였는데, 그때 네 명의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남작 미망인인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 8월 12일)을 처음 만나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적인 우정으로 자라났다. 그 후 1607년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기존 수도회의 육체적 엄격함을 견디기 어려운 젊은 여성들이나 미망인들을 위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리옹(Lyon)에 있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머물렀는데, 이때 뇌일혈을 일으켜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예수, 내 하느님 나의 전부여!"라고 기도한 후 그 다음날인 1622년 12월 28일 숨을 거두었다. 그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신심생활 입문”(1609년)과 “신애론”(1616년)을 들 수 있다. 그는 1662년 1월 8일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는데, 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한 첫 번째 공식 시복식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는 1665년 11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1877년 11월 16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으며, 1923년에는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작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프란치스코 드 살 (Francis de Sale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