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3:36~52
제목: 제자들의 대답은?
우리는 지난 주일 13장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에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들과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1)씨”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복음)을 의미합니다. (“씨”는 씨뿌리는 비유에... 좋은 씨와 가라지 비유에...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에 등장합니다.)
2)“땅”은 그 씨가 떨어지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예수님은 이 땅을 사람의 “마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의 마음을 향해서 제시되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서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반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3)열매(결실)”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가 맺히는 무대는 땅인,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매는 어디에서 맺히는 것일까요? 내 마음에서 맺히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눈앞에 보이는 교회의 숫자로만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예배당을 더 높이 세우는 것이 열매인줄 알던 때도 있었습니다. 손으로 분명하게 셀 수 있는 믿는 자의 숫자가 열매인줄 알던 알았습니다.그렇습니다. (사무엘상16:7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이와같이 눈으로 보이는 용모와 손으로 잴 수 있는 키를 열매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으며, 손으로 측정할 수도 없는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세워지는 것입니까?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용모와 측정할 수 있는 키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마음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음이 사람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모든 행동의 뿌리라고 말씀합니다. 마15:18에서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마음에서 나온다고까지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5:8(이사야29장)에서 하나님이 가장 슬퍼하시는 상황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강조하여 다시한번 말씀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립서비스일 뿐이다. 반면에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너무나 멀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까? 예, 예수님을 열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을 열망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모든 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평생에 단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던 여인입니다....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고백을 가진 자들입니다.
(마음속에....하나님 이외에 다른 능력자(내 능력이... 내 경험이.... 내 지혜와 판단이...내 재물이.. 나를 고칠 수 있어(내게 평안을 줄 수 있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이런 마음으로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존재가 나를 도울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하는 것이 바로 립서비스입니다. 나에게도 예수님이 가끔은 필요하지..이것이 바로 립서비스입니다.)
▮[립서비스와 정반대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마18:2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내 인생이 지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그리스도 뿐이라고 신뢰하는자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보호자인 엄마 외에 그 어떤 것에게도 마음이 빼앗기지 않습니다. 엄마품속의 어린 아이는 다른 엄마가 더 패션감각이 있고, 요리솜씨가 훌륭하다고 말해주어도 다른 엄마에게 안길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엄마품속의 어린아이에게 최고의 평안은 오직 자신의 엄마 한명 뿐입니다.)
4)그런데 “무리들”은 아닙니다. 여전히 다른 능력있는 엄마, 자신들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엄마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엄마 이외의 다른 의지할 대상을 찾는 사람들이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무리들”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분,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입니다.
2.[두 번째 비유]
13:36은 예수께서 해변에서 배에 올라가서 가르치시다가. 무리를 떠나서 집에 들어왔다고 언급합니다. (13:1절과 정반대의 행보)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청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첫번째 비유 때와 동일하다.)
두 번째 비유에서 변화가 있다.
(1.첫번째 비유에서는 등장하는 것은 그냥 “씨”입니다.(그래서 밭의 종류가 관건) 그런데 두 번째 비유에서는 “좋은 씨”가 등장한다.)
(2.첫번째 비유에서는 열매맺는 것에 초점을 두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비유에서는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을 말씀한다. 좋은 씨와 가라지로 나뉩니다.)
(3.두번째 비유에서는 첫 번째 비유에 등장하지 않았던 “세상 끝”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첫번째 비유에서는 열매맺는 것에 초점을 두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비유에서는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을 말씀한다. 좋은 씨와 가라지로 나뉩니다.
두 번째 씨앗의 비유에서는 열매맺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에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추수 때인 세상 끝에 가서야 좋은 씨와 가라지가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각되고 있는 사탄의 존재이며, 그의 역할은 모방자이다.
▮첫 번째 비유에 등장하지 않았던 “세상 끝”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갑자기 “세상 끝”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세상 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세상 끝”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끝을 말씀하신다. 끝을 말씀하시는 것은 그 시작을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2)예수께서 “좋은 씨”를 뿌리신 곳이 어디입니까? “세상”입니다. 38절에서 예수님은 좋은 씨를 뿌린 밭은 ‘세상’이라고 말씀한다. (첫번째 씨뿌리는 비유에서 밭은....마음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씨뿌리는 비유에서의 ‘밭‘은 “세상”이다.
(첫번째 씨뿌리는 비유가..밭(개인의 마음)의 차이에 따른 씨앗의 결실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두 번째 씨뿌리는 비유는...세상(공동체)속에 뿌려진 씨앗에 대해......특히, 사탄이 뿌린 가라지와의 충돌에 직면한 씨앗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특징이다.)
▶좋은 씨앗이 뿌려진 필드 즉 현장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이어서, 첫 번째 비유에서 씨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던 반면, 두 번째 비유에서는 좋은 씨라고 언급되며, 이 좋은 씨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자손, 백성)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두 종류의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좋은 씨를 마음에 품은 좋은 씨앗, 즉 하나님의 자녀들의 필드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성도(하나님의 아들들)는 교회가 필드가 아니라, 세상을 필드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간혹 이것이 뒤바뀐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의 필드가 어디입니까? 교회자체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교회용 믿음이 아니라, 세상용 믿음입니다. 특히, 교회는 더욱 더 세상용도이지, 교회 자체용도이거나 교회들 간의 비교용도로 전락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런데 그 세상에는 가라지가 있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좋은 성도들이 견디고 감당해야할 대상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에....교회 안에도 알곡이 있고 가라지가 있다는 설교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교회라고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관심갖게 하는 것과 또 그렇게 판단하게 하는 것은.....예수님의 뜻도 아니요 관심사도 아닙니다. )
두 번째 비유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교회 자체 혹은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열매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사단이사방에 뿌려놓은 가라지 예배, 가라지 믿음, 가라지 기도, 가라지 헌신.....에 상처받고 방해받으면서도 여전히 좋은 씨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매입니다.
가라지예배를 드려도 예배를 드린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라지 믿음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가라지헌신도 하다보면 믿음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다 아닙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만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좋은 씨입니다. (세상에서는 믿음대로 행동하지 않다가 교회에서만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립서비스 신앙입니다. 모방입니다. 가라지입니다.)
가라지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비유에 나온 그대로......마음에 뿌려지지 못한 씨입니다. 그래서 세상 끝에는 반드시 구분된다고 말씀합니다.
(부모가 그 자식을 온전히 알고 품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딸들을 품으실것입니다.)
3]세번째 비유
▮열망하는 대상이 있으면, 게다가 열망하던 그 대상을 찾으면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려둔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그러했습니다. 열두해를 열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그러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고 걷지 못했던 병자들이 그랬습니다..............그리고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가 희생하는 그것을 보면, 그가 열망하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희생하는 것을 보면...그 중요함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44~46절에 나오고 있는 내용입니다.)
희생하는 것을 보면 예배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희생하는 것을 보면, 예수를 따르는 것이 어떤 중요함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얻는 것을 통해, 내 손이 획득한 내용물을 통해서가 아닙니다.-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방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나 자신은 어떤 의미입니까? 어떤 중요함입니까?
그가 매달려 죽임 당하신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얻은 것을 쌓아놓고, 손으로 쟁취한 것을 모아놓고 “열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그것은 가라지의 방식이요 세상의 방식이다.)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 유일한 으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열매(희생)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열매는....못박힌 빈 손이요...피흘린 빈 몸뿐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물으십니다.(마13:51)
너희가 이 모든 내용들을 다루기 시작할 준비가 되었느냐?
(비유로 듣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께 그 내용을 설명받은 제자들은.....)
제자들은 예스...라고 대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