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의 무덤은 없다. 그를 기리기 위한 비석도 없다. 그는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만일 성경이 그의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막을 내렸다면 십자가는 극악무도한 자들의 처형대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부활이란 죽음이 전제된 것이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는 죽음은 일반적인 것이어서 거론할 필요조차 전혀 없다.
그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하셨다. 그의 부활은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과는 달랐고,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활이었다. 그는 사망 권세를 깨치고 다시 사심으로 그가 하나님이심과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외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구원자의 모습은 능히 구원 얻는 개체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높고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낮고 낮은 곳에서 순종하셨고, 그는 죄 없으셨으나 죄인처럼 고초를 겪으셨고, 그는 죽음 앞에 담대하셨다. 그리고 그는 부활하셨던 것이다. 그가 부활하심으로 소경이었던 우리의 눈에 광명의 빛이 비추었고, 그가 다시 사심으로 귀머거리였던 우리의 귀에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그가 죽음을 이기시사 낭떠러지로 달음질하던 우리의 발길이 진리의 길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영생을 입었으며 그 나라에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패역하고 죄악의 굴레에 쌓인 인간들을 위하여 그는 골고다 십자가에 홀로 매달려 죽으셨다. 그 패역한 인간이 바로 우리요, 죄악의 굴레에 쌓여 있는 인간이 우리다. 우리가 그를 찔렀고, 우리가 그를 상하게 했고, 우리가 그를 징계했으며, 우리가 그를 채찍질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셨다. 당신을 찌른 우리의 죄를 씻으시려고, 당신을 상하게 한 우리의 허물을 지우시려고, 당신을 징계한 우리를 평안케 하려고, 그리고 당신을 채찍질한 우리를 낫게 하시려고 그는 새벽 미명에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셨다. 그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다. 그는 십자가에 죄악으로 덮인 우리 모두의 이름을 안고 오르셨고, 부활하실 때도 우리의 이름을 다 안고 계셨다.
이제 우리의 이름 앞에 주홍글씨는 없다. 그의 강렬한 십자가의 보혈이 주홍글씨를 지워버렸다.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으랴. 누가 우리를 가르켜 죄인이라 하겠는가! 그가 오심도 우리를 위해서요, 그가 십자가를 지심도 우리를 위해서요, 그가 부활하심도 우리를 위해서다. 이제 그는 가신 그 모습 그대로 오실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이제 이번주 토요일은 부활절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믿소사4기도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를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