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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9년 학부모생활이 끝나다.
유아8년+ 학생 19년= 27년
27년의시간이 ......
찰라처럼 지나간듯하다.
어는덧 나도 50이 훨넘어버렸다.
27년전...경기도청앞의 고려산부인과병원..
그곳에서 나는 아이를 처음으로 만났다,
85년 봄에 그녀를 만나다.
그녀는 나의친척집 건너방에 어머님과 같이살던 경력2년차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였다.
그해 가을 우리는 결혼을 하였고 여름에 아이가 튼실하게 태어났다.
무럭무럭 튼실하게 아이는 자라주었다.
모든부모가 그러하겠지만... 아이만이 우리행복의 모든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으며 아이는 그렇게 자랐다.
집사람의 지론이다
"사랑받은 아이가 사랑도 할줄안다"
초딩시절...
공부하는 학원,즉 보습학원은 한군데도 안보냈다.
나는 아이를 자유로운 영혼을지닌 아이로 성장시키고 싶었다.
다만 내가 부러웠던 취미?.....바둑만은 나의강요로 3.4학년 2년을 다녔었다.
아이에게 끈기와 정서적인 안정을통한 생각하는힘을 키워주고자 노력을했다.
그런의미로 시간이 될때마다 여행을 함께 다녔었다.
나는 아이에게 산수문제보다는 자연의경험을 통한 세상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수영만은 본인이 원하여 몇년을 꾸준히 시켰는데...
수영장에서 보니 자유형이 거의선수급이였던걸보고 놀란기억이있다.
콘크리트숲에서 아이를 키우다가....
나의 이직과함께 경기도 안성의시골로 6학년 가을에 전학을 하게 되었다.
모든것이 시골스럽고 여유로운 안성땅에서 아이는 나의 바람대로 자라주었다.
그러나 우리아이는 절대로 범생이타입의 아이는 아니였다.
그렇다고 나이를 띠어넘는 사고로 부모를 애태운적도 없었지만
흔히 그 나이대에서 할수있는 모든사고는 치면서 자란 아이였다.
중2-싸움 팔부러트림. 고1-여학생편지질로 학교정학. 2-야자탈출 후 극장에서 걸림.도서관 15일 출입금지. 고3-성적하락으로
도서실 열람실위치 강등및 수련회핑계로 친구들과 여름바다캠핑등등등등....
이런일들을 나는 당연한 성장과정으로 여겼었지만 아이의 엄마는 아니였던 기억이난다.
그때그때 충격으로 끙끙 앓아누었던 아이엄마,,,,
안성이라는 시골, 월~토 밤12시까지 도서실 의무학습이라는 학교의방침.
버스도없는 시간이였기에 귀가는 3년간 나의몫이였다.
아이와의 수학과영어 전교 5%권유지시 학습자율권보장 협약에의하여 ....
비록 일요일과 공휴일뿐이였지만
아이는 산과 들..논자락을 뛰어다니며 청소년기를 나름 풍요롭게 ..찌들지않고 보낼수있었다.
안성..작은 농촌도시에서의 10년...
"나는 아이에게 고향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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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유행처럼번졌던 싸이에있던 아이의 글이다.
후에 안일이지만 교지에 "선배가 하는말" 이라는 부제로 실렸다고.
담임선생님의 강요및 나름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는 의미로 자기의 학창시절을 정리하는 의미로 썼다한다.
글을 읽으며 어느새 훌쩍커버린 아이에게 감사함을 느켰었던일이 지금도 어제처럼 떠오른다.)
지난 13년간의 학창시절을 끝마치다.
그동안의 고생,원망하는 마음들.
서러웠던 기억들은 합격의 기쁨과 함께 한꺼번에 잊혀지고
지난날들을 회상하면 희미한 미소만이 지어질뿐이다.
남들은 도시로 나가는 초등6학년..
졸업을 두달남기고 난 안성의시골로 전학을 왔어.
나 중학들어갈때 아빠하고 약속을 했지.
영어,수학 두과목만 전교상위 5% 유지한다면 전체몇등이 되든지 상관안하겟다.
엄마에게는 등수로인한 스트레스 꽤 받았었지만.
결과적으로 나 그것때문에 놀거 다 놀수있었잔아,
중학때 그흔한 학원 .난 구경도 못해봤잔니.ㅋㅋ
아빠가 다 막아주시드라 ㅋㅋ
중2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동이었지만 반1등을 해서 상으로 mp3를 받았던 기쁨
중3때 처음으로 친구들과 두번인가 새벽까지 공부했었지
처음으로 빨간 노트장을 삐뚤삐뚤한 글자들로 한권 다채우고서 느낀 뿌듯한 기분
고1들어와서 반장을 하던 기억.
운동장에서 쌩쌩이 시험을 준비하던 기억
항상 일이삼사오등보다는 십단위권 이어서 공부잘하는 친구들을 보며
참 한계도 많이 느끼고 좌절도 많이 햇엇는데..
매일같이 조그만 수첩에다가 날짜를 적고 계획을 적고..
계획은 거창해도 참 지키기 힘들엇었어 ㅋ
친구들은 성실하고 잘 참던데 .
왜그렇게 나란놈은 유혹에 약하고 불성실한지.
하도 게임을 좋아해서 .
그것때문에 중고교 6년동안 정말 수도없이 엄마를 힘들게했었어
중학교때 리니지를 하던 기억 ㅋ
고1때 친구들이랑 술 먹으러 다니던 기억
야자를 빼먹고 피씨방에 갔었는데 하루는 어머님이 피씨방에서 날 발견하시고는
혼내지 않으시고는...그냥 엉엉 우셨었던적이 있었어.
아버지에게는 말씀을 안하셨드라고, 울아버지 지금도 모르실거야 ㅋ
내신이 너무 안좋아서 엄마에게는 혼나기도 했었써..
잘하는 친구들과 항상 스스로 비교하고 스스로 상처받고 정말 힘이 들었었지.
그땐 그 친구들이 어찌나 높게 보였던지
수업시간에 항상 졸다가 혼나곤 햇엇는데 ...
선생님들이 질문해도 대답을 못해서 쪽팔려서
학교가기가 정말 너무너무 싫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었어..
고3때는 그때는 ..내 마음을 이해도 못해주시는 엄마가 밉고 야속하고 답답하던지
공부하기 더 힘들었었어
우리아빤 성적으로 말씀하신적은 내겐 한번도 없으셨었어 .
네가 가진거 다 끌어내 후회하지 말거라,
난 그게 더 어려웠었어.
막판에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새벽길을 가끔 달렸었지
야자가 끝난후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맥주랑 김밥이랑 치킨ㅋㅋ이랑 먹고 들어가곤
햇는데...
수능 채점을 하고나서 뜨는 내특기과목 수학 88점에 ㅜㅜ. 과탐은 완전히 발랐어
211 5541 총 450점
수외 1등급이면 뭘해. 과탐이 헐헐헐인데...
그냥 멍했었어..
근데 내가 학교 자연계수능1등이라네. 언수외만 ㅋ~
늘 내앞에서 언제나 나를 기죽이던 친구들 30명 니네들 다 뭔짓들을 한거야?
도대체 얼마나 망한거야?
바보같은놈들...
올해 의치한은 고사하고 .
그 흔한 SKY도 자연계는 한명도없겠네.ㅜㅜㅜ개교이래 최악의 입시가 되겠네 ㅋ~
작년 졸업식의 아픈 기억.
내가 헛되이보낸 시간들이 너무 아쉬웠어.
후회할것 같으면 말하거라...아빠말씀.
오로지 아빠의 소신만으로 세학교를 지르시는걸 난 동의했었지.
3패는 울반에,, 아니아니 우리학교에 나하나 뿐이였어.
그날 이리저리 헤메이다 야밤에 현관에 들어섰더니 들리는 어머님의 울음소리..
어깨가 축처져 속으로 울다 잠들던 기억
고3초에는 한양공도 내게는 높은꿈이였었는데...
아빠에게는 한양공은 아니 공대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써..
회사원의 길..IMF를 겪으시며 내아들은 절대 회사원 안시킨다..다짐에 다짐을 하셨었다네..
원서라도 써봤었다하며 난 스스로 자위했었지.
한의대 .약대.약대..스트라익~~!! 삼진 ㅋ~.
서울 올라갈 짐을싸는데,
왜 그리 눈물이 쏱아지든지.
어찌됬든 난 패배자였잖아
네가 내년에 어디를 가든 아쉬움만 남기지마.아빤 그것뿐이야....
나 첨봤어 . 아빠눈물을 그때에....
재수초기에는 옆반 여자애를 좋아햇는데
바보같은일도 많이 하고 ,혼자 고민도 정말 많이햇엇지..
좋아하는 감정을 죽이고 공부할려고 바를정자를 쓰면서 공부했었지
처음 학원에 들어와서의 그 긴장감..
종로학원.
언수외 수능만으로 최우등반에 무시험입학을 시켜주드라구..ㅋㅋ
근데...난 우리반 50명에 거의 꼴찌드라구.
과고.외고,자립형사립고, 강남의 괴물들만 우리반에 40명..
개네들은 내가보았을떄에 나와는 분명히 다른세상의 아이들이였어.
학원.과외?
우리 아버지는 고기를 잡아주신적이 한번도 없었어,
다만 원했을때는 이 작은도시에서는 최고의 선생님을 독과외로 찾아주셨었지.
영어 8달 .수리 12달.언어 6달..내고딩의 사교육은 이것뿐이였거든..
학원애들이 그말듣고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눈빛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나처럼 독학한애는 처음봤다나 모라나......ㅎ
그건 차라리 방목이였다나..
나처럼 부모님이 팽기친애도 처음봤다나 모라나....ㅋㅋ
근데....
설서 바라본 세상은 진짜 넓은것이드라구....
그래서 나도 독해졌어.
내가살던 세상은 정말 우물안이였다는걸 그때 설에서 난 알았거든...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괜한 말이 아니드라구
근데 말이야.
아빠가 중학때부터 관리하던 수학.영어가 날 일으켜 주드라.
난중에 말씀하시드라 아빠가 .
나에게 재수는 필수일것이다라고 생각하셨대.,나의 절정기는 학교에서가 아닐것이라는것을 습관을보고 느끼셨었다네.
알잖아? 내가 열심히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애가 아니라는것...
내공이 필요한 과목..그래서 수학영어만은 그때부터 챙기셨다는거야.
내가 독해졌을때를 중학때부터 준비하셨다는거지.
힘들때는 학사 옥상에 나가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었지.
아현동에서 서울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울음을 참곤 했었지.
슬퍼보이는 눈이라고 친구들이 그랫었어.
어느날은 울음을 꺽꺽 참으면서 샤프를잡고 공부했어..
재수할때..가장친한 친구한테도 문자를 거의 보내지 못햇어.
대학 그자체에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가끔씩 남겨주는 격려글이 참 반가웟어
문자를 저장해놓고 힘들때마다 봤엇지..
"힘내라". "믿는다"
가끔씩 만날때 얼마나 반갑고 편안했었는지
7월이엇나. 그땐.. 너무 힘들었었어
너무 안좋은 일들이 많앗지..
점심시간에 애들이 보는데도..
서랍장에 기대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
수능이 다가오면서 느껴지는 수능의 중압감.
이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정말 답답했었어
난 최면을 걸었지
난 수능형 인간이다.
실전엔 내가 최고다 .
언제나 힘이 되어준. 주고있는 친구들이 정말 ..정말 고맙다.
2006 대수능 자연계열 480점 상위0.3%, 종로학원 추정.
수리 100점.
그날 그분이 내게 오셨었어.
난 30여점이 오른 초대박을 냈는데 .또 울학교 1등이라네.
설치는 전문대학원? ㅋ~
연치.연치. 꿈속에서도 그렸었는데....
아....과탐하고 내신이 내발목을 잡아버리네.
알잔아 ? 수시는 꿈도 못꾸어본 석차내신 나 27%로 3.5등급인거..
그러나 난 그렇게 학교의 신화가 되어가고 있었써.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날 이리 키워준 우리모교.
난 보험으로 설공을 끼워넣었어
교감선생님께서 제일로 고마워 하시드라 ㅋㅋ~~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것이 아니야.
내 노력때문이 아닌 정말 많은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나를 이자리에 서게 해주었다거 정말 잘 안다.
"우리반에 정말 치대에 가고싶었는데도 성적때문에 못가는 친구들이 많아.
너도 가서는 우리몪까지 열심히 공부하렴"
학원반장 친구의 말..
설공을 버리기로 했다고 ?
늘 네앞에 있던 친구들몫까지 네가 해야 하는거다.
고바기 담임선생님의 말씀.
난 말이야 정말 서울에서 뽀대나게 대학생활 하고싶었었어..
그러나 너무너무 강하게 반대를하시는 아빠에게 결국 내가 지고말았어,
나는 절대로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될거야
초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의 치대진학이 단순히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주는데 그친다면 얼마나 공허할까
이것이 거침없이 새로운 일들에 도전해 볼수 잇는 발판이 되기를.....
내가 받은 사랑과 은총을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줄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해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시 채찍질 해야겠지
훌륭해질게,
바른길을 걸을께.
나 이제는 왜 사람이 살아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것 같아.
다들 너무 소중하니까. 수많은 기쁨과 슬픔속에서 많은것을 배우니까.
내 가슴이 이 길을 걸으라고 하고 있어
새로운 출발.이 모든것을 잊지 않을게.
3년을 늘 밤12시15분에 학교앞에서 기다려주신 아빠.
엄마아빠가 나를 이리키워주신거.
난 결코 잊지않을거야.
2006년 2월 어느날 끄적이며.
이렇게 이창하의 학창시절은 끝이났어.
이러한 습성은 대학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공부는 최소한으로..."공부는 유급만 면하면된다"~~~
따라서 공부이외의 모든일은 할수있으면 할수있는데까지...
특히나 밴드활동에 너무 많은시간을 할애한듯하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집에도 못들르는 녀석이 서울은 엄청 들락날락 거린듯하다.
입학에서 졸업시까지 총 18명의 유급이 발생하였으나 아이는 그걸 아슬아슬하게 용케 피하여 우리에게 기쁨을주었다.
아이의 학교동기카페가 입학때부터 우리에게 공개되어 있었다(아이디.비번을 오픈해주었슴)
우리는 카페를 통하여 아이의 위태위태한 학교생활을 어렴풋이 확인하며 가슴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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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카페에서~~~퍼온글)
영웅이 되고 싶은 자 ..이 창하 ... |
(반성문)
파워포인트로 작성하여 발표한것같은 2011.9월의 반성문..
ㅜㅜㅜㅜ
ㅋㅋ~~
이렇게 우리아이는 반성문을 쓰면서 대학을 다녔다.
영웅이 공부를하랴~~~
수업늦지않겠습니다~~~
초딩때부터 쓰더니만 26살까지 쓰면서..무사히 졸업을 앞두고있다.
그져~~그져~~감사합니다~~ㅋ지금까지의 아이의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간들이었을것이다.
30일의 자유여행...
아이는 커다란세상을보며 커다란꿈을 꾸었으리니...
커다란사람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1.27일 밤10시40분에 전화벨이 울리다.
아들이다.
전화가 이시간에 온다는것은?
가장먼저 부모와 기쁨을 나누고 싶었겠지..
만세다 만세다~~~~~
수고했다.
네가 짱이다.
수고했다.
아이에게 나는 그말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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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아빠도 엄마도..이제는 지난날의 그직책들과 직업들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너가 본1때 아빠가 회사를 정리하고 제2의 인생계획을 말했을때에...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여유가 묻어있는 일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했었었지.
네게 부끄럽지않은 아빠가 되고싶다.
너는 새로운출발로...
아빠는 제2의 출발로...
우리 힘차게 살아보자꾸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너에게 네가 예전에썼던 말에 아빠가 하고싶은말이 그대로있구나.
"절대로 부끄럽지않은 네가 되어야한다"
"네가받은 사랑과은총을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줄수있는 삶을 살아야한다"
"다른 누군가의 삶의질이 향상시키는일..그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어야한단다"
우리에게 와주어서 고맙다.
잘자라주어 고맙다,
2012년 2월하순.
이렇게 나의 19년 학부모생활은 끝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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