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齋夜寂靜 窓外雪尺餘 一燈當案明 案上古人書
한재야적정 창외설척여 일등당안명 안상고인서
古人今不在 古書能起余 一讀眼忽開 恍若閱璠璵
고인금불재 고서능기여 일독안홀개 황약열번여
차가운 서재에 밤이 고요한데
창밖에 소복하게 눈이 쌓였네.
등잔 하나 서안을 환히 비추니
서안에는 고인의 책이 있구나
고인은 이제 가고 없는데
옛 책이 나를 일깨운다오
처음 읽자 눈이 홀연 열리어
황홀하게 보배를 보는 듯하고
再讀心有契 旨哉咀珍美 終然讀不已 義理浩無涘
재독심유결 지재저진미 종연독불이 의리호무사
如何輪扁子 乃將糟粕比 猖狂侮聖言 誣世莫甚此
여하륜편자 내장조박비 창광모성언 무세막심차
거듭 읽자 마음에 계합하니
아름다운 그 말씀 음미하노라.
읽고 또 읽으며 그만두지 않으니
담긴 의리 끝없이 광대하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윤편자는
찌꺼기에 책을 비유하였는지*
방자하게 성인 말씀 모독하였으니
혹세무민이 이보다 심한 것 없네
喟余苦好古 尙志千載下 魯鈍乖世用 屛伏在山野
위여고호고 상지천재하 노둔괴세용 병복재산야
一室千萬卷 餘年天所假 前言與往行 服膺期不舍
일실천만권 여년천소가 전언여왕행 복응기불사
아 나는 몹시도 옛것을 좋아하여
먼 후대에 뜻을 높이 가지노라.
노둔한 자질 세상에 쓰이지 못해
초야에 묻혀 살아가고 있지만
방안 가득 천만 권 도서 있으니
하늘이 빌려주시는 여생 동안
전대의 말씀과 옛 분의 선행을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으려 하네.
- 홍우원(洪宇遠, 1605~1687)
「밤에 앉아 글을 읽다[夜坐讀書]」
『남파집(南坡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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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유자는 바로 독서인(讀書人)이었다.
홍우원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살았던 이식(李植, 1584~1647)은
「자제들에게 주는 글[示兒孫等]」에서 다음과 같이 독서의 규모를 제시하였는데
이를 통해 당대의 독서 수준을 엿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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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을 책으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은
대문(大文 주석을 뺀 원문)을 백 번 읽는다.
『논어(論語)』는 장구(章句 주희의 주석)와 함께 백 번까지 숙독(熟讀)한다.
『맹자(孟子)』는 대문(大文)을 백 번 읽는다.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은 횟수를 세지 않고 조석(朝夕)으로 돌아가며 계속 암송한다.
『통감강목(通鑑綱目)』과 『송문감(宋文鑑)』은 선생에게 한 번 배운 뒤 숙독하고
좋은 글귀가 있으면 한두 권 정도 베껴 놓고 수십 번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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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읽을 책으로 『주역(周易)』의 대문은 먼저 효사(爻辭)를 읽되,
주희의 『역학계몽(易學啓蒙)』을 함께 읽어 대지(大旨)를 이해하고 점법(占法)을 숙지하며
다른 서적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연구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은 두어 번 읽어 큰 뜻을 이해하되,
『좌전(左傳)』은 베껴서 읽고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은 여력이 있으면 한 번 열람한다.
『예기(禮記)』는 선생과 강론(講論)한 뒤 좋은 문장이 있는 부분을 베껴서 숙독한다.
『의례(儀禮)』는 『예기』를 읽을 때 참고하고 따로 숙독하지는 않고,
『주례(周禮)』는 『춘추(春秋)』를 읽을 때 역시 참고한다.
『소학(小學)』은 선생에게 배울 때
한 달에 한 번씩 통독하고 날마다 가슴에 새기고 실천한다.
『주자가례(朱子家禮)』는 늘 연구하고 실천하며 따로 송독하지는 않는다.
『근사록(近思錄)』, 『성리대전(性理大全)』,『성리군서(性理群書)』,
『심경(心經)』, 『이정전서(二程全書)』, 『주자전서(朱子全書)』는 매우 중요한 공부로,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깊이 강론하여 체인(體認)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니
궁리공부(窮理工夫)가 오직 이 서책들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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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이 제출한 독서의 규모는
학문의 길에 이제 막 들어서는 어린 선비들이 밟아야 할
이상적인 공부의 과정을 예시한 것으로,
당대에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기본적인 교양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유(韓愈)ㆍ유종원(柳宗元)ㆍ소식(蘇軾)의 글을 비롯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문장, 문선(文選),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의 사서(史書),
순자(荀子)ㆍ한비자(韓非子)ㆍ노자(老子)ㆍ장자(莊子)ㆍ열자(列子) 등 제자백가의 글,
초사(楚辭), 이백(李白)ㆍ두보(杜甫)ㆍ한유(韓愈)ㆍ소식(蘇軾)ㆍ황정견(黃庭堅) 등의 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 역대의 사서(史書), 우리나라 사서(史書) 및 문집(文集) 등,
경국대전(經國大典), 국조전고(國朝典故) 등을 섭렵하여 안목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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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桓公)이
당상(堂上)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윤편(輪扁)이 당하(堂下)에서 수레바퀴의 구멍을 뚫다가 도구를 놔두고 앞으로 나아가
“공이 읽는 글은 무슨 글입니까?”라고 물으니,
환공이 말하기를
“성인의 글이다.”라고 하였다.
윤편이 다시 “성인이 살아 있습니까?”라고 묻자,
환공은 “이미 죽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윤편이
“그러면 공이 읽으시는 것은 고인의 찌꺼기(糟粕)에 불과합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내가 글을 읽고 있는데, 수레공 따위가 함부로 말하고 있구나.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으면 모르지만, 이유가 없으면 사형에 처하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윤편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제가 하는 일로 관찰해 보겠습니다.
수레바퀴의 구멍을 뚫을 때 구멍이 크면 쑥쑥 잘 들어가지만 견고하지 않고,
구멍이 작으면 껄끄럽고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뚫으려면 마음에 따라 손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는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술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제가 제 아들에게 말해 줄 수 없어서
제 아들이 저의 기술을 계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가 일흔이 되도록 수레바퀴의 구멍을 뚫고 있는 것입니다.
고인과 고인이 전수하지 못한 것은 이미 상실되어 버렸으니,
그렇다면 공이 읽는 글은 고인의 찌꺼기인 것입니다.” 『莊子 天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