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연간집 원고 (시 3편, 수필 1편)
1. 못 박기
추영호
액자가 떨어졌다
바람도 진동도 없는데
벽에 걸린 사진액자가 떨어졌다
아파트로 이사 들 때
벽에 못을 박았던 기억이 난다
여러 번 망치질해 봤지만
자꾸 튕겨 나와
대충 걸어두었던 액자다
액자 속에서 올려다보는 눈
언제부터인가 웃음기가 사라졌다
모두 벽처럼 식어 있다
돌아보면 사방이 벽이다
벽과 벽 사이로 냉기가 흐르고
층과 층 사이로 긴장이 팽팽하다
쉬이 못질할 곳이 없다
회색 벽 속에 사는 사람들은
곧게 잡고 정확히 두드려야 해
조금만 빗나가도 튕겨버리니까
오늘 아침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위층에서 못질하지 말란단다
내 집인데, 그때도 그랬지
시멘트보다 두꺼운 옹벽이 나를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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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별빛 바라기
추영호
박꽃 등 너머로
속절없이 박명薄明은 오네요
이제 또 헤어져야 할 시간
서름서름한 낯빛
서산을 넘는 당신을 보면
은하수보다 큰 내川가 가슴에 흐르죠
새벽 내린 창가에서
차마 놓지 못한 두 손 위로
는개비로 쏟아지던 별빛 그림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차오르면 떠나고 마는
사랑은 행려병行旅病 같은 것을
바랜 날들을 갈고닦아
반짝반짝 야생화夜生花로 피워내
허공에 뿌려주는 당신은 연금술사
이 밤 가면 다시 오리니
못난 그리움 은빛으로 닦아
내 유리창에 달아주길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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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을이 오면
추영호
가을이 오면
오색 단풍을 엮어 저고리를 만들어
가녀린 어깨를 감싸주리니
가을이 오면
쪽빛 하늘을 떠다 목걸이를 만들어
붉은 가슴에 걸어 주리니
가을이 오면
억새꽃 바람을 낚아 귀걸이를 만들어
하얀 귓불에 달아 주리니
그대, 이 가을에는
못다 이룬 말 오롯이 가슴에 담고
한사코 내가 먼저 찾아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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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지의 목련나무
鳳岩/추영호
고향 옛집 안방 앞에 백목련 나무가 한그루 있다.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 들 때, 아버지가 기념으로 심어놓으신 것인데 벌써 30년이 지났다. 밑 둥은 내 허리만큼 굵지만 키는 철제의자를 놓고 올라서면 손이 닿을 정도에서 더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가지치기를 너무 심하게 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봄꽃도 시원찮아 겨우 열대여섯 송이 피었다가 금방 져 버린다. 원인은 나무가 안방에 너무 가깝게 심어져 있는데 있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어른 손바닥 두 배 정도의 큰 잎들이 무성하게 그늘을 만들어 방을 어둡게 해, 자주 가지치기하게 된 것이다. 말이 가지치기지 몸통만 남긴 벌목 수준이다.
목련나무는 웃자람이 빠른 반면 속이 허해 잘 부러진다. 새로 난 가지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휘어지고 꺾여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볼품없이 엉성해진다. 그 시절 아내는 비염을 앓고 있었는데 봄이면 꽃가루 때문에 더 심한 것 같다고 어머니는 며느리를 생각해 정원에 꽃나무 심는 것을 반대하셨고, 목련나무 역시 아무 짝에 쓸모없다며 아예 잘라버리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심어 놓은 것이라 그렇게 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도 그런 말씀을 더는 하지 않으셨다.
목련나무는 정원수로 적합하지 않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주는 어감도 그렇거니와 이른 봄 백옥 같은 꽃을 흐드러지게 달고 있을 때는 그 화려함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만, 반짝 그 시기가 지나면 큰 그늘만 만들어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하필 하고많은 수종 중에서 목련나무를 선택하셨을까? 아마도 진한 향과 화려함만을 상상하고 나무가 이렇게 웃자란다는 것은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교직에 계시다 정년퇴직을 하셨다. 강직한 성격이셨지만 직에 계실 때는 쾌활하셔서 동료 직원들이나 지역민들과 어울려 약주도 자주 하셨다. 그러나 퇴직 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아니면 바깥출입도 않으시고 왕래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것이 두 분 금실이 좋으신 것으로 여겼는데 실은 아버지가 가실 곳이 마땅찮았던 것이다.
그렇게 집안에서만 계시던 아버지가 퇴직 5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우리의 충격은 컸고 그 후 어머니 역시 밖에 나가시는 일이 거의 없어지셨다. 그러던 얼마 후에 나는 아이들 진학문제로 고향을 뜨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한사코 아버지와 살던 집을 두고 갈 수 없다고 해 부득이 우리 가족만 광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 후 몇 달 동안은 매주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그런데 승용차로 왕복 4시간이나 되는 거리가 차츰 부담되기 시작하였고, 이런저런 핑곗거리가 생겨 한 주씩 건너뛰다 보니 언젠가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뵙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나 옛집에 가면 목련나무가 엉성해져 있었다. 새로 자란 목련나무 가지는 힘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꺾어져 가지치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20여 평에 불과한 정원은 풀과의 전쟁이었다. 비라도 오고 나면 순식간에 잡초가 한 뼘씩 자라 정원을 덮어 버린다. 늦게 가면 그만큼 땀을 더 흘려야 했다.
오늘도 옛집에 왔다. 목련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잡초를 뽑다 보면 친구가 보내준 카톡 글이 떠오르곤 한다. 고려대 모 교수가 ‘토종 들풀 종자은행’ 세웠는데 이를 소개한 ‘제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된다.' 라는 머리글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가 되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오호라-!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된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인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게 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다.’는 내용이다.
어쩌다 아버지 손에 이 목련나무가 잡혀 와 여기에 심어져 수난을 받고 있는지? 제자리를 잡았더라면 비록 짧은 날이지만 화려한 자태로 뭇시선을 끌었을 텐데-.
목련꽃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도 많다. 대개가 아름답고 애달프다. ‘어머니 앞섶에다/ 볼 비비는 아이처럼/ 젖 물린 어미 눈에/ 웃음꽃 피어내듯/ 창밖에 매달아 놓은/ 열일곱 살 호야등... (이예숙의 목련꽃)처럼 어쩜 우리 내 정서와 닮은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꽃들과 달리 목련꽃은 북쪽을 향해 핀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목련꽃은 봉오리를 감싸고 있는 겉 꽃잎이 있는데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의 겉 꽃잎은 빨리 자라고 북쪽 겉 꽃잎은 상대적으로 성장이 느려 북향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목련꽃이 ‘임금님을 향한 충절’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고, 불교에서는 “나무에 핀 연꽃”이라 하여 나무(木), 연밥 련(蓮)자를 써 ‘목련(木蓮)’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한, 봄을 부른다 해서 ‘영춘화(迎春化)’라 하기도 하고, 처음 꽃이 필 때 그 모양이 붓과 같아서 ‘목필(木筆)’이라고도 한다. 백목련 꽃봉오리를 ‘신이화’라고도 부르는데 이를 차로 다려 마시면 비염 치료에 탁월하다고 한다. 꽃말과는 다르게 충절과 문인의 정서가 보이고 쓰임새가 있는 꽃이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이런 의미와 쓰임새를 알고 계셨고 어쩜, 비염에 좋다는 점을 염두에 두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제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잡초라고 야박스럽게 뽑아내고 있는 풀들도 모두 제 나름의 이름이 있고, 멋과 역할이 있고, 생존의 치열함이 있을 터인데 내가 알려 하지 않아 잡초로 여겨왔을 뿐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목련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풀을 뽑으며 이것들에 대한 소소한 점들이 궁금해져 인터넷은 뒤져보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왜 궁금한 점이 그리도 없었는지, 평생을 밖에서 일하신 분이 갑자기 집안에 틀어박혀 계시려니 생활리듬 변화에 적응키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했는지, 퇴직 후의 아버지에게 작은 일거리라도 마련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는지, 아버지의 심사를 헤아려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지난날이 죄스럽고 부끄럽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로워하시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세를 놓아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만 지금도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옛집에 간다.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간 탓에 목련나무의 가지치기를 하고 풀을 뽑는 일이 수월치마는 않다. 그래도 그 일을 할 때가 좋다.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 뵈는 것 같고, 우리 식구가 한집에 왁자하게 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
꺾인 가지와 뽑힌 풀들의 수북한 무더기를 본다. 저것들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내게 있는 것인가? ‘잡초는 없다. 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될 뿐이다.’라고 했는데 정년퇴직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에서 밀려난 내 자리는 어디인가? 장성한 우리 자식들은 지금의 나를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도 그 시절의 나처럼 마냥 바빠(?)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제 자리려니 하면서도 가슴에 휑한 바람이 인다.
누군가 말했듯이 ‘정해진 자리는 없다.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자리인 것’이다. 오늘 나는 목련나무의 가지치기를 하고 정원의 잡초를 뽑는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자리이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完-
- 작가 프로필
‧ 필명 : 봉암鳳岩,
‧ 출신 : 전남, 완도. (현거주 : 광주광역시)
‧ 수산업협동조합 임,직원 역임
‧ 한울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 한울문학 언론문학대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 (강진문협, 완도문협) 회원
‧ 전남대학교 문예창작 동인
‧ 저 서 : 여행 작가誌, 완도, 강진문학 同人誌,
生의 美學과 명시 등 다수 공저
‧ E-메 일 : choo480@daum.net
전화번호 : 010-8614-8002
첫댓글 아파트 생활의 어려움을 TV에서 보았는데, 추선생님의 시 속에서 만나니 실감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참고 사셔야지요. 공감하면서 평화 가득한 아파트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색단풍 엮어 저고리 만들고,
쪽빛하늘 떠다 목거리 만들고, 억세꽃 바람 낚아 귀걸이 만드시는 추선생님의 풍성한 가을과,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마음이 부럽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시,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늘 평안하소서.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올건데 가을이 오면 이시가 생각이 날것같습니다.가을은 추억을 만들어가시면 좋은 글속에 머물다 갑니다.
싸한 서정의 별바라기 ~~
그런 별바라기 해본적 없는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네요~~
가슴 아리운 별바라기지만 그리움으로 주렁거리도록 창가에 두고 싶어 하시네요~
따뜻해져옴을 저도 느껴 봅니다~
목련이 갸냘퍼서 어쩌죠....
선친 모습이 선합니다.
아버님과 함께 즐기시던 약주 마시던 모습들이....
그런 추억을 길게 더듬어서 써 내려간 필력이 대단 하십니다.
엄밀히 말해서 잡초는 없다....
못생긴 나무가 선산은 지킨다죠.
죽은 개는 건들지 않아요...
존재감 없는 삶이 잡초겠죠.
나이 들어갈수록 부모님 생각 엣날이 자꾸 그리워 지는것은 다같은가 봅니다 저의 모친이 97세에 운명을 하였는데 내가 조금만 더 잘 하였으면 더 올래 살아 계실터인데 하고 후회가 날때가 많습니다 감상 잘하고 감니다 청해농원
장 목사님, 서안덕님,강덕례님, 조금나루님, 김재광님~귀한 발길 반갑고 감사합니다~
더위가 한창입니다~낮엔 너무 더워 빠깥출입 자제하고 있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 오늘은 시원한 바람이 있네요~매미소리도 들리고~~카페에 올라있는 글 읽으며 잠시 더위 잊고 있습니다~모두 여름 잘 나시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