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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산 20 리를 적시는 12폭포 / 6월
내연산 ^^ 경북 포항
향로교-> 향로봉-> 고메이동-> 시명리-> 시명폭포-> 학소대-> 연산폭포-> 관음폭포 -> 보경사
그때는 바람찬 늦가을이었다. 보경사의 토담을 끼고 걷는 황톳길은 노송과 느티나무 숲길이다. 다시 후미진 언덕을 치고 오르다 보면 빼곡히 우거진 대숲이 보인다. 대숲이 끝나는 모퉁이에 작은 암자가 있다. 문수암이다. 마당 끝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고 뒤란에도 또 한 그루의 감나무가 문수산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가슴을 열고 있었다. 홍시를 만들어주는 고마운 바람이다.
절반쯤 열려있는 사립문 사이로 암자의 봉당 중간쯤의 댓돌에는 스님의 털신이 놓여있다. 스님에게 묻고 싶었다. 가지가 부러질 듯 매달린 감을 왜 그냥 보고만 있는지 궁금했다. 헛기침을 하면서 인기척을 내는데도 조용하다. 스님은 당최 관심이 없는데 보는 사람만 쓸데없는 궁금증으로 속이 탄다. 소일거리로 여기고 몸통이 딱딱한 놈을 골라 껍질을 벗기면 곶감이 되련만, 요사채의 비어있는 처마 끝이 허전하다. 어림잡아 서른 접은 될 듯싶은데 스님은 까치밥이 되도록 그냥 놔둘 요량이다.
그해 늦가을은 이렇게 문수암으로 시작해서 향로봉을 찍으며 청하골로 내려섰던 지루한 산행이었다. 학소대 언덕을 지나 문수산 정상에서 청하골 계곡을 내려다봤었다. 그리고 꼭 십 년 만에 찾은 내연산이다. 오늘은 산행코스를 달리 잡았다. 하옥리의 향로교에서 치고 올라가 보경사로 빠지는 내연산 종주인 셈이다.
초입은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 능선이다. 호흡은 거칠고 걸음이 더딘 것을 보면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흔한 푯말도 볼 수 없으니 더 지루하게 느껴진다.
향로봉 정상이다. 멀리 눈길을 주면 동해의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그려지고 뒤쪽으로는 내륙의 주왕산으로 내달리는 낙동정 맥의 산줄기가 동해안 쪽으로 가지를 튼 산이 바로 내연산이다. 열두 개의 폭포가 이어지는 내연산은 설악산, 두타산, 청옥산과 함께 동해안 변에 솟은 4대 명산의 하나다.
그늘에서 도시락을 먹고 고메이등을 따라 구릉지로 내려섰다. 열두 개의 폭포가 쏟아지는 갑천계곡이며 여기가 곧 청하골이다. 등산로를 따라 물소리를 듣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온통 다래넝쿨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한껏 몸을 숙여 숲을 빠져 나오면 12폭포의 시작인 시명폭포를 만난다. 계곡을 따라 흘러서 넘치는 열두 개의 폭포는 지근거리에서 보경사 절집까지 이어진다.
한 올 한 올 가느다란 물줄기가 실타래 엮어 풀어놓는 잔 물살은 실폭포다. 너른 바위를 흐르다 희디흰 물결이 은빛을 띠고 있다하여 은폭포라던가. 무풍폭포부터 물줄기는 더 강렬하게 흘러내린 청하계곡은 연산폭포에서 거센 용트림을 하고 소(沼)에서 머무르다 담(潭)을 만든다. 내연산 폭포의 하이라이트다.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은 '내연삼용추'는 바로 이 세 개의 폭포를 연결하여 그려낸 진경산수화다. 드론도 없던 시대에 세 개의 폭포를 한 폭의 비단에 담아낸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어느 폭포는 선일대에서 그렸을 것이고 다른 폭포는 학소대에서의 기억을 떠 올렸을 것이며 마지막 관음폭포는 정면에서 그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산객들이 내연산을 내려오면서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연산폭포와 관음폭포이다. 오래 머무를수록 눈은 더 밝아지고 귀는 더 맑아지는 느낌이다. 시명폭포로부터 시작된 이십 리 청하계곡은 삼보폭포에 다다르며 개여울도 잔잔하게 흘러내린다. 폭포가 있고 못이 있고 소가 있으며 담이 있는 12폭포의 내연산이다. 조선시대의 유학자인 정시한은 그의 산중일기에서 ‘열두 개의 기이한 폭포는 금강산에도 없노라’고 극찬하였다.
흙벽돌 담장을 끼고 돌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보이는 보경사 절집이다. 저녁공양을 준비하는 스님의 손길이 바쁘다. 대웅전 추녀 끝을 흔드는 풍경소리가 공양시간이 다 됐음을 알린다. 가늘고 은은하다. 내연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저녁바람이었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내연산을 제대로 종주하려면 12폭포는 하산할 때 만나고 문수암을 들머리로 능선을 타는 것이 좋다. 내려올 때 20십리 청하계곡인데 별천지의 날머리길이다. 계곡이 제법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산행에서 폭포를 만나면 없던 힘도 솟는 것을 느낀다. 열두 개의 폭포로 내달리니 계곡은 명품이다.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함백산 / 1월
함백산 ^^ 강원 태백, 고한
화방재-> 수리봉-> 만항재-> 깔 닥고개-> 함백산정상-> 주목군락지-> 중함 백-> 샘터-> 정암사-> 은대봉-> 두문동재
아침 햇살을 받은 눈밭이 보석 알갱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는 내리는 눈을 맨몸으로 받아내는데 노간주나무는 눈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린다. 함백산이 힘겨워하니 벌써 숨이 가쁘다. 만항재에서 사방천지를 보지만 능선이고 계곡이고 구분이 어렵다.
며칠 전 가을걷이로 바쁠 때에도 함백산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달포 전 싸락눈이 심술을 부릴 때에도 이 산에는 필시 함박눈이 찾아 들었을 것이다. 간밤에도 그칠 줄 모르는 눈발이 종일토록 퍼붓는다. 협곡이고 능선이고 구릉지고 사방이 광활한 흰색의 꽃밭이다.
하얀 조팝나무 꽃이 바람에 날리던 백운산에서의 재작년 봄이 이러했던가, 만개한 산벚 꽃이 봄바람을 타고 쏟아지던 지리산의 노고단능선길이 이러했던가. 꽃잎인지 눈발인지 도통 구분이 어렵다. 함백산에 또 눈이 내린다. 막무가내로 퍼붓고 있으니 앞을 볼 수가 없다. 온 세상이 조용하고 침묵의 시간은 길어 만진다.
함백산 정상의 방송사 송신탑을 등지고 계곡을 내려선다. 중함백과 샘터 능선을 따라 아름드리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 최대 주목군락지가 태백산이라고 하지만 함백산도 만만찮다. 주목이 지천이다. 눈의 무게에 짓눌린 나무들은 마치 하얀 무채의 무시루떡을 연상케 한다.
함백산 계곡으로 휙 하고 칼바람이 인다. 켜켜이 쌓인 눈 무덤에서 윙윙 소리를 낸다. 뒤따라 눈보라도 쌩하고 지나간다. 샘터삼거리에서 곧장 걸으면 은대봉인데 왼쪽으로 꺾어지는 계곡길을 타고 정암사로 간다. 국내 5대 적멸보궁이요, 정암사 수마노탑은 불자들이 치성을 드리는 기도도량의 천년고찰이다.
눈길을 미끄러지며 한참을 내려온 보람으로 수마노탑과 친견을 할 수 있었다. 종루에도 무량수전에도 자장각에도 삼성각에도 눈이 쌓였다. 수마노탑 아래의 적멸보궁 지붕에는 눈이 한가득이다. 아늑하고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작은 바람소리도 들리고 눈발이 흩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노스님과 동자승도 요사채 들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를 들었을 테지만 두문불출이다.
정암사 역시 적멸보궁의 절집이다. 적멸보궁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 했기에 불상을 따로 모시지는 않는다. 두문동재를 날머리로 정했으니 다시 함백산 중턱으로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 계곡도 불심의 도움이 전해지면 거뜬할 것이다.
주목군락지를 다 빠져나오면 3쉼터, 2쉼터, 중함백산 그리고 은대봉을 거쳐 1쉼터에 이르면서 산객의 끈기를 시험한다. 먼저 길을 터준 고마운 산객이 없었다면 눈밭을 치고나가는 러셀의 작업도 문제였을 것이다.
오늘도 함백산은 그야말로 폭설이다. 배낭을 풀고 초콜릿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했다. 잿빛 구름 사이로 내려 쬐는 햇발이 고마워 하늘을 본다. 눈구덩이로 반사되는 역광이 눈부시다. 흰 눈에 반사된 빛을 오랫동안 쐬면 시력이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렸다.
지난여름의 함백산은 산 전체가 야생화로 가득했던 산이었다. 동강할미꽃이 먼저 피고 술패랭이가 자리한 능선으로 타래난초와 큰제비꼬깔. 산박하, 도라지모싯대 같은 수백 종의 야생화가 피고 또 지고 또 피는 일을 반복했으리라. 유명한 사진작가들도 이때는 산꾼이 되고 등산가가 된다. 해마다 백두대간함백산야생화축제가 여기서 열린다. 은대봉쯤 내려서는데 목덜미로 흐르던 땀이 식어간다. 보폭이 느리다는 신호다.
눈이 그쳤나 싶은데 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능선을 넘어온 눈보라가 실성한 듯, 이쪽으로 덮쳐 와서는 빨갛게 상기된 볼을 때린다. 한참 을 지나서는 두 뺨이 아리다 못해 터질 것만 같다. 은대봉을 넘어서던 산악대장은 뒤쳐진 일행의 배낭을 넘겨받고는 하산을 재촉한다.
겨울산행에서 폭설을 만나면 산행은 몇 곱절로 힘이 들게 마련이다. 한발 올려놓는가 싶으면 되레 반발 뒤로 미끄러진다. 내리막에서는 반대로 한 발 내딛으면 서너 보폭은 저절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저절로 하산하는 것 같지만 발목과 종아리에 팍팍한 힘이 주어지는 근력을 감내해야한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던 등산로는 이제 배꼽까지 차오른다. 폭설이 내린 눈길에서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 야금야금 걷다보면 정상은 보인다. 눈길에서는 왕도가 없다.
부산에서 왔다는 어느 새댁은 엄청난 함백산의 눈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워메 눈이 엄청시리도 마이 왔네."
꼬박 여섯 시간을 달려왔다는 부산의 어느 새댁은 앞 머리칼에 고드름을 잔뜩 매달고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머리에 온통 고드름이네요?"
"강원도 산에 왔다는 훈장 하나는 달고 가야되지 않겠능교."
말은 그렇게 여유가 있는척하면서도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부산 임더!”
"그 먼 부산 말이지요?"
"하무요."
배시시 웃는 양 볼 사이로 모락모락 더운 김이 번지고 있었다. 지금껏 겨울산행을 하면서 머리칼이 고드름으로 어는 모습은 처음 본다.
강원도의 겨울산행이라 여섯 겹의 옷으로 단단히 무장을 했다는 부산새댁이다. 은대봉을 오르는 대가로 고드름을 얻은 기억은 길이길이 보전할 것이다. 배낭 옆 주머니에서 손난로를 꺼내는데 새댁은 벌써 알아 챈 듯 손을 내밀고 있었다. 추위에 무슨 체면이 필요하던가.
날머리인 싸리재까지 다 내려왔는데 사나흘의 폭설로 포장도로가 눈 속에 파묻혔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두문동재 터널입구까지 또 걸었다.
함백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그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해발 1,572미터높이의 대간동맥으로 음력 오월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다. 인적도 드문 두문동재를 내려서는데 겨울햇살은 이미 저만큼 도망치고 차가운 산그늘이 찾아든다. 골이 깊으면 밤도 서둘러 찾아오는 법이다. 정선 읍내에서 뜨끈한 콧등치기국수를 시켜 먹을까 싶다, 양념간장에 비벼먹는 곤드레나물밥도 정선의 맛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우리나라에서 강설량이 많기로는 울릉도 다음으로 함백산일 것이다. 함백산에서의 겨울산행은 철저한 장비를 확보해야만 산행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육산의 지형이라 험한 산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눈이 많이 내린다. 예정된 시간보다 하산은 서둘러야 한다.
대야산 용추폭포 / 9월
대야산 ^^ 경북 문경
마을당산나무 – 농바위 – 대슬랩 – 중대봉
대야산 – 대문바위 – 월영대 -용추골 – 무당소
농부는 도리깨로 알곡을 털고 아낙은 들깨의 낱알을 고르기 위해 체질을 한다. 작은 나락까지 허투루 여기지 않는 농부의 손길에서 가을은 깊어간다.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인 느티나무를 껴안고 돌면 물 빠진 봇도랑 옆으로 논두렁이 나오고 돌이 더 많은 비탈진 밭에는 잡초마저 시들어있다. 돌밭까지 일궈가며 씨를 뿌리기엔 손이 부족한 모양이다.
농바위골로 향하는 등산로는 아무렇게나 자란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빼곡하다. 아직은 햇살에 더 익숙하고 그늘이 더 고마운 계절이다.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서도 지루하지 않는 것은 지천으로 널린 야생화 때문이다.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하늘거리고 흔한 쑥꽃도 하얗게 몸을 흔든다. 산고들배기와 궁궁이도 흰색인데 벌개미취와 잔대와 모싯대 꽃은 연분홍이다. 우리산야의 능선과 계곡으로 소리 소문 내지 않고 조용히 피는 들꽃들이다.
대야산은 초입부터 거친 암벽으로 시작되는 산이다. 작은 슬랩 구간이 먼저 나타나고 체력을 다 소진했다 싶은데 곰바위 대슬랩 수직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암벽화를 착용하지 않은 일행 때문일까, 한사람이 완전히 통과해야만 다른 사람이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오른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이 안전산행의 첩경이다. 가파른 경사의 암벽일수록 조급해서는 일을 그르치게 된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꼿꼿한 암벽은 여타의 명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마지막 일행이 소나무 밑동을 안전하게 밟는 것을 확인하고는 중대봉으로 이동한다.
깔딱고개를 다 오르면 대야산 정상이다. 먼저 온 산객들은 점심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산악인들에게 별반 알려지지 않았던 대야산이 수년 전부터 입소문을 타더니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는 산이 되어버렸다. 대야산 정상이다. 남으로 고개를 돌리면 둔덕산과 청화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희양산과 백화산이 가깝다. 뒤를 돌아보면 조령산과 월악산이 시야에 어른거리고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속리산의 문장대가 조망된다.
월영대로 내려서는 하산길은 기이한 암반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다. 대문바위를 지나 떡바위를 내려서면 피아골과 용추골이 만나는 월영대다. 계곡에 달빛이 스며들면 어둔 녘의 월영대는 더 장관을 이룬다. 야트막한 계곡으로 옥계수가 사시사철 흘러 참갈겨니도 유영을 하고 금강모치와 송사리도 물살을 가른다.
월영대의 물길을 따라 계속 내려서면 더 큰 암반의 너른 계곡이 펼쳐진다. 문경팔경의 하나인 용추폭포다. 거대한 화강암반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하트형의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적이다. 수억 년을 지치지 않고 쏟아지며 하트형의 걸작을 만들었다. 용추폭포는 대야산의 심장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용추에는 두 마리의 용이 살았는데 등천의 날이 되자 서로 먼저 하늘로 오르려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용추폭포의 하트형상의 언저리에는 용의 비늘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으니 전해져오는 전설이 그럴듯하다.
용추 물속으로 손을 넣는데 살갗이 시리고 뼈 속까지 아려온다. 빨갛게 익은 홍로사과 풍덩 집어넣었다가 얼른 꺼내서 입에 물었다. 가슴까지 시원하다. 대야산 용추폭포에서 사랑의 징표 하나를 얻었다. 혹여 살아가면서 서로의 사랑이 소원하다 싶으면 대야산 용추폭포를 찾으시라.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산행을 하다보면 음악을 들으며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걷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혼자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하물며 낙엽 구르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천상의 화원인 황매산 철쭉 / 5월
황매산 ^^ 경남 합천
황매산공원입구 - 박덤 – 너백이쉼터 - 전망대 – 황 매산 정상 - 철쭉제단 –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 – 황매평원 - 베틀봉 – 모산재 - 돛대바위 – 영암사 지 – 모산재주차장
막 모내기를 마친 다랑이 논둑으로 봄물이 넘쳐흐른다. 개울 건너 비탈길로 노란 황매화 울타리가 빼곡하다.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을 지나면 황매산 초입으로 작은 연못이 있다. 가랑잎 사이로 막 까놓은 도롱뇽 알이 보인다. 황매산 역시 청정계곡이란 증거다.
잡목 숲을 빠져나오면 너백이쉼터의 지붕 너머로 광활한 황매산 능선과 계곡이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만개한 철쭉이 황매산 정상으로 불길처럼 번지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황매평전과 베틀봉으로 이어지는데 철쭉제단까지 천지사방으로 연분홍에 진분홍의 곱고 고은 철쭉주단이 깔린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꽃길은 철쭉의 꽃숲 터널이다. 나무계단을 지나 경사가 급한 돌계단의 깔딱고개를 올라서는데 팥죽 같은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철쭉 숲을 헤집고 황매산 정상에 올랐다. 가까이로는 합천호가 있고 지리산과 덕유산과 가야산이 모두 조망된다.
황매산은 이른 아침 일출은 물론 석양이 지는 노을 속의 정상 암봉이 마치 황매화가 활짝 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이름은 합천호 드넓은 호수에 하봉, 중봉, 상봉의 그림자가 비추니 그 모습이 마치 세 송이의 매화꽃 같다고 해서 수중매라고도 부른다. 봄에는 철쭉이요, 가을에 억새가 뒤덮는 유명한 산인데 지명에 얽힌 연유가 매화라니 뜻밖이다. 해발 1.108미터에 이르는 남녘의 산 치고는 꽤나 높다.
황매산 제단과 황매평전을 사이에 두고 긴 데크길을 걷는다. 북서쪽 능선 정상으로 수만 평에 걸친 황매산 고산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화사한 정원을 만든다. 가까이 연분홍 철쭉이 일렁이고 진분홍 물결은 멀리 능선과 구릉지와 계곡을 덮고 있다. 사방 어디를 돌아봐도 붉고 붉은 꽃밭이다. 너무 붉다싶어 고개를 돌리면 하얀 조팝나무가 하늘거리고 봄보리수나무도 하얗게 꽃을 피운다.
철쭉은 어떤 꽃인가. 더러는 진달래와 혼동을 하지만 확연히 다르다. 진달래는 꽃을 먼저 피운 후에 잎이 나오는데 반해, 철쭉은 연두색 새순이 돋고 열흘쯤 지난 뒤에야 이때다 싶어 꽃이 피어난다.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하는데 반해 철쭉은 개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꽃잎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구분된다. 진달래가 꽃잎을 오므리고 피는데 반해, 철쭉은 다섯 방향으로 활짝 입을 벌리며 싱겁게 웃으면서 꽃을 피운다. 일반적으로 흰 색채에 가까운 연분홍 꽃이 철쭉이고 진분홍으로 색상이 짙고 안으로 반점이 찍힌 철쭉을 산철쭉이다. 황매산 철쭉의 대부분은 산철쭉이다.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다.
한반도의 철쭉 3대 군락지로는 지리산 바래봉과 소백산 비로봉 그리고 이곳 황매산을 꼽고 있는데 황매산도 뒤지지 않는다. 황매산은 노적가리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정상에도 황철쭉 꽃을 피워낸다. 산 정상치고는 너무 비좁아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게 흠이다. 인증 샷을 남기는데 한참을 기다렸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드넓은 능선으로 철쭉군락이 일품이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천지사방으로 핀 철쭉에 혼이 나갈 지경이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모산재를 넘는 무지개 터의 하산 길은 황매산의 절정이다. 순결바위 능선도 그렇고 돛대바위 능선도 그렇고 어깨에 허리에 철쭉꽃을 꽂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화강암 기암괴석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금빛 황룡사의 절집도 좋지만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 지키고 있는 영암사지를 만나면 황매산 산행은 그야말로 호사다.
나말여초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속의 영암사지는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과 삼층석탑 그리고 영암사지귀부가 국보로서 인정을 받았으니 역사의 보고라 하겠다. 천년의 세월을 견딘 영암사지의 석축을 보라. 일정한 간격으로 쐐기돌을 사용하여 견고함을 유지했는데 과학적인 기법과 멋스러움이 현대건축을 능가한다.
쌍사자석등은 또 어떤가. 석등이 자리할 석축은 앞으로 돌출 시키고 양 옆으로 무지개돌계단을 만들어 스님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보며 서 있는 석등을 보라. 사자의 근육질을 서로 다르게 빚으면서 엉덩이를 슬쩍 추겨 올려 조각을 했으니 예술적 감각이 익살스럽다. 아득한 옛날의 장인들이 얼마나 웃음을 참으며 석등을 만들었을까 싶다. 천년의 해학과 익살을 다시 만난다. 한참을 웃었다.
영암사지는 현재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 그리고 몸은 거북이고 머리는 용으로 조각한 자우로귀부가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의 초석과 견고한 축대로 미루어 대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영암사터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쭉이 지고나면 계절은 여름으로 치달을 것이다. 화사한 봄볕을 더 쬐려거든 황매산에 올라보라. 별에서 온 그대, 별을 닮은 천상의 화원에서 황매산 철쭉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황매산 철쭉제는 철쭉의 개화시기를 봐가며 일정을 정하지만 대개 4월 말이나 5월 초순이면 보름정도 행사가 진행된다. 병풍바위나 베틀봉 쪽으로 하산하면서 영암사지는 꼭 보고 오시라. 감동이다.
평생 한 번은 오라는 설악 봉정암 / 시월
설악산 봉정암 ^^ 강원 인제
백담사 - 영시암 - 수렴동 대피소 - 쌍폭 - 봉정암
가야동 계곡 - 오세암 - 영시암 - 백담사
인제를 막 지나면서 방태산 계곡으로 안개가 자욱하다. 용대리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요기를 하려는데 문지방 너머로 최 박사 부부일행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있었다. 엊그제 영암 월출산에 동행했던 산객인데 그들 역시 사흘을 못 참고 설악에서 이렇게 또 만난 것이다.
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백담사행 셔틀버스가 있다. 대부분은 백담사를 찾는 불자들이거나 관광객들이다. 후미진 굽이길이여서 셔틀버스만 오갈 뿐, 백담사의 불자라는 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으면 얼씬 할 수 없는 좁은 길이다. 가는 곳마다 길을 넓히는 시대에 아직도 좁은 외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고요하고 조용한 백담사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리라. 속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백담사를 운행하는 마을버스의 일감이 없어지는 것 또한 문제였을 것이다.
백담사를 지척에 두고 강물이 흐른다. 설악의 가야동계곡과 구곡담에서 흘러든 물이 합수되는 백담계곡이다. 절집 앞을 흐르는 백담계곡에는 불자들과 산객들이 오다가다 쌓은 돌탑이 소원의 강을 이루고 있었다.
금강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을빛이 들어차서는 강물 속으로 풍덩 빠진다. 복자기가 발그레 물들고 엄나무 잎이 노랗고 개옻나무 잎이 진홍빛이며 당단풍도 새빨갛게 물이 든다.
백담사에서 출발했던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은 영시암 너른 마당이다. 인가목이 피어난 영시암 마당에서는 누구나 배낭을 내려놓는다. 봉정암으로 가는 불자도 대청봉으로 가는 산객도 여기서 약수 한 모금 마시고 간다,
아무 말 없이 산길을 가는 스님을 만났다. 낡은 재색의 두루마기에 진한 쑥색의 바랑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앞질러가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싶어 천천히 보폭을 늦추지만 외려 스님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님이 걸음을 양보하는 눈치가 분명했다. 얼른 다가갔다.
"스님, 바랑이 제 등산배낭보다 더 예쁩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피식 웃는다.
"오세암으로 갑니다."
"아, 그러세요. 저희는 봉정암을 들려서 그쪽으로 하산을 할 계획입니다만."
젊은 스님은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하산시간이 빠듯해 보이는데 부지런히 가셔야겠습니다. 내려오시는 길에 출출하시면 저녁공양이라도 하고 가시죠?"
"아, 네 말씀만 들어도 배가 부릅니다. 스님."
과연 스님의 바랑 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스님과 헤어졌다. 주말이 아닌 탓에 봉정암으로 가는 가을 숲길이 한가해서 좋다. 시원한 폭포 아래서 배낭을 또 내렸다. 계곡을 지나칠 때마다 만나는 폭포는 가슴을 시원하게 아래로 밀어낸다.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한참동안이나 계곡과의 동행이다. 두 갈래로 떨어지는 폭포는 쌍룡폭포다. 여기서부터 구곡담계곡은 시작이고 가파른 암릉도 시작이다. 숨을 할딱이며 깔딱고개를 오르는데 땀이 온몸을 적신다.
나무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올해 예순다섯이 되셨다는 할머니는 나무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몹시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할머니 봉정암까지 가시는데 힘이 많이 드시지요?”
“마산에서 이까지 왔다 아인교 가 봐야지예.”
어제 용대리에서 자고 아침같이 올라왔다는데 더는 못 가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노인네 걸음은 제쳐두고 먼저 가라지만 잠시 동무가 되어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불심이었을까, 어느새 할머니도 기운을 차렸는지 젊은이도 힘에 부친다는 깔딱고개 중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설악산 봉정암이다.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항시 봉정암엘 들어설라치면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껴왔다.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설악의 산기운이 봉정암 뒤란으로 흘러들어 법당과 경내에 스며든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이 있는 절집이다. 법당에는 좌복(방석)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부처를 모시지 않는 대신에 서북으로 난 적멸보궁의 창을 통해 5층 진신사리탑을 부처로 모시는 절집이다. 이른바 기도하는 대로 얻어가는 암자로 유명세를 타는 봉정암이다.
소금기 버석버석
봉정암 마당에서도 점심공양이고 봉당에서도 미역국을 먹는다. 올 때마다 늘 미역국이다. 얼른 공양간으로 가서 미역국과 주먹밥을 받아 들었다. 스님들의 공양시간과 때를 맞춰 봉정암에 도착하면 불자든 산객이든 누구나 같이 점심공양을 할 수 있는 암자다.
후식으로 토마토를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목 주위가 따끔따끔하다. 물을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는데 버석버석 소금기가 묻어난다.
봉정암과는 벌써 세 번째의 만남이다. 봉정암사리탑이 몇 해 전에 국가보물 제1832호로 지정되었다. 무릎을 꿇고 큰절로 일백여덟 번의 절로 참배를 했다. 불가에서의 일백여덟이라는 숫자는 번뇌를 뜻한다고 들었다. 등산객도 절을 올리고 불자들도 치성을 드린다.
여기서는 대청봉으로 올라가는 등산객과 오세암을 거쳐 하산하는 등산객이 헤어지는 지점이다. 밤샘 기도를 드리는 불자들만이 남을 뿐이다. 설악의 산기운과 봉정암의 기도빨을 받았으니 이제 오세암으로 하산이다.
진신사리탑 아래는 용아장성이 용의 이빨을 드러내고 그 너머로 귀때기청봉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공룡능선이다. 그 아래 울산바위도 보인다. 한참을 내려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물줄기를 따라 아래로 향하는 게 아니고 거꾸로 큰 산을 몇 개 더 넘는 기분이 든다. 다섯 개의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야 만난다고해서 오세암이라던가?
흔히들 백담사 절집 하면 만해 한용운을 떠올리지만 실은 이곳 오세암 역시 만해와 인연이 깊은 암자다. 만해가 백담사에 머물면서 깨달음과 번민으로 숙고할 때, 오세암을 자주 찾았다. 만해의 오도송도 오세암에서 썼다.
영시암을 내려서는데 어둑어둑 설악의 큰 산들이 무서워진다. 용대리로 나가는 막차가 저녁 여덟 시라는데 벌써 일곱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막차를 놓치면 용대리까지 시간 반은 또 걸어야한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먼발치로 백담사의 불빛이 보인다. 용대리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오른 시각이 저녁 일곱 시 오십분이었다. 두 다리를 쭉 펴는데 모두 내 세상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봉정암은 웬만한 체력이 아닌 사람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무리일 수 있는 산행길이다. 암자에 미리 연락을 취하면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다만 산사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가는 후회막급이다. 기도처이니 꼬박 앉아서 밤을 새우면서 정진한다.
지리산 천왕봉의 칼바람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산청, 함양, 하동
중산리 - 칼바위 - 법계사 – 개선문 - 천왕샘
천왕봉 - 제석봉 - 장터목대피소 – 망바위 -
소지봉 – 촛대봉 - 백무동탐방로
몸살기운으로 밤새도록 뒤척였다. 한 번쯤 산행을 미루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산엘 가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깔 때문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미련한 것일까, 못된 습관일까. 늘 그랬던 것처럼 산행을 하고 나면 언제 아팠느냐는 식으로 멀쩡해지는 신체구조임을 잘 안다.
천왕봉을 향한 칼바위 삼거리에서 아이젠을 차고 배낭끈도 조여 앞으로 당겼다. 오늘은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데 사나흘 전에는 이곳 지리산에도 날씨가 포근했었나보다. 며칠을 얼고 녹다를 반복하다가 밤새 다시 산책로가 꽁꽁 얼어버렸다.
오른쪽 어깨에는 고뿔을 메고 다른 어깨에는 몸살을 지고 있으니 그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법계사까지 앞장서서 선두그룹에 끼기로 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콜록거릴 틈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 쌓인 오르막 능선 좌우로 사람 어깨 높이로 자란 산죽이 파란 손을 흔든다. 오르막이 너무 지루하다고 여기려는데 노각나무 맞은편 언덕으로 산사가 보인다. 법계사다.
흔히들 산사 가운데 설악산 봉정암이 높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 이가 많지만 지리산 천왕봉 길목의 법계사야말로 해발 1,380미터의 고지대에 있는 절집이다. 기둥이 그렇고 단청이 그러하며 기와까지도 고색창연하다. 돌담도 없는 작은 일주문이 작아서 소박하다. 산신각 앞에 있는 법계사 삼층석탑(보물 제473호)은 단번에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법계사 마당에 솟아오른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자리를 잡고 석탑의 하부기단부를 생략한 몇 안 되는 날렵한 석탑이다.
천왕봉을 오르는 능선은 눈도 많이 쌓였다. 내려서 쌓이고 또 내려서 쌓이기를 반복한다. 깊은 동면의 시간이다. 개선문을 들어서면 오싹한 추위와 함께 사방의 산세가 환하게 바뀐다. 구상나무에 눈꽃이 만발하고 철쭉에는 상고대가 몽실몽실 피어나서 겨울바람에 출렁인다. 휙 하는 바람과 함께 상고대가 부딪치며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낸다. 깔딱능선을 오르는 산객의 주변으로 거친 눈보라가 흩고 지나간다. 보기에도 아찔하다. 빙판같이 미끄러운 계단을 올라섰다. 지리산 천왕봉이다.
오늘처럼 청명한 하늘을 보는 것도 지리산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다. 겹겹으로 다가서는 수많은 봉우리와 능선들이 층층시하로 밀려온다. 멀리 여수 광양만이 보이고 진주의 남강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산과 들을 굽이치며 실핏줄처럼 흐르는 섬진강이 눈에 확연하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천왕봉에서의 풍광이 최고다.
한파주의보속에 영하 19도까지 수은주가 뚝 떨어질 것이란 예보가 있었는데 이곳 지리산 정상의 체감온도는 아마도 영하30도쯤은 될 것 같다. 볼이 아리고 눈알이 뻐근하다. 몸도 가누기 힘겨울 정도로 겨울바람은 이렇게 맵다.
장터목으로 가는 제석봉 능선의 푯말이 가슴까지 차오를 정도로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눈밭에 주저앉아 배낭에서 물을 꺼내는데 탱탱 얼어버렸다. 볶은 옥수수와 대추 여남은 개를 넣고 끓인 온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는데 가까스로 따스한 온기가 뱃속을 진정시킨다.
장터목 대피소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또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시골장터처럼 북적인다. 잠시 추위를 녹일 수 있는 유일한 대피소이기도 하지만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에 늘 복잡하다. 누구 한 사람 앉을 수도 없이 그냥 서서 식사를 한다. 콧물을 흘리며 밥을 먹는 이를 누구하나 나무라지 않는다.
장터목에서 멀리 펼쳐진 능선을 내려다본다. 지리산은 능선도 굵고 골도 깊다. 깊은 만큼 봉우리도 높아 능선도 길게 이어진다. 사방이 겹겹으로 다가오는 산이고 켜켜이 이어지는 능선이다.
하산을 하는데 예상했던 대로 몸살기운도 사라졌다. 굼뜬 걸음으로 능선 몇 개쯤 더 올라서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오만함이다. 몹시 추웠던 날의 허세임을 잘 안다. 사시사철 지리산을 찾아 지리산의 산과 나무와 바람과 고요를 사진으로 남긴 고 하성목은 ‘우리가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우리가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훗날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그가 남긴 사진첩 첫머리에 썼다.
칼바위 골을 내려오는데 드르렁드르렁 산이 울리는 것 같다. 깊은 겨울잠자리에서 심드렁하게 코를 고는 반달곰의 코골이였으면 싶다. 야생 반달가슴곰 출연에 주의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백무동마을까지 내려왔을 땐 산그늘 속에 겨울햇살은 저만치 도망치고 있었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겨울은 당연히 춥다. 대관령 선자령이 춥고 계방산은 더 춥다고 말하지만 지리산 추위도 이에 못지않다. 대단한 산이다. 겨울산행은 추위와의 전쟁과 같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겨울산행을 더 좋아한다며 일주일이면 대엿새를 산에서 산다. 추위와 맞닥뜨려 이기고 나니 봄이더란다.
마이산에 가면 탑사가 있다 / 10월
마이산 ^^ 전북 진안
합미산성 – 광대봉 – 고금당 – 전망대 – 성황당
봉두봉 – 탑사 - 북부주차장
강정대 정자각을 끼고 가을의 숲으로 들어섰다. 손톱만한 토종밤이 길섶 여기저기에 툭툭 떨어져 있다. 다람쥐 두 마리가 등산객 주위를 겁주듯 쏘다니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쪼르르 밤나무를 내려와서는 신갈나무를 타고 오르고 다시 너덜바위를 건너뛰며 격한 행동으로 시위를 한다. 자신만의 영역인데 웬 소란이냐는 듯 기분 잡쳤다는 표정이다.
가을 산은 나뭇잎이 물들기 전에 열매를 먼저 내려놓는다. 과실을 먼저 익게 하고 몸치장은 나중에 한다. 이른 봄에 새움이 돋고 줄기를 튼튼히 하고 이파리가 무성한 것은 모두 열매를 완성하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다.
오른쪽의 졸참나무 아래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있고 넓은 구릉지로 갓 피워낸 억새꽃이 가을바람에 일렁인다.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마이산은 얼핏 보면 시멘트와 자갈을 배합해서 콘크리트를 부어놓은 인공 산인 것 같지만 사실은 특이한 석질의 연한 수성암 석산이다. 그래서 설악산의 화강암과 다르게 바위의 색감도 거무튀튀하다.
광대봉에 올랐을 뿐인데 이마로부터 흐르기 시작한 땀이 전신을 적시며 몸을 칭칭 감는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 있는 햇살 넉넉한 언덕으로 단풍이 물들고 있다. 아늑한 억새밭이 펼쳐진다.
억새밭에 드러누웠다. 작은 문을 걸어 잠그듯 억새 줄기를 얼굴 쪽으로 당겼더니 내 집의 대청마루 같다. 배낭을 베개 삼아 억새밭 한 가운데 소리 내지 않고 누우면 건넌방이고 청자 빛 하늘이 새로 벽지를 바른 천장이다. 스르르 눈을 감으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가 서성인다. 잠든 얼굴위로 또 하나의 소리를 내는 그림자가 또 왔다 갔다 한다. 산객이 밟는 갈잎 소리에 몸을 일으키는데 일행은 벌써 저만치 바위산의 허리를 감싸며 멀어지고 있었다.
올라서면 다시 내려서고 또 올라서며 마이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능선과 구릉지가 번갈아 나타나지만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서 좋다. 애써 한눈 팔지 않아도 노랗게 물든 싸리나무가 능선으로 보이고 개옻나무와 붉나무의 잎은 진한 핏빛이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쑥부쟁이 꽃대를 움켜잡고 앉았다. 날개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큰 눈을 굴리는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봤다. 지금도 그네를 타는 중이다.
바위의 형태대로 휘어진 계단을 밟고 비룡대 팔각정에 섰다. 시원한 바람이 옷섶을 파고든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면 진안읍이고 멀리 마령면 들판도 누런빛의 가을 들판이다. 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면 오른쪽으로 마이산 능선이다. 암마이산과 수마이산이 겹쳐서 보이는데 두 귀를 세우고는 세상의 잡다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광대봉에서 봤던 마이산이 더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부귀산과 성수산에 한눈을 팔다가 마이산을 쳐다보는데 금세 마이산이 사라진다. 한 여인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비스듬히 오른쪽 무릎을 왼쪽 무릎에 걸치고 하늘을 보고 반듯이 누운 아낙의 모습이다. 자연은 이렇듯 가끔은 사람을 혼동시킬 때가 있다.
말의 귀를 빼어 닮아서 마이산이라 부르지만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이다. 산안개가 번지는 봄날에는 쌍돛배가 떠 있는 것 같아 돛대봉이요, 여름에는 숲 속으로 솟아오른 뿔 같아서 용각봉이며 가을에는 마이봉이고 겨울에는 하얀 화선지에 한 획의 먹물을 찍으니 문필봉이다.
마이산 능선은 지금 가을꽃이 한창이다. 구절초에 쑥부쟁이에 산부추에 마타리까지 온산이 들꽃이다. 가을꽃은 두드러지게 티를 내지 않고 피는 꽃이기에 좋다. 이산 저산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피는 꽃이 가을의 들꽃이다. 봄꽃이 우아하다면 가을꽃은 청초하다.
동백이 그렇고 벚꽃이며 진달래며 개나리가 떠들썩하게 원색의 꽃을 피워 내지만 봄꽃은 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나 가을꽃은 기다림으로 꽃을 피운다. 봄꽃이 우쭐대고 으스댈 때 묵묵히 새순이 돋고 온갖 비바람에 흔들리며 가을을 기다린다.
억수장마철에도 잠시 비가 멎는 밤이면 하늘의 총총한 별들과 어둑새벽까지 다가올 가을을 이야기한다. 들판과 산야에서 피는 가을꽃은 찬바람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 달포를 꽃피운다.
비룡대 기슭을 내려오는데 쑥부쟁이 꽃이 하늘거리고 봉두봉 언저리에 구절초가 무더기로 피어있다. 슬그머니 코를 대고 입술을 내밀었다.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가을볕에 익어가는 산수유 그늘을 빠져나오면 암마이봉 끝자락에 무수한 돌탑 사이로 아담한 산사가 보인다. 탑사다. 잠깐의 햇살만 들것 같은 암벽의 작은 마당으로 돌탑이 가득하다. 치성의 탑이고 소원의 탑이다. 작은 돌로 쌓아 올린 탑이 100년을 넘기도록 이따금씩 불어대는 골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도 불심이었지 싶다.
마이산 암벽을 휘감고 오르는 능소화 넝쿨은 오늘도 어떤 임을 그리며 꽃을 피울지 능소화만이 안다. 섬진강 발원지인 탑사의 용궁 물을 마시고 왼쪽 돌계단을 지나 탑사 대웅전으로 갔다. 엎드려 108배를 올리는 불자들의 모습이 경건하다. 같이 합장을 한다.
은수사 마당에 있는 600년 묵은 감나무를 끼고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사이로 난 언덕을 따라 연인의 길로 간다. 마이산관광단지 마다에는 대봉감이 가득하다. 가을이 수북이 쌓인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웅장한 마이산을 보고나면 가슴까지 시원하다. 작은 절집인데 크게 느껴지는 것은 탑사만이 지니는 매력이다. 가을에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손을 흔들고 상사화도 볼 수 있다. 온갖 가을꽃이 무리지어 피는 마이산 능선이다.
오대산 노인봉의 가을은 / 10월
오대산 ^^ 강원 강릉, 평창
진고개 – 1243봉 - 노인봉 – 낙영폭포 – 구룡폭포 백운대 – 만물상 - 연화담 – 십자소 - 무릉계
진고개처럼 바람 센 고갯마루가 또 있을까. 진고개라고 하면 연곡으로 내려가는 아흔아홉 번 꺾어지는 굽이 길로 유명하지만 성난 바람고개로도 명성이 높다. 잔뜩 흐린 날씨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린다. 잿빛 구름이 성난 돌개바람과 함께 진고개를 덮치고 있었다.
키 작은 갈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노인봉 능선은 산책로가 미끄러웠다. 잿빛 구름사이로 햇살 한 올 쏟아져 건너편 산모퉁이를 흩고 사라지고 다시 이쪽 능선을 지나친다. 빗줄기 지나간 파란 하늘은 맑은 청자빛이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인지 밝은 햇살이 직선으로 꽂힌다. 이제 가을비도 여기서 멈추려나보다. 변덕이 심한 날씨다.
산행도 습관들이기 나름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지르퉁해서 또는 굳은 날씨를 탓하며 한두 번 거르게 되면 멀쩡한 날에도 산은 낯설기만 하다.
소나무도 허리가 굽어 있고 가문비나무도 어깨가 휜 모습으로 노인봉 정상을 지키고 있다. 철쭉도 잔뜩 엎드린 채 꼼짝을 않고 거센 바람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바람과의 전쟁이다. 정상은 사방으로 확 트여 주변의 산을 조망하기가 그만이다. 동쪽으로 매봉과 황병산이 걸쳐있고 서쪽으로는 오대산의 주능선이 버티고 있다. 1.338미터의 정상은 세찬 바람으로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다. 양손으로 등산모를 누르는 모습은 노인봉에서만 보는 진풍경이다.
진고개에서 들머리를 잡은 오늘의 오대산 노인봉 코스는 하산할 때가 더 기대되는 산책로다. 소금강을 산행을 한다고 하면 대개의 경우 연곡에서 올라와서는 폭포 몇 개보고 다시 연곡으로 내려가는 원점회귀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그러나 진고개를 들머리로 노인봉 정상을 찍고 소금강으로 내려서는 코스는 그야말로 가을산행의 백미다.
소금강은 노인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청학천을 따라 화강암지대를 흩고 급하게 흘러내리는 협곡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호로서 구룡폭포와 낙영폭포가 흐르고 백운대와 만물상의 기기묘묘한 걸작의 바위군상들을 껴안고 있다. 천년고찰 금강사가 있다. 가파른 내리막 산책로에는 철재사다리가 많고 밧줄을 타고 내려서는 아찔한 구간이 도사리고 있다. 낭떠러지의 벼랑이 낙영폭포까지 이어진다.
소금강으로 내려가는 계곡은 홍채로 흘러내린다. 이만큼에서 빨갛고 저만치에서 진분홍인데 군데군데 소나무와 전나무가 푸른 잎으로 조화롭다. 단풍구경이라는 게 흔히 올려다보면서 즐기는 것쯤으로 알았는데 산을 내려설 때도 감흥은 새롭다. 저만치 내달리는 단풍의 그림자와 보폭을 같이한다.
빨갛게 물든 당단풍이 떨어질 때 졸참나무도 신나무도 맥없이 바닥에 뒹군다. 바람에 팔랑이던 엄나무 잎이 떨어져서는 물살을 따라 아래로 쏜살같이 떠내려간다. 단풍잎과 화살나뭇잎과 붉나무잎과 소사나뭇잎이 웅덩이에 순서 없이 모여든다.
하산길이 지루하다 싶은데 귀를 맑게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낙영폭포다. 사나흘 내린 가을비로 제법 수량도 많다.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구룡폭포는 물줄기가 지극히 남성적이다. 그래서 낙영폭포를 여폭포라 부르고 구룡폭포를 남폭포라 부른다. 터벅터벅 소금강 산자락을 돌아 나오는데 노인봉에서 시작된 단풍이 어느덧 연화담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산객이 내려가면 단풍이 따라온다. 산객이 쉬게 되면 먼 산도 꼼짝 않는다. 산객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 노인봉이 손을 흔들고 소금강이 손을 내민다. 산객이 하산을 하면 능선은 그만큼 낮아진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소금강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이다. 하산 후에 주문진항에서 싱싱한 횟감을 흥정해 보자. 동해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보라. 노인봉의 바람과 소금강의 단풍과 가슴시린 낙영폭포가 밤바다의 언저리로 서성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수산시장에서 건어물도 챙겨보자.
완도 남쪽으로 약산도의 삼문산 / 1월
삼문산 ^^ 전남 완도
큰넘밭재 - 부엉이바위 - 움먹재 –토끼바위전망대 삼문산 - 파래밭재 - 큰새밭재 -장룡산 - 장룡리
완도를 갈 땐 배를 탄다. 완도대교와 고금대교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유채와 청보리가 넘실대는 청산도엘 가면 송화와 유봉 그리고 동호가 굽은 돌담 황톳길을 내려서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던 서편제 길을 만나는데 배를 타야 갈 수 있다. 세연정이 있는 보길도를 갈 때에도 땅끝항 또는 완도에서 배를 타야한다. 마을 주민들이 일 년 내내 태극기를 대문에 게양하는 소안도는 항일운동의 성지인데 가학산 자락 바닷가에서의 해돋이 해넘이가 일품이다.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잊지 못한다.
이처럼 완도의 12개 읍면 가운데 찻길이 닿는 섬이 있으니 완도와 고금도 그리고 약산도가 그렇다. 본섬인 완도는 완도대교를 건너 들어가고, 고금도와 약산도는 강진에서 고금대교를 건너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섬이다. 웬만한 여행가와 산객치고 청산도와 보길도를 모른다 할 수 없지만 고금도와 약산도는 서너 해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북적이는 섬이다.
꼭두새벽이다. 고금도 봉황산 정상의 구멍바위를 오른다. 저쪽 어둠 속 너머로 LED 조명 빛의 신지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 그득하던 똘방똘방한 별빛 무리들이 하나둘 바다로 떨어진다. 여명을 틈타 가파른 능선을 오른다. 정상에 구멍바위가 있고 그 구멍바위 안으로 일출을 담으면 작품 하나는 건질 것 같다. 구멍바위를 배경으로 일출의 실루엣을 담아보고 싶었다.
청미래덩굴 수풀을 헤집고 올라왔는데도 구멍바위는 멀리 산 정상에 숨어있었다. 고기잡이에 나섰던 배들이 구멍바위를 먼저 보고는 그날그날의 안위를 점쳤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 뜰 무렵에 고기잡이 나서는 어부들이 배 안에서 구멍바위를 유심히 바라보는데 바위의 구멍이 선명히 보이면 무탈한 날이요, 바위가 전혀 보이지 않으면 고기를 잡는 내내 근심걱정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기상학적으로 당연한 일을 잘도 갔다 붙인다 싶다.
아직 남녘의 바다는 고요한 적막이다. 오른쪽 바위구멍으로 빠져 나가면 산 정상의 암능으로 이어진다. 때마침 동녘으로 붉은 광채가 번지기 시작한다. 남녘의 바다는 새빨간 몸살로부터 아침이 열린다. 이만큼 떠오른 해가 온 세상을 비추고 그 아래 또 하나의 해그림자가 매생이 양식장으로 번진다.
삼문산에도 간밤에 눈이 내렸다. 부엉이바위를 지나면 구릉지의 평편한 길이 이어지다 갑작스런 둔덕길을 만난다.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도 있지만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토끼봉은 꼭 가 봐야 한다. 다도해의 조망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끼봉이 아니랄까 봐 눈길에 토끼가 먼저 발자국을 남겼다. 짙은 재색일까 누른빛의 토끼일까, 전망대로 이어지는 참나무로 깔아놓은 데크길에는 아예 똥까지 배설하며 자신의 영역을 흔적으로 남긴다.
토끼봉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이 황홀하다. 금세라도 실성할 것만 같다. 사방이 바다고 천지가 섬이다. 바다가 끝이 아니고 시작이며 섬이 끝이 아니고 바다의 시작이다. 켜켜이 이어지는 나긋나긋한 섬의 산들이 곡선을 이룬다. 본섬인 완도가 바로 앞에 있고 금일도와 생일도가 턱밑인데 청산도가 손짓하고 보길도도 손안에 있다.
멀리 눈을 돌리면 천관산도 확연하고 두륜산과 달마산이 조망된다. 삼문산의 유래는 동쪽 분지인 삼문산을 중심으로 망봉과 등거산 사이의 움먹재, 망봉과 장룡산 사이의 파래밭재 그리고 그 아래로 큰 새밭재를 넘어야 완도를 차지하고 바다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세 개의 재를 문(門)으로 보고 신성시했다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온다. 어떻게 들으면 파도소리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바닷바람이 소사나무 어깨를 토닥이는 봄을 실어온 바람인 것 같은데 구분이 쉽지 않다. 저쪽 계곡으로 흑염소 몇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마른풀을 뜯고 있다. 다가가서 친근감을 전하려 하지만 곧장 벼랑 끝으로 도망친다. 어미에게 달려가며 ‘매애매애’코맹맹이 소리로 고자질을 한다. 힐끔 쳐다보고는 낭떠러지 끄트머리에 서서 “날 잡아 봐라” 한다.
남쪽 섬 산에 내린 눈은 대관령 발왕산 응달에 쌓인 모진 눈이 아니기에 한나절 햇살에도 금세 녹아 질척하다. 신선골에서 약수로 목을 축였다. 아직 야트막한 이런 서너 개 산쯤은 거뜬히 더 넘을 수 있는 체력 같은데 시장기가 돈다. 약산도에서 흑염소전골로 보양식을 해야겠다. 산도 낮고 돌담도 낮고 지붕도 낮은 약산도가 동화마을처럼 한갓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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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따뜻하다. 남해도 그렇고 서해도 그렇고 섬은 따뜻하다. 봄볕을 먼저 받는 이유도 있겠으나 뭍사람들을 반기는 섬사람들의 친절은 유별나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섬이 궁금하고 섬이 그리워진다. 유난히 봄을 타기 때문이다.
가리왕산에서 쓰는 편지 / 6월
가리왕산 ^^ 강원 정선
장구목이 - 이끼계곡 - 임도 – 주목군락 – 함박꽃삼 거리 - 정상 - 마항치삼거리 - 심마니교
몇 해 전 가을이었다. 동계올림픽으로 산허리가 파헤쳐지기 전에 가리왕산을 보겠다고 장구목이 입구에 내렸다. 막 돌계단을 내딛으려는데 건장한 중년이 길을 막아선다. 산불예방을 위해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통사정을 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팔뚝에 두른 노란완장의 기세가 대단했다. 그리고 오늘, 누구에게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는 한여름에 가리왕산을 찾았다.
모레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후덥지근하다. 여벌옷은 배낭에 넣고 헐렁한 민소매를 입었다. 숲속에 들어서니 도랑물 소리가 경쾌하다. 주변의 다른 산들은 갈수기로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겠지만 가리왕산의 계곡은 수량이 넘쳐난다.
물 한 모금 먹으려 배를 깔고 엎드리는데 물기 젖은 파란 이끼가 싱그럽다. 수심이 얕은 도랑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아서 좋다. 바위에도 이끼가 자라고 작은 돌멩이도 파릇한 이끼를 몸에 두르고 있다. 실낱처럼 가느다란 이름 없는 폭포 아래로 뽀얀 물안개가 번진다. 가리왕산의 산책로는 온통 이끼계곡이다. 미끈한 물잠자리가 자리를 옮기는 곳은 산딸기넝쿨이다.
가리왕산 상봉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태고 적부터 누려오는 천연원시림이다. 숲이 우거져 있고 햇살도 드문드문 내려 쬐이니 이끼가 살아가기에 최적의 터전인 셈이다. 침엽수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보이고 수백 년쯤 나이를 넘겼을 것 같은 주목도 때깔이 좋다. 서너 사람이 겨우 껴안을 수 있을 정도의 덩치 큰 주목이 보이고 속이 텅 빈 밑동이지만 어깨로 펼친 곁가지는 싱싱한 이파리를 키우고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 했다. 활엽노거수 아래로는 심산유곡의 정선산나물이 지천이다. 참나물이 떼를 지어 살고 곤드레 나물도 쉽게 볼 수 있으며 솥뚜껑만한 곰취도 노상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가 더덕의 싹을 어깨로 툭 건드렸는지 향긋한 더덕향이 능선을 가득 채운다. 더덕보다 더 진한 냄새도 있다. 발을 내딛는 산책로마다 스치는 게 산당귀다. 괜히 스틱으로 툭툭 건드리며 당귀 냄새에 취해본다.
철쭉과 함박꽃나무가 보이고 인가목도 길섶으로 곱게 꽃을 피운다. 여름이 깊어지면 붉은 열매로 실하게 익을 산사나무도 아직은 파란 풋과실로 숲속에서 절기를 기다린다. 자주색 꽃을 피우는 엉겅퀴 꽃대가 일렁이고 하얀 산딸나무 꽃도 가리왕산의 능선과 계곡과 구릉지를 가리지 않고 제세상이다.
이런 가리왕산이거늘 머지않아 굴삭기에 의해 파헤쳐질 운명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인의 축제 운운하며 고작 보름여의 행사를 위해 수만 년을 키워낸 천연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해서 말이다. 100 년도 채 못가 후회막급할 일이 자명하지만 막아낼 방법도 딱히 없다. 머지않은 날, 아름드리 주목이 베어지고 신갈나무도, 물푸레나무도, 서어나무도 잘려 나갈 것이다. 상큼한 박하 향을 내뿜던 청시닥나무도 더 이상의 향취를 접을 것이고 곤드래 나물도 싹둑싹둑 베어질 판이다.
마항치 계곡을 내려오는데 물기 흥건한 길섶으로 달팽이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중봉에서 아래로 불어오는 골바람을 실컷 쐬어본다. 입산을 통제하던 완장 두른 감시요원의 힘으로도 알파인 스키장 공사를 막을 수 없나보다. 우리 인간은 대자연 속에 살면서 그들에게 수없이 송구할 뿐이다. 사람은 숙맥이다. 동자 꽃이 웃고 있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떠들썩거린다. 스키장을 메워 복원할 것이냐, 그냥 스키장으로 쓸 것이냐, 내팽개칠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그대로 두는 건 어떨까? 자연은 스스로 복원하는 자생력이 있다. 잿더미가 됐던 동해안 산불지역에도 온갖 풀이 자라나고 나무가 자란다.
바다와 동백과 편백나무 숲이 있는 산 /4월
팔영산 ^^ 전남 고흥
임도입구 – 강산폭포 – 선녀봉 – 유영봉 –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 깃대봉 – 탑재 – 편백나무 숲 -
능가사
팔영산은 바다가 있고 동백이 있고 편백나무 숲이 있고 거기다 여덟 개의 암을 거느리고 있는 산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선이 굵은 산으로 산행 내내 흥미를 유발한다. 계절을 가려가며 산행을 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팔영산은 봄과 가을산행이면 더 좋다.
선녀봉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바위능선으로 보이는 건 낭떠러지고 막아서는 게 거친 벼랑이다. 위험구간이 많은 탓인지 올라오는 산행은 허락되지만 하산은 국립공원 측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구간이 바로 선녀봉 능선이다.
강산폭포를 지나 선녀봉으로 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만 다리가 후들거린다.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또 밧줄이 늘어져 있다. 한눈을 팔았다가는 경을 치고도 남는다. 선녀봉에서 왼쪽 암능을 내려다보면 허리를 굽히고 줄지어 오르는 산객들인데 잠시 지체하면 유영봉 정상에서 합류하게 된다.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는 서해바다를 향해 나란히 뻗어 있다. 1봉에 서면 2봉이 보이고 2봉에 서면 좌우로 1봉과 3봉이 보인다. 다시 아래를 보면 봉우리와 봉우리를 감싸고 구름이 흘러간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암봉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산신령은 안개와 구름을 몰고 나타난다더니 팔영산은 봉우리에 목만 겨우 내놓고 있다.
6봉인 두류봉이다. 방향을 틀어 남쪽바다를 바라본다. 바닷물이 들어오다가 멎는 저쪽이 소록도쯤인 것 같다. 거기 소록도 햇살 잘 드는 언덕에 친구가 있다. 벌농사를 짓는 친구다. 이 친구는 매년 12월 초순이 되기 무섭게 큼지막한 트럭에 아내를 태우고 소록도로 내려간다. 벌통을 차에 실고 남녘으로 가고 있으니 벌농사를 짓는다지만 섬 여행 같아서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이들 부부에게는 겨울은 농한기가 아니라 농사철이다. 바다가 보이는 장계리 언덕에 벌통을 내려놓는다.
이 친구는 벌을 키우는 농사철에도 뻔질나게 바다로 나간다. 낚시에 반은 미쳐있는 친구다. 노래미는 넣다하면 잡히는 놈이고 도다리와 학똥치, 광어, 우럭이 나오는데 손맛이 좋을 때는 귀한 감성돔이 걸려든다고 말한다.
5월 초가 되면 이들은 아카시아 꿀을 뜨기 위해 대구 쪽으로 옮긴다. 영주나 안동쯤으로 북상을 하는데 종당에는 철원까지 올라가면 서 벌을 친다. 몸에 좋다는 잡꿀을 뜨면 늦여름이고 초가을로 벌농사는 끝이 난다. 내가 잡꿀이냐고 물으면 화를 내며 잡화라고 대답한다.
“어이, 친구 나 팔영산 왔어.”
“야, 너 또 산에 왔구나. 모처럼 왔으니 낚시하고 가라.”
바닷가에서 벌을 치며 살아가는 자네가 부럽다고 말하면 이 친구는 되례 온 산천을 다 누비는 네가 부럽다고 역공을 편다. 남녘인 고흥에서 북으로 또 북으로 철원까지 세월을 낚는 당신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칠성봉에서 먼 바다를 응시한다. 고흥과 거금도를 오가는 팔영대교가 정면으로 보이고 남동쪽으로 해남의 두륜산, 남쪽으로 거금도와 조발도와 낭도가 서성이며, 서쪽으로 순천방향의 조계산이 있다. 가물가물 보이다 사라지고 다시 보이는 산이 지리산 천왕봉이라는데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육지가 분명하지만 산 위에서 사방을 보면 섬같이 느껴지는 산이 팔영산이다. 뭍이면서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명성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땅이다. 팔영산은 봉우리가 여덟 개로 이루어져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입의 선녀봉과 마지막 깃대봉은 여덟 봉우리에 넣지 않으니 엄밀히 따지면 팔영산은 열 개의 봉우리인 셈이다.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평편한 길을 걷는데 동백나무 숲이 끝나는 능선으로 잿빛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백은 소사나무를 좋아하고 소사나무도 동백을 싫어하지 않는가보다.
편백나무 숲을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등산로는 너무도 상큼하다. 바닷바람이 편백나무 숲속을 헤집고는 짙은 향기를 코끝까지 전해준다. 목캔디를 입속에 넣었을 때처럼 콧구멍이 확 뚫린다. 편백나무는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가 되면 눈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된다는 이유로 천시를 받기도 한다.
유해 논리를 차치하고라도 이 편백은 심폐기능을 강화 시키는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나무인 것만은 사실이다. 편백은 온산이 낙엽으로 내려앉더라도 자신은 사계절 언제고 푸른 잎으로 변하지 않고 부드럽다. 보통의 걸음걸이 보다는 빠른 속보로 반은 걷고 반은 뛰면서 내려온다. 온몸을 출렁일 때 위장은 자극을 받아 활발한 기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릉지를 덮고 있는 편백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평편한 논밭이 펼쳐지고 대숲 가득한 언덕으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팔영산 아래 능가사다.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힐 정도의 대찰이었으나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대웅전(보물 제1307호)과 응진전만 볼 수 있다.
능가사의 담장은 갯가의 돌을 적당한 크기로 깬 다음 흙과 버무려 쌓아 올렸는데 눈높이로 야트막해서 시원하다. 목조사천왕문을 지나면 응진전을 바라보며 만개한 동백으로 가득하다. 나무에도 동백이 피었고 마당에 떨어진 동백도 차마 질 줄을 모른다. 능가사 스님은 동백나무 아래 쌓인 동백꽃잎을 보면서도 며칠이 지나도록 비질을 하지 않으리라. 내일도 동백은 곱고 붉을 것이다.
능가사 입구의 너른 마당으로 남도의 구수한 입담이 정겹다. 동네 아낙들이 좌판을 놓고 봄을 팔고 있었다. 입 벌린 봄동이 있고 봄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냉이가 바구니에 담겨있다. 달래도 향이 짙고 두류봉 아랫자락에서 땄다는 두릅이 싱싱하다. 메뿌리 같이 생긴 씀바귀도 아침나절에 캔 나물이란다.
“달롱개 혀고 나숭개 있지라우, 벙구나무 잎 사가시여!”
매끌매끌 이어지다 끝에서 슬쩍 올리는 남도 특유의 말투가 걸쭉하다.
“이게 무슨 나물이라고요?”
“요거이 달롱개이고 이짝그슨 나숭개, 시방 이그시 벙구나무 잎이라 안 하요.“
천 원에도 팔고 이천 원어치면 흥정 없이도 덤을 듬뿍 얹어준다. 달래를 달롱개라 하고 냉이는 나숭개라고 부르는데 엄나무 새순을 벙구나무 잎이라 한다. 고흥에서 쓰는 사투리일 것이다. 좀 깎으려 니 잠깐의 뜸을 드리고는 봉지에 담는다.
"거시기혀면 거시기 혀서 남는 게 없당게로“
천 원만 더 깎아달라고 조르니 대답이 명료하다.
“그라지요.”
능가사 지붕 너머로 여덟 개의 팔영산 암릉이 또렷하다. 녹동항에서 꽃낙지연포탕을 먹는다. 봄볕이 스며드는 3월이 제철로 금산 앞 바다에서 잡히는 낙지가 가장 맛이 좋다. 몸에 두른 꽃무늬의 꼬들꼬들한 낙지를 안주로 고흥의 막걸리인 유자향주 한 잔 걸치니 남도 의 저녁이 달곰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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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은 제1봉인 유영봉부터 마지막 깃대봉에 이르기까지 험한 바위산의 지형인데 변변한 그늘이 없다. 충분한 물과 간식을 준비해야 지치지 않는 산행을 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소록도를 거쳐 나로도에 있는 우주발사전망대도 다녀오시라.
관악산 정상은 연주봉의 응진전 / 1월
관악산 ^^ 서울 관악 경기 과천, 안양
호압사 – 장군봉 – 국기봉 – 거북바위 – 무너미고개
깔딱고개 – 연주암 - 관악산 – 마당바위 – 전망대 관음사
호암산문을 들어서면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이다. 호압사의 일주문인데 호압산문이 아닌 호암산문인 것은 호압사가 있는 삼성산을 호암산(虎岩山)으로도 불렀기 때문이다. 경내에 세워진 노송아래 동자승과 눈인사를 했다.
눈 덮인 호압사를 벗어나자 한가한 소나무 숲길이다. 흔히 겨울산행은 추운 날씨와 산행 중 일어날지 모를 사고를 염려하여 꺼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엄두를 낸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심설산행에 맛을 들이다보면 겨울산행처럼 뜨거운 산행이 또 있을까싶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나무들을 보라. 새순이 돋는다는 것은 결실을 위한 다짐의 표현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고 훗날이 되면 틀림없이 다짐의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식솔이 너무 많으면 간혹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제 몸을 간수할 수 없을 지언정 가지마다 주렁주렁한 과실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 나무다.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지경이 돼서야 부실한 놈만을 골라 땅바닥에 내려놓는다. 단순한 것 같지만 자연의 순리고 섭리다.
수풀로 가득했던 절기를 생각하고 숲을 보면 겨울은 여백이 많다. 끝이 안 보이던 숲도 오간데 없고 잎을 솎아낸 허전한 나무들 뿐이기에 너무 조용해서 빈사 상태의 겨울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전혀 볼품이 없고 삭막한 것도 아니다.
겨울 산 속에 들어서면 산이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의 산하는 소리 소문 없이 절제의 시간으로 때를 기다린다. 곤충은 곤충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새들은 새들대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겨울나기를 한다. 추위에 몸을 사리지 않고 비바람을 견디면서 언 땅을 부여잡고 봄날을 기다린다. 자연은 겨울에도 숨을 쉬고 있다. 다만 휴식의 시간일 뿐이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산을 올라보라. 그대는 이미 동화속의 주인공이 되어있을 것이다.
수도권의 산이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샛길도 많고 갈림길도 수없이 이어진다. 멍청히 뒤를 쫒다보면 자칫 원하지 않던 하산길이 나타날 때도 있다. 산행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아르바이트 숙제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샛길이 많은 산이다. 암벽을 돌아 장군능선의 국기봉에서 잠시 배낭을 풀고 행동식을 먹는다. 눈이 또 내린다.
학바위 능선길에서 소나무 한 그루에 눈길이 멎었다. 수백 년 나이든 노송도 아니고 명품 소나무는 더더욱 아닌 매양 보고 지나치는 그렇고 그런 소나무였다. 뭉개진 탐방로 끄트머리에 쓰러질 듯 서 있는 소나무였다. 산객가운데 누군가가 부목 세 개로 고정시켜서 묶고는 나이론 끈으로 나무의 정강이와 허리를 감아 놓은 모습이다. 그냥 지나치지 않은 관심이 너무도 고맙다.
팔봉능선에 이르러서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쏟아진다. 소머리바위를 돌아서는데 연주대로 향하는 산책로가 북적이고 걸음도 빨라진다. 관악산 정상의 암벽이 보이고 벼랑에 기댄 응진전이 아슬아슬하다. 걸작의 조각품이다. 촛대를 묶어서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하고 장수가 쓰던 여러 벌의 창을 세워놓은 것 같은 벼랑이다. 이른바 화강암 절리현상이다.
효령각을 지나면 관악산 암봉으로 정상석이 있고 미로처럼 패인 바위 틈새를 빠져 내려가면 50미터 낭떠러지에 나한법당이 있다. 지붕이 약간 낮은 세 평 남짓의 암자인데 옹색한 대로 법당의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악산은 경기오악의 명산이다. 개성의 송악산을 비롯해 화악산, 운악산, 감악산 그리고 이곳의 관악산이 있어 경기오악이다. 하산이다. 사당능선으로 한참을 내려서면 관음사 지붕 너머로 남현동과 사당동 그리고 방배동이다. 눈이 그치고 햇살이 든다. 눈에 반사된 햇살이 창날처럼 꽂히고 있었다. 관악산 능선에서 서울 사람들의 바쁜 모습을 봤다.
한국지면요람 (건설부 국립지리원 1983)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관악산을 오르다보면 가끔 토끼를 만날 수 있다. 과연 산토끼인가 싶지만 수해 전에 토끼를 대량으로 방사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적응을 못한 때문인지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도망갈 눈치가 아니다. 집토끼가 야성을 찾아 산토끼가 될지는 의문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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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많으셨습니다 올해도 안산 즐산 하세요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