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뉴스에 떴다. 요약한다.
부산시와 서구청이 폐쇄 명령을 내린 곳은 부산 세계로교회와 서부교회 2곳
세계로교회는 곧바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시설 폐쇄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지자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대면 예배를 금지하는 것이 예배 장소와 방식만 제한하는 것으로 종교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자체 방역을 강화하더라도 교회 내부에서 교인들의 접촉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변호사] "방역의 중요성, 그것이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 이런 걸 감안해서 일단은 집행정지 이유가 없다 이렇게 보여진다."
위 두 곳은 지자체의 잇따른 고발 조치와 운영 중단 명령을 무시해왔다.
수십 년 전.
나는 시험을 보려고 헌법 조문을 깡그리 외웠다. 글자 하나 하나조차도.
시간이 짧은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법을 이해한다라기보다는 그냥 외우는 것이 더 빨랐다.
개인의 자유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종교의 자유' 운운한다.
'자유' 란 무엇일까?
'내 마음대로, 내 마음껏 한다'는 뜻일까?
개인의 자유라도 국가목적, 사회목적 등에 부합하지 않으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할 시에는 어떤 처벌도 할 수 있다.
'자유'는 절대적 자유가 아니고 상대적이다. 먼저 공익에 알맞아야 한다.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 자유라고 한다면 이 세상은 무법천지일 게다.
내 마음대로 흉기로 남을 찔러서 살해해도 자유인가?
전혀 아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게 무엇일까?
수십 년 전인 1950년대, 60년대에 내가 살던 산고랑당 마을에는 무당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무속신앙이 가득 찼던 때였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내가 사는 시골에는 그 무시무시했던 무속인들이 없다. 없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만큼 주민들이 영특해졌다. 이제는 안 속는다는 뜻이다.
내가 22살 때다.
쌍둥이-동생은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왔다.
여름방학이기에. 집 울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뱀을 밟고는 뱀 물려서 다음날에 죽었다. 나보다 훨씬 몸이 컸던 동생은 처절한 고통속에 몸부림을 쳤고,병원에서 죽어가던 동생을 지켜보았던 나.
그 동생이 죽은 뒤 내가 뱀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어떤 종교의 논리에 나는 전혀 아니다.
나한테는 뱀은 원수이다. 눈에 띄이기만 하면 그 어떤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그 뱀을 죽이려고 했다.
연장이 없으면 맨손으로도 뱀을 움켜쥐려고 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어떤 종교의 논리가 과연 합당할까?
왜 원수를 사랑해야 되는데?
또하나의 예다.
조선조 7대왕인 세조는 6대왕인 단종, 어린 조카를 죽였다.
단종은 13살에 등극했고, 15살에 삼촌한테 왕위를 빼앗겼고, 17살에 교살(목을 옭죄어서 죽임)당했다. 조카도 죽었고, 삼촌인 세조도 죽었다. 이들이 저승에서 만났을 터. 서로 어떻게 했을까? 영혼이 있다면 저승에서 서로 어떻게 했을까?
오늘 TV에서는 어떤 요리사가 남해안 어떤 섬에 들어가는 장면이 떴다.
양식장에서 건져올린 전복. 요리사는 살아 있는 전복을 맨입으로 우드득 뜯어먹었다.
나는 전률했다. 그리고는 눈물이 났다. 바다 생물인 전복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그런데도 바닷가 현장에서 그 인간은 이빨로 뜯어서 먹는다고? 살아 있는 생명체에 조금이라도 배려했더라면...
내가 귀신이라면 그 사람의 생살을 눈꼽만씩 뜯어 먹을 게다. 정말로 아프게 그리고는 천천히, 정말로 오랜동안에 ...
지상에서 사는 나는 사람이기에 먹어야 한다. 70여 년을 살아오면서 그간 먹었던 숱한 음식물 가운데 동물도 많다. 나는 그들한테 늘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고맙다고 속으로 말한다.
오래 전.
내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당신의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의 제사를 지낼 때면 어쩔 수없이 닭을 잡았다. 당신의 두 손바닥을 비비면서 기원했다. 제삿상에 올려야 하는 그들은 비록 짐승이지만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나는 지난해 아파트 안에 갇혀서 창살없는 징역살이를 했다.
기저질환의 하나인 당뇨병이 있기에 몸이 약해서 바깥나들을 자제했고,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봐 늘 몸을 사려야 했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에는 왜그리 종교기관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파트 남쪽 건너편 뒷골목을 거닐면 서양종교를 상징하는 막대기와 건물이 숱하게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내 핸드폰에는 코로나-19 확진자 알림 문자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뜬다. 송파구, 성남시. 왜 이들 지역에서는 확진자가 유난히 많이 발생하는 거여?
화가 치밀어서 불불거린다.
TV에도 온통 그런 뉴스들이다.
아내는 나를 다독거린다.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요. 둘째딸이 알면 어쩌려고요?'
둘째딸네 시댁어른 지방의 목사이고, 시댁 모두가 교회에 나간다.
서울에서 사는 내 자식들은 지난 일년간은 잠실에 벼로 오지 않는다. 자식들은 어린아이를 키우기에 가족끼리 서로 대면하는 것조차도 극도로 자제한다는 뜻이다. 큰아들네는 내가 사는 아파트 건너편에 있기에 걸어서 가면 금세 만날 수도 있는데도 우리 식구들은 만나지 않는다. 정부의 시책에 잘 따른다는 뜻이다.
오늘도 내가 TV를 보다가는 화가 치밀어서 불불거렸다.
아내는 말한다. '제발 ... 뉴스를 보지 마세요.'
<종교의 자유>가 무엇일까?
헌법조문의 해석을 다시 생각해야 하나?
나한테는 그럴 가치가 전혀 없다.
'자유란 내 멋대로 한다'는 게 아니다. 사람(집단)간의 자유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법률(사회규범 등 어떤 제한) 안에서는 자유는 존재한다.
짜증이 난다.
이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 머리를 흔들면서 그만 쓸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