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란 절기가 무색할 정도로 어지간히 추운 날씨다.
이러한 날 산행을 위해 장복산 구 마진터널 입구에서 차를 내린 우리앞을 가로
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산지기 아저씨.함 봐주이소!!!
그러나 이 소리는 제왕처럼 버텨선 붉은옷의 완고함 앞에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만다. 아, 이럴때 나의 선량한 시민의식은 잠시 혼돈에
빠지게 된다.
"흐-흥, 장복산 진입로가 어디 그기 말고는 없다던가?"
역시 잔머리의 대가다운 기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돋보인다.
마진 터널에서 시루봉과 천자봉을 잇는 모처럼의 종주산행 계획인 만큼
새로난 임도위의 인적없는 오솔길은 한치의 틈을 주지않고 위로 위로만
그어져 있어서 보기보단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새로난 길 같지 않게 사람의 출입은 빈번 했던듯 모습만은 뚜렸하다.
시린 공기가 싸아하게 코끝을 얼려놓듯 얼굴을 할퀴더니 이내 가지끝에서
된소리를 내고 있다. 짧게짧게 굽어지는 지그자그형 오름길은 추위에
대항하는 신체적 노동력에 적절할 만큼 알맞게 꺾여져 있지만 오름길은
결코 쉬운길이 아니다.
벅찬 호흡을 추스리며 30분여를 올랐을 즈음 저만큼 거대한 바위절벽
아래로 잔뜩 얼음을 둘러쓴 약수터가 눈길을 끌었다
한없이 비탈지기만 하여 찾는이의 발품만 고되게 하는줄 알았는데 목마른
이의 갈증을 달래줄 약수터와 함께 이곳저곳 가만히 살펴보니 경치 또한 제법이다.
저 위 마루금 너머로는 지금 북서한풍 휘몰아치는 툰드라의 혹한이
입춘의 절기를 여지없이 문책하고 있겠지만 남향으로 했빛 가득한 이곳엔
겨울나무 사이사이 적당한 곳에다 밉상스럽지 않은 참한 바위들이 제법
멋을 부리며 여문 뿌리들을 파묻고 있었다.
지칠만도 하건만 여기까지 쉬지않고 기어오른 고단한 몸에 한잔 약숫물은
보약 못지않은 효험으로 절실할 법도 한데 주위에 꽉 들어찬 얼어붙은
얼음 덩이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빈약한 물줄기와는 달리 약수터 바위위로
두텁기만 하여서 더디게 차는 물바가지 애간장을 녹인다.
그러나 똑똑 떨어지는 얼음물 한바가지 받아 쭈욱 들이키니 오장육부가
써늘해 졌다.
서릿발 같은 예리함으로 전신의 무딘 신경을 일시에 일으켜 세우는 묘약과
도 같은 빙수 한모금, 그 시린 여운이 채 사그러 지기전 또다시 정상을 향해
힘겨운 발길을 떼어 놓는다.
점차 오르면 오를수록 넓혀지는 전망과 툭트인 시야는 진해만 푸른물빛
보석같은 반짝임에 바쁘게 교차되는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다.
사면과 능선은 모든게 판이한 느낌이다.
급사면임에도 바쁘게 올라서는 장복산 끄트머리, 해발고도 582.2m 돌출
된 바위끝! 사방을 휘둘러서 한점 가릴것 없는 툭트인 전망은 40분여의
오름짓에 대한 또 하나의 선물인가.
장복산!! 이곳에 몸을 올려놓고 나니 이제 비로소 푸른파도 넘실대는
진해항 푸른 물빛과 옹기종기 정다웠던 우리들의 보금자리 진해시의
아늑한 전경이 한눈으로 내려다 보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장이며 또한 얼마나 살가웠던 곳인가를 여기 올라
서서 보니 알것만 같아진다. 지지고 뽁고 싸우고 한숨짓던 지상에서의
삶의 애환들이 우뚝하니 높은 이곳 장복산 바위등걸 위에 올라서 보면 그
모든게 한낱 부질없는 것들임을 스스로가 알게 된다.
이리하여 저아래 안일한 지상에선 감히 맛볼수 없는 속세를 초월한 도인
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바람이여!! 추위여!!
지금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휘몰아 치는 동장군의 그 기세를 꺾지 말라.
여기 그 어떤 악천후가 들여닥쳐도 철옹성의 견고함으로 이고장을 지켜줄
병풍같은 장복산맥이 버티고 있느니라!
한낱 꾸밈없는 人情으로 어우러져, 북으로 둘러쳐진 장복산맥 요람같은
품안에서 눈보라 비바람 크게 걱정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이어갈수
있는 우리들 삶의 터전.십여년 세월을 함께하며 정들여 왔던 땅 진해, 鎭海市여!
등뒤로 몰아치는 차거운 바람이 진해항 그림같은 풍광에 매료되어 있는
지금의 나를 짓궂게 괴롭히지만 나는 한참을 그곳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멀리 꿈꾸듯 아스라히 바라보던 수평선에서 눈길을
거둬 동쪽으로 시선을 펼치니 창원과 진해의 좌우 분기점 그 중간 지점
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천연의 요새같은 바위성곽이 멀리 전설같은 덕주
봉(602m) 봉우리 그 너머로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산마루를 두고 `장복산맥`이라 이름 붙여본다.
눈길을 준 이상 엎드리면 손 닿을듯한 진해항 푸른물빛 잠시 제처두고
이제는 가야한다.
천연의 축성법으로 쌓여진 장복산 성곽위 하늘금을 따라서 구름같은 여유와
바람같은 마음으로 엄동(嚴冬)의 이 하루를 주유(周遊)하고져 한다.
병풍 바위답게 꼬불꼬불 이어지는 장복산맥 성곽끝은 소꿉놀이터 같이 아기자기
하지만 그 배치나 펼침의 묘미는 단연 예술성이 다분하다.
덕주봉 까지는 채30분이 안 걸린것 같다.
덕주의 바위끝은 장복의 展望感을 훨씬 뛰어넘는 훌륭한 것임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높이솟은 바위 끝단에 가드레일을 설치하여 추락 방지 시설
을 해놓은 이곳은 마치 성곽 가장 높은곳의 망루에 오른듯한 느낌으로
진해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는 빼어난 장소로서 동서남북 어디를 향하여도
막힘이 없다.
멀리 북쪽으로 창원시 경남도청 뒤의 정병산 과 북면 가는 길옆 하늘을
떠받친산 천주산에 이어, 걸어온길 뒤돌아서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마산의
무학산이 춤을추는 학의 모습으로 나를 향해 비상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철옹성의 망루, 덕주봉을 지나고 연이은 바위길 내려서니 완만한 흙길이다.
지표면을 덮고있는 마른풀이 사람들에 의해 벌거숭이로 변한 능선이 동서
로 이어지는 부분은 "취서-신불-간월산"간의 "영남 알프스"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 느낌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듯 또다시 까탈스런 바윗길
하늘재(?)를 넘는다.
그렇고 그런 높낮이로 고도를 이어가다 다소 두리뭉실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니 이제 저 아래로 안민고개가 보인다. 마산,창원 과 진해를 연결
하는 고갯길이 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꽁무니에 줄을잇는 차량행렬로
분주한데 능선을 걷고있는 산행길은 추위로 하여 인적이 드물다.
안민고개 생태교를 건너고 나면 지금 부터는 줄곧 완만한 오름길이 지루
하게 이어진다. 크게 기복이 있지는 않으나 꾸불대며 길게 드러누운 능선
길은 은근히 우리를 지치게 하는데가 있다.
이길은 지금까지 수도없이 다녔던 길이지만 그때마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얕잡아볼 길만은 아니었다
진달래 붉어지는 봄날의 이길은 강한 자외선에 얼굴이 노출되어 꽃빛보다
붉은 얼굴로 달아 올라야 했고 여름날 뜨거운 했볕 아래선 숨이 턱턱멎는
민둥산의 열기로 녹초가 되는가 하면 살을 에이는 겨울의 북서한풍 역시
여늬산과 마찬가지로 결코 만만찮은게 아니었다.
그러나 은빛 억새꽃 허드러지게 피어나고 저아래 산비탈 과 계곡으로 붉게
타는 단풍빛이 절정을 이룰때면 그때 만큼은 그 맛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러할때 키높이 피어오른 억새밭 사이로 서늘한 바람불어 가을이 깊어지면
다정한 연인과 나란히 손잡고 하늘길 따라서 끝없이 걷고 싶어지는.....
그러한 감흥에 사로잡히게 될것이다.
산을 오른다는 것, 힘든 산길을 걷는 다는것, 그게 어데 오로지 몸으로만
오르는 것인가? 몸으로 걷고 마음으로 오르는 그러한 산행길 아니었던가?
산을 오르는 건 마음속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 위한 마음의 수행길
이다. 쓰잘데 없는 애착으로 인한 마음의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기 위한
연습을 하기 위함이다. 내던지고 팽개치기 위한 비움의 공부에 매진하는
시간이다.
높이지 않는것, 스스로 제몸을 낮출줄 아는것, 이것이야 말로 정말 제대로된
세상살이의 진정한 한 방법이 아닐까?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제몸
높이기에 정신이 없다.
낮추므로서 얻어지는 많은 것들에 고마울줄 아는그러한 가슴들이 세상에 넘쳐
났으면 이세상 얼마나 사는재미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 한껏 스스로의 몸을 높여 놓았다. 단지 겸양의 미덕,
그런 차원이 아닌 지리적인 높이만을 높였을 뿐이다
한번 내디딘 발길은 이처럼 가다가 중단하거나 멈출수가 없는것, 힘들고
괴로워도 끝까지 나아가야 하는것, 왼갖 역경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네
인생길과 같은것!
생태로가 끝나고 민둥산 자갈길 쉬엄쉬엄 올라서니 불모산 분기점을 통과
하게 되고, 여기서 부터 오른쪽으로 진로를 바꾸면 남쪽으로 시루봉을 향
하게 되는 오늘 최고의 종주 능선인 장복산맥 지붕위를 걸어가게 된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워서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 하고있는 어느 일행
중 한사람은 눌러쓴 모자 차양끝에 길다란 고드름을 세개나 매달고 걸어
가고 있었는데 "아따 아재요 가다가 갈증나모 묵을라꼬 그렇게 달고가요?"
했더니 맞바람에 시푸르죽죽 얼어터진 얼굴로 헤벌쩍 웃음으로 답한다.
하늘금을 따라 걷는 우리들 발밑으로 까마득히 흘러내린 웅동의 아홉내골
깊은 골짜기가 나신을 들어내어 떨고있는 나무들로 길길이 펼쳐져 보이는
여기쯤 에서는 이제 구름을 벗하여도 좋을듯 싶다
하늘과 맞닿은 신선들의 터전이라 하늘의 언어로 우아해져 봐도 괜찮을것
같다. 그러므로 날으는 겨울새와 하늘에 떠있는 낮달(조각달)의 슬픈 사연
들을 귀담아 들어봐도 괜찮을것 같다. 구름에 이어 흐르는 바람조차 하나의
생명 활동임을 우주적 차원에서 헤아려 봐도 크게 빗나간 생각이 아님을
이곳에선 인정되어 질것 같다.
바위와 바위를 연결하는 웅산가교 구름다리를 건너면 곰이 살았다는 웅산
의 육중한 바위 봉우리가 늠름한 생김새로 우리를 맞이한다.
한여름 안개구름 휘돌던 튼실한 벼랑끝 산노루 뛰놀던 그곳엔 지금 삭풍의
매운맛이 칼금을 긋듯한데 우리는 천년을 지켜온 천년바위 모습으로 말이
없는 곰의 산, 웅산을 가만히 싸고돌아 남으로 남으로 바다끝을 향하여
죄없는 발길질만 해대고 있다.
시루봉에 이르기전 이쪽 산등성이 완만한 잔디밭에 식단을 차린다.
아이고 배불러 죽것다.
가야한다. 먹고나면 또 걸어서 가야 하는게 산길이다.
여기서 시루봉은 자빠지면 코닿을 곳에 있다.
아! 이쯤에서 오늘하루 구비구비 걸어왔던 숱한 발자취 그 면면을 되짚어
보기로 하자. 장복산 과 덕주봉 바위봉 오르내려 한숨을 돌리고 안민고개
잘룩한허리 거슬러 올라서 한참을 치달리다 동서능선 끝지점 하늘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반달곰 두상닮은 웅산을 휘돌게되고 또다시 오른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지면 그기 또하나의 신비한 영산 시루봉 곰메
바위(653m)가 수미산의 신령스런 모습으로 그림처럼 닥아 오는데.....
아, 여기서 욕심을 더 부려 또 한굽이를 넘어서 보자!
저쪽 남해의 바다끝단 마지막 穴자리 수리봉을 지나, 백두대간 수천리를
달려온 고단해진 기맥이 남은여력 다하여 준엄하게 일으켜 놓은 바위로된
봉우리. 그기 그곳! 곧곧한 기상을 간직한 천자봉(465m)이 그 존엄한
이마를 치켜들어 굽힐줄을 모른다.
치켜든 천자의 이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반짝이는 은빛 눈부심의 황홀함
그것이다. 턱밑으로 떨어지는 `만장대`는 장복산맥 장대한 그 능선길의
종지부임을 말하듯 평온한 느낌인데 우리는 만장대의 오른쪽 오솔길로 하여
임도로 내려서고 그곳에서 또다시 역방향을 취하여 자은동 쪽으로 향한다.
임도를 걸어 오면서 산금을 훑어보니 무수한 걸음옮겨 지나온 오늘의 발자욱
들이 주마등처럼 되살아 난다. 오늘하루 쉬지않고 걷고걸어 지나온 시간들이
장장 6시간의 대 장정임을 헤아려 보면서도 비록 몸은 고달프나 마음만은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해져 가는 행복함을 느낀다.
--------------------------------- `06. 2. 4. 봄이오는 길목에서
첫댓글 장문의 장복산 산행기 잘 봤습니다^^ 날씨가 춥다기에 웬? 하고 봤더니 2월이군요^^산을 오르는건 마음속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한?음..생각과 동행하는 산행이라면 더 충만한 하산이 되셨겠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구름과 같은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갑니다..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그리고 내버려두는..난 그게 왜 그리 어려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