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4장
9절
이 생물들은 영원히 살아계시고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고
있었읍니다.
Whenever the living creatures tive glory and honor and thanks to Him who sits on the throne who oives forever and ever.
참고) 구태어 성경말씀을 성경말씀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여호아 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호아 선은 오 같음이여! 라는 의미로서 빛의 행하는 O 률의 이치를 논하는 사유체계인데, 이를 불교입장으로
이야기 한다면 여래선을 의미함과 같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래선이나 여호아 선은 이치인고로 깨어나는 상태로 주어지는것은 아닙니다.
즉 초월적인 가치구조 본질자체는 아니다 이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래선이나 여호아선은 삶의 이치를 담는 진리와 속간의 삶을 다루는 정도의 이치 4 단계를
말합니다.
불교적 관점으로는 초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과 같음인데 이를 금강경으로 말씀을 하게 되면
성인지류에 들어서 깨어남의 과정이 4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모두들은 성인지류를 닮아야 합니다.
초선정은 수다원과를 초선정이라 함인데, 수다원이라 다양함의 삶을 다 받아 이해하는 과정을 수용하는 경지로서
현실에 대하여 꿈을 꾸는것과 같음의 관점을 통찰하여 마음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이므로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인품을 기른다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修多元(수다원) 입니다, 다양하고 불특정한 모든 일들을 닦아 수용(受用) 할 줄 아는 경지입니다.
단 오로지 성인의 말씀에 의지해서 행하는 도리를 이해하고 자각하는 과정에서 오는 기초적 덕목을 말합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육식을(6) 의미합니다.몸에 6 의 감각기관을 기준하는 인식점의 빛 운동인 회귀현상을 보는자리입니다.
빛의 7 의 일곱바퀴의 임계치의 영률을 더 굴러 영을 기반을 자각하는초입으로 성인류에 들어선다 할 수 있는데
달리 말하자면 성인류에 흐르는 범주에서 입학을 한 것을 말합니다.
일단 이 경지에 입학하면 다시 되돌아 가지 않읍니다.
예를 들어 국민하교 6 학년을 졸업하고 다음에 중학교 1 년에 들어서면 다시 6 학년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 이치와 같읍니다.
인성의 사람됨의 성품을 그 다음부터 7단계의 큰 변화를 타기 시작하며 행하게 된다고 금강경에서는 이야기 합니다.
그 이후에는 변화를 타지 않는 굳건한 성인의 도리를 행하게 되는 경지를 예약한 자 들인데 세상에 많은 분들이계십니다.. 이분들은 스스로 그러함인지에 대한 경계를 자신도 모르게 인식도 못 하는 특징이 있읍니다.
이분들은 스스로도 스스로를 모르고 또한 본질적으로 흰 색을 지니게 됨인데 주변에는 아주검은색으로
주어진 군중들 속에 섞여 있으므로 자칫 나는 흰색이다라고 주장을 할 수도 해서도 아니되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실만 다지는 것이고, 또한 보편적인 검은색과 동류임을 인식하면서
서로 부대끼며 홀로 성인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숨죽이는 자 들입니다.
이선정은 사다함과를 증득하게되는 것을 말 함인데 제 7 식을 말합니다. 꿈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나 습관이 계속 붙어서 단 한번은 다시 와야 하므로 이를 일왕일래(一往一來) 의 경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이선정에 든다하고 수다원과는 6 식이라 하지만 사다함은 제 7식이라 합니다. 심판을 받음을 이해하는 경지입니다.
사다함은 무엇인가 (捨多含:사다함) 이득으로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것을 죄다 버리고 본전사상을 아는 관점의
경계가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지금 제가 본전사상을 의미하는 것을 주장하며 여호아 선을 이치로 행하고자
하며 성인의 말씀을 소개하는 입장을 견지한다면 사다함경지에 들어서야 하는 제 이선정을 말합니다.
이를 빛과 사랑, 그리고 그림자 라고 말 함이며 빛은 진리요 생명이니 라시는 성령의 말씀을 참되게 믿는 자의 부류를 말합니다.세상에 많은 분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자기는 흰색이다, 주변 군중들은 전부 검은색이라는 차별감이 없게 되고 색이 희던 검던 무슨 상관인가를 이해하고 서로 동질류임을 깨치는 과정중에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삼선정은 아나함경지라 하여 제 8 식이라 함인데 이를 아뢰약식이라고도 하지요.
8식은 반연하여 O 으로 굴러가며 청정한 O 의 모티브를 환 하게 깨쳐서 인연법과
인과율을 다 보고 아는 경지를 말함인 이는 더 이상 육의 몸을 타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양태라 하여 불환과 (不還果)를 증득했다 하여 선인의 경지 3 단계에 돌입한
경지를 말합니다. 아나함(我那含) 이라 세상의 모든 생명성품들은 나에게 다 포함되어있다 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무아(無我: 실제로는 내가 없음, 모두 주님 것임을 이해하는 경지를 말함) 지론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며, 모든 생명의 삶을 주님께 맡기는 양태를 말합니다.
이 자리는 신과 소통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모두가 나에게 속하고 모두가 나와 같다라는 사실을 재 인식하고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주) 예수님의 성령의 본질을 환하게 보기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이를 일체동관 하는 자리라
이름하는데
지금 저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교리를 기준하여 소개하는 것입니다.
사선정은 아라한 경지로서 오고감이 자유자재이고 상주하면서도 육을 받던지 안 받던지
자유자재 하므로서 무아의 경지를 증득하고 모든 인과율이 전부 O 임을 체증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집필하신 사도요한의 경지나 사도바울, 에스겔 등의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4 단계로 이치를 접하고 경지를논하고 직관하는 자리인데 이 자리 4 단계를
깨어남이라고는 하지 않으며 깨침이라고 하지도 않읍니다.
일단 주) 예수님의 성령 말씀을 위임받은 아바타라 할 수 있읍니다.
깨어남이나 깨침이나 이러한 경험적 이치를 다 보고 한다 하여도 보는자가 존재하고
주관 객관이 서게 되면 아직은 깨어난자가 아닙니다.
이 네단계를 경험하는 것을 여래선이라 하고 이치로 증득한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해서 여호아 선이라는 이름을 잠시 빌려 방편적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그냥 초월하여 단박에 꿈을 깨는 경지를 돈오라 하고 견성이라 하고
이러한 자리는 이러한 자리라는 생각도 내지 않고 말도 문자도 떠난경지로서 말도 문자도
인정하는
반경을 보는 시야로 생각이나 자각을 떠나는 경지이므로 모든 생명성품을 예수라 보는 관점으로
하나가 될때 이를 깨어남의 본질로서 묵언지간으로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자리에 머물면 영생을 스스로 보는 자리가 됩니다.
이를 진정 깨어남이라 이름하는 것인데, 여호아선 4 단계를 증득하면 자연하게 오는 과정인데
인과를 마지막으로 겪어 초월하여 등질때만이 가능합니다.
이 선상에 더 초월하지 못하고 머무는 수가 많읍니다.
모든 섭리의 동질성을 의미하고 보는자인 이 보는 조차까지 놓아지는 경지이기 때문
그냥 광체만 남아 있는 형국이고 광체에 생각자리는 벗어나있읍니다.
이는 온 공간에 동시적인 영광이므로 동질적인
체를 본다는 것에 머무는 경지를 말합니다.
모세도 이 직전에 하나님말씀을 실천하신 선지자 입니다.
이로서 모세오경은 위대한 것입니다.
오로지 진리의 본체는
주) 예수. 부처, 공자, 마호멧 4 대 성인만 계실뿐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입장으로는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이나 사도에스겔은 여호아 선으로는
아나함 단계로서 성인의 지위에 다다른 불환과를 증득한 직관자의 천사 들로서 사도가 된
이상의 의미를 행하시는 분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들은 천국에 가서 다시는 되 돌아 오지 않거나 사자로서 천국의 보좌곁에 계시는 것입니다. 이미 아라한과등에서 깨어남을 믿음과 동시에 3,4 과를 얻음인데 제 3 단계 아나함경지의 8 식의 반연을 행하므로서
3위일체 의 천국의 보좌 께서 세상을 운영하시는 것을 전부 직관으로 보고 백성들에게 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3,8 = 24 의 원률을 작용하게 되거나.
6 식의 날개로서 4 종류의 24 장로를 보좌하거나 한다 이말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보좌진들을 상대화 하여 객관화 시키고 주체적으로 사자 역활로서 같음을 보고
글러 기록하고 써 내려갈 수 있다 할 수 있는것입니다.
고로 네단계를 성인의 경지로 취하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의 아바타로서 올 곧게 전부를
다 행하는영광을 얻은 자를 말하고 이분들이 전함이니 여호아 선이라 나름칭하고 있는 것이니
구태어 이 명칭에 좌우될 필요는 없읍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네 생물들이 영광(榮光)에 대하여 한자어로 직역해봅니다.
불을뒤집어쓴 생명의 (나무木) 을 O 이라고 함인데 육식을 의미하고 육을 지닌 생명들이
둥글게 운동하는 O 을 빛날 榮이라하고 꽃 영 字 라고도 합니다, 꽃은 결실이지요, 육을 지닌 6 이
반연하여 다시 거슬러 O으로 오는 빛의 7 심판 법칙으로 꽃의 결실을 의미함인데 대정수로 12 진법을 구하는데 12 진법의 삼위일체로
천국을 보자 하는 어린양께서 36을 행하니 한바퀴 돌아 6 을 행함을 O 의 원위치로 돌려놓는다는
의미가 빛으로 행하심을 감사한 마음으로 우러러 보는 것을 영광이라 이름합니다.
나무 木 은 세갈래로 뻗읍니다, 원운동을 하기 때문인데이로서 O 이라 함인데
水(수) 에서 나왔읍니다, 水에서 木 으로 변화 한 생명입니다. 한자어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존귀(尊貴) 를 직역해볼까요.
직관을 못하는 것은 어휘력 부재입니다.
파자(破字)를 나름 통달하면 다 글자의 의미가 전체적 맥락으로 다 보게 됩니다.
尊(존) 의 八 은 여덟팔인데 8 ,입니다. O과 같음으로 굴리려면 피대를 반대로 역어 사우도에 걸어야 한다
하였읍니다, 피대모양이 8 로 엇갈리게 걸때 같은 방향으로 회전한다는 의미이고 6 의 반만 보고 생각내고
행하는 어리석은 백성은 거꾸러 다시 한번 굴러야 12 진법 O 을 행함과 같은 의미이며 이치를 말합니다.
재미로 말하게 된다며는 酉(유) 는 닭을 의미하는데 닭은 말입니다, 매일 알을 낳을 수 있읍니다, 신기하지요.
숫닭이 와서 안 건드려도 유정란은 아니지만 무정란이라도 낳읍니다. 희한하고 신기합니다.
酉 를 마주하는 것은 卯(묘) 입니다, 토끼이지요, 이로서 묘유가 역경으로는 서로 충돌하며 빛 운동을 함인데
卯 인 토끼는 자궁이 두개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아기를 입태해도 또 하나의 자궁이 놀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임신중에도 또 임신을 할수 있다는 사실의 생식구조를 가지고 있읍니다.
동시에 숫놈 둘 도 거느리고 연애를 동시에 할 수 있다 이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상식체로서 이러한 현상을 지닌 육수는 이 두종류 밖에 없읍니다
세상에 이러한 신기한 동물은 12 지지의 종류로서는 이 두가지 생명들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묘는 대정수로 오행수 8 이고 유인 닭은 대정수로 오행이 4 가 됩니다, 부딧히고 섞이면 12 가 되지요.
곱하면 세상풍경 전부인 32 인 상을 지닙니다. 공간 십방 전부를 표상합니다
이를 4 정위에 든다라고 하여 그러므로 역경에서는 자(북) 오(남) 묘(동) 유(서) 는 이 자존력은 너무강하여 제왕지위라 이름을 붙인 것이
역경으로서 해당되는 부호가 됩니다, 연상하시어 이해하셔도 됩니다.
또한 酉는 금닭입니다, 반짝거리는 금닭인데 오행으로는 金 이고 光을 낸다 하는것입니다.
이로서 존귀를 부치고 12 인연의 결과치로 빛나는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의미하는 12 의 O
률을 지닌다 할 수 있읍니다, 결실을 나타내는 서역을 의미하는 천국의 방향이 서향이지요.
서방의 금빛세계를 표현합니다. 팔방의 생명성품이 서방의 금빛세계의 결실을 둘어싼 마디를
행하는 자를 존귀한 자 라 하는 것입니다.
10절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앞에 드리며 이르되
The twenty-four elders fall down gefore Him who sits on the throne, and worship
Him who oives forever and ever,and cast their crowns before the throne, saying,
. 11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you are worthy, o Lond, to receive glory and honor and power, for you created
all things and by your will they exist and were created"
참고와 견해 소개)
다음번에는 요한계시록 제 5 장 에 들어섭니다. 요한계시록의 가장 깊은 비밀부호로서 백성의 삶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부분이 연속되는 과정을 요한께서 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말씀의 구절은 다른 타 종교에 대비하고 비교하고 서로 융합하고자 하는 의지를
작용시키는 본인의 행위는 사실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양태로 종교적 시야에서 보게되면 성명구약말씀을 돌이키게 되면 배타적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는 허용하거나 용납할 자리가 없다는 사실로서 배척의 원리가 굳세게 자리매김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수많은 열린자 들은 성경말씀과 타 종교와 서로 융합을 노력하는 엄청난 시련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노력했으나 헛수고 이며 더 나쁜 결과만을 초래했을 뿐이므로 , 이러헥 미약한 본인이 이를 시도해본다거나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지만 진리라는 동질성으로 하나를 행하는 이치는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이치가 확연하므로 " 언젠가는
융합적 정의로서 이를 해결 하지 않으면 인류의 숙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관점도 각기 동여메고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도하는 관점은 언젠가는 또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것을 봅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시도 하지 않을 수 도 없는 것입니다.
죵교비교학으로 한번 살펴본다면 서로 접근하는 의미의 본질을 서로 각자가 진리의 모습을 완연한 논리로서 접근해서는 아니된다는 사실을 모른고 있음을 인지 하지 못하고 접촉하는 경우가 아주 많읍니다.
그러므로 이해가 서로소통되지 않는 문제만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20 세기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 라는 저서 12 권을 세상에 내 놓았는데
철학계에서는 신의 영역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많은 면면을 세상에 내 놓았읍니다.
이 책의내용중에서 전 세계의 최강국의 로마는 어떻게 멸망했는가에 대한 관점을 명제로 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 논리는 대단하였읍니다.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당시 로마는 아주 군대가 세계최강임에도 로마는 멸망했다는 사실을 특징으로 들고 이 사실이 가장 큰 의문점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천년의 사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목격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로마는 많은 사회개혁을 야기한다하며 궁극적으로 주어진 체계는 귀족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두 부류로만 집약된 구조였다는 사실이고 그렇게 중간층이 없어지면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정병조 교수 강좌에서 발췌>
예를 든다면 돈이 한 300억 400 억정도를 번 부자가 있는데 이를 귀족이라 하는데 이 부류하나와
지금 밥을 먹으면 다시 다음번에 밥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부류를 노동자 계급이라고 합시다
이 두가지 부류만 사회속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 당시 로마나라가 굴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대화가 되겠읍니까?
귀족들은 요즈음 수준으로 보면 쌀 값이 얼마가 오르고 폭등을 해도 상관을 하지 앟읍니다.
지하철은 타 보지 도 않아 시세도 모르며 말입니다.
하지만 대중지간에 모여 말하거나 주변에 의논을 내 놓을 때는 지금 물가가 비싸서 크일났어 하고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거죽으로 걱정하는 척 하면서 세상표정에는 맞추는 기술을 구사하게
되는 세상표정과 겉도는 처신만 합니다. . 쉽게 말하자면 "요한계시록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편 3장 15절을 보게되면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내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차든지 덥든지 어느 한 쪽이
되어라" 16절, 네가 미지근하여 어느 쪽도 아니니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
17절 네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되어 아무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겠지만
실제로는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임을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부류의 짝이 귀족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두부류 사이을 절충해주는 중산층이 없어지므로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이라는 아놀트 토인비의
주장입니다.
지금 기독교는 자기 신이라는 예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 불신지옥"을 서슴치 않고
세상에 내 놓읍니다, 배타적 성격을 지니는 이해안가는 성경말씀의 진위를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의 진리를 모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이 세상에 유심론과 유물론이라는 두 극단의 대립적 의미를 세상에 새워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간의 절충점을 지닌 중도사상이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 자본주의 원리와 노동자의 계급투쟁인 사회공산주의 체제가 여전히 대립되고 있읍니다.
그렇지요?
이 중간을 의미하는 중도의 중산층이나 중간계급이 사라지면 이 세계는 멸망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구약을 믿는 이스라엘의 배타적의지는 너무 과격해지도 다른 종파는 전부 경계하는 측면으로
자신의 우월성으로 유지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주) 예수님의 참된 사랑의말씀이 출현하였으므로 이나마 세상을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지만여전히 뿌리가 같은 성경의 말씀을 자못 이해하고
깨어남의 과정에 대하여 자못 그 본질을 파악하지도 않고 신의 지위를 빌려 자신의 모순된 논리마져
허용하고 특권의식으로 행 하는 것은 아닌지를 분명하게 비판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종교의 본질면이라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종교의 의미로서 삼은 4 대 성인의 말씀은
서로 들여다 보면 하나의 같은 진리를 안고 굴러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니되는가? 중간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지금 죵교전쟁의 비슷한 테어마는 계속 번져 가고 있읍니다.
굳건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멸망한 사실을 목격한 로마시대의 변은 지금도 가능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이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중 도전과응전의 철학논리였고
니이체는 신은 죽었다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실정도 기득권과 피기득권의 대립관계로 사회주의 노동계급이 점점 증가하고 있읍니다.
양립의 이원화 과정은 바로 서양사의 헬레니즘사상 으로 합리주의가 낳은 페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은 이러한 것이 아닌 까닭에 요한계시록은 이를 분명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흑백논리는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 이러한 흑백논리를 절대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이를 왜곡되게 받아들인자는 깨어남이 없는 지도자가 잘못된 길로 백성을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나라는 기독교를 믿어야만 우월해지는 신분상승적인 냄새를 풍겨야 합니까?
왜 이나라에서 기독교 문명이 들어와서 나라를 개화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만 안주하고 있는가 이 말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증산층이 사라지면 이 나라는 멸망하게되어있읍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일으킨 개혁의 선두자로서 자처하는 기독교가
정치에 휘말려서도 아니됩니다, 그것은 더욱더 극단적인 상태로 부르짓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말 없음표의 여백미가 주어지지 않으면 이 세상은 대립구조로 갈등하고 영원하게 전쟁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특정한 다수의 이해! 노동자계급을 대변한다는 지식인들을 포용하는 진정한 사랑의 주) 그리스도의
참 사랑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항상 양면으로 치 닫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중도가, 중간을 함축한 것이라야 사랑임을 우리는 빨리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수다원과라 초선정을 의미합니다,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이해력!
초선정이며 성인의 말씀경지에 들어서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참답게 열린자로서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분들이 이 세상에서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 역시도 나약한 힘으로 이러한 종교적 융합을 논하는 자체는 여지없이 실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를 한다해도 한방울의 물이였음을 기억하는 자로 남기를 바랄뿐입니다.
단 하나, 윤리적 헤게모니를 포함한 참사랑법의 윤리를 입증하면 모든것이 해결되리라고
믿읍니다만...
우리나라는 현재 증산층이 사라지고 있읍니다.
5장
1절
내가 보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팍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AND I saw in the right hand of Him who sat on the throne a scroll written inside
aand on the back , cealed wtth seven seaks,
참고) 내가 보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
주) 예수께서오른손을 내 밀면 마주하는 우리 백성들 입장은 왼편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른손으로 받아야 합니다, 거울에 비치듯이 오른손을 내미셨는데
그렇다고 자기 주관으로 시야를 착각하여 왼손을 내밀면 서로 손을 잡지 못합니다.
이해도의 관점을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두루마기가 있으니 ... 종이를 아주 넒게 원형으로 만들어 둘둘 말아보십시요.
나무처럼 길어지고 나이테처럼 둘둘 말린 흔적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둘둘 원으로 말리면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세월의 무게를 담아나갑니다.
빛의 O 운동입니다.
안팍으로썻고 : 인체를 예를들어 말합시다 몸안에도 썻고 몸 바깥에도 썻다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안과밖이 동일한 것이니 일체동관하시는 것은 표상하고 계십니다.
일곱인으로 봉하였더라 " 하느님께서 내 걸으신 무지개의 칠 빛으로 심판하시는 비밀을
삼위일체로서 이러한 삼매지경으로 어떠한자도 이를 생각으로 이해하거나 풀 수 없는 경지로 묶은 진리의 봉인을 하신 것을 말씀하시는하늘의 비밀교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항상 빛 7 로 심판하심을 드러내시는 작금이십니다.
다음에 계속하여 요한계시록 5 장 2절 부터 계속 소개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