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인생을 불법주차시킨 남자
인생을 불법주차시킨 남자
역시 2층에 자리를 잡았다는 위치부터도 이곳 커피집 미라보 다리는 은
평구청 앞의 커피집 장밋빛 인생과 너무나 닮았다. 파란 플라스틱으로 유
리 구슬 장식처럼 만들어 줄줄이 꿰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은 샹들리에의
빛깔만 달랐지, 얼룩 하나 내기가 겁이 날 정도로 매정하게 새하얀 탁자는
물론이요, 손가락이 굵어서 동작이 서투른 사람은 집어들기도 힘들만큼 작
은 하얀 난무늬 찻잔과 하얀 받침 접시와 커피의 가만 빛깔도 장밋빛 인생
그대로였고, 칸막이에 올린 플라스틱 등나무 덩굴과 꽃은 아예 같은 공장
에서 찍어내기라도 했는지 잎사귀의 옆맥무늬가지도 똑같이 보였다. 도시
에서 흔한 착각이었겠지만.
장밋빛 인생의 유리창을 가로질렀던 La vie en rose La vie en rose La
vie en rose La vie en rose La vie en rose La vie en rose 처럼 여기도
유리창에는 Milabo Bridge Milabo Bridge Milabo Bridge Milabo Bridge
Milabo Bridge Milabo Bridge라는 영문 글씨가 대형 유리창을 가로질러
초콜릿 빛깔의 띠를 둘렀다. 아뽈리네르가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가 미라보
다리의 표지판을 보고는 잘못 찾아온 모양이라고 돌어서겠구나 하는 생각
에 속으로 혼자 웃으며 시문이 커피집 안을 둘러보니 손님이 제법 여럿이
었다.
창가의 오른쪽 끝 탁자에서는 짧은 바지 속에 팬티를 입지 않고 노란 셔
츠 밑으로 배꼽을 드러낸 젊은 여자와 소매가 긴 검정 블라우스에 땅바닥
까지 글리는 검정 치마 차림의 젊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색채가 요란한
사진이 가득 담긴 잡지를 뒤적였고, 창가의 왼쪽 끝 탁자에서는 여객기 기
장 같은 제복 차림의 50대 남자가 누구를 초조하게 기다리는지 자꾸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빠리의 개선문 사진을 걸어놓은 뒷벽 앞 탁자에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지 아니면 할인 매장에서 단체로 샀는지 몰라도 하얀
빛깔과 기다란 길이가 똑같은 스카프를 두른 부르주아 인상의 중년 여인
세 사람이 방금 심한 말다툼이라도 벌인 듯 벽화처럼 가만히 앉아 침묵을
지켰다.
미라보 다리 커피집이 낙타 얼굴의 수사관이 나를 체포하기위해 잠복하
고 기다릴 만한 곳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마음이 놓인 시문은 입구의 카운
터어서 우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학교에서 돌아왔을 만도 한데 아내는 아직도 전화를 받지 않았
다.
그는 창가로 가서 가운데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길 건너 만리안경점
을 내려다 보았다.
최원석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아까처럼 그대로 앉아 있었다. 커피집
으로 들어오기 전에 길거리에서 공중전화나 버스표 판매소 뒤에 몸을 숨기
고 시문이 안경점 주변의 동정을 살폈을 때도 원석은 똑같은 자세로 저렇
게 혼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다른 지역 다른 거리여서 녹번동과는 무대와 장소가
달랐지만, 이곳의 길거리 풍경은 장밋빛 인생에서 내려다본 구청앞 거리
풍경과 무의미할 정도로 똑같아서, 어디를 보나 빛깔과 구조는 달라도 모
양과 인상이 똑같은 건물이 줄지어 늘어섰고, 영어로 표기한 영어 간판과
한글로 표기한 영어간판과 영어로 표기한 한글간판과 한글로 표기한 한글
간판이 불결하게 뒤섞인 분위기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원석은 다른 모든 곳과 무의미할 정도로 똑같은 길거리 풍경의
한 부분이었다.
최원석의 만리안경점은 특징이 없는 도시에서 특징이 없는 거리에 세워
진 특징이 없는 7층짜리 건물 제일빌딩의 1층에 세를 들어 살았다. 제일빌
딩의 왼쪽에는 점포의 끝에서 끝가지 이르는 기다란 간판 바로 밑에다 다
섯 대의 자전거를 유랑 곡마단을 선전하듯 거꾸로 매달아 놓은 삼천리 자
전거 레스포 대리점이었고, 오른쪽 건물은 닭발 피뢰침이 꼭대기에 달린
무전탑을 옥상에 세워놓은 119구조대 빨간 소방서였다.
뚱뚱하고 허연 영감님이 지팡이를 들고 앞에 버티고 선 켄터키 치킨집과
만리안경점이 1층을 반씩 나눠 쓰는 제일빌딩의 지하실은 무궁화 노래방이
었고, 위층에는 새마을금고와 주산학원과 헬스클럽과 직업소개소와 볼륨댄
스와 현대정치문화진흥연구소가 여섯 개의 시루떡 켜를 이루며 시쉬포스의
바위처럼 무겁게 얹혔다.
만리가지 훤히 잘 내다보이라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적었다는 안경점은
참으로 최원석의 삶과 운명과 역사를 제대로 대변하는 무덤이었다.
안경점의 왼쪽에 위치한 삼천리 자전거 레스포 점포의 왼쪽에 위치한 금
강한의원의 진열창에는 각종 뿌리와 약탕관과 죽여서 말린 몇 가지 약재
양서류의 표본 시체와 더불어 박제된 사슴을 한 마리 내놓았는데, 시문은
학창시절 반정부 운동의 동지였던 원석을 만나러 만리안경점을 찾아올 때
마다 금강한의원의 박제된 사슴도 역시 만리안경점만큼이나 원석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물 같다는 생각에 가끔 진열창 앞에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참을 물끄러미 죽은 사슴을 쳐다보곤 했다.
노란 털이 보송보송해 보이는 죽은 사슴은 진열창의 유리 안에서 머리를
조금 옆으로 돌려 박제된 눈알로 자나가는 대도시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했
다. 눈이 슬프고 목이 길어 아름다운 짐승은 함렛이 어루만지던 요릭의 해
골, 이제는 곡예를 못하게 된 요릭의 해골일 되어 녹각을 뽐내며 죽은 눈
으로 바깥 길거리에서 살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분주하게 진열
창 앞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은 박제된 눈으로 박제된 세상을 보며 박제된
머리로 사고하기 때문에 어쩌면 죽은 사슴만큼 생명을 지니지 못했는지도
모른다고 시문은 생각했다.
내장을 긁어내고 유리로 눈알을 만들어 박아 눈믈을 흘리지 못하는 박제
된 사슴은 밥이 되어 셔터를 내린 다음 진열창 안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할
지 시문은 가끔 궁금했으며, 푸르른 숲이 아니라 빛이 바랜 초록빛 꾀죄죄
한 우단을 깐 진열대 위에 올라 서서, 구름과 개울과 나무와 바위를 잃고
박제가 되어 도시의 진열창 안에 갇혀 표백된 꿈을 꾸는 사슴은 옆집 만리
안경점 유리창 안에서 과거로부터 박제된 원석의 현재를 굳어버린 순간만
을 보여주었다.
만리안경점 진열창에는 렌즈를 박지 않은 수많은 안경테가 줄지어 기어
가는 양잠집 누에처럼 층층이 대오를 맞춰 사열식을 벌였다.
만리안경점의 진열창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무한대 안경테의 행진. 아무
리 행진해도 안경테 중대의 위치는 그 자리였고, 유리 눈알이 빠진 수많은
안경은 한의원 박제된 사슴의 유리 눈처럼 길거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을 내다보면서 내다보지 않았다.
시문은 만리안경점의 한쪽 구석에다 조그마한 책상을 놓고 앉아 바깥 세
상을 구경하는 최원석의 틀어박힌 모습을 미라보 다리의 유리창과 안경점
의 유리창을 통해서 서글픈 마음으로 내려다 보았다. 안경점 안에도 깨어
지기 쉬운 갖가지 다른 모양의 똑같은 유리가 가득했고, 유리로 만든 내부
진열용 상자 속에도 역시 안경테 분대가 층층이 사방에 가득했고, 이렇게
유리로 만들어진 가게 한쪽 구석에서 시문의 친구 원석이 죽은 듯 살아갔
다.
너무 일찍 발육이 중단되어 제자리 걸음만 계속하는 원석의 인생, 삶의
중단이 죽음이라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셈이었다.
최원석은 시력을 측정하거나 렌즈를 깎는 각종 광학기구를 주변에 늘어
놓고 박제된 천재처럼 꼼짝 않고 무료하게 앉아서, 눈이 나쁜 사람이 찾아
오기를 한없이 기다리다가, 세상이이 잘 안보인다며 도움을 청하는 손님에
게 유리알로 작은 창문을 만들어 눈에 씌워주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러기 위해
서 태어났다. 스스로 엮어가는 운명이겠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운명을 만리안경점 구석에서 살아가는 원석의 삶은 대한민국 정
부가 옛날 국민교육헌장에 밝혀놓았던 출생의 이유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차라리 정시문의 실종된 삶과 사뭇 닮은 운명이었다.
미라보 다리의 창가에 앉아서 안경점의 친구를 내려다보고 관찰하며 시
문은 앞뒤로 거울을 하나씩 놓고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
다. 안경점에 앉아서 한없이 기다리는 박제된 인간 사슴은 어쩌면 거울속
의 거울에 비친 거울 속의 거울에 비친 거울속의 거울에 비친 거울속에 거
울에 비친 거울속의 거울에 비친 거울속의 거울에 비친 시문 자신의 모습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문은 지금 길 건너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면
서 텔레비젼의 화면속에 보이는 텔레비젼의 화면속에 보이는 켈레비젼의
화면속에 보이는 켈레비젼의 화면속에 보이는 텔레비젼의 화면속에 보이는
텔레비젼의 화면속에 보이는 마지막 까마득한 켈레비젼의 작디작은 화면속
에 보이는 자신의 영상을 보는 듯한 초현실주의적 착각을 일으켰고, 내가
나에 대해서 타인이라는 기분을 느끼는 까닭은 내가 나의 존재와 더불어
실종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시문은 생각했다.
안경가게 구석에 멍하니 앉아 진열창 유리를 통해서 길거리를 오가는 인
간군상을 무료하게 관찰하며 세월을 보내는 초라한 원석의 모습을 길 건너
2층 커피집 창가에 앉아서 허허한 마음으로 관찰하며 시문은 원석과 그가
세월에 의해서 이렇게 박제가 되기 전에, 주어진 운명의 권태로운 궤도에
빠져 제자리 걸음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이 처음 만났던 시절에 어떤 모습
이었는지를 머리속에서 되살려 보았다.
대학에 들어가 원석은 처음 만났을 때, 시문은 아직 다 영글지 못해 제
맛은 나지 않아도 한없이 픗픗한 과일과 같았다. 고등학교라는 이름의 성
적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기계처럼 고생하던 시문은 일단 대학생이 되고
나니까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고는 무척 놀랐다. 인생이 때로는
이렇게 즐겁기도 하구나 믿어지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고등학교일 때와는
달리 이제는 지하철이나 극장에서 마주치는 어른들도 그에게 하부로 반말
을 하지 못했으며, 길거리를 걸아가면서 마음놓고 담배를 피워도 야단을
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격상된 신분도 실감했다. 그는 놀랄 만
큼 신장된 선택의 자유 그리고 행동의 자유에서 나 자신만의 세계가 따로
생겼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해방된 그의 세계에서는 아버지 담배
심부름이나 학교 숙제 말고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
다.
그는 광활한 대지를 개척하듯 새로 생겨난 자신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
했다. 역사의 시련이 삶에다 회한의 더께를 씌우기전이었으므로 그는 감정
의 껍질이 굳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래서 세상은 신비와 감동으로 충만
했다. 강의실에서 주변에 둘러앉은 여학생들의 근접한 모습을 둘러보며 그
는 여자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고, 도서관에서 책으로 읽는 독일인의 사
랑에 감동했고, 모든 사람이 순수하고 고귀하다는 주장을 쉽게 믿었고, 남
을 위해서 나를 버리는 희생정신이야말로 사나이다운 행동이라 생각했고,
미래는 너무 멀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현재에만 바쁘던 나날이
었다.
그리고 시문은 세상에서 나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무엇인지 함께 하기
를 원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똑똑한 신입생을 잡으려
는 여러 학원 집단의 맹렬한 쟁탈전 속에서 시문은 모집책으로 나선 각종
단체의 선배가 권하고 유혹하는 배드민턴이니, 정구니, 등산이니, 음악감상
이니 하는 즐거운 단체활동 가운데 어디에 가입해야 옳고 좋은지 선택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오히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시문은 누구하고 어울
려 무엇을 하며 대학생활을 보낼까 상상하면서 온세상에 예쁜 나비가 가득
하고 하늘에는 갖가지 꽃다발이 둥둥 떠다니는 듯 몽롱한 쾌락의 착각에
빠져 꽃무늬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서 행복의 소나기 속에서 환상을 꿈꾸는
자유에 한껏 취했다.
하지만 행복의 소나기가 내리는 꽃밭에서는 이미 최루탄 가수 냄새가 난
다는 사실을 순진한 시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시문의 주변에는 서예나 우표수집을 같이 하자는 선배들 말고도 무척 음
산하고도 어른스러운 말투로 민족과 역사와 구세대와 정치현실에 대한 얘
기를 속삭이거나 자주 심각한 표정을 짓는 선배들이 나타났다. '운동권'이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스포츠 연합 단체쯤으로 알았던 시문으
로서는 그들이 무슨 뜻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해
가 안 가는 모든 것을 신비로 생각하던 나이였으므로 하나같이 아름답고
극적이고 환상적인 구호와 표어를 입에 올리는 유식한 선배들이 그의 눈에
는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어느새 학생운동을 새롭고 거대한 미지의 세계
로서 그에게 다가왔고, 세상물정을 몰라서 모든 장단에 귀가 솔깃해지던
시문은 호기심에서 민족사상연구회라는 거창한 이름의 서클에 가입했다.
시문이 사학과 신입생 최원석을 만난 것은 민족사상연구회에서였다. 14
명의 회원 가운데 동급생이 그들 두 사람뿐이어서 원석과 시문은 저절로
사이가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3수생이어서 나이가 두 살이나 위였던 원석
을 유별나게 좋아하고는 시문이 지금까지도 가까이 지내게 된 까닭은 원석
이라는 인물이 지닌 조금쯤은 특이한 성격 탓이었다.
선량하고 낙천적인 원석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순진한 인간의 표본
같았다. 그는 여러 면에서, 특히 바람직하고 성실한 면에서, 시문의 동생
시국을 많이 닮았고, 절대로 남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는 남자였으
며, 시간 약속을 하면 가장 먼저 와서 기다리고는 했다. 그는 선이 좋은데
왜 사람들이 악을 선택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내가 누구를 좋아하
는데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고, 한번 순정을
바치면 춘향이처럼 좀처럼 돌아설 줄 몰랐다.
지나치게 순진해서 남들도 다 그렇게 순진하리라고 기대했던 원석은 한
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생각이 직선적이고 단순해서인지 긴박한 갈등의
순간에 현명한 판단을 내릴 만한 판단력이 결여된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
다. 그는 조심성을 갖출 만큼 약지를 못했고, 지극히 단순한 진리에 대해서
쉽게 감동하고는 했다. 그에게는 흥분할 일이 왜 그리도 많은지 시문으로
서는 도대체 왜 그토록 쉽게 감탄하고는 하는지 때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경우도 많았다.
"플로렌스 공화국을 지배한 건 꼰도띠에르(condottiero)가 안지라 은행가
나 상인 같은 부르주아였대." 1학년 2학기로 들어간 언제쯤인가 그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감탄했었는데, 이때는 그가 아직 사회
주의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을 무렵이었다. "13세기 말에는 교황당
부호들이 황제당을 제압했다는 거야."
원석이 역사를 전공하게 된 동기 또한 그의 성격만큼이나 무모할 정도로
단순했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책에 나오는 온갖 권모술수가 얽힌
사건들이 삼국지 라든지 만화책만큼이나 재미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냥 재
미있어서 사학과를 들어왔노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시대의 정치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 하는 따위의 유기적인 분석과 통찰에는 관심
이 없었고, 시대사상과 예술이나 학문 같은 분야의 발전에 대해서도 흥미
를 보이지 않았고, 궁예가 전제군주로서의 지위를 합리화하려고 스스로 미
륵불이라고 칭하고는 머리에 금책을 두르고 방포를 걸치고는 백마를 타고
행차할 때마다 번개와 향화를 받든 동남동녀를 앞세우고 뒤에서는 범패를
부르는 2백여명의 중이 따라오게 했다는 따위의 개별적인 사건이나 사실에
만 열중하고는 했다.
가끔 시문을 붙잡고 원석이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란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이었다.
"프랑크 왕국 메빙조의 킬페릭왕은 귀족 출신이 아닌 프레데군드와 재혼
했는데, 프레데군드는 경쟁자를 제거하는 데 장희빈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
리지 않았어. 그래서 자기 아들이 죽자 전비의 아들 클로도베크를 같은 곳
으로 보내 같은 병으로 죽게 했지. 클로도베크가 병에 걸려 죽지 않고 돌
아오자 결국 칼로 찔러 죽였지만. 동서 부룬힐드를 처치하러 보낸 왕실 신
부가 그냥 돌아오자 손발을 잘라 벌했고, 딸 리군드는 보물창고의 장신구
궤짝 뚜껑으로 목을 눌러 죽이려고 했는데 눈알만 튀어나왔고, 시종들이
달려 들어와 목숨을 건졌데."
원석에게는 르네상스보다 한니발의 코끼리가 훨씬 중요했으며, 이준열사
가 만국 평화 회의석상에서 배를 가르고 창자를 뽑아 던진 것이 아니라 호
텔에서 병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는 '진실을 까발리
는'신문보다 흥미진진한 해석과 일화로 채색하고 덧칠된 역사책이 훨씬 재
미있다고 통감했었다.
하지만 민족사상연구회에 가입할 즈음에는 시문 역시 정신적으로 원석과
비슷한 차원이어서 해일처럼 밀어닥치던 시국의 회오리와 이념 파고에 대
해 무방비 상태였다. 그들은 아무런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
구회 선배들로부터 인생과 정치와 이념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받기 시작했
고, 국민이 통치자들로부터 어떻게 시달려 왔는지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한국적 현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들이 대학시절 살았던 무렵은 대한민국 역사상 정치적으로 가장 암울
했던 나날이어서, 어디를 어떤 눈으로 보나 모든 것이 아마게돈 직전의 혼
돈뿐이었다. 역사의 흐름을 잘못 파악한 별 두 개짜리 장군이 나라를 강탈
해서 야만적인 독재로 전국민을 부패시키고 젊은이들의 의식과 판단력을
혼란에 빠뜨려 버렸기 때문에 당시에는 믿고 섬겨도 좋을 만한 가치관이라
고는 아예 떳떳하게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국민이 아는 진실과 정부가 조
작하는 진실이 마구 뒤엉킨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헷갈리게
만들던 폭력의 전성기였던 절망의 시대, 총부리를 앞세운 군벌의 폭압통치
가 사회적인 온갖 악질로 세상을 부패시키던 무지막지한 시대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오도된 갈등과 고민에 빠져 젊음을 낭비하거나 소모성 삶을
살아야 했고, 의식의 문이 차츰 열리기 시작하는 아이였던 정시문과 최원
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학창생활은 누덕누덕 벽에 붙어 소리치는 대자보
와 시골 개울가에서 비교의 은밀한 종교집회처럼 열리던 MT와 화톳불 가
에서 플라스틱 통에 담긴 들척지근한 막걸리를 마시고 감성에 젖어 귀를
기울이던 이데올로기 설교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학생이 모든 다른 학생에게
가르치는 정치사회학에 도취한 1학년 신입생 시절을 보내면서 시문은 민중
을 위해 타오르는 촛불의 밤과 가두시위에서 부르는 반항의 노래와 엉뚱한
포장지로 표지를 싼 이념서적과 침침한 골방에서 찍어내어 열심히 배포하
는 '불온문서'와 빠른 속도로 친해졌다. 시문의 대학생활은 살기로 빛나는
눈과 진로 화염병생산과 교실까지 들이닥치던 대공 수사요원들과 야간 시
위로 불타오르는 아스팔트와 길바닥에 즐비하게 깔린 개진 돌멩이와 지랄
탄의 폭죽놀이와 방독면 대용품 노릇을 하던 수건과 확성기로 외치는 여학
생의 구호와 걸핏하면 내리던 휴교령과 선동적인 교내 집회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시문과 원석은 분노와 증오를 미덕으로 삼고 대립과 투쟁은 이상으로 섬
겨야 한다는 사상교육에 몽롱하게 취했고, '우리들이 몸담은 현실'을 공부
하기 위해 노동현장과 철거현장을 찾아 견학을 다니며 수많은 핍박받는 사
람들에 대한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젊은 지성인이었던 시문과 원석은 폭력정권의 배후조종을 받아야
했던 멍청한 다수에 의해 좌우되는 꼭두각시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회의와
실망과 배반감을 느꼈다. 그들이 스스로 짓밟아버려서 이미 숨이 넘어가
버린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한다는 날조된 핑계를 내세워 내부의 반발 세
력을 적이라고 탈을 씌워가며 제거하던 군사독재정권이 야만적인 고문을
자행하고 용공조작과 인권유린을 가장 효과적이고도 가장 편리한 통치방법
으로 채택하자 시문과 원석과 다른 '동지'들은 무법정권의 창과 방패 노릇
을 하던 반공 수구세력에 대해서 아주 자연스러운 혐오감을 느꼈다.
원석과 시문은 선동적인 학생집회를 찾아다니며 군중 심리에 휩쓸려 학
업보다 정치가 인생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자신의 앞
날을 위한 공부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투쟁이 그에게는 새로운 국민교
육헌장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젊은 투사가 된 시문과 원석은 최루탄과 화
염병을 양식으로 삼았고, 반독재 반미제 반정부 구호를 인생의 구령으로
알았으며, 항상 피곤하고, 항상 지치고, 항상 불편한 생활과 스산한 분위기
에 젖어, 집으로 가려면 서너 골목 전부터 잠복형사가 없는지 사방을 살펴
야 했고, 가명으로 여인숙에서 밤을 지새며 불심검문이 두려워 귀를 세우
고 문을 조금 열어놓은 채로 바깥 동정을 살피거나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
도록 용수철처럼 긴장되어 살아가는 인생에 익숙해졌다.
주변 사람들의 사상적인 성분을 분석할 겨를도 없이 이데올로기의 회오
리에 실려 투쟁을 계속하느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시문이 학생운동에
삼투된 붉은 흔적을 의식하게 된 것은 2학년 2학기가 되면서부터 였다. 세
월과 경험에 따라 시문 자신의 가치관과 관념에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을 최루탄 연기 속에서 화염병
을 던져대며 사우는 혁명투사로 만들어 놓은 범인이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믿었던 시문은 법을 만들고 국민에게 그들의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자들
이야말로 진짜 무법자였기 때문에 길거리 투사들은 국가의 법을 부정해야
옳다고 판단했다.
법을 어겨 감옥으로 끌려가는 아이들이 엉뚱하게 영웅대접을 받아 정의
의 정의를 제멋대로 저마다 해석하는 개인주의적 풍토를 조성한 것도 역시
군사독재정권이라고 시문은 생각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투쟁하는 무법의
혁명아가 영웅으로 정의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투쟁하는 학생은 치외
법권을 누리는 폭력배로서 새로운 특권층을 형성했으며, 시문은 길거리 투
사도 오랜 투쟁을 거치는 사이에 어느새 독재정권의 폭력적인 생태를 닮아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게 되었다.
국법을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어겨서 쫓기는 자가 영웅이 되어버린 나라
에서는 반정부 집회에 참가하러 가기 위해 열차를 탈취하는 행위가 영웅적
인 거사로 간주되었고, 화염병이 과녁을 빗나가 가두 점표를 태우거나 지
나가는 행인에 화상을 입히는 것쯤은 항쟁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로 환산이 가능했으며,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싸우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요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중에는 분신자
살에 대한 추서를 해가면서까지 어느새 남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기회주의
자도 끼어들기 시작했고, 학생운동을 짝짓기의 예식으로 활용하는 부류도
기생했고, 순수함을 좀먹으려는 검은 세력과 붉은 세력도 조금씩 조금씩
침투해 들어와 살인과 방화와 폭력의 테러리스트 집단을 형성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에게 한꺼번에 쏟아졌던 진부한 이념의 퇴적더미
를 파헤쳐서 버리고 취할 바가 무엇인지 갈피를 조금 가다듬을 만한 능력
이 생긴 다음에 시문은 투사가 아닌 사람은 모조리 경멸하는 각종 학원집
단의 독선에 대해서 갈등을 시작했다. 아무리 비논리적이더라도 정치비판
을 할 줄 알아야만 의식있는 학생으로 인정받는 풍토 또한 시문으로서는
무척 못마땅했으며, 정객의 흉내를 내는 사이비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제한
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 역시 비뚤어진 정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
보와 융통성이 없는 그들의 인민재판식 분위기를 시문은 파쇼정권 못지 않
게 싫어했다. 그는 행동과 사상에서 급진적인 좌익냄새를 어휘의 선택에서
나마 풍기지 않으면 투사로 대우조차 하지 않으려는 운동권의 편견도 마음
에 들지 않았다.
시문은 학생들을 좌경화시킨 것은 좌익 세력의 의식화 교육이 아니라 군
부독재의 탓이라고 믿었다. 군사정권에서 워낙 운동권에 대한 용공조작을
일삼다 보니까 오히려 좌익이라는 낙인이 찍혀야만 학생들은 참된 투사로
각광을 받았고, 그러는 사이에 진짜 좌익학생들의 존재와 위험성가지도 의
식되기에 이르렀으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솔직히 우익의 군부독재보다는
차라리 좌익이 낫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군사독재를 타도한다는 공통된 목
적 때문에 좌경학생들과 어울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폭력적 좌익이 어느덧
관제 용공세력과 뒤섞여 민족주의자와 용공분자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사
이에 파괴는 창조의 정제조건이니까 모든 파괴가 곧 힘이라고 맹신하는 세
력에 흡수되어 군사 독재 대문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알
게 모르게 붉은 힘에 물들었고, 심지어 민족사상연구회에서는 인민혁명이
일어나 세상이 뒤집히면 파쇼세력은 물론이요 내부의 변절자도 그냥 내버
려두지 않으리라는 암시를 공공연히 일삼는 노골적인 좌경동지까지 가입을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시문은 연구회에서 좌익 경향을 보이는 서너 명의 회원을 경계하면서 거
리를 유지했고, 원석에게도 그런 아이들을 조심하라고 몇 차례 경고했지만,
그는 "나쁜 애들일 리가 없어. 나쁜 애들일 리가 없어."라는 소리만 입버릇
처럼 되풀이할 따름이었다.
반독재 투쟁을 벌여오는 2년반 사이에 회원이 47명으로 늘어난 민족사상
연구회를 장악한 붉은세력의 색깔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포
악한 군사독재자가 청와대에서 쫓겨난 다음부터였다. 폭력의 통치자가 물
러가고 1차적인 투쟁의 목표가 사라지자 많은 학원단체가 노선을 잃고 갈
팡질팡하거나 아예 활동을 중단했지만, 민사연은 달랐다. 김상규 회장, 최
선철 부회장, 황건호 총무를 비롯한 연구회 중심세력은 "파쇼정권으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자."던 구호를 오랫동안 내세웠었는데, 파쇼정권이 무너지
고 나서도 변함없이"민족을 해방시키자."면서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우리의 과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시문은 그들이 목표로 삼은 '과업'이란 사회주의 혁명이 분명하다고 판단했
다. 교묘하게 민족과 역사와 소명의식을 내세우던 그들의 학습내용도 조금
씩 왼쪽으로 기울어 갔고,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는 그들의 사상교육은 얼
핏 들으면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된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을 돕자는 내용 같
았지만 자세히 새겨들으면 북한에서처럼 남한에도 사회주의 국가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작이었다.
민사연 소속의 좌익 회원들은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항상 두가지 다른
의미를 한꺼번에 전달하는 절묘한 어법을 구사해서, 그들끼리는 구태여 설
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숨겨진 뜻이 이심전심으로 통했으며, 아직 포섭이
덜 된 회원들은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간접적인 의식화 학습내용
에 대한 반론을 펼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신입생들은 액면 그대로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서서히 세뇌가 되어갔다. 시문은 민
사연 간부들이 얘기할 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조금만 빈틈을 보였다가는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아서 언행을 실수하지 않으려고 늘
전전긍긍했고,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날이 갈수록 피곤하고 힘들어
졌다.
그러다가 3학년 1학기에 '역사의 새로운 인식'이라는 연구발표회가 민사
연 주최로 열렸다. 주최측에서는 학구적인 특별활동은 당국이 사찰대상으
로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학교 당국자나 지도교수를
연구발표회에 아무도 참석하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했다. 지나치게 배타적
인 행사라는 인상을 받으며 시문은 4백여 명의 인문대 학생과 함께 발표회
에 참석해서 황건호 총무의 <한국전쟁과 통일의 과제>라는 '논문'을 경청
했다. 황건호의 발표내용은 한국전쟁에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간 인
민군이 승리를 거두었다면 우리나라가 벌써 통일이 되었을 텐데, 미국이
유엔군으로 참전해서 북진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한민족은 분단국가로 남
았고, 그래서 한반도의 민족적 비극은 미국의 탓이므로 반미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재해서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시문은 다음날 민사연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원석은 함께 탈퇴하자는 시문의 설득을 끝내 듣지 않았다.
원석은 사회주의 이념의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념이란 이론에서 그
치치 않고 실제 실행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는 가능성을 이해하
지 못한 데다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구 내닫기만 하던 자신의 삶과 생
활에 급제동을 걸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독재정권의 붕괴로 인해서
뚜렷하게 해야 할 만한 큰 일이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없어진 새로운 환
경에 처한 원석은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쫓겨난 듯한 기분을 느꼈
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학교와 길거리에서 사라진 다음 그동안 밀렸던 공
부를 하려고, 그동안 떨어진 성적을 올리려고, 도서관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을 보내려고 그는 전혀 신이 나지 않아 활력을 읽었고,
순식간에 삶의 의욕을 통째로 상실한 듯, 삶 자체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꼈
다.
강의실에 앉아 교과서에서 배우는 어떤 가르침도 전투경찰과의 시가전만
큼은 신이 나지 않는다던 원석은 인생 전반에 걸쳐서 누구에게인가 또 자
신에게 속았다는 회의를 느꼈고, 일상에 대한 권태감이 빠른 속도로 증폭
되었으며, 일상적인 삶으로의 회귀가 쉽지 않았다.
"세상이라는 거 정말 시시해." 그는 어느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말
고 시문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 "인생도 시시하고 내가 할 일은 이것이 아
닌데, 뭔가 이것보다 큰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하
고 싶은 일이 눈에 띄지를 않아. 신나는 일을 하면서 신나게 살고 싶은데,
산다는 게 생각처럼 신나지를 않는다구."
원석은 너무 일찍 너무 큰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서 너무 일찍 늙어버린
과속 인생인 셈이었다. 겨우 세상을 깨닫기 시작할 젊은 나이에 워낙 크고
시끄러운 전투적인 세상을 겪었던 그는 정상적인 인간 사회를 미처 이해하
기 전에 역사책에서처럼 극적으로 과장된 자신의 크기를 현실에서 잘못 파
악했고, 그래서 가랑이가 찢어지고 파괴된 딱한 인간이었다. 군사 독재의
첨병인 전투경찰과 길거리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는 최루탄 가스 속에
서 군중을 이루어 달리던 집단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했으며, 나에
게 언제 이런 엄청난 힘이 있었는지 한편으로는 놀라면서도 흐뭇해했으리
라고 시문은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주변의 사물을 파악하는 시각과 의식이 커지면 커질
수록 정비례해서 세상 역시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자신의 존
재는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법이었으니, 혼란과 소음 속에서 과장되었던 자
신의 존재가 알고 보니 사실은 어느 정도로 왜소한지를 깨닫고 원석은 얼
마나 실망했을까? 그는 아마도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가 월급쟁이
로 나이 50을 넘기면서 느낄지도 모르는 좌절감을, 첫 성교육 실습을 위해
노련한 창녀를 찾아가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번데기처럼 오그라든 자신의
음경을 내려다보는 사춘기 소년의 절망감을 느꼈으리라.
원석은 그의 조루한 삶이 회춘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큰일'을 할 기회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민사연 주변을 떠돌았다. 다른 운동권 아이들처
럼 나중에 정치계로 진출할 야망도 없었고, 단체를 조직해서 이끌어나갈
머리와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그는 어떤 지도자도 되지 못했고, 끝내 쫓아
다니기만 하면서 '구경꾼 참여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
기에는 권모술수를 구사할 능력이 처음부터 너무나 모자랐던 그에게는 인
생의 단역배우 역할밖에는 주어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는 민사연 간부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시피 하면서 사이비 사
회주의자 노릇을 계속했고, 3학년 2학기에는 결국 지명수배를 받아 한 달
동안이나 피신생활을 하는 몸이 되었다. 민사연에 북한의 공작금이 유입되
었다는 협의가 당국에 포착된데 이어 제3대 회장 최선철과 간부진이 밀입
북 사건으로 잡혀 들어가는 바람에 원석도 휩쓸렸던 것이다.
코끝과 발가락이 유난히도 시려웠던 그해 겨울 한 달 동안 도피 중이던
원석의 은신처를 겨우 알아내어 찾아간 시문은 그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25시>의 주인공 요한 모리츠를 연상했다. 원석은 불법 주차한 인생의 모
습이었다. 한번 주차를 잘못해서 평생을 낭비하는 인생, 그것이 원서의 삶
이었다. 별로 지은 죄도 없는데 사상범이 되어버린 친구의 불쌍하고도 억
울한 모습을 보다 못해 시문은 원석에게 이제는 전에 처럼 고문을 통한 용
공조작이 심하지 않으니까 사실대로 얘기하면 큰 죄를 덮어쓰지는 않으리
라면서 자수를 권했다.
앙상하게 야원 얼굴에 행려병자처럼 수염까지 더럽게 자란 모습으로 시
문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원석은 그날로 경찰을 찾아가 자수하라는 시문의
권고를 무시하고,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며칠 휴식을 취하
며 '영양보충'부터 해야 되겠다고 집에 숨어서 이틀째 지내다가 어디에서
정보를 알아내어 들이닥쳤는지 몰라도 한밤중에 급습한 형사들에게 체포되
어 결국 제 발로 찾아가 당국에 자수했다는 정상참작조차 받지 못할 처지
가 되었다.
역시 불법주차한 인생이 원석의 주제곡이었다.
시문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경찰서로 찾아가 냉큼
자수를 해버렸더라면 면했을지도 모르는 고초를 원석은 '휴식과 영양보충'
때문에 겪어야 했는데, 아픔을 되새김질해서 곱절로 불려놓기가 싫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서 그토록 크나큰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 창피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수사관들에게 심문 과정에서 어떤 일
을 당했는지 끝내 자세한 얘기를 밝히지 않았다. 어쨌든 길거리에서처럼
동지들과 떼를 짓지 못하고 혼자 골방에 갇혀서 당한 고통은 견디기 어려
웠던 모양이었고, 6개월에 걸친 재판과 구치소 생활은 인생이 역사책만큼
흥미진진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새로운 진실을 그에게 가르쳤다.
재판을 받은 결과 민족사상연구회의 3대 회장 최선철은 12년형을 받았
고, 2대 회장 김상규와 총무 황건호는 각각 7년과 4년, 그리고 다른 8명의
민사연 회원은 2년에서 3년까지 실형을 받았지만 원석은 적극적인 이적행
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원석은 이데올로
기로 분단된 국가에서 좌익으로 몰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심각한 상
황인지를 깨달았고, 왜 남들이 이데올로기를 놓고 그렇게 야단인지도 이해
하기에 이르렀고, 어느새 세상과 자신을 보는 눈도 크게 달라졌다.
자유의 몸이 된 다음 어느 날 저녁 처음 시문과 청진동 소줏집에서 마주
앉았을 때 그는 다 쓰고 버린 콘돔처럼 쭈그러진 모습으로 시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인생과 사회라는 것은 몰려다니며 악악 소리만 지르면 다 끝나는 게 아
닌 모양이더라구."
이렇게 한 차례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가치관이 심하게 흔들
리는 혼란 속에서 시문보다 1년 늦게 대학을 졸업하고는 군에 입대해서 또
다른 집단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와는 달리 미리 계급이 국가에 의해서 지
정되는 군대사회에서 그는 졸병이라는 자신의 왜소한 존재를 재확인했고,
2년 반동안 더 위축되어 삶에 대한 자신감이 쇠진한 다음에 군복무를 겨우
마쳤다.
제대를 한 다음 어느날 저녁 시문과 다시 청진동 소줏집에서 마주 앉았
을 때 그는 온 마을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한 15살 계집아이처럼 주눅이 들
린 모습으로 시문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군부가 권력을 잡으면 국민을 제멋대로 못살게 구는 모양이야.
군데에선 모든 인간이 우습게 보이거든."
제대 후에는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한국양회에 겨우 입사했는데, 여기에
서도 원석은 역시 거대한 조직의 미미한 존재로서 기계적인 사고활동만 하
도록 요구를 받자 상사와의 불화로 사표를 내고 나와버렸다.
첫 직장을 그만두던 바로 그날 저녁 시문과 또다시 청진동 소줏집에서
마주 앉았을 때 그는 풀 죽은 모습으로 시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구. 하고 싶은 일은 아무도 안시켜주고
하기 싫은 일만 골라서 시킨다니까."
그는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못했다. 몇 차례 선을 보다가 만난 부여 출신
의 간호사와 겨우 결혼했지만 원석은 여자의 '난잡한 과거'를 문제삼아 4개
월 만에 이혼했으며, "마땅한 여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면서 지금까지 혼
자 살았다. 아마도 그는 여자에게서도 너무나 많은 것을 바랐던 눈치였다.
재혼해서 같이 살 마땅한 여자도 눈에 띄지 않고 혼자 살기에 돈벌이가
넉넉할 만큼 마땅한 직장도 나서지를 않아 고향 수원으로 내려간 그는 아
버지의 안경점에서 심부름이나 하며 불안정한 허송세월을 몇 년쯤 거치고
나서 나이 30을 훨씬 넘긴 다음에야 "모두들 정신 차리고 세상을 똑똑히
보게 하려고 사람들에게 눈을 한 켤레씩 더 만들어 주겠다."면서 다시 서
울로 올라와 결국 저렇게 길 건너에다 안경점을 차려놓고 구석에 들어가
앉아서 길거리를 내다보며 세월을 보냈다.
그나마 원석이 안경점이라도 차리고 들어가 앉을 수가 있었던 까닭은 수
원에서 천리안경점을 하던 아버지 덕택이었다. 어려서부터 원석은 아버지
가게에서 안경알을 가지고 나와 이웃 아이들과 겨울 양지짝에 모여 쪼그리
고 앉아서 태양의 초점을 맞춰 종이를 태우며 놀았고, 풀잎과 꽃의 암수술
과 잠자리 눈과 깎아 놓은 발톱과 신문의 글씨를 확대시켜 보는 장난을 구
슬치기만큼이나 좋아했노라고 그랬었다. 유리알로 작은 물건을 크게 확대
해서 구경하기를 즐기던 원석은 확대된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려던 노
력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틈틈이 아버지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가
지고 안경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여 결국 만리안경점이라는 자신의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오늘 오후에 시문이 이렇게 원석을 찾아온 까닭은 자신이 낙타 얼굴의
수사관에게 쫓겨야 하는 이유라 혹시 운동권 시절에 민족사상연구회에서
좌익 성향이 농후한 학생들과 가까이 지냈던 전력 때문이 아닌지를 알아보
기 위해서였다. 만일 그렇다면 원석도 분명히 쫓기는 몸이어야 했다.
안경점에 저렇게 마음 놓고 앉아서 유리창 바깥 세상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원석은 조금도 위기에 처한 눈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원석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곧 밝혀지겠지만, 만일 정치적인 사
상 문제로 쫓기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오늘 도대체 어떤 승부를 어디에서
어떻게 치러야 할지는 모르겠어도, 최교수의 말처럼 생명까지 위협을 당할
까닭이 없다고 시문은 믿고 싶었다.
시문은 낙타얼굴의 수사관이 어딘가 근처에 숨어서 내가 나타나기를 기
다리며 감시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안이 너무 훤히 잘 들여다보이는 안경점
으로 친구를 만나러 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대신 길 건너 편리한 위치를
찾아 미라보 다리의 창가에 앉아서 박군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가게 일
을 돕는 박군이 돌아오기만 하면 안경점으로 전화를 걸어 원석을 불러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원석과 교대를 해줘야 할 박군은 도대체 어디로
심부름을 갔는지 나타날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