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령의 여름나기
축구는 축구고 산행은 산행이다.
비탈길을 한참을 오르고 모퉁이 한번 돌아서는데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 서있다. 소똥령이 시작되는 적적한 길이
다. 소똥령의 명물인 출렁다리에서 몇 번을 일렁이면 계
곡물이 우렁찬 협곡으로 들어 선다. 밤새 비가 내려 오지
의 나무도, 흙도, 하늘도 모두 상큼하다. 숲 속에서 울어
주는 새소리는 더욱 청아하다.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소똥령은 별볼일 없던 강원도
오지였다. 산악인들이 찾아오고 캠핑족이 여름을 나더니
이젠 전국적인 트레일 명소가 되었다. 가파른 산길도 아
니고 험준한 암릉도 아닌터리 산행초보자도 거뜬히 걸을
수 있는 산이다.
요즘은 이런 산이 참 좋다.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부족하
지만 산의 속살이 여기 있다. 12시간을 종주하던 설악의
공룡은 다시 가라하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나이
탓이거니 하면서도 약아빠진 자신을 숨길 수가 없다.
IMF여, 영원히 굿바이!
강원 원주시 단구로 406 청솔 3차 아파트 301동 506호
한 필 수 010 2440 8259
잘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게된 동기는 우연이었습니다. 국도변 유원지에
위치한 제 소유의 토지가 화근이었습니다. 건설업자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
다. 호텔을 짓자는 그럴듯한 제안에 1년여의 공사 끝에 1,400평의 대지에 예순
네 개의 객실이 있고 양식당과 한식당을 갖춘 6층 건물의 호텔이 완성됐습니
다. 준공검사와 함께 직장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운이 따랐는지 별반 경험도
없는데 사업은 번창일로였습니다. 사업이 별거냐 싶은 생각에 표정 관리까지
신경을 써야했습니다. 그렇게 2년 남짓 호황을 누리는가 싶은데 1997년 11월
에 IMF가 터집니다. 써비스업이 먼저 타격을 받더군요. 모든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는 시대가 됩니다. 모임도 줄이고, 여행도 없애고, 칼퇴근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IMF 그때는 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열여섯 명의 직원들 봉급을 위해 사업장인 6층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대출이자가 치솟더니 나중에는
24%까지 이자를 물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2년여를 버티다 1999년
12월에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사업장이던 6층 건물과 대지 1,400평이 경매
로 날아가고 아파트 역시 경매처분되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200만원 보증금에
한 달 4만 원을 내는 사글셋방인 원룸을 얻어 이사를 했습니다. 문을 열면 화장
실에 안방과 주방이 같이 있는 쪽방 말입니다. 한 사람이 누우면 머리와 발이
거의 닫는 옹색한 구조의 방입니다.
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한마디씩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에게 이 무슨 변고란 말이냐, 대낮부터 술타령은 뭐고...
다 세월 탓이다. 동생 잘못 없다."
누이들의 위로였습니다. 그리고는 화물자동차 영업을 하라며 네 명의 누이가
모은 2천팔백만 원을 내려놓습니다.
몇 푼이라도 벌어 보자고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신용불량자를 쓰겠다는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하루 일당 3만5천원을 받
는 막일을 시작했습니다. 반 년이 지나자 무슨 일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
감이 생겼습니다. 누이들이 마련해 준 2천팔백만 원으로 영업용 콜밴을 샀
습니다. 신용불량자인 까닭에 막내누이 명의로 차량을 구입하고 저는 대리
운전자의 자격으로 화물영업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5만 원도 벌고 10만
원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순탄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화물 없이 승객을 태웠다는 이유로 단속이 되어
50만 원의 벌금도 물었습니다. 그럴즈음 파산 및 면책을 신청하는 제도가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9개월을 기다린 끝에 법원으로부터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10년
가까이 날아오던 독촉장도 사라졌고 누이 명의의 차량도 제 명의로 바꿀 수
있게 됐으며 통장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 역시 사회의 일원이자 떳떳한
경제인의 지위를 회복한 것입니다. 지금은 콜밴 영업을 접고 슈퍼마켓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습니다.
IMF를 격은 지 13년 만인 2010년 4월에 작은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도 아파트 한 채를 더 샀습니다. 추석을 앞두고는 사촌들과 벌초를
하는데 모두 노란색 번호판의 영업용 차량 덕분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에도 국민연금보험료는 미루지 않고 냈습니다. 국민연금
92만 원이 결실로 돌아옵니다. 올해부터는 아내도 68만 원의 연금을 받지요.
아파트 월세 62만 원도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옵니다. 기초연금도 20 여만
원을 받고 있으니 설령 지금 하고 있는 배달 일을 그만둔다 하더라도 한 달
수입이 이럭저럭 250 여만 원입니다. 풍족할 수는 없지만 이만하면 두 내외
노후 생활비로 살만 할 것같습니다.
지금의 배달 일은 3년 더, 일흔네 살까지 계속할 작정입니다. 일 할 수있는
건강한 몸을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열여섯 명의
종업원이 벌어주는 경제적 가치보다 근로소득에서 얻어지는 땀의 대가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20킬로그램짜리 쌀 포대를 어깨에 메고 5층 계단을 돌아서는데 열린 창문
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시원합니다. 곧 치악산에도 단풍이 들겠지요.
IMF도 한낱 추억입니다. 전 재산이 경매에 날아가던 시절도 삶의 과정이
었습니다.
제주 열흘 살기
용머리해안트레킹 - 서귀포휴양림 - 정방폭포 - 허니문하우스협곡 - 천지연폭포
- 중문주상절리 - 성읍민속촌 - 섭지코지 - 산굼부리 - 비자림숲 - 만장굴 -
- 하루휴식 - 마라도 - 송악산트레킹 - 법화사지 - 절골휴양림 - 서귀포매일올레시장
- 제주공항
여행이란 늘 설렘을 동반한다.
백화점에서 커플 운동화에 커플 티셔츠를 차려입고 원주공항의 게이트를 빠져 나온다. 나이가 들었다고 낭만의 유혹까지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억지로라도 로맨티스트가 되고 싶다.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아서 삼다도여, 대문과 도둑과 거지가 없어서 여기는 제주도다.
제주공항에는 먼저 도착한 큰처남 부부와 동서 부부들이 반겨준다.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에 10명의 가족들이 몸을 실었다. 키 큰 야자수 그늘은 늘 이국적이다. 서귀포의
용머리해안이다. 사계바다에서 해물전골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길죽한 용기에 문어와 낙지, 갈치
전복, 꽃게, 오징어가 익어가고 1미터나 되는 은갈치 통구이가 나온다. 광어회와 갈치회가
싱싱하다. 1인당 6만원인 한라산코스로 한라산소주와 재주막걸리를 마셨는데 송악산과 산방산 사이의 해변길을 걷는다.
하원로 지인의 귤농장은 지인의 것으로 일행이 열흘동안 머무를 숙소다.
뒤란의 들창을 열면 한라산이고 거실을 내려다보면 강정 앞바다가 지척이다.
오늘 식사 당번인 나는
된장찌개를 맛나게 끓였다. 고들빼기김치에 파김치, 꽃게장, 멸치조림 등등 친지들이 마련한 반찬이 풍성하다.
둘쨋날의 일정은 서귀포휴양림이다. 서어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아름드리 삼나무숲이다. 마지막 편백나무 그늘은
자동차로 돌 수 있는 코스다. 군데군데 들마루가 있는데 하룻밤을 텐트를 치고 묵을 수도 있는데 하루 사용료는
9천 원이란다.정방폭포에서는 해녀가 갓 잡아올린 회 두 접시를 놓고 한라산 소주를 마셨다.허니문하우스까지
트레킹을 마치고 삼무뚝배기의 점심이다. 천지연폭포와 중문주상절리를 내려다 본다.
셋쨋날은 성음민속촌을 시작으로 섭지코지, 산굼부리 억새언덕을 돌아 토종닭샤브샤브로 점심을 먹는다.
비자림숲을 거쳐 만장굴을 돌아본다. 돈사돈 흙돼지의 저녁만찬이다. 커다란 솣뚜껑에 돼지고기가 익어가는데
미나리와 고사리가 더 맛있다.
하루는 온전히 숙소에서 멍 때리며 지냈다.
다음날은 국토 남단의 마라도행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가을꽃이 만발한 마라도에서 그 유명한 해물짜장면을 먹고 용머리해안이 절경인 송악산둘레길의 트레킹이다.
이렛날에는 애월해안산책로에서의 망중한을 즐겼다.
점심식사는 식성에 맞게 주문을 했다.
누구는 고등어정식이고 전복죽이고, 제주고사리비빔밥이고, 회덧밥이다.
여드렛날이다. 법화사를 만나고 절골휴양림에서 피톤치드 향을 목젖 깊숙히 마시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냈다.
아흐렛날에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의 제주쇼핑이다
옥돔과 하우스밀감을 샀다.
제주에서의 마지막밤을 얘기꽃으로 아쉬운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는데 귀뚜라미와 여치 소리가 잠을 청하라고 칭얼거린다.
제주에도 가을이 밀려들고 있는가보다.
아, 제주에서의 마지막 가을밤이구나. 나도 가을 타는 남자이고 싶다.
2022, 시월 4일 한 필 수
첫댓글 고문님 언제 저리
찍으셨데요~ㅎ
후기글에 사진
감사합니다~^^
역시 고문님의 글 과 사진은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