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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방 찬송가 582장 (통 261)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에 대해 여러분 생각을 알고싶어서
뒤나미스 추천 0 조회 1,100 11.06.29 15:02 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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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30 06:27

    첫댓글 저는 오래전 부터 문영탁 씨가 지은 찬송가 해설집을 가지고 있습니다.아마도 찬송가(통일) 테입이 제작될 때 부록으로 기획 된 것 같습니다만 내용은 아주 튼실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해설집에 의하면 위 찬송가는 대한 기독교 장로회 제 50회 총회가 열렸을 때 그 총회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되어 총회기간 동안 불리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신학대학장이던 김재준 목사가 작시했고 처음에는 나운영의 곡으로 청년 찬송가에 수록 되었다가 개편찬송가에 실으면서 숙명여대에 재직하고 있던 이동훈곡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 11.06.30 06:27

    (이 해설집에 의하면) "개인이 국가에 한 역사적 사명을 갖기 위해, 국가에 대한 교회적 사명을 표현할 찬송을 지어 애국가를 대신하여 부를 수 있도록 의되된"곡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의도였다면 가사의 내용이 장엄함이 느껴질 정도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예배 찬송으로?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의아심을 갖게 되겠지요.

  • 11.06.30 07:10

    그런데 찬송가의 정의를 "하나님을 찬양한다" 에 너무 좁게 한정하면 지금 찬송가도 부를 게 얼마 안됩니다.보세요. 간단한 예로 송영인 2장 "영광을 돌리세 영광을 돌리세" 3장도 "찬송과 영광 돌려 보내세" 아닙니까?4장에 가서야 "영광받으옵소서"입니다.<하긴, 3장과 4장은 똑같은 영문시를 그렇게 말끝이 다르게 번역해 놓았네요>
    그러므로 저는 찬송가나 찬양의 시에서 '그 안에 흐르고 있는 시인의 정신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면서 집회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곡을 선곡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11.06.30 06:33

    성결교회에서 지휘자로 계신 뒤나미스님을 축복합니다. 부디 지금 처럼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지휘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감사합니다.

  • 작성자 11.06.30 07:46

    답글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답글중에 그안에 흐르고 있는 시인의 정신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를 보아야한 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작사자를 만나본적도 없고 잘알지도 못한 분입니다. 찬송가 해설서를 읽어 보긴 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가사만 보면 기독교인이 적은것인지 아니면 타종교인이 적은것인지 일반인이 적은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느낌이 저는 듭니다. 일반인도 이렇게 충분히 적을수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음악교과서에 수록이 되었다면 전혀 문제가 안되겠지요.십수년전에 합동측교단총회에서 예배시간에 이곡을 부르지 않기로 결정한걸로 보아도 논란의 소지가 충분히 있는것은 아니겠는지요.

  • 11.06.30 09:44

    기독교 계통의 대학 총장이 교단 총회에서 부를 곡을 지었다는 것은 사실이고요. -1,2,3절에 은유적인 표현으로 된 싯귀(보조 개념) 속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가 표현되었다고 저는 보여집니다.1절에서 '빛'이라는 단어 2절에서 '하늘 씨앗'이라는 단어 3절에서 '새하늘 새 땅'이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각 교단에서 이 곡을 부르지 않기로 한 것도 그 교단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라고 보여집니다. 역시 개인적으로 부르고 안부르는것도 개인의 자유일 것입니다. 사실 찬송가 중에 한 번도 안 부르는 곡도 많습니다.

  • 작성자 11.06.30 13:56

    논란이 있거나 의문이 생길때 개인적으로 안부르면 되겠지만 담임목사님께서 주보에 올려놓으면 부르지 않을수 없지요.
    저는 지휘자라 회중찬송할때 앞에 마이크 앞에 나와 불러야 한답니다.
    일단. 예배찬송 선곡은 담임목사님께서 하시기에 제가 이곡에 대해 담임목사님께 질의를 해 놓은 상태입니다.

  • 11.06.30 18:26

    찬송가 선곡을 목사님이 하는 것은 찬송이 설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설교문 작성자이며 설교자이기 때문이지요.독창자로서 의견을 내는 것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목사님이 이런 내용을 모를까요?

  • 11.07.04 14:39

    작시자:김재준박사(1901~?) 장로교 목사로 신학자, 교육가. 1966년에 쓴 선교찬송으로 많이 애창되는 찬송. 찬송원시는 2절뿐이다. 1967년 개편찬송가 편찬때 찬송가 위원회의 요청으로 당시 위원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동훈(1922~1974)교수가 작곡했다.-자료 "김경선 저 찬송가 해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1.06.30 09:50

    아,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찬송가를 발행하는 분들도 각 교단 사람들이 모여 구성되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각 교단에서 베정 받은 수 만큼 곡을 내고 심의를 하였을 것입다. 만일 이곡이 심의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더라도 타 교단에서 낸 곡을 그렇게 내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아니면 이쪽에서 충분히 납득할만하게 소명을 하였거나 그랬을 것입니다.

  • 11.06.30 09:57

    외람된 말 한마디 예장합동측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이 아닌 목회자들 자의 적인 해석이 강한곳은 없으니까요. 빛되신 예수님과 빛의 나라에 대한 갈망을 알 수 있겠습니까? ###

  • 11.06.30 11:56

    전에 이 곡을 금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이유가 가사 중에 '계명성'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계명성이 루시퍼라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이사야서에 계명성의 몰락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의 계명성은 영어로 루시퍼 이며, 샛별(금성)의 이름임과 동시에 악마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사는 루시퍼를 찬양하는 노래가 되겠지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가 스스로 계명성이라고 하였습니다. (22장)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논란이 있고 고민이 생기는 곡은 부르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 11.06.30 12:14

    계명성=루시퍼,타락한 바벨론 왕으로 보는교단에서는 이 찬송을 하기에 이 단어가 거부감이 있을터이지요.작사자만이 아는것이지만,저는 그냥 새벽에 볼 수 있는 별 '샛별'로 보고 싶습니다.신학 총장께서 아무려면 루시퍼가 밝아 온다고 했을까요?

  • 11.06.30 12:22

    교단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나요? 이사야에서는 분명히 루시퍼 스스로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고 했다고 나와있는데요...
    저자가 여럿인 성경의 성격상 각 저자의 관점에 따른 차이일까요?

  • 11.06.30 13:01

    어느 성경을 보셨는지요? 이사야서 그 부분은 문맥상 차라리 '타락한 바벨론 왕'으로 본다면 그런대로 이해가 됩니다만, 제가 대조해 본 성경(킹제임즈 성경은 지금 대조 불가하나)어디에도 본문에 루시퍼라고 나 온 성경은 없었습니다만~어떠하든지 제 견해는 위 시에서 저자가 교단에서 부르려고 작사한 노래에 계명성을 통해 루시펴를 심어주려고 했을까 하는 견지에서, 계명성=샛별(morning star -NIV)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11.06.30 13:14

    계명성을 루시퍼라고 한 것은 KJV 애서만 나옵니다. 공동번역이나 새번역 성경에서는 '구름 위에 올라가서 가장 높으신 분과 같아지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번역되어있네요. 이런 문맥상으로 '타락한 천사장'으로 볼 수도 있고 말씀하신대로 '타락한 바벨론 왕'으로 볼 수도 있는 등 다른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 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지적이 있는 부분이라네요...

  • 11.06.30 15:33

    계명성은 히브리어 '헤렐'로 '새벽별, 금성'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382년 제롬이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할 때 루시퍼라 번역하여 바벨론 왕조의 의미로 번역하였고 14세기 단테가 신곡에서 루시퍼를 타락한 천사장이라 묘사하였으며 17세기 존 밀턴이 신락원에서도 그런 식으로 적어서 오늘날 우리가 착각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찬송가 곡의 계명성은 타락한 천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 가장 먼저 뜨는 별 즉 금성 또는 새벽별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같습니다

  • 11.06.30 15:35

    루시퍼가 타락한 천사장이라는 내용은 성격정인 것이 아니라 단테의 '신곡'이라는 소설의 내용일 뿐입니다.

  • 11.06.30 17:10

    교회음악개론이나 성가대운영론 등 비슷한 제목을 가진, 찬송가를 다루는 책에서 저자에 따라서는 문제로 언급하는 노래이기에, 뒤나미스 님의 발제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견입니다만 교회음악으로 쓰는데 문제는 없지만 예배음악으로는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 11.06.30 23:14

    27년 전쯤 미션스쿨(여자고등학교)에서 제가 재학중일 당시 이곡을 "계명성"이라는 가사 때문에 안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공식적으로 학교에서 부르지 마라고 했던건 아닌것 같고(정확하지 않음), 이사람 저사람을 통해 부르면 안된다고 들었던것 같네요.. 그런 이유로 안불렀던건 확실하구요. 예전 일이 되었네요

  • 11.07.01 12:56

    찬송가 '십자가로 가까이' 2절에 보면 "거기 있는 새벽별 내게 비추시네"란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 참 아리송합니다.

  • 작성자 11.07.18 11:39

    몇칠동안 어둔밤 마음에 잠겨(찬송가 582-통261)라는 곡을 가사만 적어서 일반인(교회에 다니지 않는)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가사만 보여준 분들 하나같이 역사노래냐고 묻는분이거나 찬송가인것 같다는 분은 한분도 없었고 기독교적인 색채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한번 질문해보세요. 찬송가라 하지말고 가사만 적어서 보여줄때 어떤 대답이 나오는지. 답글중에 작사자가 목사님이라고 적어주신분 계시는데요 저도 작사자는 목사님이란걸 알고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것은 목사님이 작사했다고 무조건찬송가라고 말할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 11.07.18 13:30

    글쎄요.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지는 이해됩니다만, '교회 다니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부를 때' 찬송가가 찬송가가 되는 것이겠지요.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알아 볼 수 있어야 찬송가가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찬송가 안에는 교회에서 에배를 비롯한 여러 행사에 부를 수있는 곡을 폭 넓게 편집하여 실었다고 봅니다.. 찬송가 앞 부분의 분류를 보면 알 수 있지요.

  • 작성자 11.07.18 16:00

    좋습니다.그런데 어제 주일날 우리 찬양대원들에게 이 곡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우리찬양대원들도 가사만 봐서는 전혀 찬송가같지는 않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저희 찬양대원중 여러 장로님들도 동일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애국가와 같은 느낌이다고 말씀하는 분도 계셨습니다.어떤 교회에서 이 곡을 부르는것도 자유겠죠. 저혼자만의 편협된 생각이라면 대단히 미안한 발제이지만 제가 만난 지휘자들도 이러한 생각에 동의를 대다수 하는 일이기에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 11.07.18 16:34

    좋은 말씀 잘 보았습니다. 시의 표현 방법에는 아시다싶이 은유적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그 찬송가 가사 속에서 은유된 그리스도적인 몇 단어를 위에 열거한 바도 있습니다.또한 성경에도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자도 나의 편이라는 취지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찬송가가 불교 찬송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님의 최근 몇 주 동안의 찬양 목록이 궁금해 집니다.사실 님과 같은 입장에서 찬양곡 선곡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 작성자 11.07.18 23:06

    감사합니다. 제가 섬기던 찬양대찬양곡 몇주동안에 찬양곡을 적어보겠습니다. 모출판사의 앙코르예배성가 9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P88.주님의 영광을 우리는 보았네.P142 내영혼주찬양하라p26.그사랑내생명 p35보좌위의 어린양께.p46 주영광위해.p56 나주앞에 무릎꿇고.p.p97은혜로 구원받은 영혼. p133주님을 보라 - P105 내아버지집 등이 최근에 찬양한 곡들입니다.

  • 11.07.19 03:45

    네 ㅡ감사합니다.성가집을 사용하시니 계획 세우기 용이하고. 성가 전문 출판사이니 성가 내용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제가 텍스트 전부를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님께서 올려 주신 찬양곡 제목만을 보고(좀 무리가 있겠지만) 분류해 보겠습니다. p88=간증, p142=권면,p26간증? p46=결신,p56=기도(간구)p97=감사,p133=권면, p105=천국에 대한 소망?

  • 11.07.19 03:34

    뒤나미스 님 제 의도를 아시겠습니까? 적어 주신 찬양목록 중에 어느 것 하나 "주님을 찬양합니다."의 내용에 꼭 맞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님께서 주님을 찬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제 주장은다만 주님을 찬송한다는 것의 외연을 넓혀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 11.07.19 03:47

    그러므로 문제의 '어둔 밤 마음에 잠겨 '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돌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다시 돌아가서 찬송가는 교회내에서 이루어지는 여러가지 내용의 집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기에 알맞은 곡을 선곡하여 합본 한 것이지 -"주님을 찬송합니다.","주님께 영광 돌립니다."라는 가사의 곡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제 요쳥에 답하여 성의 있게 찬양 목록을 올려 주시고 토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주님만을 찬양하겠다는 님의 열정에는 존경을 표합니다.

  • 작성자 11.07.19 09:57

    안동은님의 귀한 글 참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토론해주심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섬기시는 교회와 찬양대에 큰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찬송가와 찬양곡집에 나오는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 찬양대원들과도 고민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은 계속될것입니다. 저도 모르는것이 너무나 많기에 열심히 배워가며 찬양대를 잘섬기겠습니다. 귀한 글들 감사하며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13.05.01 02:37

    꽤 오래전에 토론이 있었군요... 저는 이 찬송을 부르지 못하는 교회에 다니다가 이 찬송을 자주 부를 수 있는 교회로 옮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이 찬송 작곡자을 하신 이동훈 선생님의 둘째 아드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부르신 이 찬양을 제 휴대폰의 알람 소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성경시간에 배운 곡인데, 국가기념일만 되면 절로 흘러나오더군요. 성탄절에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 흘러나오듯... 참고로 저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곡에 대한 애착이... 약간이지만 있습니다. 이 곡을 부르다가 눈물까지 흘려본 정도로...

  • 13.05.01 02:45

    얼마전 저희교회 담임목사님의 어머님께서 <네가 주를 사랑하나>라는 제목으로 쓰신 책을 읽었습니다. 이중 일부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김재준 목사가 기독교의 대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며 국가에 대한 교회의 선지자적 사명을 부각시키고 교회에서 애국가 대신 부를 찬송을 만들기 위해 작시했다고 한다. (중략) 남편은 이 가사를 보면서 외롭지만 믿음을 지키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의의 길을 택했던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가 맞은 해방은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새로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는 그 감격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이 가사에 꼭 맞는 가락을 찾는 일에 남편은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 13.05.01 03:12

    물론... 님의 지적대로 찬송 같지 않은 면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이 곡이 작사 작곡된 취지가 한국 기독교인들의 역사의식 고취라는 점을 돌이켜 볼 때, 한국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역사의식이 담긴 찬양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현재 찬송가에 여러 곡이 반영되었습니다만, 그런 곡들을 자주 부른다면 이 곡 부를 일은 절로 없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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