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있고 영웅은 그 마왕을 필연적으로 쓰러뜨린다. 그것이 법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
왕 사망원인 중 영웅에 의한 사망율이 가장 높은 걸로 조사되고 있다. 어째서 과연 언제부
터 일까...마왕이 영웅들에게 쓰러져가고 영웅이 죽고 다시 마왕이 부활하고 또 다른 영웅의
탄생으로 마왕은 다시 죽는다는 순환이 이루어진 것은? 마왕은 강했고 그 만큼 자존심 또한
남달랐다. 하지만 지난 수백 수천년간 강력한 영웅들의 파티에 쓰러져 갔던 그들은 그들이
계속 봉인당하고 말았던 이유를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인간들은 여럿이고 마왕은 하나였던 것이다. 마왕의 부하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마왕
의 의지가 발현되어 만들어진 개체로 마왕의 일부나 다름없는 것. 결국 역대 마왕들은 일대
다수의 싸움으로 계속해서 영웅들과의 싸움에서 패한 것이다. 그리고 마왕들은 태고의 마왕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마왕이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대마왕 제네온의 의지 아래 모인다.
마왕들의 역사이래 최초로 등장한 마왕연합군, 그 이름도 찬란한 '어둠의 카카오군단'이 그
것이였다.
테네기오스 대륙에 있어서 그것은 이변이였다. 조직적인 마족들의 공격은 그렇다고 해도 같
은 전투 지역에 두명 이상의 마왕이 나타나는 일이 심상치 않게 벌어지고 있었지 때문이다.
그리고 테네기오스 대륙 일곱개 왕국의 왕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로
한다. 일곱왕들은 그들의 국력만으로는 이 '어둠의 카카오 군단'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 각
지에 은거한 영웅들을 모으기로 한다. 그리고 테네기오스력 칠백팔십삼년,붉은 달의 팔월에
'어둠의 카카오 군단'과 훗날, 사람들이 '구원의 영웅군'이라 이름붙여진 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십삼일 밤낮으로 그치지 않던 비명과 ??구치는 핏방울들의 전장은 영
웅군의 수장 '아크데니우스'의 성검 '가얀'이 대마왕 '제네온' 의 이마에 박힘으로서 그 끝을 맺었다.
-Lichard.H.Lecan's "End war"
검게 물든 하늘의, 보라빛깔 구름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흉칙한 몰골의 괴수들이 들끓고 사악한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는 이곳. 곧 잠이 깨어날 것이기에 드래곤이 손톱으로 내 허리를 끊어도, 오우거가 주먹으로 내 머리통을 부셔버려도 난 침착할 수 있다. 작은 고블린이 내 다리를 물어뜯고 거대한 와이번이 그 눈동자를 내 앞에 들이밀어도.
하얀 침대 위에 걸터앉은 남자가 침대를 보았다. 그 침대에는 식은 땀으로 온몸이 흠뻑젖은 사내아이가 누워있었다.
"제길.."
"또 그 악몽을 꾼거니?"
"네.."
"그래..그것 참 안되었구나."
남자는 작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사내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오늘이 무슨요일이지?"
"물빛의 수요일."
사내아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난 이만 나가보지."
방문이 닫히자 사내아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사내아이의 얼굴은 밀가루같이 하얀 색이였다. 아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아빠를 생각했다. 그렇게 강했던 아버지였지만 그들의 손에 돌아가셨다. 아이는 일어섰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해져서 복수할 것이라고.
삐걱..
"무슨일이죠?"
키가 작은 하녀가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침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내려갈게요.곧"
"네."
하녀가 내려간 후, 사내아이는 살짝 이마를 짚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 아이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옷매무새를 고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이 집의, 아니 이 저택의 주인은 아마 엄청난 갑부일 것이다. 사내아이가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청나게 길쭉한 탁자가 그를 맞이했다. 탁자의 저쪽 끝에는 세명의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깔끔한 외모에 수염을 약간 기른 남자가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나의 저택에 온 걸 환영한다. 소년이여."
사내아이는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기 있는 자가 말해 주지 않던가요? 제 이름은 제카드 J. Kharman.입니다. 아저씨."
남자는 약간 당황한 듯 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실례했군, 제카드군. 내 이름은 벤자민 드 아즈라엘이다. 그럼 식사를 하도록 하지."
"그럼 감사히 먹죠.벤자민 아저씨."
"후작이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군."
제카드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귀족이셨군요."
벤자민은 나이프로 고기를 썰며 웃었다.
"불편한것은 없나?"
제카드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과분할 정도 입니다.후작님."
벤자민은 손짓으로 오른쪽의 남자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쪽은 카르. 도움이 될거야."
제카드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도움이요?"
벤자민의 입가에는 깊게 웃음이 지어졌고, 제카드는 그것에서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제카드, 너의 가문에 전해지던 고문서의 해독이지. 너의 Khamrman 가의 전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카드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Khamrman 가의 사람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서 말인데. 나도 널 도울 마음은 별로 없어. 그럼 이렇게 할까?"
"어떻게요?"
"고문서를 넘겨."
식사가 끝나고 방안으로 돌아온 제카드는 탈출을 준비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3년을 혼자 떠돌아다녔기에 짐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그 고문서 때문이다. 고문서의 위치는 나도 모른다. 하늘 아래 아버지만이 알고 계셨었고, 이제 아버지는 안 계신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길래 목숨까지 버리시며 그것을 지켰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아들인 이상, 최후의 khamarman 가의 사람인 이상, 고문서를 찾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면 더욱 서둘러야 했다.
제카드는 창문에서 아래로의 거리를 가늠해본 다음, 침대의 천을 ??어 길게 묶은 후 그 것을 내려 타고 그림자처럼 내려갔다. 그리고 담을 넘어선 후, 방랑자들의 숲으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고 안에서 책을 찾고 있던 벤자민의 눈동자가 커졌다.
"카르를 불러라! 그에게 제카드를 쫓으라고해!"
빼곡히 들어서 나무들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던 제카드는 몰려오는 피로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미 물은 다 떨어진지 두시간이나 지났고 어디에서도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쳐있는 몸을 추스리며 제카드는 다시 걸어나아가려고 했다.하지만 결국 쓰러져 잠이 들었다.제카드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어두운 밤이였다. 밤에 불도 없이 있는게 상당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제카드는 나무위로 올라가기로 했다.나무 위라면 조금은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에.
날이 밝고 해가 떠오르자 제카드도 눈을 떴다. 나무위에서 본 풍경은 장관이였다. 끝이 없어 보이는 숲이였다. 뒤를 돌아보니 까마득한 곳에 마을이 보였다.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작은 가방안에는 지도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목적지는 Khamarman가의 영지였다.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지만 그 곳에 가면 무슨 단서가 있을 것 같았다.문득 배고픔을 느낀 제카드는 육포를 꺼내 씹었다.
"사냥이라도 해야겠군. 육포도 다 떨어졌어."
나무에서 천천히 내려온 제카드는 다시 길을 걸었다.
숲속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숫자는 대여섯명.선두에 선 이는 수시로 땅바닥과 나무를 살피며 무슨 흔적을 찾았고 이동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착실히 나아갔다. 무슨 흔적을 찾자 모두들 그자리에 멈추었다.
"토끼라도 구워 먹은 건가?"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옆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역시 애송이군요. 이런 흔적을 남기다니."
"하지만, 정확하게 서남쪽으로 이동해 가고있다.단 한번도 방향에서 이탈하지 않았어.우습게 보지마라. 넌 이정도로 정확한 경로를 잡을 수 있나? "
남자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그의 표정을 보며 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움직인 것을 보면 꼬마는 그의 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먼저 가서 기다려 주자구."
그러자 무리들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로 숲속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이 지금까지 있던 자리에 한 소년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