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옥구군 개정면 발산리에 있는 현 발산초등학교 자리는
1903년 12월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의 시마타니 야소야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마타니농장이 있던 곳입니다.
시마타니는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돈을 벌고 원료인 쌀을 찾아 군산에 들어 왔습니다.
당시 7만원으로 임피 외 2개 군에 486정보의 농장을 설립하였습니다.
발산리 그의 저택 정원에 장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찰과 왕릉등 주위에서 문화재를
많이 수집 약탈하여 현재도 가져 가지 못한 그 유물들이 발산 초등학교에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물로 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
발산리 육각부도(전북 문화재자료 제185호) 등이 있습니다.
군산시 옥구군 개정면 발산초등학교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지방 초등학교와 크게 다를바 없는 학교지만
뒷편으로 돌아가면 커다란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31553B570206250B)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탑으로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옮길 때 분실되거나 파손된 것이지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277873375702065013)
![](https://t1.daumcdn.net/cfile/cafe/236F7037570206501A)
석등은 높이가 2.5m이며, 원통형 기둥에 구름 속에서 요동치는 힘찬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매우 특이하고 지붕돌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17F43B5702062E1F)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F693B570206310D)
우리나라에선 유일한 원통형 기둥에 용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54A3B5702063421)
![](https://t1.daumcdn.net/cfile/cafe/242B983B5702063710)
![](https://t1.daumcdn.net/cfile/cafe/240856365702063926)
발산리 육각부도는 어디에서 옮겨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도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적인 구도와 조각수법이 뛰어나고 형태가 6각이라는 보기 드문 부도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1C25365702064714)
우리나라 부도는 대부분 사각이나 팔각으로 되어 있는데 육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08236570206440F)
이외에도 보물 2점포함 31점의 석조유물이 전시되고 있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E60365702063C20)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513365702063F1B)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A2A365702064224)
![](https://t1.daumcdn.net/cfile/cafe/262CAB365702064A06)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885375702064D05)
![](https://t1.daumcdn.net/cfile/cafe/237B8C40570207AD20)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DC940570207B02B)
![](https://t1.daumcdn.net/cfile/cafe/2502C540570207B31A)
![](https://t1.daumcdn.net/cfile/cafe/25789C40570207B623)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는다는데 학교 뒤뜰 조경용으로 서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람이나 모든 사물은 다 제자리에 있어야 그 진가를 발하는 것 같습니다.
첫댓글 그렇군요. 초등학교 교정에 귀한 문화재들이 저렇게 서 있네요. 그나마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서 그나마 보존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사람들이 쉽게 가서 마저보고 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나마 학교라서 보존이 잘 되었네요. 일반 농지나 산지에 있었으면 석재로 파괴되었을텐데.
왜 박물관으로 이전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석재여서 반출되지 않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일본의 어느 정원에 가 있었겠지요
우리나라 문화재청은 무얼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외국 여행을 했을때 어느 가이드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나라 사람들은 조상을 잘둔 덕에 이런걸 가지고 외화벌이를 한다고요
우리나라 선조들도 좋은 것 많이 남겨주셨지요
다만 그것을 터부시했던 우리의 잘못일뿐이죠
@지슬 너무 가난하였기에 문화재에 관심을 줄 수 없었던거 같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는데...
한때 고미술품을 수집하였는데 어느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장할게 아니라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고,
그래서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이나 경주 박물관 등에 자주 가게 됩디다.답글감사^^
@오랜비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그간에 정서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었는지
외국 것은 좋다고 하면서 우리 것을 터부시 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보존하지 않으면 정말 후손들에게 욕먹는건 불보듯 뻔한데요^^
대단한 유물이 보관된 학교군요~
군산에 가면 꼭 가보고 싶습니다
짬뽕집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유물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유물유적에는 문외한이 많더라구요
외국 유물에 관심있는 것 만큼 우리나라 유적에도 관심이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