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릉 문학나눔큰잔치, ‘사랑하라, 사람아’
- 문학과 예술과 유적의 아름다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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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근(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 홍보팀장)
사진 : 안덕화(홍보협력팀) |
![세종대왕릉](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7%2Fimg%2F070523_33.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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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비가 왔다. 보슬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했다. 이날 비는 사실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전날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주제공연 <봄날의 꿈> 리허설이 시작되는 16일 비는 어떻게 손써보지도 못할 만큼 내렸다.
설치미술가 김광우 선생이 영릉 앞 잔디밭에 꾸며놓은 흙길 비에 패이고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소나무와 소나무를 잇는 붉고 흰 천들은 비의 무게를 가누지 못하고 축축 늘어졌고 돌풍에 흔들거렸다.
조명음향이 이미 세팅이 끝나야 할 시점이었지만 모두들 손을 놓고 쏟아지는 비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산에서 한 달 넘게 합숙한 배우들은 처음 무대에 서보기는 했으나 금방 내려와야 했다. 연출을 맡은 김아라 선생은 빗속에서 겨우 배우들의 동선만 잡아본 뒤 배우들과 함께 죽산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리허설은 문학나눔큰잔치 전날 17일에야 진행되었다. 다행히 이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조명과 음향의 세팅과 함께 배우들의 리허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현장은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대는 다시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배우들은 무대의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연습과 세팅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
![문학나눔잔치](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7%2Fimg%2F070523_34.gif) |
겨우 보슬비이기는 했지만, 하루종일 조바심을 치며 우리는 비설거지를 했다. 영릉 소나무숲에 마련된 카페에는 책들이 책꽂이에 꽂히자마자 비닐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세종대왕릉에서 문학나눔큰잔치를 열자는 결정을 내렸을 때까지도 이것이 과연 이루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유적에서 그것도 성역이라고 할 만한 왕의 무덤에서 말이다. 그러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연출을 섭외한 지 일주일 만에 캐스팅은 완료되었다. 부대행사 기획도 금세 진행되었다. 세종대왕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는 그런 큰잔치를 열자는 게 진행하는 사람들 모두의 의도였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과 그 한글을 가장 아름답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문학을 통해 국민들과 만나는 일, 무엇보다 세종대왕릉이라는 유적은 과거의 유산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 속에서 새롭게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바로 이번 문학나눔큰잔치라는 생각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첫날 내리는 비를 보면서 우리 중 누군가는 역시 무모했나, 하며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을지도 모른다.
5시부터 부대행사인 <문장의소리> 공개방송이 시작될 터여서, 초대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 관객이 걱정이었다. 우리는 본격적인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세종대왕릉을 향해 주제공연 출연자를 비롯해 모든 스텝과 관계자들이 예를 갖췄다. 마땅히 고유제를 지내야 했겠지만, 고유제라는 형식 자체가 하나의 행사였으므로, 간단히 아뢰는 말을 올리고 재배를 드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가 그쳤다.
초대한 장애인단체와 대안학교 친구들이 도착했다. 홈페이지에 신청해 서울에서 출발한 독자들과 여주 주민들 200여 명 가량이 젊은 소설가 이기호가 진행하고 시인 조연호가 연출하는 <문장의소리> 공개방송을 지켜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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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잔치 관객](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7%2Fimg%2F070523_35.gif) |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의 공연은 다소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던 관객들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이어 박범신, 은희경 두 소설가의 입담과 낭독은 관객들을 훈훈하게 감싸안는 듯했다. 재즈가수 말로의 목소리는 세종대왕릉을 무척 낭만적인 공간으로 바꾸고 있었다. 여주 출신의 젊은 소설가 김재영과 뒤이은 기타리스트 신해원의 연주도 서서히 어두워가는 세종대왕릉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소설가 은희경+소설가 박범신](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7%2Fimg%2F070523_36.gif) |
▲ 소설가 은희경 |
▲ 소설가 박범신 |
주제공연이 시작되기 홍살문 저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날이 금요일이어서 퇴근하고 오는 직장인 관객들이었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 탓에 장애인단체가 조금 일찍 자리를 뜨기는 했지만 이날 주제공연은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연되고 있었다. 행사를 위해서만 다녀가 사람이 500여 명쯤 되는 것으로 우리는 예측했다.
![아카펠라 그룹 ‘아카시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7%2Fimg%2F070523_37.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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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구름이 조금 떠다니긴 했지만 대체로 맑았다. 소나무숲에 차려진 문학카페도 제대로 꼴을 잡아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날은 700여 명의 관객들이 참여했다.
낮시간 동안 한산하던 세종대왕릉은 시노래 모임 ‘나팔꽃’ 콘서트를 전후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주 지역 밴드인 ‘세종’의 공연을 시작으로 이수진, 이지상, 김현성의 시노래가 오후의 세종대왕릉을 잔잔히 물들이고 있었다. 뒤이어 등장한 어린이 노래모임 ‘굴렁쇠 아이들’의 동요는 특히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튿날도 문학나눔에서 초청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장애인 단체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왔는데다 보육원 아이들도 있어 박수를 치며 즐거워들했다. 가수 이지상이 진행한 안도현 시인과의 만남도 관객들에게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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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펠라 그룹 ‘아카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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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안도현 시인이 낸 동시집에서 「호박꽃」이라는 시를 함께 소리내어 읽어보는 순서가 있었는데, 동시 특유의 말장난과 아기자기함을 자기 목소리를 통해 느껴보는 시간이어서 관객들에게는 남다른 인상을 남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 콘서트는 가수 김원중의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가수 김원중은 특유의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라는 그의 노래가 서서히 어두워오는 세종대왕릉을 물들여 갔다.
주제공연 <봄날의 꿈>을 기다리는 마음은 첫날보다 더 두근거렸다. 무대는 세종대왕릉의 정경을 고스란히 무대 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그 정경을 신비로운 공간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봄날의 꿈>에 음악감독을 맡았던 임동창 선생의 등장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봄날의 꿈>은 사계절을 노래한 26편의 시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사람 전체를 사계절에 맞춰 보여주는 복합장르극이다. 여기에는 배우, 무용가, 음악가, 마술사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아이야~ ” 어머니의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소년 하나가 언덕으로 올라선다. 소년과 청년과 중년, 노신사를 중심으로 20여 명의 배우들은 나레이터가 되기도 하고 주인공의 분신이 되기도 하면서 인생의 사계를 대사와 몸짓과 시로 표현해갔다. 26편의 시는 인생의 극적인 장면에서 배우들에 의해 낭송되면서 텍스트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무대 양쪽에 광목천을 엮어 설치된 스크린으로는 인생의 고통과 절망,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영상들이 펼쳐졌다. 배우들의 이 모든 대사는 수화전문가들을 통해 전해졌다. 초대한 청각장애들도 이 공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공연 초반 봄 장면에서 여름 장면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무대에서 펼쳐졌던 마술공연은 밤을 더욱 환상적인 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인생의 겨울 노신사로 분해 등장한 배우 정동환은 깊이 있는 목소리로 그 커다란 무대를 압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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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사람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7%2Fimg%2F070523_39.gif) |
![사랑하라 사람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bodo%2Fonline_news%2F2007%2Fimg%2F070523_40.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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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났다고 생각한 관객들을 이끈 건 영릉의 능침이었다. 어두운 능침 위로 한글을 형상화한 최종범의 영상이 펼쳐졌다. 비로소 우리가 세종대왕릉에서 왜 이런 큰잔치가 열리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배우들이 모두 수화로 마지막 시낭송과 대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는 가슴이 벅차올라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 문화재 전문 위원은 어둠 속에서 “세종대왕릉이 이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탈바꿈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거기 왔던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행자로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세종대왕릉에서 문학과 예술이 그들의 삶의 한 부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내년에도 문학나눔큰잔치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문장끝](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ko.or.kr%2Fhome2005%2Fbodo%2Fimages%2Fd_logo.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