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10월드컵 조예선 선두로 올라섰다. 속도전으로 불리는 북한대표팀의 달리는 축구의 강조와 경쟁력의 상승이 눈에 띈다 ⓒ AFP/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축구에 있어 달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선수가 달리지 않으면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 운동이 축구다.
정해진 규격의 경기장 내에서 양 팀 키퍼를 포함한 22명의 선수가 공간과 공을 쫓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축구다.
때문에 축구에 있어 달린다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선수의 요건인 것이다.
축구 선수가 달리는 것은 매 한가지이지만 그 양과 질은 제각각이다.
달린다는 것은 운동량과 이동거리를 뜻한다.
공간과 타이밍의 싸움으로 압축할 수 있는 현대축구에서 선수의 운동량과 이동거리는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다.
필드 내 활용 공간이 좁아지고 공수 전환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현대축구의 추세는 선수들에게 보다 강한 체력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축구연맹은 2006년 선수 추적 프로그램인 트래킹 시스템을 도입했다.
트래킹 시스템은 선수의 움직임과 플레이, 운동량 등을 수치와 그래픽으로 나타내주는 프로그램이다.
유럽 축구 TV중계를 보다 접하는 해당 선수가 이번 경기에서 몇 km를 뛰었다는 자막이 트래킹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유로2008에서 선보인 트래킹 시스템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리그 전반으로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박지성 평균 운동량 11km
트래킹 시스템 분석결과 박지성의 경기 평균 이동거리는 11km를 웃돈다. 유럽 전체로 따지더라도 상위에 속하는 수치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트래킹 시스템 결과를 분석한 유럽축구연맹에 따르면 유럽 선수들은 경기당 10km 전후의 운동량(이동거리)을 소화한다.
유로2008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사비 에르난데스, 이번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유벤투스의 파벨 네드베드 등이 12km가 넘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은 90분 경기에서 평균 11km를 웃도는 이동거리를 나타냈다.
유럽 전체로 따지더라도 상위에 속하는 수치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축구연맹의 선수 개인의 운동량과 팀 전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유럽축구연맹은 선수들이 평균적(키퍼 제외)으로 11km 내외의 이동거리를 소화하면 해당 팀이 상대보다 한 명 더 많이 뛰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뒤집어 말하면 상대팀이 한 명 퇴장 당한 상황에서 경기를 치르는 셈이다.
많이 뛰는 만큼 어느 공간에서나 수적 우위를 보일 수 있는데 따른 풀이다.
K리그 시즌 초반 신생팀 강원FC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 중 하나와 맞닿은 대목이기도 하다.
박지성이 유럽축구 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동력이 여기에 있다.
박지성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공간마다 수적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팀 전력의 구체적인 활력으로 작용한다.
박지성을 가리켜 팀플레이의 스페셜리스트라 부르는 까닭의 배경이기도 하다.
박지성은 지난 3월28일 이라크와 평가전에서도 전반 45분 동안 가장 두드러진 활동량을 과시했다.
좌측 공간을 베이스로 중앙과 우측을 오가며 공수에 폭넓게 관여했다.
3월28일 이라크전 한국포진도 ⓒFOOTBALLISM |
완급 조절과 스태미나 컨트롤
운동량과 관련해 시선이 옮겨가는 팀이 또 하나 있다.
한국과 오는 4월1일 2010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을 치르는 북한 대표팀이다.
당초 복병 정도로 여겨졌던 북한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으며 조 선두로 올라섰다.
북한의 호조는
▲베스트일레븐의 골격 유지
▲단기간 승부로 치러지는 대표팀 경기에서 상대적으로 강조되는 수비 안정
▲그간 부족했던 국제 경기 경험의 확대
▲아킬레스건이었던 골키퍼의 안정감 확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의 UAE전 포진도 ⓒFOOTBALLISM |
앞선 내용이 전력적 접근이라면 전술적으로는 달리는 축구의 강조와 경쟁력 상승이다.
북한대표팀이 전통적으로 중시한 수비를 두텁게 한 뒤 빠르게 역습하는 ‘속도전’의 축구가 안착하는 흐름이다.
하지만 지나치지 말아야 할 내용은 달리는 거리, 운동량 그 자체만으로 해당 선수와 팀의 경쟁력을 단정하는 위험성이다.
달리는 것은 선수에게 기본이지만 필드에서 뛰다보면 동료와의 거리 유지(밸런스) 혹은 상대에게 너무 근접해 단번에 뚫릴 위기를 맞기도 한다.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과 완급 조절에 부합하는 동시에 선수 개인이 지닌 체력을 90분 동안 효과적으로 분산해 사용하는 스태미나 컨트롤 능력이 전제한 운동량이어야 한다.
4월1일 남북전의 관전포인트 중 하나는 북한 선수들의 경기 완급 조절과 스태미나 컨트롤 능력이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APT와 트래킹 시스템
토털풋볼의 대표주자 요한 크루이프는 이를 가리켜 “많이 뛰고 움직이는 게 중요하지만 어느 공간으로 언제 뛸 것인가가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선수에게 달린다는 의미는 팀 전술에 부합하는 운동량이어야 한다.
축구 선수가 달리는 것은 매 한가지이지만 그 양과 질은 제각각이라 표현한 대목 중 질에 해당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북한대표팀의 속도전은 양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질적인 영역에서는 미흡함이 엿보인다.
상황과 흐름에 대처하는 대응이나 전후반에 고르게 체력을 분산해 쓰는 관리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보인다.
의도한 대로 경기 흐름이 풀리지 않으면 흔들릴 공산이 그만큼 크다.
혼전에 빠진 조 예선 판도 속에서 승리가 절실한 한국대표팀이 공략한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한편으론 한국축구 전반에 트래킹 시스템의 도입을 추진했으면 한다.
선수들의 운동량이 승패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한 가운데 유럽은 트래킹 시스템의 분석 결과를 팀 훈련 자료로 활용, 전력 상승을 꾀하고 있다.
트래킹 시스템의 도입은 선수에겐 자극제를, 팬들에겐 재미를 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K리그가 지난해 경기 지연 행위에 따른 추가 시간 확대로 APT(Actual Playing Time 실제 경기시간)가 늘어 경기 속도와 흥미를 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수는 자신의 운동량을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해 기량을 점검하는 잣대로 활용할 수 있고 팬들은 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만끽할 수 있다.
축구가 과학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접근과 기술이 축구의 부분을 좌우하는 것을 이미 목격한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