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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사 석조여래좌상 보물681호
흑석사 부근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발굴하여 모셔놓은 석조여래좌상으로 불상을 안치하는 대좌(臺座)와 온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옆에 따로 놓여있다. 얼굴에는 적당히 살이 올라 있어 전체적으로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다. 신체는 안정감이 있어 보이지만 어깨가 약간 움츠려 들었고, 무릎 폭이 좁아진 점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이 나타난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얇은 옷은 자연스러운 주름을 형성하며 양 발 앞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대좌는 8각으로 상대석이 없고 중대석·하대석만 남아 있는데 하대석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해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표현했으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넣었다.
지보사 삼층석탑 보물682호
지보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다. 기단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고, 기둥 사이에는 무늬를 새겼는데, 아래층에는 사자 모양의 동물상을, 위층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넣었다. 기단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모두 높아서 다소 우뚝해 보인다. 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판돌을 삽입하여 윗돌을 괴도록 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한 것으로, 밑면에 새겨둔 4단의 받침이 두꺼워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있다.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보물683호
탑이 세워진 이 곳은 장각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일반적인 모습으로, 흙을 다져 만든 단 주위에 돌로 테두리를 잡아 구역을 정한 후 그 위에 탑을 세웠다. 기단은 여러 장의 판돌로 이루어졌고, 탑신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일정 비율로 줄어들고 있다. 1층 몸돌은 3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동쪽 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도 있다. 2층 이상은 지붕돌과 몸돌을 하나의 돌로 구성한 특징이 보인다. 얇아보이는 지붕돌은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뚜렷하며, 밑면의 받침은 5층까지는 5단을, 6·7층은 4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높이 9.21m, 기단 한변의 길이는 3.6m이다.
투각꽃살무늬 투각꽃살무늬 용문사 윤장대 보물684호 용문사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용문사(龍門寺)는 신라(新羅) 경문왕(景文王) 10년(870)에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창건(創建)한 절로서, 경내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일부를 수장(收藏)하기 위한 장서각(藏書閣)인 대장전(大藏殿)이 있다. 대장전 내부의 중앙 후면 불단(佛壇) 좌우에 회륜식(廻輪式)의 윤장(輪藏)이 하나씩 있다. 이 윤장대(輪藏臺)는 국내 유일한 것으로 고려(高麗) 명종(明宗) 20년(1190)에 제작한 것으로 팔각정(八角亭) 모양으로 되어 있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에 연결하였다.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좌우에 1기씩 놓여있는데 화려한 팔각정자 형태이다. 아래부분은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모양을 얹었다. 8각의 집모양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각 면마다 8개의 문을 달았다. 문은 좌우로 구분되어 4개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다른 4개의 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있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 진본<권4> 보물685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동진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번역한『화엄경』진본 60권 가운데 권4인데,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 붙여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었으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세로 29.3㎝, 가로 516㎝이다. 간행기록이 없어서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본문 앞의 여백에 권(卷)·장(張)의 순서를 표시한 것, 먹색, 인쇄상태 등이 1098년에 간행된『화엄경』진본 권37(국보 제202호)과 매우 비슷하여 고려 숙종(재위 1096∼1105)대에 판각하여 찍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대방광불화엄경 진본<권28> 보물686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동진의 불타발타라가 번역한『화엄경』진본 60권 중 권28의 1책으로 책 첫부분부터 5장까지 없어졌고 중간중간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이며 종이를 이어붙여 둘둘 말아 접는 형태로 크기는 세로 29.3㎝, 가로 658.2㎝이다. 간행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글자체와 목판에 새긴 솜씨 등이 1098년 간행된『화엄경』진본 권37(국보 제202호)과 매우 비슷하여 숙종대(재위 1096∼1105)에 펴낸 책으로 생각된다.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6> 보물687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당나라의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66의 내용으로 나무판에 새긴 뒤 닥종이에 찍어낸 것이다. 형태는 종이를 길게 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세로 29.2㎝, 가로 1,138.1㎝이다. 글씨체, 형식, 정교한 새김, 먹 색깔, 인쇄상태, 종이의 질 등이『화엄경』진본 권37(국보 제202호)과 비슷하여 고려 숙종 때인 1098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방광불화엄경 주본<권17,52> 보물688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17, 52의 2권이며, 각 권은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만들었다. 나무에 새겨서 닥종이에 찍었으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권17이 세로 29.2㎝, 가로 484.8㎝이고, 권 52가 세로 29.6㎝, 가로 874.7㎝이다. 간행기록이 없어서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문 앞의 여백에 권(卷)·장(張)의 순서를 표시한 것과 먹색, 인쇄상태 등이 1098년에 간행된『화엄경』진본 권37(국보 제202호)과 매우 비슷하여 고려 숙종(재위 1096∼1105)대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권7>보물689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당나라 반야가 번역한『화엄경』정원본 40권 가운데 권7에 해당하는 이 책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만들었으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세로 29.3㎝, 가로 871.9㎝이다. 책의 첫 장과 책을 매는 끈이 없어졌지만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다. 글씨체, 글을 새긴 목판, 먹색깔, 종이질 등이『화엄경』진본 권37(국보 제202호)과 비슷하므로 고려 숙종(재위 1096∼1105)대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대방광불화엄경 주본<권6> 보물690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6에 해당하는 이 책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여 두루마리 형태으로 만들었으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세로 29.7㎝, 가로 676.6㎝이다. 모두 15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장에서 제7장까지는 떨어져 나갔으며, 전체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다. 글씨체, 글을 새긴 목판, 먹색깔, 종이질 등이『화엄경』진본 권4(보물 제685호)와 비슷하여 고려 숙종 3년(1098)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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