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은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거창한 공부에 앞서 어제 저지른 잘못을 돌이키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상의 공부를 중시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소학동자(小學童子)’로 자처했다. 사람들이 혹 나라 일을 물으면 “[소학]을 배우는 동자가 어찌 큰 대의(大義)를 알겠는가”라고 답했다. 그는 나이 30이 넘어서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한훤당이 [소학]에 전념해 수신 위주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튼튼히 한 것은 후일 대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는 [소학]이 학문의 기초인 동시에 인간 교육의 절대적인 원리가 됨을 역설했다. 이후 제자인 조광조를 비롯해 김안국·이황 등 도학의 실천을 강조한 사림파도 [소학]을 강조하게 됐다. 한훤당은 이렇게 [소학]을 유치한 아동의 공부 과정으로만 여기던 학풍을 바꿔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