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김양미
비정상에 관하여
교실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사물함 앞에는 미친년처럼 머리가 헝클어진 나와 입에 게 거품을 물고 씩씩거리는 철구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 대치 중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울거나 귀를 막고 교실 구석에 처박혀있었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따분할 정도로 평화롭던 교실이 쑥대밭이 되어버린 것은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사물함을 열겠다는 철구와 그걸 막아선 나와의 자존심 싸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이었다. 뒤늦게 달려온 미애 샘이 우리를 떼어놓으려 하자 철구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한테 일러줄 거야. 다 죽었어, 씨바아알!' 열다섯 살 남자 아이가 다섯 살짜리 꼬맹이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미애 샘이 입모양으로 '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별 일 아니에요'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내 옷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를 주워 바지 주머니에다 쑤셔 넣었다.
그 날 저녁, 식탁에 앉아 멍하게 밥숟갈만 내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학교에서 뭔 일 있었어?"
"일이야 뭐 맨날 있지."
"목에 난 상처는 또 뭐야. 애들하고 싸웠어?"
"내가 애냐. 애들하고 싸우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어딘가가 쓰리다 싶었는데 목 부분이 긁혔던 모양이다. 한 번씩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밥숟가락 들 힘도 없다. 남편이 연고를 가져와 발라주며 쯧쯧 혀를 찼다. '그냥 대충해. 걔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 용을 써.' 순간 울컥하며 남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걔들이 뭘 모르는데!"
"아니, 내 말은 그냥… 불쌍한 애들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뭐가 불쌍한데, 걔들이 어디가 어떻게 불쌍하냐고!"
더 말해봤자 싸움밖에 안 나겠다 싶었는지 약 상자를 들고 돌아서다 남편이 짧게 말했다. '많이 힘들면 전에 말한 거, 한번 생각해봐.' 남편은 지난달에도 저 말을 했다. '전에 말한 거'라고. 예전 같으면, '내가 정신병자야? 그딴 소리 한번만 더 해봐!' 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학교에서의 일도 그렇고,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긴 했다. 들이박기 전에는 멈출 수 없는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종종 나에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점심을 먹고 학교 앞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미애 샘이 불쑥 자기 언니 얘기를 꺼냈다. 예전에도 몇 번, 두 살 터울인 언니 이야기를 사적인 자리에서 한 적이 있었다. 우울증이 심해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고. 그런데 얼마 전에 아는 분 소개로 다니던 병원을 옮긴 이후로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약 먹으면서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늘고, 진짜 장난 아니었거든요. 근데 얼마 전부터, 운동한다고 아침 일찍 나가는 거예요. 며칠 저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오늘이 벌써 일주일째에요. 살도 좀 빠진 거 같고 얼굴도 밝아지고… 암튼, 한 시름 놨다니까요."
"새로 옮긴 병원이 잘하나 보죠?"
"그냥 작은 개인 병원이래요. 사람도 거의 없고, 언니는 그래서 더 좋대요."
내 친구 중에도 우울증이 심한 애가 있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미애 샘은 핸드폰 사진에 저장해둔 의사의 명함을 내게 보내주며 말했다.
"근데 그 의사 샘이요, 이름이 진짜 재밌어요. 한번 들으면 절대 안 까먹을 걸요."
우리 아파트 위층엔 유치원에 다니는 꼬맹이와 말티즈를 키우는 부부가 산다. 조금 전, 집을 나오다 개를 산책시키러 나가는 위층 남자를 만났다, 좁은 승강기 안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낑낑 대는 개에게 남자가 말했다. '얌전히 있어야지, 코코!' 문이 열리자 남자는 짧게 거머쥔 목줄을 잡아당겨 내가 먼저 내릴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예의 바른 주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몇 년째 아래윗집으로 살고 있었지만 아이가 쿵쿵 뛰는 소리나 밤늦게 개 짖는 소리가 들린 적은 거의 없었다. 한 마디로 조용하고 예의바른 가족이었다. 발걸음을 늦춰 남자가 개를 데리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따라 걸었다. 짧게 목줄을 거머쥔 남자가 빵집 모퉁이를 돌아 공원 쪽으로 사라지고 나자 버스가 왔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후 6시로 예약을 잡았다. 전화를 받은 남자가 '직장 다니는 분들을 위해 매주 화요일에는 8시까지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재개발을 한다. 안 한다. 말이 많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린 동네에는 여기 저기 비어 있는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 전화로 알려준 대로 버스 정류장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와 10분쯤 걸어 올라가니 1층에 편의점이 있는 낡은 회색 건물 하나가 나왔다. 그곳 4층에 '유두봉 정신건강 의원'이 있었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데스크에서 건네준 간단한 질문지에 체크를 하고 10분쯤 지나자 진료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진한 카키색 와이셔츠에 흰색 넥타이를 매고 있는 50대 중반 가량의 남자, 서글서글한 인상에 입가에 세로로 난 깊은 주름이 괄호처럼 쳐져있었다. 진료실 양쪽 벽면으로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는데 전공서적 외에도 소설책과 시집 같은 것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진료실이라기보다는 편안한 서재 같은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직업이 대안학교 교사라고 되어 있네요."
까만 슬리퍼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남자의 발이 책상 밑으로 보였다.
"이 일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5년 정도 됐어요, 정확히는 4년 8개월이고요."
"이런 일도 무슨 자격증 같은 걸 따야 하나요?"
"딱히 그런 건 없어요. 대안학교니까."
"그럼 대학에서는 무슨 전공을…."
"저는 철학과를 나왔습니다. 이 일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요."
"제 동생도 철학과를 나왔는데 지금은 정육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동생이 정육점을 하고 있든 치킨집을 하고 있든 내 알 바 아니었다.
"선생님, 사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요…."
긴장을 풀기 위해 허리를 쭉 펴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집에서 버스로 일곱 정거장이면 올 수 있는 거리, 하지만 내가 여기에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37년이었다.
"네, 말씀해 보세요, 편하게."
"그러니까 저에게… 문제가 좀 있는 거 같아서요. 어제 학생 하나랑 좀 다퉜는데, 아니 사실은 옷에 단추가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몸싸움을 했어요. 그 친구가, 그러니까 철구가 사물함 문을 계속 열고 닫아요. 탁, 탁 소리 나게요. 철구는 강박과 불안증이 있거든요. 근데 저희 반에 지우라는 애가 있는데 그 소리를 못 참아요. 자폐증을 가진 친구라 소리에 엄청 예민해요. 애들 우는 소리랑 개 짖는 소리, 그리고 물건을 탁, 탁 여닫는 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고 미친 듯이 쿵 쿵 뛰어다녀요. 그러다 벽에 머리를 박기도 하구요. 근데 그걸 보면 또, 예진이가 겁을 먹고 구석에 처박혀서 끝도 없이 울어요. 한번 울기 시작하면 아주 끝장을 보는 친구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사물함 문을 못 열게 막고 서 있다가…."
의사는 발가락을 계속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여 무릎 담요 같은 걸 발에다 확 갖다 씌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그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느끼실 수도 있는데 보통 이런 경우 다른 교사들은 저같이 행동하지 않아요. 규칙을 어기면 생각하는 방, 저희 학교에 그런 게 있어요. 화장실 두 칸 크기 정도 교실인데 거기 앉혀놓고 반성을 하게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게 싫거든요. 그게 뭐 크게 반성할 일인가 싶고. 철구가 사물함 문을 탁, 탁 소리 나게 여닫는 건 걔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다는 거라 평소엔 그냥 내버려 둬요. 지우가 좀 괴로워하긴 하지만 그럴 땐 화장실에 데려가 변기 위에 좀 앉혀 놓으면 되니까요. 지우가 거길 좋아해요. 그러니까 제 말은, 딴 교사들은 못 하게 하는 행동도 저는 다 이해가 돼요. 문제는 그러다 한 번씩 제가 펑 터져버린다는 거예요, 어제처럼."
"경우에 따라 분노 조절이 안 된다는 거네요?"
"네, 맞아요. 어떤 날은 되고 어떤 날은 안 돼요. 그러다 몸싸움까지 가고. 한 번은 민정이라는 친구하고 머리채를 잡고 싸운 적도 있어요. 민정인 지적장애 2급에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까지 있어서 좀 골치 아픈 학생이거든요. 집에 불을 지른 적도 있고, 엄마 카드도 훔쳐 나가서 막 그어 쓰고 그래요.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민정이가 예진이 가슴을 만졌거든요. 얘들이 몸은 어른인데 이성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이성, 동성 구분 없이 막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고 그럴 때가 있어요. 이해 못할 일은 아닌 거죠. 근데 그 날은 민정이가 예진이 가슴을 만지며 징그럽게 웃는 거예요. 느글거리는 아저씨 표정, 딱 그거였어요. 그걸 보는데 저도 모르게 또…."
의사가 진료실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주며 말했다.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오늘은 편하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하세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병원을 나선 시간은 8시30분. 남편과의 갈등에서부터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까지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고해소의 문을 나서듯 진료실을 돌아 나오며 의사의 하얀 넥타이가 신부의 로만칼라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껏 미뤄뒀던 기나긴 참회록의 첫 페이지를 써내려간 느낌이었다.
두 번째 상담 날짜가 잡힌 날은 학교에 하루 휴가를 냈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병원에 도착해보니 의사는 진료실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처음 병원에 간 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데스크에 앉아 있었는데 그 날은 보이지 않았다. 김치가 담긴 사각 반찬통을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의사가 캔 커피 두 개를 꺼냈다.
"식사 중이셨는데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나가서 먹는 것도 번거롭고 해서 그냥 한 끼 때운 거죠 뭐."
"들어올 때 보니 아무도 없던데 다들 점심 먹으러 갔나 봐요."
"지난달까진 데스크를 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결혼한다고 그만 두는 바람에…."
"그럼 전에 왔을 때 본 그 친구는 누구죠? 고등학생 같아 보이던데."
"아, 태식인 제 아들입니다. 용돈이 필요하면 가끔 나와 도와주기도 하죠."
첫 진료를 받으러 왔던 날, 데스크에 앉아 있던 남학생 모습이 생각났다. 살짝 반 곱슬머리에 두꺼운 검은 색 뿔테 안경을 쓰고 핸드폰을 보며 미친 듯이 낄낄 웃고 있었다.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범상치 않은 독특함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뭔가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어서요."
"검사를 받아봐야 정확한 말씀을 드릴 수 있겠지만."
"대충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으로 오만 잡생각에 시달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엉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잖습니까. 그런 걸로 봐서 조희성씨는 성인 ADHD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멍 때릴 때가 많고 뭔가 정리가 안 되는 타입이 주의력결핍 형이고 남들 보기에 소란스럽고 정신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 쪽이 과잉행동 쪽이라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주의력결핍 우세 형이 아닐까 싶다고. 그 말에 나는 원인이 뭐냐고 물었다.
"뇌의 전두엽 쪽에 결함이 있는 건데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유전적인 경우도 더러 있고 임신 중에 산모가…."
"그럼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뇌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거네요?"
"꼭 그렇다고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이게 유전일 수 있다, 엄마나 아빠 둘 중 누군가가 저한테 이런 DNA를 물려줬다 이 말씀이네요."
"할머니나 할아버지일 수도 있겠지요."
더 정확한 건 검사를 받아봐야 알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세 번째 진료가 잡혀 있던 날, 학교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상담 날짜를 미뤘다. 듣고 나면 현실이 될 거 같아 두려웠다. 며칠 정도라도 내 불행을 유예해 두고 싶었다. 마치, AIDS 검사를 받고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는 불안하고 우울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뤄둘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틀 뒤로 다시 진료 날짜를 바꿔 병원을 찾아갔다. 핼쑥한 얼굴로 나타난 나에게 의사는 밝은 표정으로 '양성' 판정을 내렸다.
"검사결과 조희성씨는 ADHD가 맞습니다. 정확히는 '주의력 결핍 우세형'입니다."
내 뱃속을 열어 암 덩이를 꺼내 보여주며 '자, 이게 암입니다. 보셨지요.'라는 말을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막연하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동찬이와 철구처럼 복합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는 치질이나 무좀처럼 흔히 따라 붙는 병명이었다. 예전에 동찬이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일로 겪어보기 전엔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고. 오히려 무심한 사람들이 더 고마울 때가 있다고 말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다 이해해요'라는 말을 동정어린 눈빛으로 전할 때 더 비참하고 더러운 기분이 든다고. 저 의사는 내 고통을 절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저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다. 어쨌거나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담담함이 참담함으로 바뀌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의사는 나에게 '웩슬러 지능 검사지'인가 뭔가를 꺼내놓고 하나하나 콕콕 짚어주며 말했다.
"학습능력을 보면 주의집중, 지각 조직, 언어이해, 처리속도 이렇게 4가지 영역이 나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지표가 거진 비슷해요. 근데 여기 보시면 조희성씨는 아주 극과 극이에요. 언어나 추론 면에서는 점수가 높은 편이지만 작업 기억이나 처리 속도는 아예 바닥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뛰어나고 어떤 면에서는 아주 뒤처진단 말인 거죠. 예를 들면, 시력이 오른 쪽 눈은 아주 좋은데 왼 쪽 눈은 아예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안 좋은 쪽 시력을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조희성씨가 가진 재능 중에 아주 뛰어난 게 있다 하더라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작업 기억이나 처리 속도 이런 게 발목을 잡는다는 말입니다. 학교 다닐 때 수학이나 과학 때문에 평균 다 깎아 먹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런 경우, 경계선 지능 장애를 의심해 보기도 하는데 조희성씨 같은 경우는, 여기 자율신경계 검사를 보시면…."
의사가 계속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다른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한 단어만 반복해서 들려왔다. '장애, 장애, 장애…' 장애가 있는 학생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그들과 나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그리 영특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자란다' 소리를 듣지도 않았다. 글도 남들보다 빨리 깨우쳤고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수도권-정확히는 경기도 외곽-에 있는 4년제 대학도 졸업했다. 그런데 내가 경계선 지능 장애 수준이라니,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됐다. 한참을 뭐라고 혼자 떠들던 의사가 검사지 묶음을 내 앞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용케 잘 살아 오셨네요. 하하하."
남편은 위아래, 그리고 친구들과도 두루 잘 지내왔고 평범한 가정에서 무난한 성격의 시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에 비해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간이었다. 대학 다닐 때도 휴학을 두 번이나 하는 바람에 6년 만에 졸업을 했다. 친구들은 방학 때 토익 학원이나 컴퓨터 자격증을 따러 다녔지만 나는 절에 들어가 한 달씩 처박혀 있기도 했다. 언젠가 한번은 친구와 함께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꼬질꼬질 해 보이는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여자에게 '여기 보단 길 건너 피자집이 훨씬 더 싸고 맛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우연히 그 소리를 듣게 된 피자집 사장은 그날로 나를 쫓아냈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는, '그래 너 잘났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니'라며 따져 물었다.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었다.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나,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좀 이상했어?"
"그냥 좀 독특했지."
"어떤 점이?"
"맨날 땅만 보고 다녔잖아. 부끄럼 엄청 타는 애처럼. 근데 또 어쩔 때 보면 뻔뻔하기 그지없고.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데 좋은 건 또 너무 열심히 하고. 암튼 극과 극이었어."
오늘만 해도 저 말을 두 번이나 들었다. 극과 극.
"얼마 전에 영철 선배 만났을 때 그 이야기 하더라.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동아리 방에서 낮술 마시다가 선배가 그런 말 한 적 있었잖아. 시내버스만 계속 갈아타고 땅끝 마을까지 갈 수 있겠냐고. 그때 너가 술 마시다 벌떡 일어나더니 뭐라 그랬는지 기억나?"
"당장 가보자."
"그 날 집에도 못 들어가고 영철 선배랑 나랑 결국 해남까지 끌려갔잖아. 그게 보통 사람이 할 짓이냐."
"그게 뭐 별 거라고. 다들 재밌어 했으면서…."
"한 두 개가 아니니까 문제지. 2학년 땐가, 엠티 갔다가 산에서 라면 끓여 먹은 적 있었잖아. 그때 나무에서 무슨 벌레 같은 게 냄비 속에 뚝 떨어져가지고…."
그때 다른 여자애들은 소리를 지르며 라면엔 손도 대지 않았다.
"냄비 속에 손 넣어서 벌레 끄집어낸 게 너잖아. 결국 라면도 혼자 다 먹고. 지금 생각하면 그냥 드러운 거였는데 그땐 눈에 뭐가 씌었는지 깔끔 떠는 애들보다 그게 또 나름 귀여워 보이기도 했으니까."
남편이 결혼하고 처음으로 나에게 '더럽다'는 말을 했을 때가 기억난다. 흰색 침대보 위에 놓인 내 발바닥을 들여다보며 '뭐야, 발도 안 씻고. 더러워'라고 했다. 그 후로도 남편은 그릇에 밥풀이나 고춧가루가 묻어있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과자 부스러기가 보이면 그런 표현을 썼다. 식탁에 앉아 숟가락이나 물컵을 들어 요리조리 살펴본 다음 물을 따라 마시거나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유별 좀 떨지 마'라며 짜증을 냈고 남편은 별 것도 아닌 일에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며 눈치를 봤다.
"엄마가 그러는데 내가 할머니 닮아서 그런 거래."
예전에 한 번은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네 할머니는 죽어라 해줘 놓고도 입으로 다 까먹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할아버지도 결국 딴 여자한테 가버린 거라고 말이다. 엄마가 중학교 다닐 무렵, 국밥집을 하는 동네 과부에게 돈을 빌려줬던 할머니는 혹시라도 그 돈을 떼먹고 야반도주라도 할까봐 할아버지를 그 집에 보내 식당 일을 돕게 했다. 할머니와 달리 성격이 곰살맞고 애교가 많던 그 여자는 빌린 돈을 갚는 대신 할아버지를 데려갔다. 엄마가 할아버지였어도 할머니 같은 성격하고는 못 살았을 거라며 혀를 찼다. 그럼 나는 외할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걸까. 가끔은 지나치게 화를 내고 남들이 하지 않는 엉뚱한 짓이나 하고… 그러고 보니 할머니 집 그릇에도 늘 고춧가루가 묻어 있었다.
남편은 조금 취한 듯 말이 많아졌다.
"결혼하고 우리 처음 싸웠을 때 기억나? 다음 날 내가 강원도로 출장을 갔는데 택시 타고 따라왔잖아. 부부싸움 했다고 남편 출장 간 데까지 쫓아와 따지는 게 말이 돼? 네 뜻대로 안 되면 못 참고 결국 사과를 받아내야 끝내는 거. 지금 와서 말이지만 그거 정상 아냐."
가끔 나는 극도로 민감해진다. 뭔가가 틀어지면 견디기가 힘들 뿐 아니라 잠시도 그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엄청난 재앙이 닥친 것처럼, 불안감이 점점 부풀어 오르다 급기야는 펑 하고 터져버렸다. 나에겐 부부 싸움도 그랬다. 참고 기다렸다가 나중에 얘기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이런 내 성격에 완전 질려버렸던 거다.
네 번째 진료를 받으러 간 날. 의사에게 물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인가요?"
"치료의 목적이 '완치'가 아니라 '완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병원엔 왜 다녀야 하죠?"
"일단은 원할 경우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과 행동 교정, 그러니까 일상에서 남들과 겪는 갈등 같은 것을 의식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피드백도 받고,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짜증 나고 답답한 거 털어놓고 나면 시원하잖아요. 그런 효과도 있으니까요. 사실, 이게 병원 온다고 완전 180도 달라지고 그런 건 아닙니다. 약으로 고칠 수 있었다면 제 아들놈도 벌써 고쳤겠죠. 아, 전에 한 번 본 적 있잖습니까. 저기 밖에 앉아 있던 친구."
"선생님은 이쪽 분야 전문가시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내과 의사가 간암으로 왜 죽겠습니까. 의사라고 아픈 거 다 고치고 그런 거 아닙니다. 제 아들놈 때문에 저도 안 해본 게 없어요. 약 먹이다 틱이 심하게 와서 그거 고친다고 또 별짓 다하고. 의사인 내가 무허가로 기 치료하는 사람한테까지 데려가 봤다면 믿겠습니까. 한 번은 제 아내가,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어떤 목사한테 애를 데려갔는데 한겨울에 욕조에다 성수라는 걸 부어놓고 애를 담갔다 꺼냈다… 그 뒤로 우리 애가 물만 보면 새파랗게 질려 오줌을 질질 쌌다니까요."
"의사가 환자한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시면 안 되죠."
"희망고문 같은 게 더 나쁜 겁니다. 이 약 먹으면 낫는다, 고칠 수 있으니까 우리 한 번 노력해보자, 이런 말이 더 무책임할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그런다고 낫는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본인이 원하면 뇌를 각성시키는 콘서타나 메타데이트 같은 걸 처방해드릴 수 있지만 그걸 먹는다고 마법처럼 사람이 확 달라지고 그러진 않습니다. 틱이나 우울증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도 일단은 뭐라도 해보는 게…."
"물론, 치료를 받는 게 도움이 되긴 합니다. 문제가 뭐라는 걸 분명히 알고 나면 막연하게 불안하고 힘든 게 줄어들 수 있으니까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는 것도 나름은 필요하죠."
"단체 문자라도 뿌리라는 건가요?"
"오픈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 오는 환자 중에 뚜렛 증후군을 가진 친구가 있어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적인 근육 틱과 음성 틱을 동반하게 되는 질병이죠. 근데 골치 아프게도 욕을 합니다. 중학생 때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약을 먹던 중에 틱 증상이 나타난 거죠. 학교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불쑥불쑥 욕을 해대니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겠습니까. 애들한테 발길질도 당하고 길거리에서 아줌마한테 뺨을 맞은 적도 있었대요. 한 번은 건널목에 서 있다가 '거지같은 새끼!'라는 욕이 튀어나왔는데 곁에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소주병으로 자기 머리를 내리쳤답니다. 노숙자였던 모양이에요. 아무튼 이게 긴장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심하게 튀어나와요. 딸꾹질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살다간 맞아 죽겠다 싶어서 하루는 아침 조례 시간에 교탁 앞으로 튀어 나갔대요.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자기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말했다는 겁니다. '늬들도 알겠지만 나한테는 문제가 있어. 뚜렛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 개새끼. 씹새끼! 그러니까 너희들이 오해하지 말고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담임을 보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선생님도… 시발놈아!'
"그래서 그 친구는 어떻게 됐나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이게 딱히 치료법은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호전되기도 하니까요. 지난번엔 병원에 여자 친구도 데려왔더라고요. 어떻게 사귀게 됐냐고 물었더니 여자 애가 그러는 거예요. 자기한테 자꾸 윙크를 하길래 몇 번 만나줬는데 알고 보니 그게 틱이었다고."
진료실을 나와 처방전을 받기 위해 데스크로 갔다. 들어올 땐 보지 못했는데 까만 안경테를 쓴 유두봉의 아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낄낄 웃고 있었다. 왠지 이대로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뭔가 '하자 있는 뇌'를 가진 인간과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서 떡볶이라도 먹을래요?"
"아줌마랑요? 왜요?"
"그냥. 배도 고프고 그래서."
"음, 기타 치러 가기 전에 시간 좀 있으니까 뭐."
아이는 떡볶이 말고 치킨을 먹자며 병원 근처에 있는 치킨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이모, 여기 치킨 반반이랑 오백 두 잔이요!"
"아직 학생인데 술 마셔도 되나?"
"괜찮아요. 아빠하고도 여기서 가끔 마셔요. 이모도 다 아는데요 뭐."
치킨집 사장은 오백 두 잔과 뻥튀기 한 접시를 내왔다.
"지금 4시밖에 안 됐는데 학교가 벌써 끝났어요?"
"대안학교 다녀요. 작년에 자퇴하고 학교 옮겼는데 억지로 공부 같은 거 안 시키고 기타도 칠 수 있고 그래서 그냥 다녀요. 어차피 대학 갈 생각은 없으니까."
아이는 거침없이 말하고 뻥튀기를 우걱우걱 씹어대며 맥주를 마셨다.
"저희 아빠 원래 큰 병원에 있었거든요. 근데 저 땜에 여기 온 거예요. 예전에 제가 사고를 좀 크게 쳤거든요."
탁자 위에 아이가 흘려놓은 뻥튀기를 포크로 찍으며 내가 물었다. '무슨 사고?'
"뉴스에도 나왔는데. 중학생이 차 몰고 나왔다가 사고 낸 거. 암튼 그랬어요. 근데 지금이 더 속 편하대요. 병원 문도 손님 있으면 열고 없으면 닫고."
치킨이 나오자 아이는 닭 다리부터 얼른 집었다.
"근데 아줌마도 그거에요? 아까 처방전 보니까, 아 뜨거!"
"주의력결핍 우세형. 학생은 과잉행동 쪽이지?"
"둘 다예요. 과잉행동에 주의력 결핍, 거기다 분노 조절도 잘 안 되고. 아줌마는 지능 점수가 얼마로 나왔어요? 저는 94거든요. 바보는 아닌데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고 애매해요. 이게 아이큐가 높게 나오면 창의력이 뛰어나고 활동적이다, 뭐 그런 쪽으로 봐주는데 지능이 떨어지면 기냥 장애인 취급 받거든요. 아, 그리고 말 놔요. 저보다 나이 많잖아요."
남아있는 닭 다리 하나를 마저 집으려다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이번엔 날개를 가져갔다.
"제가 어려서부터 레고를 엄청 좋아했어요. 그거 사는 데만도 몇 천만원 썼을 걸요. 그런 거 보면 또 바보는 아닌데 학교 다닐 때 수학 점수는 거의 빵점이었어요. 숫자만 보면 속이 막 울렁거리고. 크크."
"나도 수학 싫어했어요. 음악이나 체육도 잘 못하고."
"난 그나마 체육 시간이 제일 좋았는데. 나가서 막 뛰어다닐 수 있잖아요. 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있거나 돌아다니면서 애들 건드리고 막 그러니까 선생님이 엄마한테 교실 밖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좀 보고 있어라 그랬대요. 그때 엄마 표정이 복도에서 벌 받고 있는 아이 같았어요. 나보고 계속 '앉아, 좀 앉아 있어' 그러는데 꼭 울 거 같더라고요. 크크. 근데 말 놓으라니까요."
아이는 맥주 한 잔을 더 시키고 치킨을 뜯으며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근데 아줌마는 무슨 일 해요?"
"애들 가르쳐. 대안학굔데 아, 너도 대안학교 다닌다고 했지. 우리 애들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라, 그래도 열심히 배우고, 다들 착해."
"에이, 착한 게 아니라 머리를 굴릴 줄 모르는 거겠죠. 원래 걔들이 그래요, 머리가 모자라서 못 굴리는 건데 그걸 착하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듣기 좋으라고."
"착한 거는 그냥 착한 거야. 모자란 게 아니고."
"그게 그거지. 저희 엄마도 사람들한테 맨날 그랬어요. 우리 애가 그래도 착하긴 하다고."
치킨 접시를 뒤적거리고 있는 태식에게 엄마하고는 사이가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는 지금 통영에 가 있어요. 거기가 고향이거든요. 아줌마는 통영 가봤어요? 저도 외할머니 살아계실 땐 가끔 갔었는데. 이모, 여기 맥주 하나 더요!"
이제 그만 마시라며, 아버지 알면 혼난다고 치킨집 사장은 콜라를 꺼내왔다.
"동생은 엄마하고 통영에서 살아요. 저 음청 싫어하거든요. 어릴 때 좀 많이 때렸는데 사실 미안하긴 하죠. 밖에서 당한 거 집에 와서 분풀이 하고 그랬으니까. 그래도 걔는 정상이라 다행이에요. 동생까지 그랬으면 우리 엄마 벌써 죽었을 걸요. 저 땜에 엄마하고 아빠, 둘이서 맨날 싸웠어요. 아빠는 저한테 약을 계속 먹이자 그러고 엄마는 시골 분교 있잖아요. 거기 데려다 놓으면 좀 나아질 거라고 시골 가서 살자 그러고. 몇 살 때더라, 암튼. 기 치료 받는다고 토요일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무슨 절에 다녔었거든요. 몸에 기를 뚫어주면 애가 낫는다 뭐 그러면서. 막힌 변기도 아니고 뚫긴 뭘 뚫어준다고 참. 암튼 그때 차 속에서도 둘이 엄청 싸웠어요. 그래서 한 번은 달리는 차에서 창문 열고 밖에다 레고 상자를 던져버린 적도 있어요. 뒤차들이 빵빵 크락션 울리고 난리가 났었죠. 엄마는 아빠 탓을 하고 아빠는 엄마 탓을 하고, 그래도 재작년까지는 다 함께 살았는데…."
술 때문인지 치킨집의 주황색 백열등 때문인지 아이 눈가가 발개져 보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미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눈물부터 터져 나왔다.
"왜 그래? 너 뭔 일 있어?"
"아니야, 그냥 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말해봐. 너 규진씨하고 또 싸웠구나."
"그런 거 아냐. 근데 미영아, 나…."
"그래, 너 뭐?"
"문제가 많대. 내가 문제가 아주 많은 인간이래, 병원에서."
"병원? 뭐야 너, 암이래?"
"암보다 더 무서운 거. 고칠 수도 없는 거…."
"그런 게 어딨어? 너 설마… 에이즈야!"
"말해 봐 미영아, 내가 그렇게 이상한 인간이야?"
"도대체 왜 그러는데 갑자기."
"니 눈에도 내가 병신 같고, 눈치도 없고 남들 힘든 거도 모르고 막 그래?"
"새삼스럽긴, 그걸 이제 알았냐!"
다섯 번째로 '유두봉 신경정신과'를 찾았을 땐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새로 뽑은 직원인 듯했다. 차분한 인상의 그 여자는 친절하게 웃지도, 그렇다고 무뚝뚝하지도 않은 얼굴로 접수를 받았다. 그리고 진료 대기실 소파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핸드폰을 달라고 떼를 쓰며 심심하다고 짜증을 내는 아이에게 지친 얼굴로 여자가 말했다. '제발 좀 가만히 앉아 있어. 오늘 게임 세 시간이나 했잖아, 약속 안 지키면 앞으론 핸드폰 금지야.' 아이는 대기실에 있는 레고 박스를 꺼내 촤르르 바닥에 엎어버렸다.
지난번, 치킨집을 나오기 전에 태식이가 가방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보여줬다.
"얼마 전에 안방 서랍을 뒤지다 발견했거든요. 엄마 일기장 같았는데…."
거기엔 이런 글들이 적혀 있었다. 아이는 들어가는 데마다 소리를 지르고 온 진열장의 물건을 뒤집어엎어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죽고 싶다. 주변의 모든 것에 무심하다가 한순간 어느 하나에 목숨을 걸고 달려든다. 제 뜻대로 안 되면 세상이 무너져라 발악을 한다. 한 말을 끝도 없이 반복하고 노래도 한 구절만 반복한다. 때론 그 소리가 날 미치게 한다. 스스로 기진맥진해서 나가떨어지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차분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조용히 논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아이다. 구석구석 쑤시고 다니며 다른 사람의 신경까지 쑤셔 놓는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그런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나쁜 엄마다. 모두가 다 내 탓 같다.'
그 노트를 읽으며 자신이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고 태식이가 말했다.
"오늘은 아드님이 안 보이네요. 태식이."
"어, 우리 아들 이름도 아시네. 지난번에 치킨집 같이 갔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우린 동지잖아요, ADHD."
"하하. 그렇긴 하네요. 직원을 새로 뽑아서 이젠 안 나와도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홍대 앞에 기타 연습하러 갔어요. 다음 달에 학교에서 공연이 있대요. 중학교 때 처음 기타 배울 때 알게 된 형인데 기타 치는 거도 봐주고, 가끔은 그 친구가 여기로 오기도 하니까."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원래 좀 예민하지 않냐. 그 친구를 형이라고 많이 따르는데 태식이는 말이 너무 많고 그 친구는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애가 요즘 많이 밝아졌다. 한동안은 집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하고 싶은 게 생겨서 그런지 밖으로 나다니는 시간이 늘었다고 태식이 아버지가 말했다.
"하고 싶은 게 뭔데요?"
"저 같은 애들한테 기타를 가르쳐 보고 싶대요. 자기는 다 이해할 수 있으니까 잘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사실 이게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 못하거든요. 그래서 잘해 보라고 했죠. 언제 또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처방해드린 약 먹어보니 어때요? 처음엔 속도 좀 미식거리고 밥맛도 없고 그럴 수 있긴 한데."
"이틀 정도 먹다가 그만뒀어요."
"아, 그럼 안 되는데. 뭐든 꾸준히 해야…."
"내 문제가 뭔지 알고 나니까, 안 보이던 게 조금씩 보여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할 때도 집안일을 할 때도 생각을 하게 돼요. 이거 저거 순서 없이 막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요. 예전엔 빨래 개다 말고 시장 보러 가고, 청소기 돌리다 영화 보러 가고 막 그랬거든요.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지, 생각하고 나갔다가 매운탕 거리를 사온다든지. 근데 요즘은 머릿속으로 생각해요. 빨래를 다 개고 서랍에다 집어넣은 다음 시장을 보러 간다. 시장에 가면 이것저것 사지 않고 처음 메모해간 것을 빠짐없이 사온다. 집에 들어와서 시장 본 걸 냉장고에 정리한 다음 비닐 봉투를 개어 서랍에 넣는다."
학교에서도 다른 선생님들에게 말했다. 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니 혹시라도 규칙을 깨는 행동을 하면 바로 말해 달라고. 며칠 전에도 철구하고 부딪힐 뻔했을 때 경수 샘이 심호흡하라는 신호를 보내준 덕분에 멈출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을 해본 다음에 그래도 안 되면 그땐 약을 먹겠다고 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의사가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뽑아왔다.
"제 환자 중에 한 분이 얼마 전에 책을 냈더라고요. 콘서타 52㎎을 매일 꾸준히 복용하던 친군데 하루는 약 먹는 것도 너무 지겹다는 생각이 들더라나. 그래서 약봉지를 쓰레기통에다 다 갖다 버리고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글로 써보자 싶어 일주일 동안 꼼짝 않고 들어앉아 썼대요. 이거 읽으며 저도 반성 많이 했어요. 태식이 키울 때 생각나서."
의사가 건네준 책에는 '비정상에 관하여'라고 적혀 있었다. 책갈피가 꽂혀있던 페이지를 펼쳐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을 읽었다.
'행복에 대한 집착을 버리되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된다. 행복함을 정의하지 말고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하면 되는 거다. 10년 뒤에 어떻게 되자가 아니라 오늘 딱 하루만이라도 알차게 보내자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보잘 것 없더라도 지금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경험을 여러 개 쌓고 그 티끌들이 보다 큰 성취를 견인하도록 유도하는 게 현실적이다. 다만 뭔가 노력할 기운도 없을 땐 자신을 너무 채찍질 말고 놓아두어야 한다. 비난 같은 조언, 다정한 것 같은 다그침, 억지 열정 따위는 ADHD의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인내를 좀먹는다. 부정적인 남의 말은 흘려 들어라. 내 인생의 변호사는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구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행복을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불행을 동반한다. 인생의 기준은 그냥 '나답게 사는 것'이면 충분하다….'
친구 미영이가 언젠가 그런 말을 했다. '어차피 인간도 딱 하루치씩밖에 못 사는 거야. 하루치의 기쁨, 하루치의 시련, 그렇게 살아야 중심을 잃지 않고 흩어지지 않을 수 있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꿈꾸며 일상을 쥐어짜다 보면 하루가 무너져 버린다고 했다. 강하다는 건 어쩌면 하루치만큼 중심을 지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하루 앞에서, 작은 감정 하나에 존재가 고양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할 정도로 터무니없을 수 있다. 내가 나를 다독이는 것도,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도 하루치에 불과하다. 길고양이에게 하루치 밥을 주거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하다는 하루치 감정을 선사하는, 그렇게 딱 하루치만 보태며 살면 된다. 어떤 날은 실패하고 어떤 날은 충만하겠지만 늘 새롭게 하루치를 리셋하며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이번 주말에 홍대 앞에서 버스킹을 한다네요."
기타를 가르쳐주는 형하고 같이 해보기로 했다고, 조금 전 태식에게서 온 문자를 보며 의사가 말했다. 닫혀있던 창문을 활짝 열자 봄 햇살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매주 금요일은 아이들이 바리스타 수업을 받기 위해 장애인 복지관에 가는 날이다. 저만치 앞서 뛰어가는 철구를 미애 샘이 종종걸음으로 쫓아가고, 지우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개 때문에 내 곁에 바싹 붙어서 걷고 있다. 귀에다 이어폰을 끼고 있는 예진이는 요즘 아이유가 나오는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들어보나 마나 아이유의 '마음을 드려요'가 무한 반복되고 있을 거였다. 노래처럼 늘 뭔가에 최선을 다해 마음을 주는 아이, 카카오톡 대문 사진도 아이유였다. 복지관에 새로 오신 바리스타 선생님에게 드릴 초콜릿 봉투를 가슴에 안고 있는 민정이는 어제 엄마 카드를 들고 나가 미용실에서 신부 화장을 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엔 신혼집을 보러 갈 생각이라고, 어쩌면 다음 달쯤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깔깔 웃었다. 예전에 한 번, 민정이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도대체 정상이라는 게 뭐예요, 샘?"
누군가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정상이 아닌가 봐….'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해 주었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지금 민정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4월의 신부처럼 행복해 보인다.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로 우리 아이들이 춤을 추듯 걸어가고 있었다.
<끝>
김양미
"현대인에 마음의 병 치유라는 절실한 문제의식 제공"
올해 최종심에서는 '비정상에 관하여'와 '이터널 선샤인', 두 편의 소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우선 '이터널 선샤인'은 섬세하고 안정된 문체로 안락사라는 가볍지 않은 제재를 흡인력 있게 풀어나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러 곡의 팝송을 삽입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작품 전체에 감성적인 깊이가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영화나 음악은 그 자체로 이미 존재하는 타인의 텍스트이며, 소설 쓰기에서 그것들의 활용에 의존하게 되면 자기만의 텍스트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진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소 감상적으로 흐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라 생각된다.
거기에 비해 '비정상에 관하여'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통해 강한 개성을 선보인다. '주의력 결핍으로 인한 과잉행동 장애'를 의미하는 ADHD를 직접적으로 다룸으로써, 이른바 각종 증후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병의 치유'라는 절실한 문제 의식을 제공하고 있다.
더욱이 유머 감각의 발휘, 인물들의 개성 부각, 대화문의 능란한 활용, 읽는 이들로 하여금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어서 보라고 설득하는 힘 등등, 좋은 소설의 요건들을 두루 갖췄다.
다만, 결말 부분에서 어떤 의미적 상황이나 사건을 제시하지 못하고 다분히 추상적이고 교훈적인 말과 상념을 통해 이른바 결말을 위한 결말로 마무리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촘촘한 그물로 짜나가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였기에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축하의 인사와 더불어, 더욱 정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구효서 소설가·최수철 교수
첫댓글 주의력 결핍 우세형인 대안학교 선생이 진료를 받은 후 뒤늦게 자신의 행동이 이해된다. "니 눈에도 내가 병신 같고 눈치도 없고 남들 힘든 거도 모르고 막 그래?" "새삼스럽긴 그걸 이제 알았냐!"
환자가 쓴 '비정상에 관하여'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하다는 하루치 감정을 선사하는 그렇게 딱 하루치만 보태며 살면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도대체 정상이란 무엇인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행복한 민정처럼,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