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밀어줘."
놀란 슈는 물었다.
"뭐라고?"
예슬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말 했잖아. 삭발해 달라고."
슈는 이제서야 예슬이 왜 이런 스타일을 하고싶었는 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고, 예슬에게 천천히 물었다.
"너 혹시... 암이야?"
예슬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어, 갑상선암이래. 그래서 본격적으로 항암치료하기 전에 기분전환이나 하려고 했지."
슈는 예슬이 귀찮아 질 것을 우려해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아무도 이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미용실 셔터를 내렸다. 슈는 삭발에 앞서 예슬의 머리에 있던 머리핀을 전부 빼낸 뒤 바리캉에 전원을 켰다. 바리캉은 슈의 마음과는 다르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예슬의 머리는 깨끗하게 밀렸다. 슈는 예슬의 쾌유를 응원했고, 예슬은 몇 번의 방사선 요법 끝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슈는 예슬과 같은 암환자, 특히 소아암 환자들이 탈모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예전부터 알고있었다. 그래서 예슬이 가고 난 뒤 자신의 시그니처였던 만두머리를 풀었다. 슈는 밝은 적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머리를 풀자 그 길이는 의자에 앉은 상태로 바닥에 닿았다. 슈는 자신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뒤 가위로 단 번에 잘라냈다.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사각거리는 소리는 슈가 들었던 그 어떤 머리카락이 잘리는 소리보다도 경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슈는 짧게 잘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곳저곳 세심하게 다듬었고, 고데기까지 써서 깔끔한 숏컷 스타일을 연출해냈다. 다음 날 미용실을 방문한 손님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좋은 뜻으로 모발기부를 했다는 말에 자신도 모발기부를 하고 싶다며 방법을 알려달라는 손님들도 많았다.
슈는 그렇게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된다. 슈는 마지막으로 들었던 빈의 목소리를 끝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