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어항속의 금붕어
― 시적 이미지
우리는 고금중외의 명작들과 학생친구들이 쓴 여러 수의 우수한 시작품들을 분석하면서 시적 언어와 시적 발견 그리고 시적 비유, 시적 상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시라는 사과 한 알을 손에 들고 요모조모 살펴보며 자세히 관찰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입 두입 먹어보며 사각사각한 육질과 달콤한 과즙 그리고 향긋한 향기까지 모두 맛보고 느낀 것이지요. 다시 말해 “시란 시인의 정서와 사상을 상징적이고 함축적이며 율동적인 언어에 담아 표현한 문학예술의 한 형태”라는 이론적 정의를 실제 작품을 통하여 감상하고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학생 여러분들의 “정서와 사상”을 “언어에 담아 표현”하는 일 즉 여러분들이 시를 쓰는 일을 슬슬 시작하여 보아야 하겠지요. 여기서 “표현”이란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공명을 일으킬 때에만 비로소 그 느낌이나 생각이 가치가 있는 예술작품으로 탄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느낌이나 생각을 자기만이 알고 입을 꾹 다물고 있거나 일기처럼 적어서 꽁꽁 숨겨만 둔다면 예술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고 따라서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느낌이나 생각이 표현되어 다른 사람의 가슴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나와 같은 감동을 일으킬 때에야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은 예술적 생명력을 얻고 존재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술이란 인간들에게 정서적, 감동적 작용을 통하여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것으로 예술가는 반드시 자기의 작품으로 이 목적을 실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소리로 미술이 선과 색채로 예술의 경지를 이루는 것과 같이 시는 언어로 예술의 경지를 이루는데 이것은 작품에서 청각이나 시각, 촉각 등 감각적인 체험의 매개물인 이미지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여기서 이미지란 말은 매우 중요한데 이 “이미지(image)”란 직접적 혹은 간접적 신체적 지각에 의해 일나난 감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을 가리킵니다. 인체의 감각은 눈, 귀, 코 등 감각수용기의 종류에 따라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 등으로 분류되는데 시적이미지란 이런 외계의 자극이 언어에 의하여 마음속에 떠오른 의식현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미지는 또 심상(心象)이나 영상(影像)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심상이란 외부의 사물이 우리의 마음에 비춰진 그림자란 뜻이고 영상은 어떤 사물의 모습이 자막에 비쳐져 나타나는 그림자란 뜻입니다. 다음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백공작이 날개 펴는
바다가 그립고 그리워
항시 칠색무지개를 그리며
련꽃 항아리에서
까무러친 상념이
툭― 툭― 꼬리를 친다.
안타까운 운명에
애가 타고 타서
까만 안공에 불을 켜고
자주 황금갑옷을 떨치나니
붉은 산호림속에서
맘대로 진주를 굴리고 싶어
줄곧 창 너머
푸른 남천에
희망의 기폭을 날린다.
― 리욱,《금붕어》, 전문.
중국조선족시문학의 정초자 리욱시인이 1936년에 쓴 이 시는 당시 식민지치하 젊은 지식인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구를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의 형상에 담아 그려내었습니다. 나젊은 시인은 자유의 바다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그립고 그리운” 바다가 보여주는 그림들 즉 바다의 이미지들은 “백공작이 날개 펴는” 듯이 찬란한 해살이 펼쳐지고 “칠색무지개”가 걸려 있으며 “붉은 산호림”이 깔려 있고 “희망의 기폭”이 날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당시 암흑한 일제의 통치에 억압받는 민족지식인은 한 마리 금붕어처럼 “항아리”에 갇혀서 “까무러친 상념”을 주체하지 못하여 “툭― 툭― 꼬리를” 치고 있을 뿐입니다. 금붕어는 “안타까운 운명에/ 애가 타고 타서/ 까만 안공에 불을 켜고” 몸부림치고 있으나 어디에도 해탈의 출구는 없습니다.
이처럼 이 시는 바다에 연계되는 열려있고 화려한 이미지들과 금붕어에 연계되는 닫혀있고 숨 막히는 이미지들의 선명한 대립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을 거부하고 희망과 미래에 대한 동경 즉 “줄곧 창 너머” “희망의 기폭이 날”리는 “푸른 남천”을 바라보는 시인의 간절한 동경을 그려내었습니다.
인체의 감각은 눈, 귀, 코 등 감각수용기의 종류에 따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으로 분류된다고 하였습니다. 시적이미지는 이런 외계의 자극이 언어에 의하여 마음속에 떠오른 의식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다양한 종류로 표현되는데 아래에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시각적 이미지
시각은 우리들의 지각활동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시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명암, 대소, 색깔 및 채도, 두터움과 엷음 그리고 움직임과 정지 등 눈에 보이는 형상과 현상을 언어로 보여주는 이미지로서 눈에 보이는 사물의 외형적인 모습을 그려내어 시각화하는 방법으로 체현됩니다.
마른 넝쿨
늙은 나무
어지러운 까마귀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사람 사는 동네마을
옛 길에
하늬바람
여위어 가는 말 한필
저녁 해 서녘에 기울고
애끓는 이 하늘가에 있어라
枯藤老樹昏鴉
小橋流水人家
古道西風瘦馬
夕陽西下
斷腸人在天涯
― 마치원(馬致遠), 《천정사 . 가을 생각(天淨沙 . 秋思)》, 전문.
중국 원나라 시인 마치원이 쓴 이 시는 여러 가지 경물들 중에서도 떠돌이 나그네의 처량한 심정을 가장 적절하게 담을 수 있는 경물을 선택하여 시인의 외로운 심사를 표현하였습니다. 시는 앞의 세 구절에서 다만 열여덟 글자의 한자로 아홉 가지 경물을 열거하였는데 이 “마른 넝쿨(枯藤)”, “작은 다리(小橋)”, “옛 길(古道)” 등 각기 다른 아홉 개 이미지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하나의 정체를 이루어냄으로써 쓸쓸한 기분을 한결 더 짙게 담아냈습니다.
2) 청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란 사물의 소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주로 들려지는 소리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통하여 서정자아의 심리상태를 그려내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들려지는 소리는 시의 분위기를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데 때로는 시적 대상의 일반적인 소리를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독특한 듣기를 통해 특수한 소리를 담아내기도 하며 서정자아의 마음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청각적 이미지는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모방하는 의성어의 사용이 대표적인 언어형식으로 되고 있습니다.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한족말로 우(嗚)―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퍼~엉(風) 불고
조선족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바람바람 분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는 새새끼들조차
중국노래 한국노래
다 같이 잘 부르고
납골당에 밤이 깊으면
조선족귀신 한족귀신들이
우리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저들끼리만 가만가만 속삭인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월의 거리에 넘쳐나는
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깔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
― 석화,《연변 3, ―기적소리와 바람》, 전문.
이 시는 우선 첫 련에서 기적소리 및 바람의 조선어발음과 한어발음의 차이로 중국내 민족자치구역의 하나인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특징을 드러내면서 소수민족과 주체민족의 부동한 점을 구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두 번째 련의 새들과 귀신들의 등장 그리고 세 번째 련의 유월거리의 풍경을 통하여 조, 한 두 민족이 연변 땅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함께 조국의 운명을 짐 지고 나가는 공동한 점을 나타내었습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 귀에 들리는 기적소리, 바람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우리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납골당에서 나누는 조, 한 두 민족귀신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통하여 연변이라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조, 한 두 민족인민은 결국 현실이라는 차원에서의 두 민족 간의 부동한 특징들보다 훨씬 더 크고 더 소중한 공동한 운명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3) 기타 다양한 이미지들과 공감각(共感覺)적 이미지
미각적 이미지는 혀와 같은 감각기관으로 달고 시고 짜고 쓴 등 미감(味感)을 느끼어 이루어지는 이미지이고 후각적 이미지는 코와 같은 감각기관에 의해 느껴져지는 냄새에 대한 감각이 이루어내는 이미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촉각적 이미지는 신체접촉에서 감지되는 단단하거나 부드럽고 예리하거나 뭉툭하고 또 차거나 뜨거운 등 무엇에 닿아 생성하는 느낌이 이루어내는 피부감각(皮膚感覺)적 이미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이미지들이 서로 어울려 표현되는 것을 공감각(共感覺)적 이미지라고 합니다. 다음의 작품에서 이와 같은 다양한 이미지들이 시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이런 이미지들이 시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을밤 별빛을
혀끝에 묻히면
소금가루처럼 짭짤하지만
가슴에 부딪치면
어머니체온 같은 날씨로
푸근하다
가을밤 별빛은
하늘의 소리가 촉촉이 젖어있어
피처럼 진득진득하고
가을밤 별빛은
빛이 빛을 업고
하얀 깊이로 무겁다
― 김일량,《가을밤 ―109》, 전문.
김일량 시인의 《가을밤》라고 제목한 련작시 중 109번째 작품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가을밤의 별빛을 “짤짤하지만”이란 시구로 소금가루의 짠 맛을 안겨주었다가 다시 “촉촉이 젖어”있고 “피처럼 진득진득”한 촉감과 함께 버무려내었으며 또한 가을밤의 별빛을 눈에 보이는 “하얀 깊이”로 시각화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다양한 감각으로 가을밤의 정취를 맛으로 그리고 피부로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의 힘입니다. 여러분들도 작품 속에 자기의 다양한 느낌을 생동하게 담아내는 련습을 많이 하기 바랍니다.
출처: 문복희 초우문학 원문보기 글쓴이: 맞춤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