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
생몰년 | 1786-1848(정조10-헌종14) |
본관 | 밀양(密陽) |
호 | 화담(華潭) |
활동분야 | 승려 |
1786(정조 10)∼1848(헌종 14). 조선 후기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선승. 성은 밀양박씨. 호는 화담(華潭).
어릴 때부터 마늘·부추 등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않았으며, 18세에 출가하여 양주 화양사(華陽寺)에서 성찬(性讚)의 제자가 되었다.
그뒤, 율봉(栗峯)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지탁(智濯)의 법통을 이었다. 언제나 계행(戒行)을 청정하게 하였고, 29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도를 하였다. 한때 지리산에서 서봉두옥(瑞鳳斗玉)으로부터 《선문염송 禪門拈頌》과 격외선(格外禪)을 배웠으며,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寶蓋山)의 석대암(石臺庵)에서 수년간 《화엄경》과 《열반경》을 공부하는 등 선교겸수(禪敎兼修)를 지향하였다.
또한, 당시의 선사들처럼 유·불·도 삼교일원론(三敎一元論)의 사상을 가지고 유교 등의 전적을 두루 섭렵하기도 하였다.
그뒤 해인사에서 좌선중 여래의 본성이 곧 자신의 본성임을 깨달았으며, 보문사(普門寺)에서 법회를 가져 궁중으로부터 향촉과 《능엄경》을 하사받았다.
1815년부터 여러 강원에서 조실(祖室)로 있으면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주관하였는데, 55군데에서 83회나 열어 대중의 교화에 힘썼다.
1845년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다가 곧 동래 범어사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말년에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현등사(懸燈寺)를 열반처로 정하고 선정과 지혜를 길렀으며, 제자들에게 열심히 정진수행할 것을 당부하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법맥은 휴정(休靜)―편양(鞭羊)―풍담(楓潭)―월담(月潭)―환성(喚醒)―완월(玩月)―한암(漢巖)―화악(華嶽)―경화로 이어진다.
저서로는 《천지팔양신주경주 天地八陽神呪經註》·《게송육십칠품 偈頌六十七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