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박진성
그래 그날 풀밭에
네가 귀를 잘라두고 간
그날부터였어
호주머니에 네 귀를 넣고
기차를 타고 해변에 다다를 때까지
모든 소리가 호주머니로 기어들어왔지
밀랍으로 만든 귀마개를
네 귀에 채워두었는데
밀랍은 녹고 네 귀가 자라기 시작했어
기차도 나목도 새들의 서식지도 뱉어내는 너의 귀
쇄빙선도 파라솔도 손전등도 뱉어내는 너의 귀, 세계의
모든 사물은 귀에서 쏟아지고
새로 배치된 것들은
소리들을 뱉으며 앓기 시작했지
쇄빙선은 땡볕의 파라솔을 밀고 가고
새들의 서식지는 손전등 전구로 모여들고
나목들은 기차에 닿으면서
계절의 소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런데 네 몸의 소리만 네 귀에 없다
없어서 웅웅대는 소리들,
없어서 계속 들리는 너의 소리들.
—《시와 환상》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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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 1978년 충남 연기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목숨』『아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