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왕실도자 / 서양 도자
국립고궁박물관은 7월29일부터 10월4일까지 개항 전후 조선왕실의 도자기 변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특별전,
'신(新) 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서양식 도자기'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과 프랑스 수교(1886)를 기념해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보낸 '살라미나 병'과
필리뷔트(Pillivuyt) 양식기 한 벌, '백자 색회 고사인물무늬 화병' 등 그동안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근대 서양식
도자기 40여 점이 처음으로 전시되며 이를 포함해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중국에서 만들어진 서양식 도자기 등
약 310건 400점의 소장 유물이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도자기는 사용하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기능과 형식이 크게 달라지는 실용기로 당대 사회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내 최대 근대 도자기 소장 기관으로 이번 특별전은 개항 이후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노력했던 조선의 생생한 이야기를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陶磁器)'를 통해 5부의 전시로 조명하고자 기획됐다.
로비에 132년 전 조선과 프랑스 수교(1886)를 기념해 프랑스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로 보낸 아름답고 화려한 백자 채색 꽃병인 '살라미나(Salamis) 병' 모형을 세워 놓았다.
전시장 입구
전시장 출구
일동기유(日東記遊)
조선 고종 13년(1876)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기수가 발전된 일본의 문물을 시찰하고 기록한 책.
보빙사 일행에 대한 기사가 실린 미국 뉴욕에서 발행된 잡지(1883)
1900년 파리박람회 기념 주화(프랑스, 1900년)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제작한 주화이다. 한 면에는 왕관을 쓴
여신상을 양각하였고 위쪽에는 'LEXPOSITION DE PARIS 1900(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이라는
글자를 썼다. 다른 한쪽 면에는 열기구와 전신주, 카메라 등 새로운 근대 기물을 양각하였다.
제물포 전경(1894년)
영국 주간지 'illustrated London News'의 1894년 9월 29일자 기사이다. 인천(仁川) 제물포항을 그린
흑백 삽화를신문 양면에 싣고 관련 기사에는 제물포와 강화도, 부산 등 조선의 개항장에 대해 언급하였다.
조선은 개항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며 급속도로 변화하였다.
약장합편(約章合編), 대한제국, 1898년(광무 2) / 좌측
1876년 이후 조선이 각국과 맺은 조약을 모아 간행한 책이다. 일본과 미국의 조약 내용을 명시한 후 영국, 독일,
포르투갈,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와 맺은 조약에 관해서는 일본과 미국과의 차이점만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조선책략(朝鮮策略), 황쭌센 조선, 1880년(고종 17) / 우측
청 주일공사관 참찬관(參贊官)을 지낸 황쭌센(1848~1905)이 지은 책으로 조선과 일본, 청이 러시아 남하정책에
대비하여 취해야 할 외교정책을 기술하였다. 조선이 서구의 여러 나라와 공평한 조약을 바탕으로 기술 산업을
키워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최초 공개하는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 프랑스, 1878년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제작소에서 제작한 화병이다. 1888년 조선과 프랑스가 조약을 체결한 후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수교예물이다. 세브르도자제작소의 출고 기록에는 1878년 제작된
'살라미나 병' 1점을 한국의 왕(王)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화병(花甁)의 내부에 찍힌 녹색 마크의 S는 세브르를, 78은 1878년에 제작한 것임을 의미한다.
조선왕실의 서양식 만찬
조선왕실의 서양식 만찬은 프랑스와 러시아식 정찬 형태가 섞인 코스 요리로 보인다.
프랑스식 정찬은 3~4개의 코스로 해당하는 모든 음식을 식탁 위에 올리고 개인 접시에 덜어 먹었다.
주전자는 디저트 코스에서 차나 커피를 마실 때 사용하였다.
몸통이 둥근 주전자는 차를 담는 용기로,
몸통이 긴 주전자는 커피를 담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만찬을 위한 프랑스 회사 필리뷔트의 식기 세트는 백자에 금색 선을 두르고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자두꽃) 무늬를 장식하였다.
현재 모든 구성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코스별로 4~6인분의 음식을 한 번에
차려놓고 각자 음식을 덜어 먹는 프랑스식 만찬용 식기 세트로 보인다.
반면 러시아식 코스 요리는 참석자의 자리에 요리한 음식을 차례대로 내는 형태로
식탁 위에 개인접시와 잔, 커틀러리 등을 미리 세팅하였다.
조선왕실의 연회는 프랑스식 만찬의 음식을 러시아식으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식탁이 풍성하게 보이도록 일부 음식을 미리 차려 놓기도 했다.
창덕궁 대조전 권역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방을 그대로 옮긴 구조에 '철제 제과틀', '사모바르' 등
각종 조리용 유물을 전시해 당대의 창덕궁 대조전 주방 속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궁중의 서양식 연회
개항 이후 조선왕실은 세계와 소통하는 창구로서 크고 작은 서양식 연회를 개최하였다.
왕실 내부 행사는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였고 다른 국가와 친분을 쌓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연회(宴會)는 서양식(西洋式)으로 열었다.
전통 연향에서 잔치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아랫자리(下席)에 참석자의 자리와 상을 따로 마련했던 것과 달리
서양식 연회는 하나의 식탁을 사용하였다. 전통 궁중잔치에서는 성별로 참석자의 자리를 엄격하게 분리했지만
서양식 궁정연회에서는 남녀가 함께 자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파도무늬 위생기
대야와 물을 담아두는 병, 오수(汚水)를 담는 통이다. 대리석이나 나무, 금속을 사용하여 만든
세면대 위에 대야와 물병을 포개어 사용하였으며 사용한 물은 오수통에 버렸다.
오수통은 더러운 물이 튀지 않도록 구멍이 뚫린 뚜껑을 몸체 위에 포갤 수 있게 만들었다.
파도무늬 대야 모습
꽃무늬 위생기(영국, 1891~1913년 경)
영국(英國)에서 제작한 위생용 도자기이다. 입구 가장자리에 금색(金色) 선을 두르고
노란색, 하늘색, 붉은색, 갈색, 보라색으로 채색한 꽃무늬와 덩굴무늬를 그려 넣었다.
꽃무늬 오수통(영국, 1841년 이후)
영국(英國) 메이플 앤 컴퍼니에서 제작한 침실용 오수통이다. 몸체 윗부분에 나무 손잡이가 달린
양동이 모양으로 제작하였다. 가장자리에 녹색 선을 두르고 작은 장미꽃무늬를 그려 장식하였다.
창포무늬 오수통(프랑스, 1891~1932년)
프랑스 윌리엄 제랭 앤 컴퍼니에서 생산한 오수통이다. 침실에 두고 사용한 위생기 중 하나로
오수를 담아두거나 버릴 때 사용하였다. 몸체 윗부분에는 이동이 쉽도록 나무 손잡이를 달고 작은 구멍이
뚫린 오목한 뚜껑을 위에 포갤 수 있게 만들었다. 몸통 바깥면에는 보라색 창포 꽃을 그렸다.
백자 꽃, 새, 길상무늬 대야(중국, 20세기 초)
궁중에서 사용했던 중국산 대야로 입구 부분이 바깥으로 벌어진 형태이다. 입구부터 안쪽까지
갈색 선을 려러번 둘러 구획을 만들고 박쥐, 壽(수), 꽃, 열매, 새(鳥) 등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백자 꽃, 새, 길상무늬 대야(중국, 20세기 초)
백자 꽃, 새, 길상무늬 대야(중국, 20세기 초)
백자 꽃 새무늬 의자(중국, 20세기 초)
궁중에서 사용한 중국산 도자기 의자이다. 배 부분이 살짝 원통 형태로 칠보, 병, 복숭아, 화분, 서책,
부채, 나비무늬 등을 장식하였다. 조선시대에 중국산 법랑자기는 청 황제의 하사품으로 함부로 수입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었으나 개항 이후 법랑 도자기의 수입과 사용 양상에 변화가 생겼음을 보여준다.
매화가지무늬 앙트레와 접시
둥글고 납작한 몸체와 열매 모양 꼭지가 달린 뚜껑으로 구성된 앙트레(entree 탕기湯器)와 커다란
원형 접시이다. 앙트레는 코스의 메인요리를 담는 식기이며 조리한 육류나 조류, 채소류를 담았다.
원형 접시 또한 커다란 크기로 보아 메인요리를 담는 접시로 보인다.
꽃무늬 튜린(프랑스 지앙, 1886~1938년)
튜린(Tureen)은 스프나 스튜, 소스 등을 담는 그릇인데 이 튜린은 소스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지역 지앙(Gien)은 영국인 토마스 에덤 홀름이 1821년에 도자기 공장을 설립하면서
도자 산업이 발달하였고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을 위한 맞춤 도자기를 생산하며 명성을 떨쳤다.
파란선무늬 식기
영국 회사 브라더스에서 제작한 높은 굽 접시와 튜린이다. 코발트 안료로 굵고 가는 선을 둘렀다.
프랑스 회사 필리뷔트(Pillivuyt)에서 수입한 식기와 마찬가지로 만찬을 위한 식기 세트이다.
꽃무늬 뚜껑(프랑스, 1920~1926년) / 중앙
프랑스 회사 아빌랑은 1842년 '데이비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도자기를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 세웠다.
뚜껑에 그려진 장미꽃 가지는 1899년부터 생산한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제품 라인의 무늬이다.
현재 뚜껑만 남아 있지만 크기로 보아 여러 명을 위한 수프나 스튜 등을 담는 식기 뚜껑으로 보인다.
백자 오얏꽃무늬 식기
수출을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인 노리다케에서 제작한 서양식 식기이다. 도자기에 조선왕실의
상징인 오얏꽃무늬를 장식하여 왕실에서 주문 제작한 식기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필리뷔트
식기와 형태와 양식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본떠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백자 누각(樓閣) 산수무늬 튜린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로 수프나 스튜를 담는 서양 식기인 튜린의 형태에 전통적인 소재인
산수화(山水畵)를 그렸다. 뚜껑과 몸체에는 강가에 자리한 번성한 마을 풍경을 화면 가득 그렸고
뚜껑 가장자리에는 반원형의 구멍을 뚫어 숟가락이나 국자를 고정시킬 수 있게 하였다.
백자 꽃무늬 꽃모양 접시(중국, 20세기 초)
중국에서 수입한 식기로 바깥으로 벌어진 꽃잎 형태의 그릇이다. 가장자리에는 금채를 두르고
접시 안쪽에는 화려한 꽃을 그려 장식하였다. 박쥐, 매화, 복숭아, 나비와 같이 전통적인 소재를
그렸지만 디저트를 담는 양식기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조선이 서양식 건축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을 장식한 것은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이를 통해 일본 아리타, 교토, 나고야 지역에서 제작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서양 수출용 화병들이 국내에 이처럼 다량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칠보 화병(七寶 花甁) / 일본, 19~20세기
금속에 유리질의 유약을 사용하여 등나무와 들국화, 백합 등을 표현한 화병이다. 도자기는 아니지만
크기가 크며 한 쌍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도자기 장식 화병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이 화병은 창덕궁 인정전(昌德宮 仁政殿)에 장식된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남아있다.
왕실(王室)에서 대형 화병들을 궁궐 실내(宮闕 室內)에 어떻게 장식하고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전시회를 나서면서 다시 본 '살라미나 병' 모형
(사진/청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