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닫는 날,
예년 보다 조금 일찍 가을 냄새가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연이은 두번의 북행 후 이번에는 염소머리를 남쪽으로 돌립니다.
작년 가을 stoc정투 후 1년 만에 오르는 죽령~
그래도 아직 8월인데 메시자켓 사이로 파고드는 고갯바람에 벌써 냉기가 느껴집니다.
죽령휴게소가 폐업했네요.
아래쪽 소백산 국립공원 죽령분소 까지 내려가 온수 방출하고~
죽령주막을 지나는데 주막 맞은편에 있는 영남제일관 누각의 지붕 공사가 한창입니다.
기와를 새로 얹는 중인 듯~
3년 전 봄까지 이렇게 멀쩡한 지붕이었는데 그새 기와를 새로 얹어야 할만큼 낡은 건지...?
죽령을 내려와 풍기를 지나 영주로 향하는 길,
이 구간은 아마도 유사시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하는 듯 합니다.
영주~봉화간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잘 뚫려 있습니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빠져 영양으로 가는 길은 교통량이 거의 없는 한적한 와인딩 구간이 라이딩의 재미를 더해주네요.
첫번째 경유지 영양 용화동 도착~
지도에서 찾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고장인데 두발이와 함께 벌써 세번째 영양을 찾아왔습니다.
일월산 자생화공원
벌써 단풍이 든건 아닐테고,
아마도 당단풍이라는 나무인가 본데 식물에는 당췌 문외한이라~
여기는 이런 곳이라는군요.
그러니까 저기 맞은편에 보이는 거대한 성벽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일제시대에 만들어져 1976년 까지 광물을 캐고 분리하던 선광장인데,
채산성 악화로 폐업 후 그로 인해 오염된 이 땅을 매립하여 자생화 공원으로 꾸민 곳이라는 설명이지요.
경사진 산비탈을 따라 위압적으로 버티고 선 회색 구조물이 밝은 대낮인데도 음침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네요.
양쪽 옆으로 계단이 있는 걸 보니 위쪽 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 봅니다.
코스모스 핀 정자에 간식 보따리를 잠시 내려놓고 위로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런 역사를 가진 곳이라네요.
거대한 가마솥(?)이 세개,
밑에 아궁이처럼 뚫린 구멍은 불을 때는 구멍인지, 광물을 녹여 배출하는 통로인지 기초 지식이 없으니 알 수가 없네요.
한참 동안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
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폐허로 남은 구조물을 바라보니 80년 전에 이런 시설을 만들어 이 땅의 자원을 약탈해 간 일본놈들의 만행과, 요즘 들어 급격히 나빠진 한일관계의 끝을 보는 듯 하여 심경이 복잡해지네요.
반대편 계단을 내려와 옆에 있는 탑을 보러 가는 길에 비쩍 마른 어린 들고양이가 쓰레기통 난간에서 곡예하는 중~
밥은 먹고 다니냐...
여기 온 것은 이 탑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고추의 고장 영양답게 고추밭 한가운데 숨은그림찾기 하듯 탑이 서 있습니다.
고추~~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는 없지만),
고추 보다 조금 더 자란 아담한 삼층탑이 나타납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 용화동 삼층석탑
크기는 작지만 통일신라탑의 형식을 충실히 갖춘 이쁜 탑입니다.
상륜부가 결실되었고 탑의 크기에 비해 하층기단이 다소 둔중함을 느끼게 하지만,
둥글게 굴린 1층 탑신 받침이 직선 위주의 딱딱함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있네요.
탑 구경을 마치고 용화동을 나와 약 35km,
영양의 젖줄 같은 반변천을 따라 달리다가 영양읍내를 지나 일월초등학교 뒤편의 신구리 마을 도착~
네비언니가 가라는 대로 어느 골목으로 들어와 남의 집 처마 밑에 염소 고삐를 묶고,
이번에도 숨은그림찾기 하듯 탑을 찾습니다.
검은 비닐하우스와 감나무 사이 개구멍을 지나 길도 아닌 잡초 울타리를 헤치고,
마을 안쪽 어수선한 공터에 선 탑을 마주합니다.
탑이 받치고 선 하늘이...
파란 도화지에 하얀 먹물을 푹 찍어 왼쪽 오른쪽으로 휙휙 내지른 조물주의 狂草~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4호 영양 신구리 삼층석탑,
앞서 본 용화동 삼층석탑에 비해 보존 상태와 조형미에서 격이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은 불상(보살상?)이 탑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데 두상이 파손되어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예전 모습(아마 80년대쯤인 듯)을 보면 상부기단의 면석 하나가 없고 불상이 기단 앞에 마치 감실 부처처럼 앉아있는데 지금은 면석을 만들어 넣고 불상은 탑 앞으로 자리를 옮겨놓은 모습입니다.(사진 출처-국가문화유산 포털)
위 사진을 보면 삼층 탑신은 노반석을, 그것도 뒤집힌 모습으로 탑신 대신 끼워놓았는데 역시 복원을 통해 탑신을 만들어 넣고 노반은 제 위치로 올려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발은 예전 사진에도 보이지만 원래 이탑에 놓였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상부 기단 각면~
두번째 사진은 복원된 부분인데 콘크리트판을 만들어 끼워놓았네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급에 따라 이렇게 대접이 다른 것을 보니 씁쓸해집니다.
그래도 이렇게 문비 장식이 뚜렷한 걸 보면 나름 갖출 건 갖춘 탑인데....
탑 둘러보기를 마치고 옆에 있는 건물을 보러 갑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1호 약산당
안내문구 중에 장례원(掌隷院)이라는 관청 이름이 있는데 '예(隷)'자가 '노예(奴隸)'를 쓸 때 사용하는 한자이니 '장예원'으로 읽는 것이 맞지 않나 싶어 검색해 보니~
제일 먼저 이렇게 뜨네요. ㅎ
장례원(掌隷院)은 "조선 시대, 노비를 담당하던 정3품 관청을 말하며 설립 연도는 조선 세조 13년, 서기 1467년이다.
사헌부, 한성부과 함께 사법삼사로 불린다. 이 기관은 조선 영조 40년, 조선 초 형조 소속의 도관이 1466년(세조 12)에 변정원으로, 다음해에 장예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출처-위키백과)"라고 하는군요.
근데 같은 이름을 가진 장례원(掌禮院)도 있으니, "1895년(고종 32) 관제개혁 때 종래의 통례원(通禮院)이 담당하던 궁중의식·조회의례(朝會儀禮)뿐만 아니라 예조에서 장악하고 있던 제사와 모든 능·종실·귀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라는군요.
그래서 역사 공부는 한글 전용만으로는 답이 안나오는 문제입니다.
약산당이라 했는데 현판에는 지산서당이라 써 있습니다.
문이 잠겨 있으니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담 너머로 구경하기~
골목길을 돌아나와 안동-예천-문경을 거쳐 복귀합니다.
소소한 잡학지식으로 영양 보충한 영양행,
뽀나스로 66,666km 찍었네요.
2019. 8월을 마감하며, 여주 스카우트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토요일은 나갑니다.
시간 되시면 함께 하세요.
돌탑이 보물이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관리가 허술하네요~^-^
시간이 된다면 동행하고 싶기는 합니다.~^-^
글쎄요, 곰팡내 나는 탑 구경이 무슨 재미가 있으실런지...? ㅎ
오늘 아침도 잘 보고 갑니다..
그나마 왕복 60km 출퇴근을 염소로 하는데 이~~~ 무슨 가을 장마랍니다 ㅠㅠ
남쪽나라는 겨울에도 탈 수 있는 건 부러운데 다른 계절에는 비가 너무 자주 오지요?
덕분에 눈여행 잘했습니다
옛부터 우리나라가 잘산 나라였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저 돌을 깎고 쌓아 탑을 만드는게 여간 여유가 없으면 되는게 아닐텐데 하는 생각이드네요
그런가요?
탑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재미있네요.
통일신라 부터 고려 초,중기까지 불교가 국가적 관심과 재정적 지원을 받던 시기의 탑은 규모나 예술적으로 뛰어나지만 그 이후의 탑은 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이 많지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불탑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