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전 나는 삼성그룹 산하 보험회사를 잠시 다닌 적이 있다. 용인경영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을때 건물에 걸려 있던 기업사훈이 <사업보국. 인재제일> 이었다. 삼성이라는 회사는 사람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사람키우는데 엄청난 돈을 투자해왔다.. 그후로 생긴 것이 해외전문가 과정이라고 하여 직원들을 매년 30여명씩 선발하여 미국.유럽.중동.일본지역에 1년씩 파견보내 오로지 현지언어와 현지 경제사정. 역사.문화를 스스로 습득하게 했다. 월급외에 숙박비.일일수당과 사람들 사귀는데 쓰라고 교제비도 지급했다. 그때 처남도 삼성에 입사하여 일본에 파견되어 지냈고 그후 정식으로 후쿠오카 지사장으로 발령받아 처남댁.두아들이 3년간 주재원가족 생활을 했다.
해외 주재원근무시 대다수가 결혼한 후라 아이들이 어려서 현지 국제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이들이 성장과정에서 머리에 자연스럽게 입력된 현지언어는 어른보다 습득이 빠르고 외국아이들과 지내게 되어 해외생활의 적응하는 속도가 솜에 물이 스며들때 처럼 그 정도가 빠르다.
지난주말 요코하마에서 처남아들의 결혼식이 있어 축하사절단 14명에 끼여 다녀왔다. 처남아들직업은 IT회사의 엔지니어이고 일본인 신부는 인턴과정의 의사로 5년전 국제교류이벤트에서 만나 데이트를 시작하며 사귀기 시작하여 작년3월 파리 에펠탑에서 프로포즈를 했고 오늘에 백년가약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 결혼식은 당사자들의 주도로 모든게 진행되었고 결혼식후 피로연까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정확히 3시간반동안 진행되었는데 미리 좌석배치를 내이름이 적힌 꽃한송이를 들고 입장하여 지정좌석에 앉는 것으로 피로연은 시작되었다.
제일 인상에 남는것은 신랑신부가 세상에 태어날때 몸무게만큼의 쌀포대를 마치 갓난아기처럼 안고 입장하여 양가 어머니께 전해주며 밥잘먹고 키워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 잘살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었다. 4kg.3kg의 고시히까리 쌀포대는 결혼식용으로 판매한다는것이다. 이들 신혼부부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랐지만 이제는 하나가 되어 여러가지 이질적인 문화풍습을 배우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잘살기를 45명의 축하객은 다같이 기원했다.
결혼식전 낭패한 일도 벌어졌는데 내가 갖고 간 구두가 식장도착하자 신발바닥 고무가 낡아 부서지고 바닥이 다들어나게 되었는데 여직원이 날 전담하여 구두대여점서 구두를 급히 가져왔고 5500엔의 청구서와 영수증을 갖고와 카드결제를 해서 위기의 순간을 모면할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 신발장의 오래된 구두를 전부 과감히 버리는 촌극을 벌인게 이번 일본여행에 있을수 없는 대사건이였다.
첫댓글 일본의 결혼 예식도
조금씩 달라요.
쌀포대를 파는 경우도 있군요.
우리와는 달리 시간도
길고 스타일도 다르지요.
구두는 시간이 지나면 삭고
해서 몇년씩 나두고 안 신었다면 손으로 만져보고 획인 했어야 해요.
오랫동안 묵은 신발은
다 미련없이 버려야 해요.
뭐든지 집안에 묵혀두면 해롭다는걸 요번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정리하면 살겠습니다.
언덕저편님 다양한 경험을 하시네요 ㅎ
비싼 신발도 오래 사용 안하면 삭아서
못쓴다 합니다 일본결혼식의 풍경도
새롭고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일본결혼식은 철저히 초대받은 손님위주입니다. 그래서 축하금도 우리나라 다섯배정도 쎄구요..
등산화 뿐이 아니고 구두도
점검해 버려야 겠어요
신발 정리하러 가자.
버리며 살자.. 우리나이를 실감합니다.
난 아직 산에 다니니 냅둘것이고 구두는 개도 선볼 날있다고 하나쯤은 있어야겠죠😁
신발도 묘하게 신던것만 신는 버릇이 있죠..
오래전 우리 딸 결혼식이 생각납니다
오다이바 도쿄베이에서 했는데
피로연까지 끝나고 나니 하루가 다 가더군요 ㅎㅎ
좋은 경험 하셨습니다 덕분에 옛 추억이 생각 납니다 감사.
따님을 일본서 혼사를 치러 제가 쓴글을 보고 감회가 새롭겠어요...
@언덕저편 1
맞아요 그때 결혼해서 낳은 손주들이 25살 15살이니
참 세월 빠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