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가 세계 선교를 시작하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오겠다는 말씀은 1844년 뮐러의 재림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미국 국내에서만 일어난 현상이기에 아직도 각 길은 멀고도 요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교회 조직이 필요하여 1863년에 바벨론에서 나온 일련의 무리들이 실망의 분위기 속에서도 계속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오는 과정이 있던 중에 북미에서의 재림교회가 다시 유럽으로 번져날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 일에 초석을 세운 이가 체코우스키이고 후에 앤드류스 목사가 세계 선교의 꿈을 안고 자신의 부인이 죽은 후에 자신의 자녀 둘을 데리고 자원하여 스위스로 가게 된다. 엔드류스는 그곳에서 체코우스키가 전도하여 얻은 영혼들을 만나게 되고 딸의 도움을 받아 책자를 만들어 재림기별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1876년에 스위스로 건너가서 여러 지역인 이태리, 독일, 영국, 불란서 등을 여행하면서 혹사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차례 미국을 다녀와서 잠간 회복을 한 듯 보였으나 1883년 10월 21일 일요일 황혼이 지는 때에 운명하였다. 나이 54세였다. 1881년에는 재임스 화잇이 사망하였다. 거목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비극을 맞았었다. 올프 묘지에 그의 무덤이 안장되어 있는바 그곳에 기록된 비문에는 “지금 나을 수 있는 자들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 일할 시간은 짧으며 밤이 오리니 그때에는 아무도 가까이에서 일할 수 없다. 낮이 있는 기간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그때에 어떠한 방법으로 저들 몇을 구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앤드류스의 사망이 있은 후에 재림교회는 세계 선교에 대한 것을 구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체코우스키도 사망하고 앤드류스도 사망한 후에 재림교단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강에 대한 필요가 등장하였다. 세계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원하여 선교사로 가는 일이 필요하였다. 언어에 대한 중압감, 사업 자금에 대한 충당 등 당면한 많은 일들이 산적되어 있었다. 수없이 많은 여행을 하여아먄 한다. 재림교회의 본산은 베틀 크릭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앤드류스 목사에게는 사랑하는 딸 메리가 있었다. 메리가 영양 실조와 어려움으로 몇 년 되지 않아 죽어 엔드류는 팔이 하나 잘라진 격이 되어 회중들에게 호소하여 선교의 불을 질렀다. 유럽의 모든 지역으로 복음이 들어갈 전초기지를 닦아 놓고 있었다. 미국으로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가 유럽에서 건너온 자들이므로 저들의 원래의 나라에 대한 복음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열거된다. 요한 마태슨은 노르웨이에서 소책자를 전한 분이다. 엔드류와 함께 그곳을 여행하면서 돈을 모아 미국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인쇄하는 방법을 배워 자신의 가족이 사는 건물 안에서 인쇄기를 설치하여 모든 불편 중에서도 확고하게 재림사상을 심어놓았다. 러시아에서는 이태리에서 장사하기 위하여 여행하던 로무알도 비르도리와 전직이 메노나이트 신자인 게하르드 폐르크가 있다. 앤드류와 체코우스키가 바르토리를 얻었다. 신문을 보내어 재림의 사상을 던진 것이다. 신문에서의 기사의 내용은 메노나이트 신자를 속인다고 하여 오해를 받았으나 페르크는 건초더미에 숨어서 세 천사의 기별을 읽고 베틀 크릭을 지원하였다. 그때에 베틀 크릭에는 독일에서 이민 온 콘라디 라는 분이 아이오아에서 나무를 쪼개다가 안식일을 받아들이고 교인이 되어 주위의 많은 영혼들을 얻는 놀라운 은사를 발휘하였다. 콘라디가 폐르크와 연결하여 열심히 일을 하여 침례를 주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나 콘라디는 그 후에도 수십년 동안을 유럽에서 재림사상의 지도자가 되어 많은 공헌을 이룬 분으로 여러 권의 책도 저술하였다.
터키에는 미국에서 안식일 기별을 받아들인 데오도르 안토니가 있다. 그는 산호세에서 신발을 수선하던 분이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안식일을 받아들였다. 홍콩에서 활동하여 놀라운 선교를 담당한 분이 아브람 라루이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인물이다. 사실 우리들이 믿는 신앙이 누구로부터 전승되었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한국에서의 복음의 전도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아브람 라루인 것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내가 스스로 잘나서 믿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영적 세계에서 나를 나 되게 한 은사를 모르는 자는 배은망덕한 후래 자식과 같아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라루는 시골 사람으로 직업이 선원이나 평상시에는 나무를 쪼개는 자였다. 러브보러우가 골덴 웨스트에서 재림 기별을 전함을 들었다. 그는 중국에 대한 선교를 지원하였다. 중국은 당시에도 거대한 나라였다. 자신이 그곳에 가서 일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으나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에 거절당하였다. 그러던 그가 처음에는 좌절하였으나 태평양 섬 한 곳에서 일할 수는 있었다. 그가 전에 하와이에서 살았기에 그곳을 희망하였다. 호놀루루에서 문서전도로 재미를 보아 윌리암 할례이에게 인계하고 자신은 홍콩으로 발을 옮겨 수없이 배가 드나들던 홍콩에서 선원들을 상대로 전도하여 많은 영혼들을 얻었다. 한국에서 복음이 전래된 경위로는 러브보러우 - 아브람 라루 - 그래인저 - 쿠니야 - 이응현과 손흥조로 이어진다.
아프리카 선교 역사의 주인공으로는 한나 모아가 있다. 한나 모아는 앤드류스 목사의 안식일의 역사라는 책 한 권을 받았다. 헤스켈로부터도 다른 우편물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일요일을 지키던 자인데 갑자기 토요일을 지키는 일이 용이하지도 않았으나 점차 재림교인이 되기로 작정을 한다. 그러다가 오스트랄리아인인 알렉산더 딕손이라는 분을 만나게 된다. 그녀가 리뷰지에 자신이 개종한 경험을 실린다. 그녀가 세계 선교에 꿈을 가졌던 시기가 1864년으로 언급된다. 그는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렸다. 새들은 노래하며 개구리는 소리내어 울며, 고충은 윙윙거리며, 꽃들은 꽃망울을 피우고 있고, 모든 자연은 미소를 짓고 있다. 단지 사람만이 악하다. 모든 자연은 노래하는데 악한 사람이 감당하여야 하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라고 하였다. 그녀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의 다른 선교 지역들을 방문하면서 책을 남겼다. 미국으로 돌아와 랑카스터에서 침례를 받고 문헌을 나눠주는 일을 하다가 후에 베틀 크릭으로 가게 된다. 그녀가 베틀 크릭에 왔으나 마땅한 일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화잇 부인은 그녀의 소식을 전하여 듣고는 슬퍼하기도 하고 그녀를 박대한 일에 대하여 교회를 나무라기도 하였다. 그녀는 화잇 부인을 대면하면서 일찍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놀라운 믿음의 여인을 사람들이 외면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러한 그녀가 심어 놓은 선교의 씨는 죽지 않았다. 누가 그 뒤를 이어나갔는가? 러시아에서 회사를 차려 이곳저곳으로 장사하기 위하여 여행하던 로무알도 바르토리가 아프리카 대륙에 선교의 불을 질렀다. 리브톤이라는 분이 이태리 나폴리에서 앤드류스 목사로부터 안식일 기별을 받았고 그의 딸이 1878년 에집트로 갔다. 리브톤이 1882년 외국인의 폭동에 대항하던 중에 죽음을 당하였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윌리암 헌트가 광부로서 광맥을 캐고 있었다. 그는 라루와 같이 러브보로우로부터 진리를 받았던 분으로 자신의 경비로 주를 섬겼다. 아프리카에서는 피터 웨젤, 반 드루텐, 아프리카의 농부들이 자신의 언어로 안식일에 대하여 배우고 있었다. 이곳 웨쩰 씨는 덴막의 개혁교회에 속한 분으로 우유를 열심히 짜던 분이다. 이웃인 드루텐을 알아 안식일에 대하여 들었다. 두 사람은 세상 사람들은 안식일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이 지키다가 윌리암 헌트를 만났다. 이렇게 해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교인이 되었고 저들은 디아야 몬드 광산을 팔아 교회를 위하여 헌신한 분이다. 켈록 박사를 후원하였다고 한다.
위에서의 아프리카의 선교는 아프리카로 이주한 이들과 저들 후손에 의하여 안식일이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하여 헌신한 이로는 영국인 바이오린시스인 죠지 재임스가 있다. 그는 미국에서 재림교인이 된 자이다. 1890년 초에 대총회 해외전도부에서 일을 하던 중 선교사를 지망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거절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원주민을 상대로 노래하는 방법을 배워주며 기쁨으로 봉사를 하였다. 그러던 그였는데 그만 항해하던 중에 마랄리아에 걸려 외롭게 아무도 지켜보는 자 없는 곳에 무덤 표시도 없는 채로 장사되고 말았다.
비그리스도인을 상대로 선교 무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시기는 1894년이다. 1844년 이후에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다. 다음에는 인도의 힌두인들을 위해서도 선교의 문이 열려졌다. 오스트랄리아에서는 알렉산더 딕선이 한나 모아로부토 기별을 받아 1860년부터 설교하면서 1886년에 가서야 히스켈 가족으로부터 복음이 전파되었다. 1891년에서 1900년까지 엘렌 화잇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죠지 재임스는 자신의 경비로 아프리카로 뛰어들었다. 그가 갈 때에 대총회의 러렌스 챠드윅에게 서부 해안에 선교적 가능성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때에 작은 항구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36명에서 48명 정도의 재림교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곳 원주민들로부터 챠드 윅 장로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챠드 윅은 이곳에서 회개한 다른 집단을 발견하였고, 리베리아에서는 가스톤에 의하여 진리를 인도받았다. 돌프진과 코가 목사는 출판물을 통하여 진리를 전하는 일을 계속 하였다. 가스톤은 진리를 발견하고 자기 백성에게로 전하기 위하여 발길을 돌렸다.
아프리카에 재림교회의 뿌리를 내린 자들은 목사가 아닌 평신도인 돌프진과 가스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저들은 목사의 직책이나 그 어떤 타이들도 없이 봉급도 받지 않고 해외선교사로 활동한 이들이다. 안식일 기별과 하늘 성소의 기별로 인하여 그러한 일들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왜 이러한 운동이 생겨나지 않는가! 우리에게 매력으로 다가와야 남들에게 호감을 주게 된다. 너무도 흔한 기별이 되고 만 탓이다. 개척의 역사가 일어났던 일들은 실제의 일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칠례에서 불어를 말ㄹ하는 알제리아로 이주한 이주민이 시조를 읽고 개종한다. 남미 아르헨틴에서의 선교 사역은 1894년 문서전도인인 크레이어 노우렌 씨와 캘리포니아에서 온 문서전도인 프레드릭 비솝과 토마스 다비스 씨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등에 옷과 책 몇 권을 지니고 금문교를 지나 항해하였다. 저들은 스페인어도 몰랐고 돈도 없었다. 저들이 회개시킨 자들 중에는 자신의 꿈을 소개하여 영혼을 얻은 토만 형제와 에드워드와 빅터가 있다. 에드워드와 빅토는 문서전도인이 되어 일을 하는 동안에 저들은 신발이 해어져 교대로 신고 다니면서 일을 하고 후에 두 사람 모두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우리는 위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는 1866년에 이미 이태리가 재림교회의 비공식적인 선교 본거지가 되었다. 체코우스키가 게이 메트와 함께 선교사로 일을 하였고 체코우스키가 에르지베르거와 알버트 브류이미에와 함께 독일과 불란서의 선교의 발판을 구축하였다. 그러다가 1894년 버틀러가 스위스 합회를 조직하여 그곳을 전초기지로 삼았다. 1890년에 화잇이 호주로 가서 해외선교를 이행하고 있었고 콘라디가 독일에 선교본부를 삼고 선교의 일에 많이 동참하였다. 1920년대에는 많은 사라믈이 북미에서보다 타 지역에서 활발하게 선교의 일을 감당하였다. 그러다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재림교회의 수가 미국 북미 밖인 곳에서 80%에 육박하게 되었다.
1863년 미국 본토에 재림교인이 3,500명으로 1975년에 전 세계 인구 중에 250만명이 2022년이 된 오늘날에는 2,000만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예수께서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제서야 끝이 온다고 하였는데 더 이상 기다리는 일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 인구가 70억이 넘어선 이때에 아직도 400명 중에 한 명의 비율로 과연 주께서 말씀한 예언이 성취될 것인가에 대하여 회의심이 들기도 한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온 세상이라는 말의 의미는 오늘날 유엔에서 나라로 등재된 230여 나라가 아닌 백성, 사람들의 집단 신분, 종족, 계층을 뜻하는 말이다. 그 원어는 제한된 의미로는 구리 세련공의 나라로 긴드나 지방의 노동조합을 뜻하기도 한다. 복수의 형태로는 외국인, 헬라인, 비헬라인과 유대인, 이방인을 의미한다. 나라라는 의미는 이렇게 나라. 연합독립국, 식민지, 속국, 영역, 어떤 집단에 속한 것 모두를 포함한다. 인도라는 나라는 880개의 언어가 있으며 5억의 인구에 55만 개의 마을이 있다. 나이제리아 인구가 8천만인데 250개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언어가 각기 다른다. 그곳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커서 조만간 인구의 수가 2억과 3억이 되어 인도를 따라 잡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그리스도인이 극히 소수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알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될 것인가에 의문이 모아진다.
복음이 무엇인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전 인류를 위하여 죽으셔서 그 사실을 믿어 구원토록 하신 것이다. 모든 죄인을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을 온전히 믿으면 된다. 그 이상은 없다. 500명이 출입하던 교회가 일년에 고작 침례로 50명을 하나님 백성을 만드는 현실 속에서는 100년이 가도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기는 요원하다. 세계 선교 기구가 발족되고 선교사들이 파송되었을 때에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은 10년, 20년 내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었다. 오순절 당시의 경험으로 하루에 3,000명씩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라오디기아 교회가 뜨뜻하고 미지근하여 토하여 내칠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마음에 모시면 온 세상은 지푸라기의 불처럼 번져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가 도말되어 성령으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줄 것이다. 늦은비가 소낙비처럼 내리는 그 한 날을 기다린다. 온 땅이 주의 영광으로 빛날 한 순간이 우리들이 바랄 일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쓰실 당신의 도구가 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우리의 예배가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살게 되기를 바란다.
재림교회가 세계 선교를 시작하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오겠다는 말씀은 1844년 뮐러의 재림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미국 국내에서만 일어난 현상이기에 아직도 각 길은 멀고도 요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교회 조직이 필요하여 1863년에 바벨론에서 나온 일련의 무리들이 실망의 분위기 속에서도 계속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오는 과정이 있던 중에 북미에서의 재림교회가 다시 유럽으로 번져날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 일에 초석을 세운 이가 체코우스키이고 후에 앤드류스 목사가 세계 선교의 꿈을 안고 자신의 부인이 죽은 후에 자신의 자녀 둘을 데리고 자원하여 스위스로 가게 된다. 엔드류스는 그곳에서 체코우스키가 전도하여 얻은 영혼들을 만나게 되고 딸의 도움을 받아 책자를 만들어 재림기별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1876년에 스위스로 건너가서 여러 지역인 이태리, 독일, 영국, 불란서 등을 여행하면서 혹사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차례 미국을 다녀와서 잠간 회복을 한 듯 보였으나 1883년 10월 21일 일요일 황혼이 지는 때에 운명하였다. 나이 54세였다. 1881년에는 재임스 화잇이 사망하였다. 거목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비극을 맞았었다. 올프 묘지에 그의 무덤이 안장되어 있는바 그곳에 기록된 비문에는 “지금 나을 수 있는 자들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 일할 시간은 짧으며 밤이 오리니 그때에는 아무도 가까이에서 일할 수 없다. 낮이 있는 기간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그때에 어떠한 방법으로 저들 몇을 구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앤드류스의 사망이 있은 후에 재림교회는 세계 선교에 대한 것을 구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체코우스키도 사망하고 앤드류스도 사망한 후에 재림교단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강에 대한 필요가 등장하였다. 세계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원하여 선교사로 가는 일이 필요하였다. 언어에 대한 중압감, 사업 자금에 대한 충당 등 당면한 많은 일들이 산적되어 있었다. 수없이 많은 여행을 하여아먄 한다. 재림교회의 본산은 베틀 크릭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앤드류스 목사에게는 사랑하는 딸 메리가 있었다. 메리가 영양 실조와 어려움으로 몇 년 되지 않아 죽어 엔드류는 팔이 하나 잘라진 격이 되어 회중들에게 호소하여 선교의 불을 질렀다. 유럽의 모든 지역으로 복음이 들어갈 전초기지를 닦아 놓고 있었다. 미국으로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가 유럽에서 건너온 자들이므로 저들의 원래의 나라에 대한 복음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열거된다. 요한 마태슨은 노르웨이에서 소책자를 전한 분이다. 엔드류와 함께 그곳을 여행하면서 돈을 모아 미국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인쇄하는 방법을 배워 자신의 가족이 사는 건물 안에서 인쇄기를 설치하여 모든 불편 중에서도 확고하게 재림사상을 심어놓았다. 러시아에서는 이태리에서 장사하기 위하여 여행하던 로무알도 비르도리와 전직이 메노나이트 신자인 게하르드 폐르크가 있다. 앤드류와 체코우스키가 바르토리를 얻었다. 신문을 보내어 재림의 사상을 던진 것이다. 신문에서의 기사의 내용은 메노나이트 신자를 속인다고 하여 오해를 받았으나 페르크는 건초더미에 숨어서 세 천사의 기별을 읽고 베틀 크릭을 지원하였다. 그때에 베틀 크릭에는 독일에서 이민 온 콘라디 라는 분이 아이오아에서 나무를 쪼개다가 안식일을 받아들이고 교인이 되어 주위의 많은 영혼들을 얻는 놀라운 은사를 발휘하였다. 콘라디가 폐르크와 연결하여 열심히 일을 하여 침례를 주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나 콘라디는 그 후에도 수십년 동안을 유럽에서 재림사상의 지도자가 되어 많은 공헌을 이룬 분으로 여러 권의 책도 저술하였다.
터키에는 미국에서 안식일 기별을 받아들인 데오도르 안토니가 있다. 그는 산호세에서 신발을 수선하던 분이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안식일을 받아들였다. 홍콩에서 활동하여 놀라운 선교를 담당한 분이 아브람 라루이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인물이다. 사실 우리들이 믿는 신앙이 누구로부터 전승되었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한국에서의 복음의 전도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아브람 라루인 것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내가 스스로 잘나서 믿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영적 세계에서 나를 나 되게 한 은사를 모르는 자는 배은망덕한 후래 자식과 같아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라루는 시골 사람으로 직업이 선원이나 평상시에는 나무를 쪼개는 자였다. 러브보러우가 골덴 웨스트에서 재림 기별을 전함을 들었다. 그는 중국에 대한 선교를 지원하였다. 중국은 당시에도 거대한 나라였다. 자신이 그곳에 가서 일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으나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에 거절당하였다. 그러던 그가 처음에는 좌절하였으나 태평양 섬 한 곳에서 일할 수는 있었다. 그가 전에 하와이에서 살았기에 그곳을 희망하였다. 호놀루루에서 문서전도로 재미를 보아 윌리암 할례이에게 인계하고 자신은 홍콩으로 발을 옮겨 수없이 배가 드나들던 홍콩에서 선원들을 상대로 전도하여 많은 영혼들을 얻었다. 한국에서 복음이 전래된 경위로는 러브보러우 - 아브람 라루 - 그래인저 - 쿠니야 - 이응현과 손흥조로 이어진다.
아프리카 선교 역사의 주인공으로는 한나 모아가 있다. 한나 모아는 앤드류스 목사의 안식일의 역사라는 책 한 권을 받았다. 헤스켈로부터도 다른 우편물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일요일을 지키던 자인데 갑자기 토요일을 지키는 일이 용이하지도 않았으나 점차 재림교인이 되기로 작정을 한다. 그러다가 오스트랄리아인인 알렉산더 딕손이라는 분을 만나게 된다. 그녀가 리뷰지에 자신이 개종한 경험을 실린다. 그녀가 세계 선교에 꿈을 가졌던 시기가 1864년으로 언급된다. 그는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렸다. 새들은 노래하며 개구리는 소리내어 울며, 고충은 윙윙거리며, 꽃들은 꽃망울을 피우고 있고, 모든 자연은 미소를 짓고 있다. 단지 사람만이 악하다. 모든 자연은 노래하는데 악한 사람이 감당하여야 하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라고 하였다. 그녀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의 다른 선교 지역들을 방문하면서 책을 남겼다. 미국으로 돌아와 랑카스터에서 침례를 받고 문헌을 나눠주는 일을 하다가 후에 베틀 크릭으로 가게 된다. 그녀가 베틀 크릭에 왔으나 마땅한 일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화잇 부인은 그녀의 소식을 전하여 듣고는 슬퍼하기도 하고 그녀를 박대한 일에 대하여 교회를 나무라기도 하였다. 그녀는 화잇 부인을 대면하면서 일찍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놀라운 믿음의 여인을 사람들이 외면한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러한 그녀가 심어 놓은 선교의 씨는 죽지 않았다. 누가 그 뒤를 이어나갔는가? 러시아에서 회사를 차려 이곳저곳으로 장사하기 위하여 여행하던 로무알도 바르토리가 아프리카 대륙에 선교의 불을 질렀다. 리브톤이라는 분이 이태리 나폴리에서 앤드류스 목사로부터 안식일 기별을 받았고 그의 딸이 1878년 에집트로 갔다. 리브톤이 1882년 외국인의 폭동에 대항하던 중에 죽음을 당하였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윌리암 헌트가 광부로서 광맥을 캐고 있었다. 그는 라루와 같이 러브보로우로부터 진리를 받았던 분으로 자신의 경비로 주를 섬겼다. 아프리카에서는 피터 웨젤, 반 드루텐, 아프리카의 농부들이 자신의 언어로 안식일에 대하여 배우고 있었다. 이곳 웨쩰 씨는 덴막의 개혁교회에 속한 분으로 우유를 열심히 짜던 분이다. 이웃인 드루텐을 알아 안식일에 대하여 들었다. 두 사람은 세상 사람들은 안식일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이 지키다가 윌리암 헌트를 만났다. 이렇게 해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교인이 되었고 저들은 디아야 몬드 광산을 팔아 교회를 위하여 헌신한 분이다. 켈록 박사를 후원하였다고 한다.
위에서의 아프리카의 선교는 아프리카로 이주한 이들과 저들 후손에 의하여 안식일이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위하여 헌신한 이로는 영국인 바이오린시스인 죠지 재임스가 있다. 그는 미국에서 재림교인이 된 자이다. 1890년 초에 대총회 해외전도부에서 일을 하던 중 선교사를 지망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거절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원주민을 상대로 노래하는 방법을 배워주며 기쁨으로 봉사를 하였다. 그러던 그였는데 그만 항해하던 중에 마랄리아에 걸려 외롭게 아무도 지켜보는 자 없는 곳에 무덤 표시도 없는 채로 장사되고 말았다.
비그리스도인을 상대로 선교 무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시기는 1894년이다. 1844년 이후에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다. 다음에는 인도의 힌두인들을 위해서도 선교의 문이 열려졌다. 오스트랄리아에서는 알렉산더 딕선이 한나 모아로부토 기별을 받아 1860년부터 설교하면서 1886년에 가서야 히스켈 가족으로부터 복음이 전파되었다. 1891년에서 1900년까지 엘렌 화잇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죠지 재임스는 자신의 경비로 아프리카로 뛰어들었다. 그가 갈 때에 대총회의 러렌스 챠드윅에게 서부 해안에 선교적 가능성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때에 작은 항구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36명에서 48명 정도의 재림교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곳 원주민들로부터 챠드 윅 장로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챠드 윅은 이곳에서 회개한 다른 집단을 발견하였고, 리베리아에서는 가스톤에 의하여 진리를 인도받았다. 돌프진과 코가 목사는 출판물을 통하여 진리를 전하는 일을 계속 하였다. 가스톤은 진리를 발견하고 자기 백성에게로 전하기 위하여 발길을 돌렸다.
아프리카에 재림교회의 뿌리를 내린 자들은 목사가 아닌 평신도인 돌프진과 가스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저들은 목사의 직책이나 그 어떤 타이들도 없이 봉급도 받지 않고 해외선교사로 활동한 이들이다. 안식일 기별과 하늘 성소의 기별로 인하여 그러한 일들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왜 이러한 운동이 생겨나지 않는가! 우리에게 매력으로 다가와야 남들에게 호감을 주게 된다. 너무도 흔한 기별이 되고 만 탓이다. 개척의 역사가 일어났던 일들은 실제의 일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칠례에서 불어를 말ㄹ하는 알제리아로 이주한 이주민이 시조를 읽고 개종한다. 남미 아르헨틴에서의 선교 사역은 1894년 문서전도인인 크레이어 노우렌 씨와 캘리포니아에서 온 문서전도인 프레드릭 비솝과 토마스 다비스 씨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등에 옷과 책 몇 권을 지니고 금문교를 지나 항해하였다. 저들은 스페인어도 몰랐고 돈도 없었다. 저들이 회개시킨 자들 중에는 자신의 꿈을 소개하여 영혼을 얻은 토만 형제와 에드워드와 빅터가 있다. 에드워드와 빅토는 문서전도인이 되어 일을 하는 동안에 저들은 신발이 해어져 교대로 신고 다니면서 일을 하고 후에 두 사람 모두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우리는 위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는 1866년에 이미 이태리가 재림교회의 비공식적인 선교 본거지가 되었다. 체코우스키가 게이 메트와 함께 선교사로 일을 하였고 체코우스키가 에르지베르거와 알버트 브류이미에와 함께 독일과 불란서의 선교의 발판을 구축하였다. 그러다가 1894년 버틀러가 스위스 합회를 조직하여 그곳을 전초기지로 삼았다. 1890년에 화잇이 호주로 가서 해외선교를 이행하고 있었고 콘라디가 독일에 선교본부를 삼고 선교의 일에 많이 동참하였다. 1920년대에는 많은 사라믈이 북미에서보다 타 지역에서 활발하게 선교의 일을 감당하였다. 그러다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재림교회의 수가 미국 북미 밖인 곳에서 80%에 육박하게 되었다.
1863년 미국 본토에 재림교인이 3,500명으로 1975년에 전 세계 인구 중에 250만명이 2022년이 된 오늘날에는 2,000만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예수께서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제서야 끝이 온다고 하였는데 더 이상 기다리는 일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 인구가 70억이 넘어선 이때에 아직도 400명 중에 한 명의 비율로 과연 주께서 말씀한 예언이 성취될 것인가에 대하여 회의심이 들기도 한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온 세상이라는 말의 의미는 오늘날 유엔에서 나라로 등재된 230여 나라가 아닌 백성, 사람들의 집단 신분, 종족, 계층을 뜻하는 말이다. 그 원어는 제한된 의미로는 구리 세련공의 나라로 긴드나 지방의 노동조합을 뜻하기도 한다. 복수의 형태로는 외국인, 헬라인, 비헬라인과 유대인, 이방인을 의미한다. 나라라는 의미는 이렇게 나라. 연합독립국, 식민지, 속국, 영역, 어떤 집단에 속한 것 모두를 포함한다. 인도라는 나라는 880개의 언어가 있으며 5억의 인구에 55만 개의 마을이 있다. 나이제리아 인구가 8천만인데 250개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언어가 각기 다른다. 그곳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커서 조만간 인구의 수가 2억과 3억이 되어 인도를 따라 잡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그리스도인이 극히 소수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알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될 것인가에 의문이 모아진다.
복음이 무엇인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전 인류를 위하여 죽으셔서 그 사실을 믿어 구원토록 하신 것이다. 모든 죄인을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을 온전히 믿으면 된다. 그 이상은 없다. 500명이 출입하던 교회가 일년에 고작 침례로 50명을 하나님 백성을 만드는 현실 속에서는 100년이 가도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기는 요원하다. 세계 선교 기구가 발족되고 선교사들이 파송되었을 때에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은 10년, 20년 내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었다. 오순절 당시의 경험으로 하루에 3,000명씩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라오디기아 교회가 뜨뜻하고 미지근하여 토하여 내칠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마음에 모시면 온 세상은 지푸라기의 불처럼 번져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가 도말되어 성령으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줄 것이다. 늦은비가 소낙비처럼 내리는 그 한 날을 기다린다. 온 땅이 주의 영광으로 빛날 한 순간이 우리들이 바랄 일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쓰실 당신의 도구가 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우리의 예배가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살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