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분들중 혹시 [제국의 아침]을 보시는분들은 알겠지만요....
광종에 대한 이야기좀 풀어놓겠습니다.....
시호 광종 홍도선렬평세대성대왕
924년 대고려제국의 수도 개성에서 태조대왕과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
975년 종기로 추정되는 병명으로 51세로 사망
능=경기도 개풍군 신영현 헌릉
광종은 태조왕건의 셋째 아들로 출생했습니다.....
943년 태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장화왕태후 오씨의 아들인 혜종대왕을 왕위에 앉혔습니다..
혜종대왕은 제국의 아침에서 나온 그런 병약한 왕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현제의 병약한 혜종의 모습은 조선초 고려사의 편향된 편찬의 희생양이라고 할수있습니다..
혜종은 즉위하자마자 왕규(?~945)를 중용하여 향약제도를 실시하였는데요, 여기서 향약이란 여러 젊은 선비들이 모여 유교의 가치에 대하여 토론함으로서, 김익(897-971)이 최고책임자로 주관하여 여러 선비들이 유교를 종교적 의미가 아닌 보다 학문적인 의미로 해석해왔다고 하네요..
그러나 왕위를 둘러싼 왕자들의 전쟁에 혜종은 급속도로 휘말리게됩니다.. 훗날 정종이 되는 왕요, 그리고 광종이 되는 왕소가 주축이 된 신진왕실세력은 혜종과 그 밖의 왕규를 제거하여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려 음모를 꾸밉니다.
결국 945년 왕식렴의 서경군대 1만여명이 쿠테타를 일으켜 개성을 점령하고, 혜종과 왕규, 그 밖의 공신세력들을 살해한뒤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왕요가 왕위에 즉위하는데, 이가바로 고려 제 3대왕 정종(貞宗.923-945)입니다..
정종은 왕식렴의 세력에 의해 추대되었기때문에, 왕식렴의 손이 상당부문 정책에 뻗쳤습니다. 왕식렴은 곧 혜종실록 편찬작업에 착수했고, 왕규와 혜종을 폄하하여 평가하고 자신들의 쿠테타를 정당화하기위한 작업에 착수합니다.
한편 쿠테타에 가담하여 세력팽창을 지켜본 왕소(훗날의 광종대왕)는 정종이 왕식렴에게 쩔쩔매는것을 보고 허심탄회합니다..
왕식렴은 이를 알아채고 정종에게 건의하여 왕소를 서경으로 보내버립니다.(고려사에 의하면 왕소가 946년 서경총관에 임명되었다고합니다)
다음편에서 광종의 즉위와 고려의 제 2의 창건, 그리고 광종의 공포정치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모든것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