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이 끝난 직후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하나같이 리그 정상급 마무리라는 칭송을 받았던 김병현. 그러나 단 한 군데 그를 높이 사지 않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소속팀 애리조나였다.
시즌이 끝난 직후 팀 플레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김병현을 두고 트레이드와 불펜투수행 등의 탐탁치 않은 이야기를 흘린 애리조나는 끝내 단 한가지도 확실히 결정하지 못했고, 결국 김병현은 붕 떠버린 상태에서 2003년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 12월 중순 윈터 미팅에서 전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됐던 그의 트레이드를 일단 불발됐고, 애리조나의 밥 브랜리 감독은 매트 맨타이를 올 시즌 애리조나의 주전 마무리로 기용하겠다는 뜻만 밝혔다. 더 이상의 결정은 아무것도 없었다.
2.04의 방어율과 92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팀 프랜차이즈 역사 상 최다인 36세이브를 달성했지만 그는 아직도 애리조나에게는 24살의 어린애 답게 히든카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페이스 다운되면 그 자리를 차지할 운명에 처해있다.
자체적으로 그는 오래전부터 선발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 역시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애리조나는 이미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으로 이어지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원투펀치를 가지고 있고, 신시네티로부터 영입한 앨머 디센스가 3선발로 낙점된 상태이다.
4번과 5번 로테이션에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존 패터슨과 미구엘 바티스타가 자리할 것이다. 패터슨은 원투펀치의 노쇠화라는 걱정을 안고 있는 애리조나가 유일하게 밀고 있는 유망 선발 요원이며, 바티스타는 스윙맨으로써 선발 투수진에 공백이 생겼을 때 누구보다 더 뛰어나게 그 자리를 커버할 수 있는 선수이다.
스프링 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선발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겠다는 계획은 잡혀 있으나, 팀을 떠나지 않는 이상 안타깝게도 시즌 개막은 평범한 불펜 투수로 시작해야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불행일지 다행일지 알 수가 없으나 선발과 마무리 모두 다 완벽하지가 않기 때문에 김병현에 대한 유동성은 매우 크다. 선발진에서 애리조나가 상위의 5인방 이외에 더 이상의 예비 맴버가 없는데다가 지난해에 고작 7경기(5선발)밖에 출전하지 않았던 패터슨이 그들의 기대대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가능성도 아직은 높지 않은 편이다.
거기에 지난 2년 동안 고작 30여 이닝밖에 던지지 못한 마무리 맨타이는 부상 재발의 위험까지 상당히 높은 상태에 있어 그 위치가 선발진보다 더욱 더 위태한 상황이다.
말 그대로 시즌 시작은 불펜 투수로서 자리를 하더라도 빠르면 한달 내에 선발이든 마무리든 어디로든 그의 고정된 위치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애리조나 역시 여러 팀들로부터 적지 않은 러브콜을 받았던 김병현을, 내놓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소한 그는 마무리로서 한 시즌동안 30세이브 이상을 거둘 수 있고, 비록 검증은 되지 않았을지언정 선발로도 최소한 5선발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갖춰버린 애매모호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타자로 치면 모든 포지션을 완벽히 소화해 단 한 포지션으로만 출전시키기가 아까울 유틸리티 플레이어이다.
시즌이 마무리 된 직후 오클랜드와 보스턴 등으로부터 트레이드 제의가 있었던 김병현. 물론 트레이드가 된다면 새로운 팀과 리그에서의 적응 능력 등에서 적지않은 마이너스 요인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더핸드라는 희귀성을 지닌 김병현이 그를 거의 접해보지 못했던 아메리칸리그로 간다는 점, 그리고 오클랜드의 경우 젊고 유능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팀, 보스턴에선 확실한 마무리 투수로 뛸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트레이드 불발이 아쉽기는 하다.
물론 그가 완벽한 기량을 선보였던 지난 2년 동안 나란히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애리조나의 그대로 잔류하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빼앗긴 자신의 위상을 다시 한번 되찾아온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던 월드시리즈 악몽에서도 보란 듯이 일어선 김병현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