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ㅋㅋ~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여행기 내겠다고 생난리 치던 한량여인입니다.
드뎌! 글쓰기 편집 끝나고요.. 지난주에 출판사 몇군데 원고를 날렸더랬죠
ㅋㅋㅋ~ 항상 2%가 부족한 것 갔았는데 어쨌든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으니까..
음.. 좀 기다려 보다가 대답없으면 그냥 출판사를 매수하여 자비출판하려고 생각합니다.
음.. 근데 문제는..! 제목! 이요!
암만 고민해도 좋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일단.. <위험한 여행> <the travel not taken> <여행은 미친짓이다> 등등..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었는에..
막~ 좋다고 생각되다가도 또 뒤돌아 서면 아쉬움이 있는 제목들이고요..
음.. 그래서 다시 한번 한량여인 책 제목 공.모.전.! 을 할까 합니다.
원하신다면 한량여인의 인맥을 최대 동원하여 <환타와 100배 뽀뽀하기> <바람소리와 바람나기> <가비와 밥먹기> <울랄라님과 춤추기> 등등의 상품을 만들어 보도록 노력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상으로 제목이 채택되신 분께는 앞으로의 정모에서 <한량여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10회 거부권> 쿠폰을 드리도록하겠습니다.. (ㅡㅡ+)
ㅋㅋㅋㅋㅋ~ 일단 참고 할 수 있도록 샘플로 <프롤로그> 3개와 글 몇개를 올립니다.
그리고 책을 홍보한다느니 하는식의 오해는 사양하고 싶습니다. ^^
============================================================================================================
part 1. Yellow, 한량과 현실이 만나는 거리.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길을 걷는데 누군가가 따라온다.
등에서는 나이프의 감촉이 느껴졌다.
“마담..?” (부인?)
10랜드(이천원)을 꺼내 준다는것이
만원짜리 50랜드가 흘러나왔다.
“아가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는 세계 5대 위험 도시로 꼽힌다는 요하네스버그.
어느 날 거리에서 울린 한발의 총성.
거리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살인 사건,
여행자 숙소를 노린 화재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적정가라는 것이 있으며
이들에게 있어서도 쓸데없이
사람 죽이는 일은 번거로운 일에 속한다.
콜롬비아의 보고타.
길을 걷는데 거지 여인이 따라온다.
“도밀! 도밀!” (2000원만 줘요!)
“노 머니 노 머니!” (나 돈 없어요!)
손을 휘휘 저으며 걸음을 빨리 했다.
“일본인이 돈이 없다고? 지금 나랑 장난해?”
술을 잔뜩 마신 여인은 내 뒤통수를 후려 갈기고
씩씩거리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거리에서 일 없이 맞고 싶지 않다면
남미에서는 그냥 삥 뜯기는 게
속 편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기차역.
...빤히 바라보는 아이의 눈동자가 너무 귀여워
주머니의 사탕을 꺼내주고 말았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가족들에게 뛰어 돌아가 자랑을 했다.
그것은 여행자의 사소한 부주의였다.
나는 곧 수많은 아이들과 여인들, 거지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당황한 마음에 더 이상 사탕이 없다고 손을 내저어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꿈쩍을 안한다.
어디선가 불평 비슷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어느 배낭족이 달려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너 미쳤어? 여기서 적선하다가는 사고 당하기 쉽상이라고!”
고맙게도. 나는 배낭족들 사이에서 잠시 안전할 수 있었다.
¹⁾ 아프리카에 여행 온 어느 독일인이 있었다.
그는 TV에서 본 아이들의 현실이 가슴 아파 가방 가득 초콜릿을 담아왔다. 빈민촌에서 초콜릿 가방을 여는 순간, 수백명의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독일인도 죽었다.
<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면 정식 단체를 통해 기부해 주십시오.
거리의 적선은 당신도, 사람들도 위험에 빠뜨립니다.>
아프리카에서... 어느 국제기구의 당부 말이다.
중국의 시안.
친구들과 또 다시 야시장을 찾았다.
외국인 출입금지 구역의 야시장이다.
[*중국정부는 국가이미지를 위하여 중국인 거주지역에 외국인 출입을 금하고 있다.]
전날 친구가 술김에 적선했던 중국 여인이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돈을 받았으니 몸을 팔아야겠단다.
중국어를 못하니 정확한 뜻을 전달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친구는 도망쳤다.
여자는 친구를 향해 욕을 했다.
그녀에게 있어 적선을 받는 것보다
몸을 파는 것이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내가 거리에서 몸을 파는 아이로 태어났다면 어떠했을까.
돈 몇 푼에 나를 사서 호텔방에서 쉬게 해주는 여행자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오만이다.
그냥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도의 삼천 원
“당신에게는 겨우 삼천 원이지요. 저한테는 아주 큰 돈 입니다.
당신은 혼자겠지만 나는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아홉이나 있습니다.
마담.. 제발요.. 나는 아주 가난합니다."
천 원짜리 피리를 삼천 원에 팔겠다고 바가지 씌우는 인도아저씨.
인도의 힘든 현실에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며칠간 피리를 불면서 피리 아저씨를 따라 다녔다.
그리고 삼천 원을 벌기 위해
내가 한국에서 더 죽도록 일했다는 걸 깨달았다.
인도의 현실을 떠나서..
나는 아직도 그 삼천 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여자 여행자가 알아버린 불편한 진실
인도에서는 열네 살의 소녀가 사창가로 팔려간다.
가족들에게 건네지는 돈은 약 십여 만원
사회 빈민계층에서 발생하는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나 비극이지 그들에게는 힘든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사람들이 하도 조심하라고 하길래
인도에서 납치당하면 비싸게 팔려가는 줄 알았다.
심야 택시비만 두 배로 계산해주고
늙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나는 헐값에 넘겨진댄다.
...아프리카에서 전쟁고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린 시절을 아련한 행복으로 기억 할 수 있다면
인도 사창가 여인들도 그나마 축복 받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두 달간의 인도 여행으로 깨달은 것...
...사실 나는 끝내주는 미녀였다.
[*인도의 빈민거리에는 대규모의 치한 부대가 잠입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롤로그] 이십대의 마지막 여행길에서..
내가 아는 세상 이야기
아프리카의 어느 시골 식당.
백인 여행자들이 골목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식당아저씨는 음식을 만들다 말고 나를 보며 소리쳤다.
“너! 아까부터 보자보자 하니 자꾸 백인들한테 눈길 주는데, 우린 아시아인들이 백인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 저들도 아시아인들이 같은 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걸? 행여 저들하고 어울리려고 가서 꼬리치거나 귀찮게 굴지마!”
아프리카에서 백인인 척(?) 하는 아시아인들은 인종차별을 받는다.
유엔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와서 일을 하거나 자선단체의 이름으로 머무르는 봉사자들 대부분이 백인(미국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년 전 프랑스의 정치 잡지(신문)에 실렸던 미 국방성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은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유럽 여행자들 사이에서 한때 논란의 대상이 됐었다.
<우리끼리의 이야기지만 이미 미국 내에서 처리 불가능한 핵폐기물은 아프리카에 묻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도에는 아기를 빌려주는 사업이 있다. 조직에서 갓난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여자거지들에게 빌려주는 사업인데 아기의 대여료는 하루당 천원. 여자거지들이 그냥 구걸을 하면 사람들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사업이라고 한다.
여자거지들은 외롭기 때문에 쉽게 아기에게 정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정을 주지 못하게 반년마다 아기를 바꿔서 빌려준다고 했다.
이렇게 빌려주다가 아기가 자라면 남자아이는 팔다리를 절단하고 얼굴에 화상을 입힌 후 구걸을 시킨다. 이왕이면 한쪽 눈도 뭉개서 흰자위가 보이는 장님으로 만든다.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조금 더 남는 장사가 되는데, 매춘굴에 팔기 때문이다. 이렇게 팔려간 아이는 그곳에서 잡일을 하다가 소녀가 되면 몸을 팔아야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미국에서 만난 어느 일본인에게 들었다. 그는 대학시절에 여행을 다니다가 인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어느 거지 여인이 아기에게 정을 주고 말았지요. 아기가 어린이가 되었을 때 조직에서는 회수를 요구했습니다. 아이는 팔려가고 싶지 않다고 매달렸고요. 결국 거지 여인은 아이를 안고 도망쳤습니다. 결국 여인과 아이는 조직의 손에 잡혔고, 가장 비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조직은 본보기를 원했죠. ..소문이 퍼져나가자 국제 인권단체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인권을 보장받기 이전에 이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니까요. 짐승보다 못한 생존권 말입니다.”
정작 내가 인도 여행을 다닐 때는 듣지 못한 참담한 진실이었다.
아프리카에는 두 부족이 함께 사는 ‘르완다’라는 나라가 있다.
지금이야 사이가 좋아져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지만, 식민지 시대에는 정말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벨기에 [*유럽국가의 이름]는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두 부족을 서로 미워하게 만들었고, 결국 독립 후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학살하는 살육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르완다내전: 1959~1996]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준비했죠. 그들이 돌아오면 상상도 못할 보복전이 벌어질 것이라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믿었던 겁니다. 설마 유엔이 눈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일방적인 학살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노인과 어린이, 여자들을 데리고 피난 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안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유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닫고 모두를 외면했죠. 길거리 살육은 처참했습니다. 며칠 동안 총알 없이 도끼나 몽둥이, 벌초용 낫만으로 50만 명이 도륙 되었고, 300만 명이 도망쳤습니다.
그것은 어떤 정치적인 이유나 독립국가의 내란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상되어 있었고 얼마든지 개입할 명분이 있는, 민간인들을 지킬 수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귀찮았던 겁니다. 그들인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만약 그들이 움직였다면 움직여야 했던 이유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마을은 시체들로 가득했습니다. 거리의 시체들을 짐승들이 뜯어 먹었죠. 그 와중에도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웃나라와 취재진, 구호단체들이 이 사태를 눈치 채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유엔은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개입을 선언합니다. 3300명의 군인이 투입되었죠. 3300명으로 무었을 했냐고요? 글쎄요.. 이미 50만 명이 죽은 후인데, 딱히 할 일이 있었을까요?
물론 아프리카에서 국제기구는 꼭 필요합니다. 아마 국제기구라도 없었다면 아프리카는 이미 모든 것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그들은 현장에서도 문 닫고 일하는 관료주의가 어떤 건지 진심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르완다 내전의 진실을 르완다가 아닌, 브라질의 버스 정류장에서 들었다. 그는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중퇴하고, 지금은 종군기자업체와 계약을 맺은 상태라 했다. 그는 미국 잡지에 위험지역의 의료현황을 투고하는 프리랜서이기도 했다.
“어떤 증상이 나타나도 병의 원인이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특정한 병이 돌기 전에 일률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합니다. 대부분은 제때 팔지 못했던 구형 약들이죠. 이것은 오히려 병의 진화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겐 면역력을 키울만한 충분한 시간도, 체력도 없으니까요.
사람들의 행복 지수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건강입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말이지요. 빈민촌일수록 오염된 공기와 식수, 전염병 환자들에게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이곳에서 진화된 병균들이 언젠가는 인류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곧 잘 하곤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땐 부자들도 빈민들을 결코 외면할 수 없겠지요. 만약 정말로 내 상상 그대로,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면, 그들은 백신을 찾아내는 즉시, 빈민촌과의 공존을 선택하기보다는 몰살을 선택해 버릴겁니다.”
부자 십대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미국 마이애미.
이곳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MSF(국경없는의사회)에 있었다고 하셨다.
“게릴라 정부와 반정부군이 맞서 싸웁니다. 둘 다 명분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둘 다 정당하지는 못한 단체들이지요.
그들은 난민들을 잡아다가 난민촌에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합니다. 2주 쯤 굶으면 아이들은 아사하고 어른들은 참혹하게 말라갑니다. 이때 취재진들을 부르고, 구호단체들을 통해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렇게 들어온 구호품들은 우선적으로 그곳 관리자들의 배를 채우게 됩니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다이아몬드 광산이나 밀매로 들여 온 무기고에 비한다면 정말 애들 장난 같은 돈이겠지요.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영역싸움의 명분을 얻고, 위급 시에는 난민을 방어막으로 내세우는 것이 그들의 주된 목적입니다.
..내가 수술한 수 십 여명의 사람들 중에 단지 세 사람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십퍼센트 정도의 생존율에 우리는 막대한 지원을 한 셈이죠.
그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그 돈이라면 백 여명의 아이들에게 영양제를 놔 줄 수 있습니다. 곧 죽을 사람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라는 이름으로 달려가는 순간, 살아남을 가능성을 가진 백 여명의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보면 알게 될 겁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의사들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갖고 죽어가는 사람들을요. 공포와 절망 속에서 구원 받았다고 믿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겁니다. 누구든지 현장에 있으면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가 죄인일 수는 있어도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국제규모의 참사가 일어나면 외신들이 달려옵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지만, 난민촌의 장면들은 기대만큼 참혹하지 않습니다. 쓸만한 장면이 찍히지 않으면 취재진들은 보도의 방향을 돌립니다. 과연 국제기구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가? 구호단체들은 정말 구호품들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가? 그들은 비난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으면 방송이 된다한들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정부에 불만을 터뜨립니다.”
밥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반찬거리 삼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연금을 받아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게 오늘을 위해 살아 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재테크를 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동안 적어도 그들은 뒷골목에서 쓸쓸히 사라질 자신의 인생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이제 정말 안녕이군요.”
나는 지금도 가끔 후회한다.
나는 왜 한국인 종군기자를 따라 같은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그날 그를 따라 갔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 단지 세계의 3대 축제라 불리는 리오의 카니발이 눈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왜 그날 할아버지의 저녁 식사에 따라가지 않았을까?
나를 귀찮아하는 할아버지의 무뚝뚝한 태도에 상처 받아서? 아니면 물가가 비싼 마이애미의 고급 호텔이었기 때문에?
세상에는 긴 시간의 여행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해 주는 만남이 있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거창한 가이드북을 따르느라 그 순간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 삶을 변화시킬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언제나 그 순간이 아닌 먼 훗날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는 여행자들이 영웅심으로 무모한 여행을 벌여 위험에 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안다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닐진대, 나는 내가 보았던 세상의 무게와 삶의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변했던 내 자신을 표현하지 못해 미처 쓰지 못해 나 역시 오해 받았던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놀다 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철없던 내 자신과 나를 키워준 작은 사고들, 그리고 떠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세상의 아픔들을.
그래서 이 책은 되도록이면 여행을 다니면서 겪었던 사고들과 위험들중에서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글로만 모아 보았다. 그리고 설사 무모하고 잘못된 여행이라 해석 될지라도 그 경험 속에 깃들었을 삶의 무게를 말해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욕할 그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을 자기 성장적인 메세지와 함께, 나와는 다른 여행을 떠날 후배님들이 조금은 덜 슬프고 조금은 덜 위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무얼 얻어 오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것은 떠나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대답이다. 스무살의 나를 스물 아홉으로 키워준 것이 여행이다. 스무살의 방황을 잡아 주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만든 것도 여행이었다.
이제, 나는 순진하지는 않아도 순수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철없던 스무살을 시작하여, 나 자신을 방황하게 만들었던 스물 두살의 인도, 인류의 현실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스물다섯의 아프리카,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스물여덟살의 남미까지..
가끔은 그 사소한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내 한심한 글 솜씨를 한탄해 보면서 말이다.
1) 1991.12 세계은행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최초 보도되었던 글로 L.H.서머스(하버드대 교수)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2) 2006.7.27. CNN-IBN 인도 방송은 정상인들의 사지를 절단 하는 의사들을 잠입 취재하여 보도한 바 있다.
3) 인도의 아동 매매가격은 평균 2만원~ 5만원. .2007.BBA(인도 아동구조 재단)발표.
4) 종군기자: 보통은 군부대를 따라다니며 전쟁터를 취재하는 (전쟁 참여국)기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전쟁지역이 아니라도 내란지역이나 폭동지역의 특파원, 또는 위험 현황을 투고하는 프리랜서 기자들도 위험 정도에 따라 (준)종군기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
여인의 꿈
“마담!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제발 저에게 일자리를 주세요.”
고급 빵집 앞에서 내게 무릎을 꿇었던 청년의 행동은 급기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일어나세요. 난 여행자일 뿐 여기서 일하지 않아요.”
그는 며칠 전부터 내가 다니는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는 몇이고, 컴퓨터 문서를 작성할 수 있으며, 몇몇 전기 장치를 만질 수가 있다고.. 내가 가는 길을 나란히 걸으며 끊임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일자리만 있다면 청소부터 요리까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의 말을 “농.”(안돼요)으로만 일축하고 있었다.
EU기구 [*유럽연합 국제기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코토누[*베넹. 서아프리카]의 중심마을..
마을까지 들어올 용기는 없었는지 그는 날마다 마을의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손님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며칠 째 나를 따라다니며 몇 번이나 자기소개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묵고 있었던 사연은 정말 간단하다.
며칠 전 나는 EU기구[유럽연합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이반을 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며칠간의 휴가동안 에티오피아에 놀러갔다가 코토누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나는, 불모지와 같은 이곳에 여행을 온 철없는 대학생일 뿐이었다.
숙박 시설이 불완전한 이곳에서 이반은 자신의 집에 머무르라고 했었다. 나는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바빴다. 나는 그저 그의 집에서 숙식만 제공받았을 뿐, 기대와는 달리 아침이 되면 마을을 거닐며 혼자 놀아야만 했다.
그래도 현지인들에게 있어서 주택가의 외국인들은 선망의 대상이었으리라. 주택가에서 나와 마을을 돌아다닐 때면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무작정 쫒아오던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새벽부터 내가 주택가를 나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내 주변을 맴돌다가 내가 가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면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물리쳐 주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내 옆을 나란히 걸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그를 모른 척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끈질기게 날마다 자기소개를 반복했다.
그는 그날도 나를 따라오며 불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내가 빵 집에 들어섰을 때 그는 따라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문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아무리 현지인들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노력해도 이럴 때 가슴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데 현지인들은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상가들이 즐비한단 말인가.
물론 경비원들이 구분하는 것은 국적이 아니라 빈자와 부자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빵을 사고 빵 집 앞을 나섰을 때 그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또 다시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던 순간 그는 내 앞을 가로 막은 채 무릎을 꿇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담! 제발 제게 일자리를 주세요!”
나는 당황해서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도와줄 힘이 없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의 절실함 앞에서 어떠한 목소리도 나올 수가 없었다. 경비병이 다가와 그를 억지로 내 쫒으려 했지만 그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나도, 그도 경비병도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마주하고 앉았다.
“엑스뀌제. 즈 네 빠 프랑세. (미안해요. 나는 불어를 할 줄 몰라요.)
[*주: 이 경우에는 ‘엑스뀌제 므와. 즈 네 쁘 빠 빠를르 프랑세’ 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이 책에서는 내가 사용했던 잘못된 표현들을 그대로 실었다.]
Can you speak English? (영어 할 줄 알아요?)”
그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Yes. (네)”
그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그의 불어식 영어는 상당히 서툴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영국 식민지식 영어로 도와줄 수 없다고 설득시킬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커다란 빵 두덩어리를 건넸다.
“I'm just tourist. I'm not working here. I'm sorry I can not help you.
(나는 이곳에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그가 과연 알아들었을까..? 그는 말없이 빵을 건네 받았다.
나는 다시 그를 외면하고 집으로 향했다. 한참을 걷다 돌아보니 그는 여전히 두 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목적을 잃은 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반은 오늘도 너무 바빴다. 저녁에 돌아와 요리사가 음식을 가져올 때까지 그는 컴퓨터만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그제서야 나의 일과를 묻는 이반에게 나는 그의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사실 동네에서 나와 길을 걸으면 구걸하거나 일자리 찾아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무전취식객인 내가 누군가의 일자리 얘기까지 꺼내는 것은 너무 뻔뻔한 일인 것 같았다.
하긴.. 그 청년은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으리라.
이틀 후..
나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단조로운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잠시 동안이었고, 사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금바람이 가득한 이곳을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해변의 끝에서 청년과 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해변의 끝에서 그렇게 몇 시간을 서 있었을 것이다.
이곳 여느 여인들처럼 그녀 역시 앙상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빵을 감사하게 받았어요. 덕분에 어제는 아이가 빵을 먹을 수가 있었어요. 마담. 감사의 뜻으로 제가 마담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어요? 요리나 청소도 할 수 있고, 빨래나 옷 수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현지어로 말했고, 청년이 서툰 영어로 통역했다.
나는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불어 단어를 나열했다.
“저는 오늘밤 떠납니다. 그리고 지금 저를 도와주실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에게 부탁할 것이 없다는 것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그래서 주머니를 뒤져 1000CF[*세파프랑: 이천원]을 내밀었다.
애써 인사하러 온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은 그것 뿐이었으리라...
순간 청년의 표정은 묘해졌다. 여인은 순간적으로 망설였지만 내가 내어준 돈을 순순히 받아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인사했다. “멱시.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아이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뒤돌아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청년과 여인.. 그리고 아이는 내가 해변가를 거닐고 있는 동안 멀리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집에 도착 할 때까지 여러 걸음 뒤에서 나를 배웅했다.
내일 떠날 것이라는 말에 이반은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지금 이 순간 여행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굳이 억지로 대답해야 한다면 여행을 통해 진정 내 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만난 그 여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빵 두 조각의 호의에도 보답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빵이나 인사치례가 아니다.
그 날 여인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마음과 품위..
사람에게도 품격이 있다면 그녀가 내뿜는 향기는 결코 나 따위가 비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리라.
나는 내가 누리는 것과, 사람의 향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²⁾같은 시대에 살아도, 훌륭한 향기를 갖고 있어도 단지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와 나-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달랐다.
----------------------------------------------------------------------------------------
22살의 방황.. 그리고 인도..
“그럼 편히 쉬십시오.”
호텔 사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기분이 너무나도 언짢았다. 이렇게나 비참 할 수도 있을까.. 호텔로비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학생은 그럴 줄 알았다며 한쪽 입가로 웃었다.
일주일간의 사막여행이었다.
왜 이유 없이 사막을 떠돌아다니고 싶었던 건지, 왜 팀을 짜지 않고 가이드만 데리고 사막에 가겠다고 했었던 건지. 그래도 솔직히 내 바램 자체에 후회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행복해야 할 사막여행이 가이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변해 버렸고, 삼 일째 되는 날 결국 가이드를 따돌리고 혼자 도시로 돌아온 것이 너무나 슬플 뿐이었다.
“여자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않아요?”
“인도 사람들 착해요. 혼자 다녀야 친구도 쉽게 사귀고 내 맘대로 계획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지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이야기 하죠.”
한쪽 입가로 웃는 여학생이 내 기분을 거슬리게 했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 여행을 다시 떠날 수 밖에.
세계적인 가이드북 사장이 그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사막이라고. 어린왕자의 여우도 그랬지. 어딘가에는 오아시스가 있을 거라고.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사막... 하지만 혼자서 사막을 가겠다는 기분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것이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 가이드 ‘체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와 달리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한 사람이었고, 그가 자랑스럽게 보여준 가이드 노트에는 한국인들이 쓴 영어로 된 그에 대한 칭찬과 함께 한국어로는 그의 생각을 조심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충고가 여기저기 적혀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싶었다. 인도까지 와서 인도인들의 가치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뒤따라올 한국인들을 위해 충고까지 쓰고 떠난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막에 들어갔던 첫날 밤 체나는 내게 관심이 많았다.
저녁은 배부르게 먹었는지, 사막의 바람이 춥지는 않은지, 시원스러운 웃음으로 내가 잠들 때까지 모닥불을 피울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어디를 가냐고 물으니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 지대로 간다고 했다. 고약한 파키스탄 남자들에게 나를 팔고, 자신은 색시를 얻어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는 듯 한바탕 웃어댔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막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었으니까.
겁이 많은 낙타하고도 이제는 꽤 친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만 보면 울 것 같은 표정이더니 이제는 내심 다가오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인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막이었기에 풀 한포기가 감동이었고, 밤이 되면 불어 닥치는 추위와 나를 덮어 버리는 모래 바람, 기대보다는 훨씬 적었던 사막의 별들까지.. 하나 하나가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체나는 낙타를 끌기만 했다는 점이다. 나 혼자만 낙타를 타는 것이 이상해서 그에게 낙타를 언제 탈 것인지를 물어보았지만 항상 내일이라고만 대답했다.
아침을 늦게까지 지어 먹은 후 낙타와 함께 두 시간을 걸었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또 두 시간을 걸었을 뿐이다. 그는 사막에서 양고기와 맥주를 먹자고 했다. 집시를 불러 밤새 춤과 노래를 함께 즐기자고 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사막여행이 아니었다.
들은 척도 안하니 이번에는 사랑고백이다. 나는 유부녀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며 진지한 얼굴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밤 단둘이 있을 것이 불안해져 결국 집시들을 불러 밤새 모닥불을 피우고야 말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집시들은 너무 굶어 쉬어버린 목소리로 괴로워하며 노래를 불러댔고, 삐쩍 마른 몸매로 유치원 율동 같은 동작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집시들의 오랫동안 씻지 않은 냄새들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체나는 악사들과 술을 마셨고, 간간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집시들과 춤을 추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담요를 들고 가 혼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체나는 마을에 들려 친구에게 나를 맡기고 식량이 필요하다며 떠나버렸다.
이른 오후... 나는 체나를 기다리며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
“이봐요, 내 친구(가이드)! 그럼 점심은 언제 먹는 거죠?”
나는 무의식중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누군가가 영어로 소리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완벽한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고 있어서 꽤 유식한 영어문장을 경상도 사투리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힘껏 소리 쳤다.
“대구에서 오셨나 봐요~?”
보기 좋게 건장한 청년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그쪽도 대구에서 오셨나 봐요?”
스무 명 남짓의 한국인이었다.
1박 2일의 사막여행이라는데, 사막여행이라기 보다는 낙타 관광이리라. 그들의 낙타는 넘버원이 뛰면 경주 하듯 모두 따라 뛰었다.
“왜 이런 곳에 혼자 있습니까..?”
낙타가 뛰고 학생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이 그들의 가이드가 다가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내 사막 여행과 함께 가이드 체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가이드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이곳까지는 괜찮았지만 더 이상 체나와 단둘이서 사막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나는 가이드에게 고맙다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노트의 충고들을 떠올렸다.
하루 만에 내게 반했다며 남편을 믿지 말라는 체나의 생각. 사막에서 춤과 바베큐, 집시들을 좋아하고 감기약으로 ‘방’ (*대마의 일종. 이곳에서는 불법이 아니다.)을 권했던 그의 행동들.
설령 그가 감기약으로 진짜 방을 사용하고, 그의 생각 없는 말들이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더 이상 그를 신뢰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그와 함께 해야 할 사막 여행이 문득 두려워졌다.
이 사람은 체나를 아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하던지 간에 인도인들의 상술과도 관계없는 흔한 거짓말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가 체나를 알고 있다면 그는 동료일지도 모르는 체나와 나, 둘 중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가이드!”
멀리서 한국인 청년이 그를 불렀다.
어느 덧 점심시간..
한국인들의 낙타 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 역시 마을로 돌아갈 때가 된 듯 싶어 체나의 낙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체나의 낙타는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제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나는 체나가 낙타를 타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체나의 낙타는 사나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체나는 처음부터 낙타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우리는 사막을 향한 것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 사이로만 걸었을 뿐이라고 쉽게 추측 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의 혼란을 정리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막 여행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 체나의 노트를 읽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늦은 오후... 시원한 미소와 함께 마을로 돌아온 체나는 나를 놀라게 해주겠다며 사막으로 향했다.
두 시간 쯤 걸었을까.. 세상을 집어 삼킬 듯 거대한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바닥에는 백여 대의 지프차들과 관광차들이 늘어 서 있었다. 족히 십여 미터는 넘을 듯 보이는 모래언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수백여 명의 관광객들과 낙타들이 석양을 바라보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발이 사정없이 빠져대는 거대한 모래 언덕을 나는 미친 듯, 정신없이 꼭대기까지 허우적거리며 뛰어 오르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었다. 거대한 하늘의 1/4을 차지하는 태양이 모래언덕에 내려앉았을 때 나는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리고 내 탄성 소리는 이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탄성 소리와 카메라의 셔터 소리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어느 덧 체나는 내 뒤로 다가와 오늘 밤은 사막의 마을에서 묵자고 속삭였다. 어제보다 조금 더 비싼 집시들을 부르면 어제 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춤을 구경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계속 “If you want..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이라고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지만 나는 석양이 질 때까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막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석양에 묻혀 버린 차들과 낙타들.. 그리고 수백 명의 관광객들. 나는 이들 역시 사막의 일부분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들은 사막의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한순간의 풍경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해가 완전히 졌을 때 나는 조용히 모래언덕에서 내려왔다.
가능하다면 아주 오랫동안 사막을 바라보고 싶었으나, 체나가 두렵다면 더 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방을 챙겨들고 차들 쪽으로 걸어가니 체나가 따라오면서 무슨 일인지를 묻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막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 혼자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낙타를 타고 자신과 함께 돌아가자고 했다. 만약 함께 돌아가지 않는다면, 여행사 사장은 결코 남아 있는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애원 반 협박 반이다. 그러나 나는 남아있는 4일간의 계약보다 그저 되도록이면 빨리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체나의 거짓말과는 달리, 관광객들이 많은 차들 사이에서 도시로 돌아가는 지프차는 쉽게 수배 할 수가 있었다.
낙타를 타고 3일 전에 떠나왔던 도시는 지프차로 불과 두 시간 거리.
사막에서 완전히 져버린 줄 알았던 석양은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지평선 끝에 걸려 내내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장기 저가 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깨닫게 되는 몇 가지 것들.
*세상에서 유리한 것은 <여자>가 아니라 <젊음>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이 여행의 선물이다.
--------------------------------------------------------------------------------
Shut up의 추억
“Oh my God! What happened?"
(맙소사! 너 무슨 일을 당한거야?)
그는 심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What's the problem? Nothing!"
(왜? 아무 문제 없는데!)
나도 심하게 당황했다. 이번엔 또 뭐가 문제라는 거지?
중인도의 아우랑가바드에서의 일이다.
나는 이른 아침 숲속 사원을 가는 길에 한 이스라엘 남자를 만났다.
“You also have a school holiday! How old are you?”
(너 역시 학교 방학인 게로구나! 그런데 몇 살이지?)
한국인들을 많이 안다며 한국식으로 나이부터 묻는다.
“16 years old.” (열여섯 살이야)
한국을 안다기에 한국식으로 대답했다.
[*주: 인도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16세까지가 미성년자입니다]
그는 학교를 물었다.
대학생이라 했더니 나이가 어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Because I'm genius.” (천재니까 괜찮아.)
아우랑가바드에서 우리는 항상 함께 움직였다. 오늘은 아잔타 석굴 사원, 내일은 엘로라 석굴사원.. 값싼 숙소를 찾기 위해 항상 헤매야 했고, 버스는 달랑 몇 대..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여행자의 스케줄이란 몽땅 똑같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젊은 남녀가 인도를 한 달 다녀오면 애인이 되어 있고, 두달 다녀오면 아기가 생긴다는 농담이 있을까..?
숙소에서 방을 잡은 뒤 그의 방에 놀러갔다.
그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아까 입구에서 체크인 할 때 내 여권을 봤다는데, 내가 16살이라고 했던 것이 나는 농담인데 그는 사기라고 화를 낸다.
...내가 16살이 아니라 22살이면 뭐가 달라지는데?
그는 나와 여행하는 동안 16살에 물리학을 공부하는 천재 소녀를 만나 무척이나 행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녀가 자신에게는 너무 어린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난 서양 남자들에게 약하다. 대화할 때 항상 감정이 들어가는 오버반응 때문인 것 같다.
전혀 동의 할 수 없는 이유도... 가슴 아픈 듯이 말하니까 조금은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I'm sorry.” (미안해요)
나는 그에게 사과 했다. 그는 내 사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인생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나를 혼자서 여행하는 놀랍고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칭찬했다.
나도 그가 멋진 남자라고 대답했다.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What are you doing?” (뭐하는 거야?)
그는 부드럽게.. 그리고 조금은 터프하게 속삭인다.
“Oh~ Shut up..!” (쉿..!)
[*주: shut up은 ‘닥쳐’가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껴안는 순간..
“What~!!! (뭐하는 짓이얏~!!!)”
나는 비명을 지르면 그를 밀쳐버렸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우리가 만난 지 며칠 됐더라?
여행을 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것...
서양인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사건’이라고 말했지만, 한국인들은 ‘여행은 현실이 아니니 마음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게다가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토종 여인네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 남자와 며칠 만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Whose story?” (누가 널 사랑한다는 거야?)
반 놀리듯 매섭게 쏘아 붙였다.
하지만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기에는, 휙 돌아서서 나와 버리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나를 오해하지 않도록, 한국 정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설명해야했지만..
솔직히 이스라엘인을 상대로 유교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내 영어 실력에 많은 부담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너무 많이 돌아다녔고 정말로 피곤한 날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뻥을 쳤다.
“한국 여자들은 결혼 전에 애인 못 만들어. 그런 짓 했다간 우리 아버지가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버릴 걸?”
“왜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그럼 다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며칠 후..
기차는 밤늦은 시간에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몇 개의 호텔을 돌아다녀야 했다. 가는 곳마다 방이 없다고 지배인들은 호텔 입구부터 내쫒는다.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
만나는 릭샤[*자전거인력거]마다 바가지를 단단히 씌울 듯한 기세였고 기차에서 방금 내린 탓에 여느 때보다도 훨씬 피곤했었다.
오랜 방황 끝에 결국 침대가 두 개 있는 트윈 룸을 잡기로 했다.
며칠간의 여행으로 순수한 친구가 되어있었기에 남녀가 한 방이라는 유치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짐을 풀고 찬물로 대충 씻고.. 나는 긴 추리닝 바지를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종아리를 긁적거렸다.
그는 세계적으로 관찰력 뛰어나기로 유명한 민족 이스라엘리...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 추리닝 바지를 발목에서부터 확 걷어 올렸다. 무릎에 있는 멍 몇 개와 오래된 상처자국들..
“이건 어디서 생긴 상처들이지?”
“그냥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부딪쳤어.”
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분노로 번득이고 있었다.
모든 상처에 대한 출처들을 육하원칙에 따라 묻기 시작하는데...
그거 기억할 머리면 정말로 16살에 대학 갔겠다.
아무리 “Nothing! (아무것도 아니야)” 이라고 대답해도 안 믿는 눈치다. 내 가족관계를 집요하게 묻더니 오빠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득 처음 만났을 때 아랍여자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이 사람 기준에서 결혼 전에 애인 못 만든다는 한국여자와 집안 남자들에게 매 맞고 산다는 아랍여자의 삶이 같은 거로군. 아니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린다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걸까..?
아무튼 다시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오빠에게 많이 맞고 자랐다.
피곤하기도 해서 나 그냥 한국 가정에서 매 맞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오빠가 만날 때리는데 아빠랑 엄마는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무책임한 대답으로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계산착오이자 민족문화 망신이었음을 부인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날 밤 밤새 그의 카운슬러를 들어야만 했다.
인도 장사꾼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세상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는 철학을 시작으로 그는 내 인생에서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나의 모든 아픔을 들어주고 싶어 했고, 어떻게 하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수많은 가상현실을 제시해 주었다. (그가 왜 그리 많은 가상현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는 피곤한 상태에서도 나의 무거운 배낭을 모두 들어주었다. 길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었고, 전날까지는 16세의 천재 소녀하고도 반반씩 나누었던 오토릭샤와 방 값, 음식 값은 모두 그의 부담이 되어버렸다.
어제까지 동행자였던 친구는 하루 종일 나를 동정어린 눈빛으로 지켜보았으며,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매 맞는 한국여인에 대한 동정은 애정으로, 애정은 사랑으로, 그리고 오쇼의 아쉬람 (명상센터)에서 헤어져야 했던 그 때,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한 플라토닉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먼저 떠나면서도 남아있는 나를 위해 방값을 깎고, 버스회사에 예약 할인을 받아 놓는 놀라운 의리를 보여 주었다.
할인을 받아내기 위해 나 몰래 얼마나 난리를 쳤던 건지..
내가 떠나는 날 처음 만난 버스회사 사장은 내내 똥 씹은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단한 놈...
한국에 돌아온 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이런 진실을 알게 된다면... 이번에는 오빠가 아닌 이스라엘 남자에게 매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한 얘기를 하자면..
사실은 나도 그의 넘쳐나는 눈빛에 두근거렸고,
헤어지는 순간에는 많이 슬펐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은 그가 무척 그리웠으니까.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가끔 인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나도 참 푼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체 왜 이렇게 생긴 놈에게 흔들렸던 거지?
그리고... 외국인과의 사랑으로 낙태를 선택하고 돌아와야 했던
유학파 친구들의 사랑을 떠올려 본다.
현실의 유학생들조차 이러할진대 여행자의 사랑이라면 오죽하겠는가..?
역시 여행지에서의 사랑이라는 건..
보수적인 나에게는
시간이 지나고 정신 차리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장기 저가 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깨닫게 되는 몇 가지 것들.
*경제학의 법칙으로 따졌을 때 한국보다 가난한 동네에서 현지인의 집에 묵거나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법칙을 따지며 여행을 하는 것은 세상사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
사막을 건너는 길..1
온몸이 따가울 뿐, 이미 태양의 존재를 잊은 지는 오래였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 내내 모두가 쉬었었지만, 그것은 나를 더 녹초로 만들었다. 사막의 한가운데서 온몸에 모포를 덮고 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던가.
사막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꺼냈지만 뜨거워진 카메라도 망가진 지는 오래.. 수 십 번을 눌렀는데도 셔터는 열리지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야성으로 포효를 질렀다.
친구들이 나를 보며 웃는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눈짓을 주고 받더니 트럭 옆에서 커다란 물통을 꺼내 내밀었다.
헐... 커다란 물통도 이미 열 받은 지는 오래...
출렁이는 물에서도 뜨거운 김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이럴 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하지만 한 모금도 넘기기 전에 나는 심하게 쿨럭여만 했다.
지독한 석유냄새..!
인상을 찌푸리며 석유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원래는 석유통이었다고 대답한다. 냄새만 날 뿐 깨끗이 씻었으니 괜찮다고 하는데...
그 순간 요 며칠 음식에서 난 냄새의 정체를 깨달았다.
석유통에 담긴 물로 요리를 했는데 그걸 사막 특유의 냄새일거라 생각했던 나도 참 멍청하다. 현기증이 날 만큼 그렇게나 명확한 석유 냄새였는데도 말이다.
나는 말 그대로 입술만 축였다. 석유 물을 마실 용기는 없었지만 더위에 지친 내 몸뚱이는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잡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막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통들이 다 쓴 석유통이라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니제르..
그리고 여기는 사하라의 중심 테네레 사막..
그래도 이곳 아이들 허리에는 영양주사 자국이 잔뜩 있다. 더 이상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들에게 감사를 했다. 하지만 그 백인들은 석유 물로 요리하는 이들의 현실을 알고 있을까..?
나는 서아프리카 곳곳에서 국제기구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으나, 그래도 현지인들이 나르는 운송 트럭을 타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테네레 사막을 건넜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해가 지고 조금은 선선해졌을 때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설명했다.
석유통을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고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석유 성분들은 우리 몸에 농축될 거라고.. 그리고 2세대 3세대에 가서 치명적인 결함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영어를 알아듣는 녀석은 단 한명.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 하자 그가 즉각 통역을 한다. 하지만 나의 진지함과 달리 그의 말투는 가볍다. ...누군가가 웃는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국제기구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아시아의 돈 많은 어린아이가 아프리카 현실을 모르는 소리를 했을 뿐이었다.
물의 정체를 알고 나니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다.
웬만하면 아프리카 현실과 함께 하고 싶었으나 열흘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모르는 사막여행에서 내내 석유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건강과 언젠간 태어날지도 모르는 내 아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직결되었다.
사막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늘 깨끗한 물을 찾아 헤매야 했다.
몇 안는 우물조차 오염되어 그곳에서 사는 사막인들 조차 그릇을 씻는데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우리는 흔히 유목민이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혹독한 땅을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비문명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문명이라는 것이 진심으로 미워졌다.
한량일기. 장기 저가 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깨닫게 되는 몇 가지것들.
*가격협상.
우리가 아무리 생난리를 쳐도 관광지에서 원가보다 싸게 파는 바보는 없으므로, 절대 상도덕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
사막을 건너는 길..2
저녁부터 고장 난 트럭은 한밤중이 되서야 달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밤하늘. 서늘한 밤바람. ..
사람들은 공기가 신선한 곳에 왔다고 말을 했다.
모래밖에 없는데 신선한 공기라니..? 기분에는 공기 밀도도 낮고 산소도 부족하구만.. 나는 잘 모르겠다.
트럭은 한참 달렸다. 어느덧 잠이 들었는지 사람들 소리에 퍼뜩 잠이 깼다.
“아부체! 아부체!!”
아부체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보니 바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설마 운전기사가 알라신에게 기도하는 시간이라도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트럭은 희미한 헤드라이트를 켰지만 사람들은 차 옆 부분으로 몰려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손전등을 빌려 달랜다. 트럭위에서 내려다보니 누군가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커다란 물통을 꺼내 물을 그의 가슴에 거칠게 쏟아 붓는다. 그의 목은 어깨 쪽으로 쳐져 있었고 축 쳐진 몸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때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누군가가 졸다가 트럭에서 떨어진 것이다.
...트럭을 타고 달리는 동안 친구들은 몇 번이나 내게 주의를 줬었다.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자리를 내어 주었고, 짐들을 묶은 노끈을 잡으라고 충고했으며, 졸리면 답답해도 트럭 지붕 가운데로 들어가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사막여행..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쉬어야 했다.
백인(한국인) 여자라는 특권으로 트럭 바닥에 들어가 쉴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다란 천을 이어 간이 텐트를 만들거나 두꺼운 천 하나를 뒤집어 쓰고 잠을 잤다.
게다가 트럭은 몇 번이나 고장이 나서 가다가 고치고 가다가 고치고,...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했으니 이번엔 정말 피곤한 여행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쓰러진 사람은 깨어날 생각을 안 한다.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서 심장에 물을 붓고 마사지를 해주고 몇몇 사람들은 알라신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옆에 사람에게 물어보니 트럭에서 떨어지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가끔 일어난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죽기도 하냐고 물어보니까 가능하다고만 한다.
말을 아끼는 건지 불어가 서툰 건지.. 그 와중에서도 깊게 잠들어 버린 꼬마녀석...
꼬마의 코고는 소리에 대화는 다시 침묵 속에 잠겨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트럭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밤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사막의 도시에서 트럭을 타고 달린지는 벌써 이틀째다.
그러나 잦은 고장으로 사흘이 걸린다는 사막 여행은 이미 나흘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죽으면 어찌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막 한가운데에 시체를 두고 갈리는 없고..
돌아가던지 나아가던지 우리는 저 시체를 끌고 이틀을 더 가야만 한다.
그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이 있다든지, 이것이 열악한 아프리카의 현실이라든지 이런 인류애 적이거나 사회적인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진지는 오래였다.
그냥 시체와 함께 달려야 할 여행이 끔찍하기만 할 뿐이다.
미셸 플렌(Michael Palen)의 ‘사하라’
사하라엔 어느 사막과도 달리 찬란하게 지는 노을과 석양, 아름다운 오아시스 마을 따윈 없다고 했었지.
그러나 나는 사하라의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 마을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열악한 사하라 사막에서는 사막의 낭만도 어린왕자의 꿈도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만 했다.
나는 그냥 오랫동안 사막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눈가를 타고 귓가를 적셨지만..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운전석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다시 사막 위에 천들을 깔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잠잘 준비를 하고 몇몇 사람들은 간단한 요리를 준비했다.
어찌 되었을까..? 트럭 위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죽지 않았다.
트럭위로 올라 온 사람에게 물으니 다행히 떨어지면서 심장부터 부딪쳤다고 한다.
목부터 떨어졌으면 죽었을 것을.
그들은 알라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손전등을 빌려준 내게도 감사했다.
트럭이 밤새 달려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 잊어버렸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모두가 아침이 올 때까지 잠을 잤다.
트럭에서 떨어진 사람은 다음날 운전사 옆자리에서 사막을 달렸다. 그리고 그가 기운을 되찾은 저녁부터는 트럭 위에서 가장 안전한 나의 특등석을 내주어야 했다.
3일을 예정하던 트럭 길은 다시 5일이 되어버렸다.
다음 날은 한쪽 바퀴가 사막 모래에 빠져 한나절을 소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6일을 아슬아슬하게 넘기지 않았던 것은 물과 음식이 떨어져 밤새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고 별빛에 의지해 달린 탓이다.
언제나 시체가 즐비했던 그 곳 사하라사막..
누군가 내게 여행의 추억을 묻는다면 나는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곳은 아름답지 않았다. 아프기만 했었다.
내 꿈은.. 내 환상은.. 언제나 바보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외면할 수 있을지언정
어쩌면 내가 알고자 했던 세상의 진실이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참담했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했었다.
어느 밤엔가에는 어느 여인의 한맺힌 절규가 들렸던 그 곳.
내 안에 살고 있던 나 자신과
이제까지 살아왔던 내 삶의 의미가 통째로 변해 버렸던 그 사막여행...
그래도 그날은 조금의 안도감이 있었다..
적어도 그날은,
시체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과 그 사막을 달렸으니까.
한량일기. 장기 저가 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깨닫게 되는 몇 가지 것들.
*나는 가끔 돈에 눈이 멀어 품위 유지란 놈을 까먹을 때가 있다.
----------------------------------------------------------------------------------
여행자의 의리
내가 묵고 있는 4인용 숙소에는 이층 침대가 두개 있었다.
문가 쪽 아래층 침대가 내 자리였고,
내 윗 침대에는 프랑스인 니콜라스,
다른 침대 아래층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왔다는 아르만도,
그 위에는 스페인인 레오폰도.
그 중에서는 아르만도는 가장 성격이 좋은 여행자에 속했다.
첫날부터 방 친구들을 모두 단합시키더니 며칠 후에는 베네수엘라 음식 파티를 열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파티에 프랑스인인 니콜라스는 와인을 준비했고, 스페인인 레오폰도는 이상한 소스를 준비했다. 한국인인 나는 음식을 먹고 요리솜씨들을 평해주겠다고 했다. 물론 재료비는 공평하게 나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아르만도가 제안했다. 요즘 페루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클럽에 놀러 가잰다. 바텐더가 현지인과 즉석 만남도 주선해 준다는데. 이 녀석들.. 그동안 여자가 아쉬웠나..?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설거지를 부탁한다는 메모와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한 밤중이다. 나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정말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이불위에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허걱..! 아르만도 이 녀석, 술이 떡이 되었는지 내 이불위에 올라와 잠이 든 것이다.
무거운 녀석을 낑낑거리며 옆으로 치웠다. 거실에 가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문 앞에서 질퍽한 것이 밟힌다. ...지린 냄새와 함께 방한용 양말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한쪽 발을 들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암만해도 이 상황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방금 막 내 침대위에 쓰러져 버린 아르만도.
“야 아르만도 이 자식아! 내 침대에서 당장 안 일어나~?!”
철퍼덕~!!!
젖은 양말로 아르만도 얼굴을 때렸지만 이 자식은 취해도 단단히 취했는지 요지부동. 나는 결국 이 무거운 녀석의 몸채와 머리채를 끌어당겨 자기 침대에 돌려놓고야 말았다.
방안에는 세 남자의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자려하는데 이번에는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윗 침대의 니콜라스가 코를 고는 소리이다.
내 평생 ‘쾅’ 소리 내면서 코를 고는 놈도 처음 보았지만, 그 소리의 크기가 장난 아니다. 저 코고는 소리에도 잠을 자는 나머지 두 녀석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침대 옆으로 몸매 좋은 하얀색 삼각 팬티가 지나갔다. 레오폰도가 화장실을 가려고 팬티차림으로 침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아주 이것들 가지가지 한다.
오늘 일정대로 당장 리마를 떠나겠다는 나를 두고 니콜라스는 원망에 찬 말투다.
“리오, 너는 몰랐겠지만 나는 항상 네 일정에 따랐어. 네 여행코스는 물론이고 안데스 산에서 항상 너를 기다렸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난 네가 아팠을 때 혼자 도시까지 무려 이틀을 히치하이킹 해서 약도 사왔었어. 그런데 넌 숙취에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하루도 못 기다려 준다고 하는구나. 너 정말 이기적인 거 알아?”
“니콜라스! 나 너한테 따라오라고 한 적 없거든? 그리고 왜 우리가 같이 다녀야 하는 건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가 연인인줄 알겠다!”
“연인? 연인이라고? 넌 정말 우리가 같이 다녔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일방적으로 네 여행만 했었고, 순전히 내가 널 따라다닌 거잖아! 나는 모든 걸 너에게 맞췄다고! 내가 널 왜 따라다녔는지 알아? 난 그저 내 여행이 멋지길 바랄뿐이야. 그리고 네가 멋진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멋진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말이야. 네가 일방적으로 떠나고 해서 헤어진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너를 따라다닌 것이 벌써 한 달이 넘어. 브라질 아마존 강에서 만난 인연까지 생각하면 거의 두 달째라고. 그 모든 것을 너에게 맞췄어. 게다가 여긴 대도시라고. 이제 한번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 텐데. 그런데 넌 단 하루도 나를 위해 늦출 생각을 안 하는구나!”
“자자. 그만 하라구 그만. 리오. 우리 그만 협상하는 게 어때? 니콜라스가 저렇게 만취해 있는 데에는 내 탓도 있으니. 리오 만약 네가 내일 떠나겠다고 약속하면 오늘 점심은 내가 다시 베네수엘라 음식을 대접하겠어. 요리부터 설거지까지. 모두들 공주님을 위해 봉사 할 것을 맹세하지. 아! 그래 너 베네수엘라 전통 인형 탐냈잖아? 이것도 그냥 너 줄게. 리오 설마 우리들이 이렇게 애원하는데 거절한 생각은 아니겠지?”
“야.. 아르만도.. 너 혹시 어젯밤 어디서 잤는지 기억하냐?”
“나? 왜? 어제 밤 잘 들어와 잤는데..”
“너 오늘 아침 문 앞에 있었던 오줌이 누구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번엔 레오폰도가 말참견이다.
“그거 오줌이었어? 난 또 누가 물 쏟았는줄 알았는데.”
“너네들은 물이 그렇게 냄새 나는 거 봤냐? 그리고 레오폰도! 너 어제 밤에 팬티 바람으로 오줌 밟고 돌아다닌 거 알고 있어? 너 그 발로 그냥 침대 들어가서 잤지?”
“자자 그만 하자구. 공주님. 네가 하루만 더 늦춰주면 그저께 네가 탐내던 스페인 젤리 너 줄게. 그러고 보니 너 페루에서 전통치마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하루쯤은 쇼핑을 하는 게 어때?”
천하의 웬수같은 니콜라스를 떼어버릴 절호의 찬스가 왔건만. 저들이 이렇게까지 나오니까 내가 너무 의리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몰라! 늬들 맘대로 해! 대신 난 오늘 한국음식점 가서 혼자 맛있는 거 먹고 올 테니까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구!”
그날 밤.. 나는 조금 피곤했다. 정말로 곤히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음식을 해먹은 세 남자는 무얼 잘못 먹었는지 밤새 지독히도 방귀를 뀌어댔다. 니콜라스는 창문 없는 방안에서 방귀를 뀌며 동시에 코를 고는 묘기까지 선보였다.
내 침대 천장은 니콜라스가 방귀를 뀔 때마다 들썩였으며 레오폰도는 어김없이 삼각 팬티차림으로 화장실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내 침대를 들여다보며 “어라? 깨어 있었네?” 라며 흰 팬티를 흔드는 안부인사도 잊지 않았다.
...레오폰도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화답하며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망설임 없이 의리를 버려 주리라.
어차피 내일이면 안 볼 사이. 대체 무슨 마음으로 의리를 지키겠다 생각했던 것인지.
나는 깨달았다. 여행자에게 있어 의리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영양가 없는 단어라는 것을 말이다.
한량여행. 장기 저가 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몇 가지 것들.
*현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예쁜 젓가락을 몇 개 들고 다니며 식사할 때 가르쳐주고, 나중에 선물로 준다던지, 한국주소나 연락처를 알려줄 때는 한국 전통 그림엽서에 써서 준다던지,
또.. 음.. 예를 들어 남미의 경우..
처음 보는 남자와 인사할 때는 남미 여자들처럼 세련대게 뺨을 대주지 말고
‘응~?’ 하는 콧소리와 함께 미소 지으며 살~짝 피해주면
특히 남미의 늑대들.. 엄청 좋아하면서 다음 날 나보다 어린 것들이 아이스크림도 사줬다.
(...내 언젠가는 한국 여자들에게 돌 맞아 전사하리라~.)
--------------------------------------------------
아프리카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
아프리카 시장은 정말로 한가했다.
몇 개 안되는 말라비틀어진 피망부터 주먹만한 토마토, 그리고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나뭇가지와 고무 조각들...
어쨌든 이날 나는 새 팬티가 절실히 필요했다.
가방의 무게가 전생의 무게라는 인도 사상에 따라 팬티가 석장밖에 없는데 길거리 공중 화장실에서 빤 속옷들은 제대로 마르지도 못한 채 가방 안에서 푹푹 썩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누가 말했었더라? 전 세계 폐품들이 모이는 곳이 아프리카라고. 세계 각국에서 버려진 속옷들이 아프리카로 오는 줄은 정말 몰랐다.
수북히 쌓여있는 중고 팬티들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500원.
락스로 소독했는지 특정 부위의 빛바랜 색깔과 구멍들이 귀하게 자란 한국 여인네의 심정을 난감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한 듯 싶었다.
정말로 이걸 입어야 하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속옷 없이 돌아다닌 지 벌써 이틀째다. 바지라곤 두 벌 뿐인데 이 살인 더위에 팬티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그나마 깨끗한 것을 찾고 있는데 아줌마는 고무줄이 탄탄하게 남아있는 팬티 한 장을 눈앞에 들이댔다. 중요한 것은 아랫부분의 색깔이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외국인을 만난 그녀의 흥분된 목소리와 고무줄을 강조하는 바디랭귀지는 이미 내 어설픈 아프리카어 실력을 기선 제압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중고 팬티가 정말로 한 장에 500원일까..?’
이 와중에도 시장 아주머니가 내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뭘 어쩌겠는가. 만약 바가지라면 아프리카의 신이 아시아인인 내게 바가지요금을 내리셨다고 믿는 수밖에...
호텔로 돌아와 팬티를 불빛에 들어보았다. 탄탄한 고무줄과 지름 1mm 정도의 구멍들. 그리고 아마 락스 휴우증으로 의심되는 뻣뻣한 아랫부분의 재질을 바라보았다.
어느 덧 뱃속에서는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음식점이 문 닫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팬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침대 밑 휴지통에 떨구어 버렸다. 새 팬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프리카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마음 상해 버렸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호텔 식당에서 물 한바가지를 얻어왔다.
가방 속 빨래들을 꺼내어 차례로 물에 다시 헹구고 젖은 빨래들을 침대 맡에 널어놓았다. 그리고 바람이 통하도록 방문을 열었다.
현금과 카메라만을 챙긴 채 외출했지만 식당들은 이미 문을 닫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길거리에서 파는 스파게티를 봉지에 담아 방으로 돌아왔다.
...내 팬티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양말과 브래지어까지 모두 없어졌지만.
휴지통에 버려진 한 장 만이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반겼을 뿐...
나는 스파게티를 방 한구석에 던져 버렸다. 스프링이 망가진 침대 위에 누워 힘껏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뒹굴뒹굴~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극악의 상황에서 환각작용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의 뇌라 했던가..?
구름 나라에서 나는 새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더위가 엄습했고, 새 팬티가 중고 팬티로 변하는 순간 고맙게도 지배인 아저씨의 노크 소리에 잠이 깨어버렸다.
“방문 닫고 주무세요. 마담.”
며칠 후.
새 팬티를 살 수 있었던 곳은 버스에서 기차로 갈아 탈 수 있는 어느 조그마한 도시에서였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여행자들이 갈아 탈 기차를 기다리며 하루 이틀 머무르는 호텔이 있었다. 이 곳 상점에서 천을 많이 아낀 듯, 가녀린 새 팬티 역시 우리 돈 500원.
‘역시 바가지 요금이었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버스조차 가지 않는 촌 동네까지의 운송비를 생각한다면 중고가가 정말로 500원이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오늘...
아프리카에서 사온 낡은 팬티들을 옷장에서 꺼내 보며 잠시 아프리카를 떠올렸다.
그날 내 속옷과 양말을 가져간 사람이 변태가 아니라 순수한 밤손님이었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반년이 지난 지금 내 속옷들이 새 주인에게서 사랑받고 있기를..
새 주인의 생활경제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어주기를..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사온 이 허름한 팬티들..
이름을 써서 버리면 다시 아프리카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
갠지스! 갠지스! 갠지스!
스무 살 때부터 비 개발 동네로만 돌아다닌 것이 십여 년.
알라스카 최고 북부인 ‘배로’에서는 물 대신 빙하 깨서 먹었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남미의 안데스 꼭대기에서 계곡 물을 마셨다. 백두산 천지 물도 마셔보았고..
아마존 정글에서는 연구원들과 땅 파서 흙탕물 걸러 마셨다.
..웬간한 동네는 수돗물 마시고 산다.
배탈 났다는 이유를 끼니를 거스린 적도 없다.
그냥 배탈 나면 뒷골목에 들어가 싸고 먹는다는 것이 내 여행관이다.
물론 배탈 나는 거 신경 안 쓰고 마신다고 해서 바보는 아니다.
사하라 사막의 물은 석유와 세제로 오염되어 있고, 이것은 2세대 3세대로 내려갈 때 유전 인자에 농축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동 아프리카 호수에는 인간의 몸에서 부화되는 기생충이 살고 있는 지역이 있다.
그럼 안 먹는다. 나도 바보는 아니다.
에구.. 서두가 길다.
본론만 말하겠다.
여기저기 다 마셔봤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것은 바라나시 갠지스 강의 물이더라.
이건 정말 진심이다.
물론 갠지스 강에는 각종 것들이 떠다닌다.
바닥에는 온갖 오물들이 깔려있다.
하지만 인도인들이 말하는 성스러운 강 갠지스는
태양빛을 흩뿌리며 고고하게 그 위를 흘러간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나룻배를 타고 들어 간, 갠지스 강의 한 가운데서 마실 수 있었던 성스러운 물의 감동! 내 안에 흘러들었던 갠지스의 생명력은 세상 어느 물보다도 밝게 빛났으며 눈이 부셨다.
물론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갠지스 물을 마셨는데 배탈이 나더라.
그러면 책임 질 거냐? 라고 묻는다면
책임질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다. ...초딩이냐?
그리고 그런 식의 생각이 의식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넘은
평생을 그렇게 살 놈이라는 것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최근의 결론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또 다른 세상을 배우고 싶어서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갠지스강의 물을 꼬오옥!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진심이다.
-------------------------------------------------------------
*여행이란..
여러 사람이 같은 시기에 같은 곳을 여행했어도 보고 느낀 것은 다르기 마련..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대신전에서 상형 문자를 해석했는지,
가이드북을 보며 관광을 했는지,
연애를 즐기며 스킨스쿠버를 했는지,
빈민촌에서 삥을 뜯겼는지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돌아왔는지를 생각할 때
자신이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된다.
여행을 많이 할수록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고 세상을 많이 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모두가 다른 여행을 하기에 남들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여행스타일을 변화시키려 끊임없이 쇄신해야 한다.
-------------------------------------------------------------------------------------
ㅋ~ 대충 이런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되도록 인도편을 뽑으로 노력했으나.. ^^ 워낙 분위기들이 달라서^^)
음..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여행자들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기에
굳이 책을 홍보하겠다거나 그런 이유로 여기에 글 올리는 거 아니고요.
음.. 이왕이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책을 팔고 싶기에.. 참신한 책제목 아이디어가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꾸 우 벅~! ㅋㅋㅋㅋ~
마지막에 연수가서 외국인과의 사랑으로 낙태를 선택했던 지인 운운에서...좀 웃습니다. 그 여자들에게는 그게 로맨스잉지 몰라도 서양남에게는 섹스 상대 수십명중에 한명일 뿐입니다. 다른 애들은 피임 잘하는데 등신같이 피임도 못하고 임신해서 몸만 망치는 어리석은 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일본 여자도 그런 애들이 많은데 한국 여자도 예외가 아니군요. 미국 캐나다 영국 곳곳에서 " FEMALE ONLY, JAPANESE BETTER"라고 룸메 구하는 광고글을 붙이며 지들도 양심은 있어서 얼굴이 붉으스레 한 양놈들이 하나둘이 아니지요.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거지근성, 사대근성부터 고쳐가야 합니다. 공들여 글 썼는데 이런 답글이라 미안하
긴 한테... 갑자기 오늘 "한반도"라는 영화를 보다가 강의 듣던 아줌마들이 생각났어요. 각종 기념일은 잘 기억하면서 명성황후 시해된 날도 모르던... 갑자기 이 글을 읽으니 좀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요. 아직 균형있는 시각이 없어서 책 쓸 시기는 아닌 듯 합니다. 내공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한데 제 친구는.. 4년간의 유학 생활을 했었고, 남자에게 청혼을 받았었지요. 결혼 문제와 낙태 문제로 남자쪽 부모님까지 몇번이나 친구를 찾아갔었구요.. 저도 그 과정에서 여러번 친구 남친과 국제 통화했으니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에 돌아 온 후 몇달후에는 남자가 한국까지 오기도 했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잠시 반한 이야기에서 낙태 이야기는 좀 건너뛰는 것 같아 빈 공간을 좀 남겨뒀지만 . 암튼 편협한 시각으로 제 친구를 모독하는것 같아 잠시 발끈하여 댓글을 답니다.. 음.. 근데 솔직히 이런 댓글에 대답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한심한 거겠죠.
지어주란 제목은 안짓고.. 참.. ㅉㅉ
이분 전에도 이상한 리플 다셨던 것 같은데...여기 관심 한톨아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
"한량여인이 가고 가고 가는길에 만난 사람들" 노자 도덕경에서 살짝 카피해 보았슴. 잘 읽고 갑니다.
음.. 어디에선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라는 제목을 본것 같았는데요.. 음.. 노자 도덕경이었을까요? 음.. 제목이 좋은것 같긴한데.. 어디서 봤는데 좀 찾아봐야겠어요.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패러디 냄새가 나면 낭패~ 요 ㅋㅋㅋㅋㅋ~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THE HEART OF TRAVEL] 은 어떨런지요...... 여행의 심장...... 여행하면서의 이런저런 생각들과 정서 또 가슴속의 무엇인가의 .......ㅎㅎ
여행의 심장.. 음.. 이것도 좋은데요.음.. 좀 짦으려나 쾅
야예 야동모드로 가자. 그리고 뭐 너! 사실이잖아!
<<네버 빠굴 스토리>>어때? 푸하하하하하
음...저를 잘 모르는 분들께는 양해를...제가 초창기 딴지 출신이라..이런 대사를 좀 잘 친답니다..ㄷ ㄷ
...한판 붙자 이거지! (ㅡ.ㅡ+)
<환타의 비밀 시리즈~>
인방 여성회원 여러분~ 환타는요.. 여자를 욜라 밝히는척 맨날 음담패설을 일삼지만 여자가 조금만 관심보여도 지레 혼자 겁먹고 도망간대요~. ㅋ~ 혹시 평소에 환타의 언행이 못마땅 하셨던분들.. 심심하면 꼬셔보아요. ~ 참고로 환타는 직접 확인 안되는 사실을 추론하는~!!! 딴지 출신..! 어쨋든 윗글은..! ...근거없는 사실이예욧! 쳇. 꽝! 그리고 한량여인은 명예훼손죄에 안 걸릴리고 증거 있는 사실만을 쓰는 꼴통 찌라시 신문 기자출신입니다. (ㅡㅡ+)
특히 인방 남.성. 여러분~ 믿지 못하겠으면 환타를 유혹해보아요~ㅋ.. 뒷일은 한량기자가 책임집니다. ㅋ~ (ㅡㅡ+)
====== ㅋㅋㅋㅋㅋ~ 이번 기회에 공지한번 날려야겠다..======================
인방의 남성분들~! 특히 오랫동안 눈팅만하다가 인방 정모에 나오시는 능력있는 오빠들..
한량 여인의 화려한 명성(?)을 듣고 호기심으로 자연스레 원나잇 분위기로 몰고 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ㅋㅋ~
앞으로는 소문낼꺼예요~ ^0^ ========================================
한량여인님의 화려한 명성이 뭔데요? 이런걸 책으로 쓰심 좋을텐데.. ㅎㅎ
ㅋㅋ 장난 아닌데~ 책임 진다니! ㅋㅋ 남성이 아니라 안타깝군.
어쩐지 환타님 이미지 속에 김어준이 있었어요. ㅎㅎ
ㅋㅋㅋ~ <화려한 명성>이라는게.. 제 글을 읽고 제가 외국나가서 남자들하고 많이 놀아봤을거라는 추론? 이지요. 예전에 환타옹이 충고해 주시길.. 자꾸 인터넷에서 남자를 밝히니까 "인터넷에서 가장 싸게 노는 여자~" 로 통하고 있답니다. ㅋㅋㅋㅋ~
첵에는.. 나를 사모하는 수많은 원주민들과 그들에게 눈길 한번 안주고 한국으로 돌아온<한량여인의 도도한 일대기>가 내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ㅋ~ .. 남자들은 책을 안 사볼듯 합니다. 우하하..
지구를 느끼다! 이상한가요?? ㅠㅠ
이상해요..ㅋㅋㅋ~ 제목이 좀 더 길면 좋을것도 같은데.. ㅠ.ㅠ
한량여인의 불량 여행기
안 불량해요~ ㅋㅋ~
젊은 나이에 세계 곳곳을 여행한 용기는 참 대단하고 또한 많이 부럽습니다. 샘플로 올려주신 글들도 잘 보았습니다.
이런 말 올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올려주신 샘플을 보면 요즘 무수히 나오고 있는 비슷비슷한 여행기 같아 보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 님의 글들이 단순한 여행의 경험담이 아닌, 진지한 사유가 묻어나는 살아있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자격도 안되는 저의 오지랖 용서하세요... 그리고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축하한다. 드디어 나오는 거야? ㅎㅎ
예전에 시작할 때 내가 뭐라뭐라 기다란 제목을 지어준 것 같긴 하다만..
시간이 너무 흘러 기억도 안나고..
ㅋㅋ 글이 더 재미있어진 것 같네.
엉.. 네가 지어준 제목밑의 부속 설명.. 표지 디자인에 그대로 넣었어.. ㅋㅋ~ 근데 출판사에서 전화왔었는데.. 내 글 검토해볼테니 글 다 보내달라고 하면서 혹시 표지 디자인이나 책 제목, 글의 순서 바꿔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ㅋㅋㅋㅋㅋ~
다소곳이 "네~ 전문가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라고 대답 드렸지. 근데 그 출판사가 여행기 출판사가 아니라 사회문제가 전문인 출판사라능.. ㅋㅋㅋ~
Addicted to Travel은 어떨까요? 아님 여행... 그 신비한 매력 은 어떨까요?
음... 제목은 좋은데 컨셉하고 좀 다를 것 같기도 하고요. ㅋㅋㅋ~ 어쨌든 굿~ 아이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