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는 남녀 더블 앵커 시스템이다. 그런데, 유독 남자 앵커만이 왼쪽에 앉는다. 어느 방송사든 아래 사진이 증명하듯,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이다. 어디 뉴스 뿐인가?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 위치를 보면,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이다. 물론, 드물게도 'KBS 아침뉴스타임'처럼 주요 시청층인 여성들을 배려해, 여성 진행자가 왼쪽에 앉는 경우도 있다. 과거, KBS의 '시사투나잇'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불편부당함을 드러내기 위해, 관례를 깨고 여성 앵커를 왼쪽에 앉힌 전례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TV 진행자의 무게중심은 왼쪽에 위치한 남성이 쥐고있다. 어디 뉴스 뿐인가? 심지어 오락 프로그램 조차, 남성은 왼쪽, 여성은 오른쪽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화면의 주도권은 왼쪽이 쥐고 있을까? '느자구 없는 그넘들'이 주장하듯, 방송사가 좌파라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은 쪽이 바로 왼쪽이기 때문이다. 화면의 왼쪽이 주목도가 높다보니,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 따라, 주도적 위치인 왼쪽을 남성이 점유하게 된 것이다. 자, 여기까지는 대부분 아는 얘기일 터,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왜 TV화면의 왼쪽이 주목도가 높을까?
먼저, 우리 사회의 '좌 우선 사상'을 떠올릴 수 있다. 조선시대 직제만 해도, 영의정 다음 서열을 좌의정으로 쳤으니, '우' 보다 '좌'를 우선하는 문화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인식을 규정하는 언어만 해도, '우좌'가 아니라 '좌우'로 표기하지 않는가? '좌고우면',
'좌청룡 우백호', '좌우합작', 심지어 '좌삼삼 우삼삼'까지, 거의 모든 단어에 '좌 우선 사상'이 짙게 베어있다. 오죽하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종 잡지 못하는 모양'을 '우왕좌왕'이라 했겠는가. 좌우 구분도 못하는 모양새니 '좌왕우왕'이 아니라 당연하게도 '우왕좌왕'이 됐을 터.
그러나, 이같은 한국인의 '좌 우선 사상'으로 인해, TV화면의 왼쪽이 주목도가 높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은 '사유'가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행동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상기호학에서는 왼쪽을 먼저 주목하는 시청자들의 '본능적 행동'의 이유를 '글을 쓰거나, 읽는 습관' 에서 찾는다. 시청자가 화면을 인지하기 시작할 때, 가로로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왼쪽을 먼저 주목하고, 과거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이, 세로쓰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오른쪽을 먼저 본다는 얘기인데, 현재까지 나온 이론중 가장 그럴듯한 이론이다. 따라서, 이 이론이 맞다면, 한국의 TV 진행자들의 배치는 가로쓰기 습관과 남존여비 사상이 결합된 결과로, 남성이 왼쪽, 여성이 오른쪽에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된다.
뉴스에서 남성 앵커가 어느 쪽에 앉든, 뭐 그리 대수냐고 따지고 드는 분들도 있을게다. 하지만, 별 의미없어 보이는 TV의 진행자 배치도, 실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습관과 사상, 심지어는 역사에 의해서 형성된 사회적 관습의 표상이라는 점은 충분히 곱 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 형식도 그러할 지니, 내용은 말해 무엇하리. 이쯤되면, TV에 '사회의 거울'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별 무리가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