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의 북한산이야기-에피소드23(030112)
*만남
불광역
포도알! 싱싱한 청포도알이 보인다.
떼제베님 부부가 사랑이라는 포도알 속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신다.
이어 소나기님 부부의 향기나는 포도알이 전철역 1번 출구로 구르듯 올라온다.
남애리님,손님,애플님,바둑님이 도착하자 포도알이 커지며 아기봉만해졌고 갓익은 청포도알처럼
생명의 싱그러움이 넘실댔고 풋풋한 향기가 나는 젊음이 넘쳐흘렀다.
9시반 청포도알은 바둑님의 힘찬 발걸음과 함께 2번출구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근처가 집이시라는 그린님,보아스님이 2번출구에서 포도알속으로 들어오신다.
산이야기의 포도알은 더욱 싱그러운 향기에 휩싸인다.
우리는 산밖에서 이미 속세와 차단되어 우리들만의 세계속으로 들어왔기에
주위의 건물,도로,차등이 생소해 보이기까지한다.
바둑님,그린님,보아스님이 선두에서 시속10km의 속도로 걸어가시며 포도알을 굴려간다.
우리는 '하이틴'처럼 몸동작이 날아갈듯이 가벼웠고 부드러웠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앞길을 막지못할 것같은 패기와 의욕이 넘쳐흘렀다.
북한산 입구의 소나무잎이 청포도 껍질을 살짝 찌르자 청포도알 껍질이 터지며
맑고 향긋한 기운이 퍼져나왔다.우리는 신선한 기운을 마음껏 들이켰다.
돛을 올린 범선에 오르는 산이야기님들.
바둑님이 빛나는 눈으로 하늘과 땅을 둘러보고
입을 꽉 다물고 칼봉같은 코로 깊은 숨을 내쉬자
'산이야기'호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숲을 조용히 미끄러지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항해를 시작한다.
그동안 오랜동안 서로 못 만났던 님들.
달수론 몇달이 채 안되지만 햇수로는 2년만에 만나게되는 님들은
그리움을 소곤소곤한 이야기로 풀어간다.
산이야기님들의 다정한 속삭임이 순풍되어
돛단배는 북한산이라는 넓고 평화로운 바다를 순항한다.
하늘은 옅은 회색 구름에 덮여있었으나 우리의 마음은 맑고 깨끗했어.
넓고 푸른 초원에서 춤추듯,넓고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듯 신이 났어.
거대한 슬랩이 보이는 암초가 빙산처럼 떠있다.
족두리를 닮은 봉우리라 하여 족두리봉이라고도 한다는 수리봉을
보라는 '수리수리 마수리'하는 마술사의 마법에 걸린 듯이
우회하는 님들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고 올라간다.
떼제베님,사모님도 동행했는데 대슬랩은 보기보다 바위가 살아있어 수월하다.
정상을 밟은 후 내려가는 데 떼제베님 사모님이 "제가 모모예요"하신다.
'모모'라는 대화명을 쓰는 분이 궁금했는데 일급비밀이 풀린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눈덮인 바위를 피해 체인을 붙잡고 잘 갔는데
마지막 내려가는 대슬랩에서 사람들이 복작거린다.
미끄러운 바위.40대의 여자 두명이 한꺼번에 미끄러지는 것을
50대 일행 남자가 막아주어 추락은 피했지만 아찔한 순간이 지나간다.
향로봉을 향하는 능선에서 우리는 나룻배로 갈아탔다.
연자주색의 투명한 막으로 만든 긴 나룻배였다.
보이지않는 끈으로 서로를 묶고 각자의 노를 저어갔다.
향로봉 오르는 바위는 계단처럼보였으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닻줄 내리듯 로프를 내리는 바둑님.
사다리 타고 구름 위에 오르듯 하는 산이야기님들.
향로봉 릿지 마지막 코스에서
남애리님이 모시고 오신 손님이 바위 위에서 웃고 계신다.
만면에 흐뭇함이 가득한 미소는 인상적이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미소였다.
이런 미소를 띠는 분을 자주 보시는 남애리님은 행복하실 것 같다.
생각보다 길게이어진 향로봉의 릿지코스를 무사히 통과한다.
비봉쪽을 향해가며 왼쪽을 보니 삼화사쪽에서 올라왔던 능선이 보인다.
무명봉에서 점심,
작고 동그란 토마토처럼 동그랗게 둘러앉아 먹는다.
커다란 토마토안에서 우리는
영생하는 신들이 먹는다는 암브로시아 (ambrosia) 같은 음식을 음미하며
삶을 예찬하며 포식한다.
겨울에 나타난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보아스님 식욕이 너무 왕성해져 고민이라는 듯 말씀하신다.
행복한 고민이다.
젊음과 건강이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이다.
비봉이 회색구름이 덮은 하늘아래 암청색과 진회색으로 빛나고있다.
진흥왕 순수비가 있던 자리에 원래의 비석을 대신한 대리비석이 보인다.
비봉쪽 시야에 소나무 가지가 보인다.비봉의 바위 표면을 뚫고 들어간 스트로우같다.
소나무의 향기를 불어넣어 점점 부풀어오르는듯 비봉은 겨울햇살아래
점점 커지는듯 보였다.
왼쪽으로 우회한다.녹지않은 눈이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의상봉쪽에서 불어온 미풍이 비봉을 가볍게 스치며 지나가고
정면에 부딪힌 바람은 방향을 틀더니 보라의 뺨을 간지럽게 한다.
바람에 실려온 비봉의 정기를 천천히 들이마신다.
*작은 이별
사모바위에 다다른다.
등산객들이 꽤 많다.사모바위 바로밑에 앉아있는 사람.
사모바위 밑 커다란 바위옆에서 식사하는 사람들.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조용하다.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이다.조용함 속에 사람들의 움직임만 느껴지는....
'산이야기'도 뉴질랜드의 평화로운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들처럼
사모바위의 정기를 편안하게 마신다.
저멀리 노적봉,만경대,백운대,인수봉이 보이고
그 앞으로 의상봉,나한봉,나월봉,상원봉,문수봉에서 뿜는
봉우리 정기가 큰 물결되어 넘실넘실 다가온다.
뒷쪽의 사모바위 정기와 마주치며 나선형으로
'산이야기' 주위를 '휘휘'돈다 .
사모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찍고 문수봉으로 향한다.
이름없는 바위언덕을 몇개 넘어야한다.
문수봉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도 꽤 많다.
바위턱을 오르려 스탠스에 발을 디디던 그린님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올라가려다 멈칫하며 다시 내려오시는것이었다.
그린님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초롱히 빛나며 촉촉해진다.
'머릿속에서 발원된 환희의 전율이 예민한 신경을 자극하더니
미세한 진동을 하며 온몸에 전달된다.
기쁨에 부푼가슴은 날개없이도 날아오르는 것같다.
반가움에 눈물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살포시 참는다.
심장이 빨리 뛰며 앞이 잘 안보인다.숨을 깊게 들이쉬며 잠시 안정을 찾는다.'
그린님이 여자분을 가리키신다.
오대산 눈꽃 위에 흑진주를 박아놓은 듯한 눈동자를 가진 여자분이
맑은 기운을 내뿜으며 서 계신다.
언니를 만나신 것이다!
인자한 눈빛으로 그린님을 지그시 바라보신다.
보라를 가리키며 '우리 일행!'그린님 설명이 끝나자
보라곁을 지나며 “울언니 만나서 같이가요.얘기 좀 해주세요”
이 한마디를 슬쩍 던지고 등산인파 속으로 파묻혀가는 그린님!
보라가 없었으면 울먹이며 언니 품에 안겼을 것같은 그린님!
자매의 다정한 정이 꽃처럼 피어오른다.
두송이의 꽃은 비봉쪽으로 흘러가는 등산객 물결을 타고 두둥실 떠내려갔다.
안녕히 가세요!
그린님과의 이별을 떼제베님도 올라오시더니 얘기하셨다.
떼제베님은 아무렇지도않게 얘기했고
우리는 아무렇지도않게 듣고 있었지만
실은
봄날처럼 따스한 날 도란도란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우던
우리에겐 아름다운 들꽃잎 하나가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린님이
꿈길같은 북한산 산길을 걷다가
꿈에 그리던 언니님을 꿈같이 만나
행복이 가득한 집에 가셔셔 웃음꽃을 피우리라 생각하니
아픔은 이내 서서히 기쁨으로 바뀌었다.
지혜가 넘친다는 문수보살의 정기가 서린 문수봉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들려준다.
'그린님과 산이야기는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 멀어져있는 것
북한산 자락이라는 부처님 손가락 위에 같이 있어!'
언니따라 가버리신 그린님을 그리워하는 산이야기님들을 위해
놀라웁게도 김소월님은 몇십년전에 이미 이렇게 읊었나보다.
그리워
봄이 다 가기 전,
이 꽃이 다 흩기 전
그린님 오실까구
뜨는 해 지기전에.
엷게 흰 안개 새에
바람은 무겁거니,
밤샌 달 지는 양자,
어제와 그리 같이.
붙일 길 없는 맘세,
그린 님 언제 뵐련,
우는 새 다음 소린,
늘 함께 듣사오면.
*조그만 생각
눈길을 지나 바윗 길을 올라
바위 언덕을 내려가며
천국문같은 돌문을 지나 흙을 밟고 간다.
서로 몸을 비비며 오고가는 수많은 등산객들.
바람은 연하게 불다 말다하며
태양은 구름사이에 나타나다 말다하며...
회색과 흰색이 섞인 구름이 떠있다.
마치 화가가 수채화붓에 흰색을 묻혀
회색구름 가운데를 슬쩍 긋고 지나간 듯한다.
문수봉을 왼쪽으로 돌아간다.
보라는 문수봉 릿지에 오르고 싶은 마음 굴뚝같으나
문수봉까지 혼자타면 바둑님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보라를 산이야기에서 쫓아낼 것같아 꾹 참는다.
계곡길 옆 단풍나무의 쪼그라든 잎이 바람에 너풀거린다.
실크부라우스 주름처럼 보드랍게 바람결에 일렁인다.
전에는 어린아기의 오므린 조막손처럼 보였는데....
청수동암문을 저만치 위에 두고
여자님들만 숲속으로 총총이 사라졌는데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것 같았다.
"야호!야아호!"
상쾌하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탁하며 리듬이 매끄럽지가 않다.
60중반은 넘어보이는 노인 한분이
소나무 밑 바위에 올라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악쓰듯 질러대는 소리였다.
마치 흘러간 청춘을 돌려달라며 자연에 대해 외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봉우리는 다 타고 넘었으며
남은 것은 나무도 없고
새의 지저귐도 없고 황량하고 썰렁한
마지막 언덕만이 남아있다며
하소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꿈같던 젊은 날의 아름다웠던 순간순간들이
모든게 끝나는 죽음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를 더욱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장미빛 미래도 안보이고 몸에선 점점 힘이 빠져가고
머리엔 하얀 눈발이 날리고 수정체엔 안개가 끼여
구름한 점 없는 맑은 날에도 뿌옇게 보이고
이빨도 흔들거리다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새들의 노래소리도 잘 안들리고
무릎은 쑤시고 허리는 뻐근하고
어깨 높이로 팔도 안 올라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기 귀찮고
밤이면 밤마다 죽음의 언덕을 내려오는
저승사자가 아른거릴 때
온전한 인격을 유지하기가
쉽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등산하며 느끼는 것은
이보다 멋진 봉우리가 또 있을까하며 한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있고 여기가 끝인가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려있었어.
의상봉 넘으면 용출봉,용혈봉,증취봉,환희봉이
환희봉을 환희에 차 넘으면
나월봉이 나월봉을 넘으면
나한봉이 나한봉 너머엔
상원봉이 상원봉 너머엔
문수봉이 문수봉 너머엔....
속절없이 늙어죽어야하는 인간의 운명앞에서
'죽음'이라는 절대로 피해가지 못한다는 벽 앞에서
절망감을 한두번 느껴본 것이 아니지만
등산을 하며 무엇인가 계속 깨달아가면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도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밟을 수도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저 노인은 여기서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면
어쩌자는 것인가?
자신의 괴로움을 혼자 삭이지 못하고
같이 죽어가자는 식으로.....
깨끗이 죽는 것도 대단한 기술이요,
조용히 살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도 상당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란하게 살다 요란하게 죽은 사람들만이 위인이 아니라
이름없는 곳에서 조용히 살다
소리없이 사라진 이름없는 사람들이
더 훌륭한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생은 60부터라는 데에 촛점을 맞추던 보라에게
지금까지의 삶은
앞으로의 본격적인 삶의 준비운동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끝없는 즐거움을 주는 등산에 끝없이 빠져들고 있는 보라에게
그 노인의 모습은
'보라도 저 나이에 다다르면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주었다.
* 여로(旅路)
1430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을 지나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귤을 먹고 물마시고 출발이다.
하얀 계곡이 보인다.
꿈꾸듯 몽롱한 기분으로 디즈니랜드의 하얀 롤러코스터에 오른다.
눈이 녹지않은 하얀 길을 오르락내리락....
북한산성이 보인다
대성문의 공터에서 일단의 70대의 남자 등산객들이 걸어온다.
약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노래를 하며 오는데 한잔씩들 하신 모양이다.
주위 등산객들이 어떤 느낌을 갖는지는 아랑곳하지않는 듯하다.
여기까지 등산을 하시는 것을 보니 건강하신 모양이다.
불치병에 걸려 온 재산 다 날리고 식구들 거지로 만들고 떠나는 노인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하신 분들일까?
대성문을 지나 보국문 가는 길에서
5살정도 되어보이는 꼬마 아이가 양손에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눈길을 내려가며 '깔깔깔' 웃어대며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떼제베님과 모모님은 뒤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신다.
눈싸움도 가끔씩 해가며....
보국문쪽에서 바라본 삼각봉!
백운대,만경대,인수봉이 얇은 종이막 같은 연무에 잠겨있다.
왼쪽으로 염초봉,원효봉이 보인다.
잠시 쉬는 동안 소나기님은 향기님을 찾으신다.
저 밑에서 혼자 쉬고 계신다.
부부간 속세의 다정한 정은 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웃음
대동문에서 하산한다.
아카데미 하우스로 내려가는 계곡은 경사가 가파른 그야말로 'V'자다.
와이어와 밧줄이 곳곳에 설치되어있다.
계곡의 흐르던 물은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있다.
후미에 서서 밑의 미끄러운 얼음길을 쳐다보며 조심조심
내려가던 보라는 흐드러진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어 귀를 기울인다.
보아스님이 웃는 소리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알맞게 버무려진 웃음.
경박한 듯 들릴 것 같지만 품격이 있고 절제된 소리이다.
2년정도 모아두었던 웃음을 한꺼번에 터트리는 느낌이 오는 웃음소리!
앞으로 3년정도 웃을 것을 미리 웃어버리는 느낌이 드는 웃음소리!
분명히 '하하하...하하하하'하고 웃고 있는데
'깔깔깔깔깔...'로 들리는 신기한 웃음소리였다.
'V'자로 울려퍼지며 올라가는 보아스의 웃음소리 아래 산이야기님들이 모여있다.
나뭇꾼이 신선들의 야유회를 훔쳐보는 기분이다.
평소 활짝 웃는 표정이 일품이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보아스님은 오르막 오를때의 괴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무척 즐거운 모습이다.
언젠가 보아스님이 산에는 웃기위해 오신다고 하신 말이 생각난다.
간이 화장실이 보인다.
공터에 철봉 등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있다.
머리 윗부분이 벗겨진 50대후반의 남자등산객이
나무벤치에 앉아 쉬고있는 50대후반 여자에게
"저건 무슨 운동하라는거지?"
"허리돌리는 운동이에요."
"할망구가 무슨 놈의 허리운동이야!"
화를 낼줄 알았던 여자는
체념한 듯,맞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계곡 위쪽을 바라본다.
"우리 일행 왜 안오지?"
남자가 먼저 내려가자 여자는 일행이 내려올 쪽만 쳐다보고 앉아있었다.
*작별
닭갈비를 먹으며 하산주를 마시며 바둑님은 한 말씀하신다.
"저희 산이야기는...."
욧점은 산에서 만나 산에서 헤어지는 우리들은 이름도 성도 직업도 나이도
알 필요도 없고 서로 도와 즐거운 산행을 하면 그 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씀이시다.
보라도 등산하면서 '산에서의 삶'과 '산아래에서의 삶'이 구별됨을 느낀다.
산에서,사이버상에서 만난 산이야기님들과의 산행은 '별천지에서의 즐거움'이다.
산아래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속세에서의 삶'이다.
산에서만 형성되는 '산이야기'만의 독특한 세계!
순수하고 깨끗한 동심의 세계!
소꿉놀이 때 못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본격적으로 늙어갈 저 언덕을 넘기전에
타들어가는 촛불의 마지막 불꽃을 환상적으로 태우고 싶은 세계!
그러나 '산에서의 다정함'과 '속세의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면
그 것은 '실로 우스운 일'이 될 것이요,
꿈도 꾸면 안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과 '해서는 안 될 사랑'을
꿈을 꾸면
그 것도 '실로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애플님과 연인산의 추억을 얘기한다.
바둑님,어이해님,애플님,중산님,보라가 함께한 연인산 9시간 워킹.
철쭉꽃 핀 능선을 지나 길고긴 자갈 계곡을 걷고 또 걸었지.
그 때의 그 추억은 이제 낙엽처럼 푸석거리고
두번 다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산행'이 돼버린 지금의 상황에
애플님은 가슴이 아픈 모양이다.
애플님과 헤어질 시간.
속세의 연인들이 '롱키스굳나잇'하고 이별하듯
손바닥을 3번이나 마주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는데
꽁당거리며 뛰던 보라의 심장에서
핏방울 3개가 마음의 눈가에 튀면서
아침이슬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산이야기'라는 아름다운 세계를 감싸고있던
'맑고 깨끗한 막'은
수유리 뒷골목의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의 불빛을 받으며
일요일 밤의 열기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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