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대한민국 농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물론 80년대 '점보시리즈'와 '농구대잔치'부터 농구의 인기는 급상승하였다. 이충희, 허재를 뒤이어 '대학농구'가 인기를 끌면서 연대와 고대를 주축으로 수많은 농구스타를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장훈, 우지원, 문경은, 현주엽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게 만들 정도로 그 시절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때 <슬램덩크>라는 만화도 공전의 히트를 쳤더랬다.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절이었기에 인기는 가히 독점적이었고, 만화의 주인공 이름이 '현역선수의 별명'이 되다시피 할 정도로 초절정의 인기를 끌었더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얼핏 보면, 그냥 '깡패만화'로 보일 정도로 폭력적인 만화에 불과했다. 당시에 <두사부일체>나 <조폭마누라>라는 '조폭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었으니 만화도 마찬가지로 '폭력'이 난무한 소재가 먹히던 시절이기도 했다. 더구나 '교사체벌'과 '학교폭력'이 교육의 일부분으로 이해될 정도였고, 폭력에서 '낭만'을 찾을 정도로 웬만한 폭력에는 무신경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공이 '한 소녀의 꼬임(?)'에 넘어가 농구부의 일원이 되더니 '풋내기 슛~'을 던지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랬다. 허구헌 날, 주먹질만 일삼던 문제아가 일약 '농구스타'로 성장하는 드라마를 보여준 것이다. 거기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포기할 줄 모르는 무식함(?)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주인공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슬램덩크>는 농구의 매력을 '어느 고교생의 성장'을 통해 보여주는 만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뿐 아니라 <슬램덩크>는 농구를 잘 모르는 여성팬들 사이에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북산팀'의 선수들 이름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달달 외울 정도였고, 생소하기만 했던 '농구규칙'과 '전문용어'도 만화를 통해서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농구입문서'로 널리 입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물론, 서태웅처럼 잘 생긴 선수가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줄 때마다 환호를 아끼지 않았고 말이다. 이런 <슬램덩크>의 인기는 고스란히 '실제' 농구경기에 반영되었고, 실제 농구선수들의 인기가 다시 <슬램덩크>로 이어지는 시너지로 인해 대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최근 개봉한 <극장판: 슬램덩크>다. 무려 30년 전에 출간되어 내용을 전혀 모르는 소녀관객들이 영화관을 절반을 채우고서 '북산 VS 산왕'의 전설적인 경기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가쁜 호흡 하나하나에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은 그 옛날 '소녀팬'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도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웬만해서는 '만화리뷰'를 잘 쓰지 않는데, 이 참에 리뷰를 올려볼까 한다.
이번 '신장재편판'은 기존의 31권짜리 책을 20권으로 줄여놓음과 동시에 '겉표지'의 일러스트를 새로 그려넣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내용의 큰 차이는 없지만 더욱 깔끔해진 기분으로 오래된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긴 30여년이나 지난 만화책은 누렇게 변색되었을테니 찐팬이라면 새로 구입하는 것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암튼, 제1권이다.
1권의 핵심 포인트는 '강백호의 농부구 입부'와 '숙명의 라이벌, 서태웅과의 대결'이다. 하지만 초반부엔 문제아들의 전형적인 새학기 혈투가 벌어지는 장면 연출되는 관계로 '순수한 독자들'에게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째서 이토록 '멋진 만화'가 폭력배들의 싸움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일본만화'는 어쩔 수 없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감수하며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 품격 높은 독자라면 '나쁜 것'도 걸려서 볼 줄 아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하니 말이다.
어쨌든 강백호는 첫 등장부터 실연을 당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학교 내내 50번째 퇴짜를 맞은 강백호를 놀리는 친구들의 환호에도 우리의 주인공은 퇴짜의 이유가 귀에 맴돌 뿐이다. "난 농구부의 경민이가 더 좋아"라는 멘트로 인해 강백호는 '농구 포비아(공포증)'에 걸린 듯이 농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그러다 채소연이라는 동급생을 만나면서 급 반전을 일으키게 되는데, 다름 아니라 너무나도 예쁜 소녀가 "농구를 좋아하시나요?"라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백호는 농구에 빠져들게 된다. 사랑하게 된 소녀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토록 순진무구한 주인공이 알고보면 엄청난 '피지컬의 소유자'라는 것이 밝혀진다. 비록 농구는 초보자에 불과했지만, 자유투 라인에서 뛰어올라 백보드에 머리를 꽈당 부딪혀 쓰려지는 모습에 소연이가 심쿵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강백호는 '북산고 농구부'에 입부하게 된다.
한편, 중학시절부터 '농구천재' 소리를 듣던 서태웅도 '북산고 농구부'에 입부하게 된다. 너무나도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인 까닭에 입부가 당연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모자란 구석이 너무 많고 '농구밖에 모르는 것'이 강백호와 비슷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농구천재'와 '농구초짜'가 기상천외하게도 '라이벌 구도'를 그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 강백호를 도와주는 스토리 라인을 짜다보니 '농구천재'조차 강백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번번히 벌어지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채치수 vs 강백호'의 농구대결이었는데, 농구부 주장과 농구 초짜가 벌이는 말도 안 되는 대결을 통해서 독자들은 '농구의 매력'을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농구에 진심인 사람이 보더라도 '명장면'이 될 수밖에 없는 대격돌이 벌어지게 된다. 과연 이 둘의 대결에서 승자는 누구이고, 강백호는 과연 농구부에 순탄하게 입부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2권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