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동에서 북아페를 운영할 때이다. 서울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유x원 형제와 브라질에서 온 강x봉 형제가 북아페를 방문하여 따지듯이 한 첫 번째 질문이 “이 형제는 지방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지방입장이란 한 도시에 오직 하나의 교회만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예루살렘에는 오직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에베소는 에베소에 있는 교회, 서울에는 서울 교회 등등이다. 다른 교단에 있는 교회들은 분열이기에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형제들은 이미 서울 교회가 있는데 어떻게 회기동에 모임을 가질 수 있는가를 힐문한 것이다.
당시 나의 답변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서울 교회라고 명명하지 않고 북아페라고 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단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방입장이라 것이 텃세가 되어 정죄하는 듯한 고압적인 자세에서 오만함이 느껴졌다.
지방입장이라는 교리는 W.N이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그가 청년 시절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거듭난 동급생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 후 양육을 위한 교회생활로 이어져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교단에, 어떤 사람은 저 교단으로 가는 것을 보고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분열되지 않는 하나의 교회생활을 영위했는데, 지금은 왜 그렇지 못한가? 기도하면서 성경을 연구하던 중, 모든 교회는 다 그 지방의 이름으로 언급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등등. 한 지방에서는 그 지방에 있는 모든 성도는 다 하나이며, 그 지방의 이름을 딴 교회여야 하며, 이것이 분열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선언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서울 교회’, 더 정확한 표현은 ‘서울에 있는 교회’는 서울에 사는 모든 거듭난 성도들이 포함된 교회이다. 서울에 있는 교회 외에,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침례교회는 다 분열이고 교파이고 몸을 나누는 죄를 범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지금 그 교단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교리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수 십 년간 생활한 성도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몸 담고 있는 교회가 성경에 나타난 교회라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생명의 충만함과 신선함이 사라지고, 메마르고 교리적이며 화석화된 믿음 안에서 형제 사랑은 없고 서로를 미워하고 상종하지 못하는 불구대천지의 원수가 되어 있어도 지방입장이라는 괴물 같은 교리가 있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나는 십대에 성서침례교회에서 거듭나서 3년 정도 그곳에서 생활을 하다가 초교파 생활을 하게 되었다. 1977년에 서울반도유스호스텔에서 열리는 지방교회의 국제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교단에서의 첫 집회였다. 20대 초반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집회는 하늘이 열리는 놀라운 집회였다. 폭포수 같은 찬송과 한 영, 한 몸, 한 새사람에 대한 놀라운 말씀과 주 예수를 연호하는 용광로 같은 뜨거운 집회였다. 그 이후 나는 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그 교단은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80년대 중반 이후로 LIFE STUDY라는 놀라운 메시지가 담긴 성경해석집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한 해석이었지만, 성령의 역사와 영향력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리고 복음의 열정에 의해 새 신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매우 합리적인 교리와 탁월한 성경해석으로 인해 타 교단에서 이 곳으로 수평 이동을 하는 성도들로 인해 인수가 급격히 늘게 되었다. 기존 교단들은 자신의 성도들이 이탈하여 이 교단으로 옮겨갔기에 비상이 걸렸다. 80년도 초에 인도하던 권 형제가 주님 품으로 가기 전까지, 그 교단은 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타 교단들은 극도로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이단으로 선언해 버렸다. 스스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양을 도적질하고 있다고 비난을 하였다. 기독교계를 긴장하게 만든 강한 영향력이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권 형제의 죽음 이후, 몇 형제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지루하게 이어져 갔다. 그 쟁탈전으로 그 교단은 서서히 황폐화 되었고 생명과 사랑은 실종되어 메마른 교리만이 허공을 치게 되었다. 진리의 최고봉이라고 선포하고 있지만, 산 봉우리에는 찬 바람만 부는 메마른 곳이다. 생수는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법이다. 우리 주 예수님도 깊은 골짜기에 피는 수선화이시다.
여하튼 70년도 말에는 강한 성령의 흐름이 있었다. 또 지방입장이라는 너무나 합리적이고 성경적인 교리까지 무장되어 교만이 하늘을 찔렀고 천하무적이 된 느낌이었다. 어느 날 나는 과거에 출석하였던 대연성서침례교회의 목사를 찾아가서 면담을 신청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목사였는데 나의 당돌한 면담신청에 떪은 감을 씹은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나는 계시록 2장과 3장을 펼쳐놓고 지방입장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목사님, 교회는 그 지방에서 오직 하나입니다. 몸이 나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교회는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대연성서침례교회는 분열입니다. 당장 부산 교회로 간판을 바꾸시고 하나의 입장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러자 그 목사는 노기를 띤 얼굴로 한 마디를 하였다. “형제는 참으로 교만하군!” 그러나 나의 논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지만, 뒤돌아 보면 참으로 오만한 자세였다.
77년에 부산교회 생활을 막 시작한 후 얼마 동안 정x모 형제에 대해 매우 나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권 형제의 동역자였던 그는 광주에서 큰 역할을 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그 교단으로 인도하였지만, 권 형제를 배역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말이 더해져서 무척 나쁜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고 만나서는 안 되는 사악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 교단의 특징은 떠난 사람에 대해 무자비하고 사악한 프레임을 씌워서 자신들의 교단을 지키는 것이다. 나도 이 프레임의 희생자가 되었고 며칠 전 통화하였던 몇 형제들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이 교단의 기득층은 어마어마한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층이 되었지만, 자신들을 반대한 자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침소봉대하고 전 지역에 팩스를 보내어 완전 폐인으로 만드는 참으로 무서운 집단이 되었다.
사역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십 년간 각지에서 보내온 사역 헌금을 장부도 없이 사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집을 두 채나 샀다느니 미국에 별장을 샀다느니 하는 루머가 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와 가까이 지켜본 나로서는 이런 상황은 미리 예측하였다. 1997년 W.L가 사역원 원장으로 이 자를 임명하는 것을 보고 그 교단을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영적 인식이 전혀 없는 이 자를 한국 성도들의 영성을 책임지고 경건의 비밀을 훈련하는 원장으로 임명하다니! 가룟 유다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는 꼴이다. 실없는 농담을 입에 붙이고 다니고 일본에서는 빠찡고에서 노름을 하던 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경악할 일이었다.
그를 임명한 W.L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늙은 엘리의 모습을 보았다고나 할까. 늙은 이삭은 눈이 멀고 식탐으로 인해 야곱을 에서로 오인하여 눈먼 축복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야곱은 비록 눈이 멀었지만 영은 매우 예민하여 요셉의 두 아들의 머리에 두 손을 어긋나게 안수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W.L가 이 자를 임명한 것은 이삭처럼 눈먼 임명이었던가, 아니면 야곱처럼 의도된 임명이었던가? W.L가 이 자의 영성에 대해 분명히 알았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아나하임의 사역이 로마교황청 같이 군림하고 지배하기 위해 자신에게 충성된 자를 임명한 것이다. 야곱이 영이 예민하여 어긋나게 안수한 것처럼 그는 혼이 예민하여 자신에게 충성할 자를 위해 영성에서는 문제가 있는 자를 어긋나게 안수하여 진정 사역원을 책임질 사람은 패스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 잘못된 임명으로 인해 한국은 완전 아나하임에 예속화되었고 로마 가톨릭의 전철을 기어이 밟고야 말았다.
1996년 W.L의 집에서 야합에 가까운 안배가 이뤄졌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영적인 분위기가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러한 결정으로 한국 교회들은 아나하임에 복속되었고 그 앞잡이 역할을 사역원이 담당했다. 사역원 원장은 아나하임에 충성하는 꼭두각시였기에 오히려 영성은 무시되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장로훈련을 위해 아나하임에 머물렸던 나도 그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유x근 형제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이 형제는 오지 말고 여기 있으시오.” 좀 황당한 말이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남아 있었다. 나는 그 형제에게 미운 털이 박혀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았기에 항의의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W.L가 나를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소위 한국에서 인도하는 형제들은 자기에게 줄 서지 않는 자는 항상 불이익을 주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가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W.L의 집에 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그날 W.L는 사역원의 책임자로 서x본 형제, 총집사실은 유x원 형제, 복음서원과 해외사역은 유x근 형제를 임명하였다. 이x득 형제는 아무 책임도 주지 않았다. 권 형제의 후계자로 한동안 한국 교회들을 돌보면서 아나하임과 독립적인 사역을 한 괘씸죄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했다. W.L의 집에서 일어난 정치야합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게 하신 주님께 감사한다.
내가 이x득 형제와 유x근 형제에게 미운 털이 박히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나의 아내가 임x순 자매와 매우 친했는데 임x순 자매가 김x련 형제와 결혼을 하면서 그 부부와 우리 부부가 매우 가까이 지냈다. 임x순 자매는 권 형제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전국 순회에도 동행하였다. 권 형제는 오랜 중국 생활을 통해 한국말이 어눌했는데, 이를 교정하는 역할까지 하는 매우 뛰어난 자매였다. 미모도 탁월하고 찬송을 너무 잘 부르고 언변까지 갖추다 보니 형제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인도하는 형제들 몇몇은 결혼에 퇴짜를 맞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 김x련 형제와 결혼을 하게 되어 놀라게 하였다. 아마 권 형제가 자신의 후계자로 김x련 형제를 만들기 위해 그 결혼을 허락한 것이라는 루머가 한 동안 떠돌았다. 그런데 권 형제가 주님께로 가기 전, 이x득 형제를 후계자로 세웠다는 유언을 했다. 그 후 이x득 형제는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가졌는데 자기가 복음을 전하거나 수고한 적도 없는 교회들에게 사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김x련 부부는 당시에 매우 핍박을 많이 받게 되었고 교회생활이 힘들어졌다. 당시에도 나는 그들과 가깝게 지냈다. 어느 날 이x득 형제와 유x근 형제가 나를 부르더니, “이 형제는 앞으로 김x련 형제와 가깝게 지내지 마시오.”라는 어이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 때 처음으로 교회 안에서 암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춘천 교회에 정규적으로 방문하여 청년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춘천 교회 책임 형제인 도x원 형제가 나에게 앞으로 춘천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x득 형제와 유x근 형제가 받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Titus Chu 형제가 나를 서울 교회 4집회소에 안배하였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서 일주일 간 4집회소에 있었는데, 레바논 망대와 같은 영적 후각이 이곳은 아니라는 느낌을 주어, 기름바름의 가르침을 좇아서 몰래 빠져 나오고 말았다. 4집회소의 책임 형제는 유x근 형제였다. 당시 Titus 형제와 유 형제를 거스르면 교회 생활을 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낯을 피해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듯이, 일본으로 가서 벳부에 잠시 있었다. 그러던 중 Titus 형제가 한국에 와서 집회를 하였는데, 집회 중에 나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최모 형제를 나로 착각하여 곤욕을 치렀다. 당시 실권자인 이x득, 유x근 형제의 눈밖에 났으니 나의 교회생활이 고달팠다. 그러자 서x본, 유x원 형제가 나에게 접근해오며 교제를 나누기를 원했는데, 그들은 교권에서 밀려나 있었고 호시탐탐 교권을 노리던 자들이었다. 그 양대 세력이 회복이라는 신성한 곳에서 진흙탕 개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무려 수 십 년간 지속되었다. 항상 나의 마음에 엄청난 의문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게 회복인가. 이게 사역인가? 입으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고 있지만, 원수와 같이 행동하지 않는가. 후에 서로 앙숙이던 이x득 형제와 서x본 형제가 함께 다니는 것을 보고 생명이 자라서 변화된 모습이라기 보다는 야합의 극치를 보는 듯 했다.
정x모 형제에 관한 글을 써다가 많이 빗나갔다. 소극적인 것은 잘 만지지 않지만,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나 성도들을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는 교단의 정체를 알리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최근에 들었다. 정x모 형제는 수 년 전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지금 미국에서 정착하여 살고 계시다. 매우 부드럽고 자상하며 진리에 밝은 형제였다. 과거의 선입견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무척 강했지만, 만나보니 주 안에 사랑스런 형제였다. 자신만이 교회라는 교단들의 특징은 매우 폐쇄적이고 그 단체에서 이탈한 자들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덮어씌운다는 것이다. 정x모 형제를 만나보고 선입관의 안경으로 대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70년대 중반에 권 형제의 사역에 대해 직언을 하다가 핍박을 받고 쫓겨난 형제였다. 그와 같이 핍박을 받은 형제는 문x윤, 김x권 형제 등등이다. 정 형제는 그 교단에 나와서 신학을 하였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지방입장’이라는 교리였다. 이 교리가 너무 옳게 여겨져서 다시 지방교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그곳을 나오게 되었고 지방입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방입장이 허구라는 깨달음을 설명하는데 내가 깨달은 것과는 차이가 있었고, 또 그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하튼 지방입장은 그 교단이 흩어지지 않게 하게 하는 중심교리였고, 바벨탑과 같은 것이다.
DYR이 지방입장에 대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지방입장을 오랜 동안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후에 나의 깨달음은 그것이 주님의 백성들 사이를 나누는 깊은 구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DYR은 남미 사역의 인도자였다. 그가 예를 들어 간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남미사역의 특징은 열정적인 복음전파이다. “VIDA PARA TODOS(모든 사람에게 생명을!)”라는 구호아래 글로벌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한 번은 남미의 복음팀이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복음을 전했는데 멕시코시티 교회의 장로들이 그들에게 왜 교회 허락도 없이 복음을 전하냐고 책망을 하였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텃세를 부리게 하는 것이 지방입장이라고 하였다. 몇 명이라도 선점하면 다 우리 땅이 된다는 치졸한 발상이 지방입장이라는 괴상한 교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리는 교리이다. 결코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하나되게 하거나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죽은 의문 문자일 뿐이다. 신약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성령님이시다. 주님이 떠나시며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오직 보혜사 성령님이다. 어떤 교리나 사람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고 오직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사 기름부음이 되시고 기름바름이 되게 하셨다.
회기동 북아페에서 복음사역을 마무리하고 판교에서 모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님의 인도로 교회가 살구나무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살구나무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살구꽃이 피게 하는 것은 어떤 교리나 가르침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황금등대의 동력은 올리브 기름이었다. 등대의 빛이 발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름이 공급되어야 한다. 또 주님께서 웨일즈대부흥과 평양대부흥에 대해 알게 하셨다. 그 부흥의 원동력은 하늘에서 강림하신 성령님이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기도와 간절한 갈망 그리고 철저한 회개가 핵심 키워드이다.
1904년 웨일즈 부흥으로 시작하여 모든 대륙에서 부흥의 물결이 일어났다. 우주적인 몸의 신경망이 5대양 6대륙으로 연결되듯 20세기초에 놀라운 부흥이 이어져 갔다. 1907년 평양에서도 대부흥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목격한 선교사들은 본국에 타전하기를 ‘조선에서 오순절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했다. 부흥은 오순절로 귀납되는데 그 모습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평양 부흥으로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어 용광로의 불길처럼 모든 죄를 태우고 불신을 태우고 나태함을 태우고 분노와 시기, 질투를 태우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로교, 감리교로 분열된 기독교가 하나로 연합하여 한 몸을 간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월감에 빠져 조선 성도들을 멸시하고 비하했던 서방의 선교사들은 자신의 교만함과 냉정함을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했고, 조선의 성도들은 선교사들을 미워하고 또 돈을 횡령하였음을 회개하며 한 몸의 지체로 서로 서로 얼싸안았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계급도 완화되었고, 여자에 대한 무시와 폭력도 회개의 대상이었다. 유교사상과 샤마니즘에 찌들은 조선사회를 누가 이렇게 변혁시켰는가? 그것은 성령강림의 역사와 영향력이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영광스런 순간이 평양대부흥의 1907년이었다.
순간 나의 교회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를 제외하고는 메마르고 삭막한 생활의 연속이었고, 헤게모니 쟁탈전에 휩쓸리어 황폐함을 느끼는 나날이었다. 물론 집회에서 만족함과 누림이 있었지만, 교회의 생태환경은 거대한 늪지대처럼 음습하고 살벌하였다. 책임형제나 사역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이 형제 잠깐 나와 교통 좀 합시다.”라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리 앉았다. 또 무슨 자아비판거리가 생겼나 염려하면서 도살장 소처럼 따라가곤 했다. 초기 부산교회에서 청년들을 데리고 거제도로 무일푼 복음전도에 나섰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많이 일어났고 먹고 자는 문제까지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체험을 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인도하는 형제들은 이런 복음전파를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한 몸 안에서 튀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언질도 주었고 몸의 교통이 중요하니 교통 없이는 움직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이런 통제가 없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집사인 빌립도 전도사역을 아무런 제재 없이 수행하였다.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참된 교회 생활은 수직적인 성령의 인도와 수평적인 성도들의 교통이 있을 뿐이지, 수직적이고 조직적인 통제된 교회 생활이 아니다. 평양대부흥을 통해 나의 신앙생활이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무엇인가, 한 몸이 무엇인가, 사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이고 성경적인 재고를 하게 되었다. 사역의 재고였다.
교회의 시작은 오순절의 성령강림에서부터이다. 오순절은 방언이나, 복음전파나 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성령강림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 강림으로 인해 참된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되는 것이다. 몸의 하나는 지방입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강림에 의해서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그렇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이다. 어떤 교리가 우리를 하나되게 할 수 없다.
웨일즈부흥이나 평양부흥은 다 오순절의 체험을 가졌다. 그들은 몸의 하나를 누렸다. 인종과 계급과 남녀의 차이를 극복하고 몸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했다. 비록 그들이 그 체험을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적시하여 이것이 ‘몸의 하나’라고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실제를 누렸던 것이다. 미국의 아주사 부흥이나, 인도 및 중국에서의 부흥도 오순절 체험이다. 오순절은 사도행전 2장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는 무리에게 항상 체험할 수 있는 영적 축복이다.
평양부흥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몸의 하나는 어떤 교리의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강림에 의한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평양에 헬라인 성도, 유대인 성도, 종인 성도, 자유자인 성도, 남자 성도, 여자 성도가 있다고 하자. 그들이 지방입장을 깨닫고 한 곳에 모였다면 과연 한 몸이 나타날 수 있을까? 여전히 민족과 계급과 남녀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다. 다만 한 곳에 모였을 뿐이다. 분열을 미워해서 함께 모였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분열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으며, 서로를 용납 못해 나뉘어 모이는 곳이 허다하다. 이름뿐인 교회 안에서 사막과 같은 신앙생활을 영위할 뿐이다. 그러나 지방입장이라는 교리는 몰라도 성령강림에 의해 적셔진 성도들은 실체적으로 몸의 하나를 누리고 증거하며 빛을 발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평양에 있는 교회의 하나된 입장 위에 서 있게 되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지만 몸의 하나를 체험한 교회는 평양에 있는 교회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교리적으로 몸의 하나를 부르짖는 지방교회는 최소한 한국에서 그러한 몸의 하나를 체험하거나 누린 적이 없음을 증거할 수 있다.
점점 더 깊이 추구할수록 평양부흥은 놀라웠다. 오순절의 역사가 평양에서 이뤄졌다는 것도 한국사람으로 큰 자부심이다.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었고 조선사람들이 진정 영의 자유를 만끽하고 한 몸 안에서 신 인류가 되는 놀라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수 천 년간 짐승처럼 살아온 노예들이 죄의 사슬에서 신분의 사슬에서 사탄의 사슬을 풀어 던지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을 대표하고 나타내는 원초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놀라운 역사이다. 사탄은 매우 놀라 당황하였으며, 동방의 예루살렘인 평양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산주의를 가져왔고 장대현 교회당의 터 위에 두 짐승의 우상을 세워 부흥의 토대를 깔아뭉개 버렸다. 기이하게도 예루살렘 성전 터가 있는 곳에는 이슬람의 황금사원이 깔아 뭉개고 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든 서방의 예루살렘이든 사탄은 극도로 미워해서 우상이 뭉개고 있는 것이다. 제 3성전이 세워진 후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이라 칭하며 성전 안의 보좌에 뭉개고 앉을 것이다. 원래 사탄은 그토록 하나님의 보좌에 앉기를 갈망했으나 실패하였으나, 이 땅에서는 자신의 소원대로 하나님의 역사의 근본을 찬탈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으로 모조리 청소하실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부흥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령강림은 부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성령강림과 부흥이 성경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5).
사도행전 1장에서 주님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은 성령침례이다. 성령 침례가 성경적인 용어이다.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지만 주님은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침례를 베풀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침례였다. 성령침례를 통하여 그들은 한 몸이 된 것이다. 이것을 더욱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는 성경구절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이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얼마나 분명한가! 유대인과 헬라인은 문화와 풍습에서 가장 하나되기 힘든 민족이다. 그리고 종과 자유인은 가장 큰 계급차이다. 이런 격차는 지방입장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 몸이 된다. 한 몸이 되는 것은 지방입장이 아니라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이다. 오순절에서 성령침례를 받은 후 한 몸이 되었고 그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등장하는 것이다. 즉 성령침례의 원인이 있고 지방입장은 자연스런 결과인 것이다. 지방입장이라는 교리만으로 하나를 주장하는 것은 성령침례를 무시하고 생략하려는 사탄의 궤계일뿐이다. 지방입장을 깨달았기에 자연스레 한 몸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참으로 게으른 것이다.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드린 열흘간의 기도를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중점 되는 진리는 거의 한 장(chapter)을 할애해서 기록하였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며, 15장은 부활장이다. 그리고 이사야서 53장은 고난 받는 메시야에 대한 놀라운 장이다. 랍비들은 이사야서 53장을 유대인이 읽지 못하게 금기시한다. 그러나 지방입장에 대한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주님이 언급하셨는가? 사도들이 기록했는가? 성경을 억지로 풀어서 추론한 것 뿐이다. 물론 한 지역에 한 교회는 성경적이다.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방입장이라는 교리가 아니라 성령침례이다.
이 글은 2부로 되어 있다. 오늘은 1부로 끝을 내고자 한다. 2부에서도 좀 더 자세히 성령침례와 가정교회에 대한 주님의 빛을 연재할 것이다. 마라나타!
첫댓글 아멘 많은 부분을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