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 안녕하십니까? 님을 숲길에서 처음 만난지 벌써 10개월이 지났군요. 숲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는지 첫 만남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살아온 얘기를 주고 받게 되더군요.
그때 님이 정형외과 의사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택시운전사와 얘기를 나누며 자신이 고졸자인
운전사보다 세상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것을 깨닫고 사회흐름을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골프도
그만두고 신문과 책을 보며 공부하고 있지만 별 진전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면서 나에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고 질문했었죠. 그때 제가 현대사회를 이해할려면 자본주의에 대해서 공부해야하고
그 첫걸음은 마르크스 <자본>을 읽는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었죠. 그리고 님의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내용을 사이트에 올리 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10개월이 지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군요. 그동안 님에게 빛진거 같아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습니다. 짧은 지식이지만
오늘에서야 글을 올리니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저의 2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풋풋한 그 시절 <공산당 선언>을 읽고
마르크스에 열광했습니다. 이 글은 선언문이라기 보다 한 편의 詩 였습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유려한 문체로 화려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이 묘사하는 철학적 깊이가 심오한 문장이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카이사르 저서 <갈리아 전쟁기>에 버금가는 역사상 위대한 名文 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저서를 소장하고만 있어도 감옥에 가는 그 시절, 책을 복사해 친구들 뿐만아니라 연세대
사회과학 써클에 배포하다가 걸려서 안기부에 끌려가 초죽음에 이를 정도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30 년이 지난 지금도 무릎관절이 안 좋습니다. 제기랄!
그때 희미한 정신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풀려 나가게 되면 자본주의와 권력, 화폐에 대해서 공부해 보자.
여기서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마르크스에 대한 저의 이해는 개인경험의 프레임을 벗어 날 수 없는 제한된 시야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 갑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소모적인 좌우대립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멍청한 진보/보수 논쟁이
아니라 미래의 메가 트랜드와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4.0이니 하는 말장난보다는 현대 자본주의 자체를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자본가들이 짱이라는 의미지요. 자본이라는 것은
돈이 돈을 벌수 있는 자산을 말하며,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것이죠.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사회는 매우 부도덕하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온갖 비리들이
횡행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사람 대접을 못받죠. 반면 돈만 있으면 과거의 귀족처럼 살 수 있고, 법을
안 지켜도 되지요. 돈만 되면 불륜을 상품화할 수 있는 것도 자본주의입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본다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부도덕성과 타락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된 이념입니다.
즉 자본주의의 문제는 사유재산에 있으며, 그 사유재산으로 인하여 사회적 비효율이 증가하므로 사유재산을
없애고 생산력을 해방시켜 고도의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핵심적인 생각입니다.
마르크스는 죽어서만 갈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살아서도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제시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론은 유토피아 구현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시도입니다. 여기서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를 깨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를 과격한 혁명이론가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중도적이었으며 자본주의 타락과 비인간적 속성에 대하여 이전 사상과는 달리
감정을 배제하고 보다 과학적으로 보고 문제해결을 시도했던 시대적인 사상가였습니다.
마르크스가 활동할 당시에는 매우 과격한 사상이 범람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바뵈프, 호지스킨, 프루동,
바쿠닌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과격한 사회운동가이자 이론가들로서 그들 눈에는 마르크스는
기회주이적이고 모호한 사상가로 보였습니다. 마르크스는 공격적이고 공상적인 사회주의를 지양하고
과학적이고 실현가능한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으려고 한 사상가입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할려면 경제학공부보다 <자본>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에는 혁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에는 혁명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할 여러 단계들을 다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부분을 매우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생산력의 발전. 즉 기술의 발전이 결국 사회의 상부구조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사회의 생산력 발전이 고도화되면서 새로운 생산양식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사회의 전반적인 이데올로기도 바뀐다는 것이죠.
이 점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위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회에 tv를 생산하는 자본가라는 사람과 이 회사에서 일하는 수천명의 노동자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시다
자본가씨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봐야 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주고 tv를 생산한다고 하죠.
그런데 이 사회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먹고 살기에 바빠, tv를 살만한 여력이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자본가씨는 자신 회사의 노동자들을 더 착취해 tv가격을 떨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설비투자로 장기적으로 단위당 가격을 떨어뜨림으로써 시장을 장악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시설설비 투자가 많아지면서 노동임금은 더 줄어들겠지요. 즉 고정자본은 점점
증가하므로 생산능력은 점점 커지지만 임금은 더 떨어지지요.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생산설비는 더욱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납니다. 사회적으로
실업은 만연하면서 정부는 오직 자본가들의 눈치만 보게 됩니다. 그나마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해
주니 자기들 정권도 유지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기업의 눈치를 보는 것도 당연합니다. 정치가들은
생산계급이 아니므로 돈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거를 치루기 위해 돈줄을 잡아야 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돈주머니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발전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실업자가 양산되고, 노동착취는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 이 상태가 견디기 힘들게 되면 필연적으로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새로운 제도와 이데올로기가 생겨 난다는 것이죠.
이것이 마르크스 이론의 골자입니다.. 만약 국가가 폐쇄경제 (closed economy) 상태라면 이 분석은
지금까지 타당합니다. 근데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마르크스 이론의 실패는 개방경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작금의 상황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네오 맑시스트들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있으면 다음에 하겠습니다)
개방경제 상황에서는 자본가씨가 국내에서 노동을 착취해서 국내뿐만아니라 해외에도 tv를 팔게 되면
큰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말썽 많은 한국에서는 임금을 최저생계비
수준에서 조금씩 인상시키면서 저개발 국가에도 공장을 세워 형편없는 저임금으로 tv를 생산하면 엄청난
폭리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큰 돈을 벌면 자본가씨는 힘들게 노동자들과 싸우면서 공장을
가동할 필요 없이 돈놀이 (금융업)에서 재미를 볼 수 있지요
만약 경제가 닫혀 있으면 저절로 생길 혁명이 해외부문이 있음으로 지속적으로 지연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자기 나라 노동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임금을 인상시켜 사회적인 위험요소를
제거하면서 저개발 국가에서는 저임금을 주더라도 그 나라의 다른 노동자들에 비하여는 상대적으로
고임금이니 존경을 받고 칭찬을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거지요. 바로 이런 점을
마르크스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이것 뿐만아니라 선진국 노동자와 후진국 노동자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도 간과했습니다.
실제로 선진국과 후진국 노동자들은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한국의 포항제철
때문에 수많은 미국의 제철소가 문 닫았습니다. 미국 철강 노동자들에게 포항체철 노동자들은 원수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만국의 노동자들이 어찌 단결하겠습니까! 애초에 국제공산당운동이라는
것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자본가는 세계화를 통하여 자국의 경제적 모순을 해외부문으로 전가시키고 국내적으로는 계급갈등을
완화시키면서 위기를 돌파하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해외부문의 한계상황에 다다르면
기술혁신을 통해 위기를 타결해 나갑니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지식집약적인 산업인 IT 산업이 국가경제를
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 산업의 발전으로 프롤레타리아 성격을 다양하게 변모시킴으로써
계급투쟁을 희석시키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해 나갑니다. 필요하다면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도 해체시키면서 "이상한 정상가족"을 만들어 가면서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극대화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전쟁을 일으킵니다 자본주의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이죠.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상의 내용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적인 요소를 보면서 자본주의 절반정도는
조망할 수 있을 겁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폐쇄경제에서 유효한 이론이라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자본주의 근간과 작동 패러다임을 이해하는데 <자본>만한 책이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나머지 부문을 볼려면 네오맑시스트들의 담론을 접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써온 분량보다 더 많은 양을 서술해야 하기에 중요한 책 몇권을 소개하고 마칠까 합니다
**님이 공부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데이비드 하비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맑스 자본강의>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남부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
사미르 아민 <고리끊기>
안그레 군더 프랑크 <리오리엔트> <세계경제 위기에 대한 성찰>
에르네스트 만델 <후기 자본주의>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홍기빈 <비그포로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신정완 <복지 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임노동자기금 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니크 브란달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시회민주주의 20세기 유럽의 형성>
이브 스미스 <이콘드>
로버트 쉴러 <버블 경제학>
누리엘 루미니 <위기의 경제학>
라구람 라잔 <폴트 라인>
케네스 로고 <이번엔 다르다>
아나툴 칼레츠키 <자본주의 4.0>
존 캐서디 <시장의 배반>
에릭 울린 라이트 <리얼 유토피아>
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이슈트반 메사로스 <21세기 사회주의>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론>
크리스 하먼 <좀비 자본주의>
김상조 <종횡무진 한국경제>
첫댓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책이랍니다.
그래서는 아니지만요, 저는 폐쇄경제에서만 유효한 이론이라는 데에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하비, 슘페터, 칼 폴라니, 만델, 하먼....을 통해 예전에 집중했던 책들도 기억해 봅니다~~요약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