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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악 해외 원정 산행 : 시라다케(白嶽, 쓰시마)
원정대원 : 김정곤(회장), 최수일*(총무), 설광룡(대장), 김상현, 김태규, 배한수, 박권병, 박성규, 서경호, 신형진, 양지영, 이규용, 이근범, 이상원, 장경재, 최명해*, 홍청곤(* 부인동반/ 총 19명)
코스 : 카미자카 시라타케 등산 입구(들머리/ 12:50) - 삼나무숲 - 돌 신사 문 - 시라타케 신사 - 시라타케 정상(15:30) - 돌 신사 문 - 시라타케 등산 입구(스모 쪽 임도/ 날머리, 16:15) - 스모 시라타케 등산 입구 주차장(16:30) // 약 11.7km(마지막 날머리에서 주차장까지 3.2km는 버스로 이동)
13일 저녁 일기예보를 듣자하니 14일 원정 당일은 좀 차가운 날씨가 될 거라니 겨울 채비를 해야 할 지 가을 산행 채비로 충분 할 지 판단이 아니 서는지라 초겨울용 바지를 여분으로 쑤셔 넣고 새벽길에 대비해 윈드스토퍼 상의를 준비해 두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보니 이런 새벽 3시를 넘겨버렸네.
대마도에 닿자마자 곧 산행을 시작하는데 수면 부족으로 또 시라타케 정상을 놓치는 거 아닐까 내심 걱정하며 잠깐 눈을 부친다.
새벽 5시 20분에 맞춰둔 알람에 눈을 뜨니 깜깜하지만 챙겨둔 배낭 둘러메고 5시 58분 전차를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아차차, 플랫폼에 내려서는 순간 전차는 출발하고 다음은 6시 10분 전차이니 기다려야 하는데 7시 집결 시각을 맞춰 닿을지 걱정.
중앙동역에서 최총무 부부와 랑데부 하니 지각이사 염려 붙들어메도 되겠고 시계를 보니 토요일 이른 시간 탓인지 충분히 여유가 있어 괜한 걱정을 한 셈이다.
8시 30분 출항인데 7시 집결이라 좀 고약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니, 몇 년 전 후쿠오카 하카타로 갈 때도 이곳에서 집결했는데 여권을 집에 고이 모셔두고 나온 양반이 있어 가족들이 헐레벌떡 챙겨오는 걸 보았으니 그런 불상사를 처치하는 데 시간 여유가 있어야 될 것이라.
집행부에서 준비해 온 김밥, 물, 귤, 쵸콜릿 등을 배급받아 즉석에서 아침 요기를 하고 승선 티켓을 확보한 후 출발.
승선 전에 몇 대원은 면세 코너에서 마나님용 선물, 원정지에서 마실 알콜 등을 챙기고 출항 10여 분 전에 대마도 이즈하라 행 ‘드림플라워’ 호에 오른다.
잔잔한 항내를 벗어나 오륙도를 지나니 제법 파랑이 일지만 그리 근심할 정도는 아니고, 눈을 좀 붙여야 되겠는데 잠은 아니 오고 옆에서 쉬 눈을 감고 잠 속에 빠져드는 대원들을 보니 부럽다 못해 시기심으로 더욱 안달일세.
갑작스런 사정이 있어 원정대에서 빠진 이규생, 하성봉 두 대원 자리가 썰렁하게 비워둔 채로 같이 대마도에 함께 상륙할 수 없는 감귤만 열심히 입에 까 넣어 소모시킨다.
1시간 하고도 반을 넘어서니 운항 방향 오른쪽으로 뭍이 보이니 아하 여기가 바로 쓰시마 북단인 모양일세.
이제부터 계속 쓰시마를 오른쪽에 두고 이 섬에서 제일 큰 마을, 하대마의 이즈하라항까지 운항할 터이니 여태까지 황량한 바다만 보며 온 풍광과는 좀 다를 것이다.
1시간 가까운 뱃길을 달려온 뒤에사 저 앞에 이즈하라항과 산록에 사람 사는 듯 한 가옥들이 눈에 들어오고 울릉도 도동항의 10배는 되고도 남음직한 이즈하라항 안으로 드림플라워호는 미끄러지듯 들어서네.
우리나라의 웬만한 어항 규모와 이에 근접하는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2시간 15분을 달려온 쾌속선이 얌전하게 접안하니 드디어 상륙(10:45).
입국 수속 시간이 길어지면 산행에 지장이 있을까봐 서둘러 하선 준비를 해도 워낙에 좁은 입국장이라 별로 빠른 효과도 없고, 거의 99% 대한국인들이라 내외국인 입국 수속대 구분이 별로 의미가 없네.
입국 수속을 마친 후 곧장 도보로 숙소이자 중식 장소인 만송각(萬松閣)으로 이동하는데, 거의 90%가 삼림인 이 섬에 평탄한 땅뙈기를 별로 기대 할 수 없어, 역시나 좁은 길에 조그만 차량들이 깍듯이 도보로 이동하는 자를 우선으로 모시네.
골목 같은 길을 요리조리 돌아 높다란 석축을 한 거의 직선형 개천(?)을 따라 10여 분 이동해 만송각에 닿으니 이곳도 입국장 못잖게 붐비는 게, 여기도 점심을 해결하려는 여행객으로 넘쳐난다.
김상현 대원이 인근 가게에서 작은 캔맥주를 구입해 배급하여 이를 마시며 근 30여 분을 만송각 주위에서 앉거나 서서 기다린 후에야 들어와 식사하라는 사인이 나온다(11:30).
이 동네 상차림이사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소문대로인데, 찬은 더 못줘도 밥과 된장국은 얼마든지 챙겨 드시라면서 그 유명한 김치는 달랑 깍두기 몇 조각 뿐.
숙소가 이곳이니 짐을 다시 들고 나올 필요는 없는지라 산행에 필요한 채비만 하고 나서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
좁은 골목길 같은 곳을 통과하는 데도 섬나라 특유의 조그마한 신사가 곳곳에 들어앉아 있으니 우리나라 서낭당이나 당산보다 더한, 신들의 나라임을 실감나게 한다.
제일 크다는 쇼핑센타 옆에 대기 중인 미니버스가 우리를 이동시킬 차량인데, 대형차를 대기시키지 않은 게 산행 전후에 조금이라도 덜 걷게 하기 위한 가이드의 배려이라.
아마도 가이드 - 조명정이라는 처자로 동생이 또 대 경남고에서 야구를 했다나 -가 스모 등산로 입구(주차장에서 임도로 약 3.2km 안쪽)까지 도보 이동을 하지 않고 소형버스로 최대한 접근하기 위해 깊고도 깊은 생각의 결과인 듯.
게다가 같은 코스로 하산해 다시 이 지점에서 버스로 이동하려 했던 모양인데 박권병 대원의 긴급 제안으로 산행을 시라다케산을 완전 횡단키로 수정.
해서 운행하던 차량을 도중에 되돌려 카미자카의 시라다케 등산 입구를 들머리로 정해 20여 분 이동.
장축(북북동-남남서 방향) 82km, 단축(서북서-동남동 방향) 18km인 쓰시마, 급경사 산지가 거의 90%를 점유하는 이 섬에 도로가 넓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건 일본 본토의 도로를 보면 단박에 알아차릴 것인데, 게다가 이 변경의 섬 대마도는 급경사 꼬부랑길이 많아 운행하는 중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을 종종 당하고선 가슴을 쓸어내리네.
우리와 운행 방식이 다른 탓도 있겠지만 순전히 좁고 급하게 구부러지는 도로 때문이니 사통팔달에 구부러진 길 쭉쭉빵빵 펴 놓은 우리 땅 대한민국이 참 좋은 나라임을 절감하겠더라꼬.
이참에 우리 땅에서 최단 120리 거리에 있는 대마도, 쓰시마에 대해 개관해 볼꺼나.
동경 129도, 북위 34도, 일본 본토 후쿠오카까지 138km이지만 부산에서 49.5km 떨어져 있어 맑은 날은 대마도 서해안에서 우리 땅을 볼 수 있는, 면적 708.66km2인 변경이자 국경의 섬(國境の島). 인근의 후쿠오카현(福岡縣)보다 더 먼 나카사키현(長崎縣)에 속한 섬으로, 나가사키현 전체 면적의 17.3%를 차지하고 제주도 면적의 40%, 울릉도의 10배, 거제도의 2배 면적에 해당한다.
동서 폭 18km로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가늘고 긴(82km) 모양의 섬으로 북쪽으로는 부산과, 남쪽으로는 이키섬과 큐수에 면해 있다.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은 그 연장 길이가 915km에 달하는데, 섬 중앙부의 아소우만이 이런 지형의 핵심지로 해적들이 배를 숨겨두면 결코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침강해안인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다.
섬 전체 면적의 89%가 삼림 지역으로 지형이 가파르고 울창한 산림이 해안까지 이어져 있는 일본의 국립공원인 쓰시마는 본섬 외에 107개의 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5개 섬이 유인도이다. 본섬은 원래 하나의 섬이었는데 러일전쟁 당시 군함이 아소우만으로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수로를 뚫어 상대마(上對馬)와 하대마(下對馬) 2개의 섬으로 나눠져 있고 부산대교와 흡사한 아치 모양의 다리 ‘만제키바시’(萬關橋)로 연결되어 있다.
2008년 1월 통계에 의하면 주민은 15,738세대, 총인구 37,788명(남여 비율은 18,445:19,343)으로 1960년 이후 계속 인구의 감소가 지속되고 있으나, 세대수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어 세대의 인원이 줄어드는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있고, 고령화 비율(65세 이상 고령자)은 전체 인구의 22.8%로 전국 평균인 17.3%에 비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반해 연소 인구(0~14세)는 1975년의 27.5%에서 2008년 16.6%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최근엔 본토로 떠났던 젊은층들이 귀향하는 경향이라는데, 이는 대한민국 효과에 기인된 것이라고 하니 이참에 아예 ‘대한민국 부산시 對馬區’로 청원해 봄이 어떨꼬[현재 행정조직은 6町으로 이루어진 1市(쓰시마시 對馬市)/ 남부에서 북부로 이즈하라마치 嚴原町, 미쓰시마마치 美津島町, 도요타마마치 豊玉町, 미네마치 峰町, 가미아가카마치 上縣町, 가미쓰시마마치 上對馬町/ 2004년 3월에 쓰시마市 탄생].
20여 분을 미니버스 속에서 우리의 가이드 미스 조의 일본 역사 특강을 듣는 중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카미자카 쪽 시라다케 등산 입구에 닿는다(12:50).
이곳은 반대편인 남쪽의 아리아케로 들어가는 등산 기점이기도 한데, 2년 전 6월 29일~7월 1일, 사흘 동안 쓰시마를 찾았을 때 둘째 날 산행의 날머리였던 곳.
2년 전엔 오늘의 날머리인 스모 쪽 등산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시라다케 정상을 오르지 않고 곧장 이 카미자카 쪽 등산 입구, 즉 오늘의 들머리로 빠져 나왔었다.
그러니 아리아케(有名山)를 버리고 시라다케를 다시 고집한 것도 정상을 엿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게다가 역 방향으로 답파를 하게 되었으니 행운이로세.
카미자카 쪽에서 오르는 길은 험한 산길이 아니어서 웬만한 보행자라면 쉬 삼림욕 하는 기분으로 움직일 수 있어 큰 어려움은 없는 코스이다.
게다가 도중에 울창한 삼나무 숲을 통과하게 되니 시라다케의 또 다른 진경을 보는 셈인데, 전날까지 비가 왔던지 길이 젖어 있어 꽤 미끄럽고 공기조차 싸늘하다.
박권병, 장경재 대원은 여러 번 이 섬을 찾은 탓에 이 산길엔 이 동네 주민들보다 더 해박한 듯 하고, 그래서인지 박 대원은 일찌감치 선두에서 대원을 이끌고 간다.
19명이 길게 늘어섰으니 빠른 걸음의 선두와 구경 할 것 다 찾아 살펴 걷는 후미와 좋이 삼사백 미터는 벌어진 듯.
도중에 후미에서 쉬어가자는 외침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앞서 내달리는지 시라다케 정상으로 오르는 돌 신사문에 다다를 때까지 선두를 볼 수가 없더라꼬.
항상 앞에서 내빼는 대원은 정해져 있었으니, 김정곤 회장을 비롯해 박권병, 배한수, 홍청곤, 김태규 대원들......
경고하노니 앞으로 이들 산 달음박질꾼들은 절대 산행대장을 앞서 나아가지 말지어다.
통상 카미자카 등산 입구에서 정상 갈림길인 돌 신사문까지 5.5km 남짓으로 2시간 소요 거리인데 이날 산행도 통상 소요 시간에 잘 맞춘 듯(14:50).
돌 신사문 갈림길은 시라다케 정상 오름길과 카미자카 입구 방향 그리고 스모 입구 방향으로 나뉘는 삼거리이다.
돌 신사문에 마치 우리 풍습에 출산하면 대문에 금줄 치듯이 굵은 동아줄이 쳐 있고 종이인지 흰 베 조각인지 나란히 메어져 있는데, 그 입구 우측 바닥에 하얀 소금이 놓여 있다.
용도가 정확하게 뭣인지 모르겠으나 등산객을 위한 것으로 일단 해석.
이 돌 신사문(?)은 도리이(鳥)로 표현되는데, 이 밖은 속세이요 저 안은 신의 땅이라, 그 사이를 연결시키는 존재를 날아다니는 새로 삼은 모양이다.
여기서 정상까진 40여 분 소요된다는 이정표를 읽고 울창한 숲 때문에 산 정상의 위치를 짐작도 못한 채 젖은 낙엽으로 축축한 오름길을 밟아 오른다.
미리 챙겨본 정보에 의하면 오름길은 로프잡이 코스로 바닥에 나무뿌리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모습이었는데, 아직은 밋밋한 산길이라 조금은 한가롭다.
헌데 앞선 김상현 대원 왈 ‘길이 사라졌다’는데, 비스듬히 300도 회전 방향으로 길이 열린 듯 한 데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전방으로도 길이 없다고 울상이네.
가이드조차 약간 당황한 듯 이리저리 휘젓더니 역시 비스듬히 오르는 등 뒤 방향으로 오름길을 찾아낸다.
5분 여 좀 편하게 걷던 산길은 경사가 좀 급해지면서 나무뿌리들이 이리저리 뻗어 엉켜 드러난 길로 변하는데, 한편으론 나무뿌리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오르내리지만 자칫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라.
점점 경사가 급한 사면으로 변하면서 길은 바위투성이로 변하고 두 손을 동시에 사용해야 할 정도로 험해지고, 곳곳에 로프를 설치해 잡고 오르도록 배려를 했지만 큰 도움이 못된다.
앞서 가던 이규용 대원은 슬슬 뒤로 밀려나는 게 오름길이 상당히 버거운 모양이고, 다른 대원들도 사지를 총동원을 해 오르는 데 급급하니 얼굴을 들고 앞길을 올려다보기도 어렵다.
시라다케 신사에 이르기까지 자그마한 상자형 신사(?)들이 두어 개 있었지만 눈여겨 볼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시라다케 정상 아래에 있는 시라다케 신사는 좁지만 평탄하게 석축으로 구축한 곳에 세워져 있어 마지막으로 거친 숨을 고르는 장소로 딱이다.
머리를 한참 뒤로 젖혀 위를 보니 두 암봉 사이로 오름길이 있고 왼쪽 봉우리가 등산객이 올라설 수 있는 시라다케 정상이다.
그러나 두 봉우리 사이 안부에 닿으니 양쪽으론 급경사 암벽이요 전혀 봉우리로 오를 수 있는 방편이 없네.
안부를 통과해 약간 내려서니 왼쪽으로 돌아 암봉 뒤로 오르는 길이 보이고 이곳에도 좌우 상하를 석판으로 둘러 상자같은 작은 신사(?)가 모셔져 있다.
저 아래 갈림길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이런 기도처 비슷한 석물들이 만들어져 있어 과연 신의 나라다운 모습이다.
이제 남은 건 정상에 이르는 암벽을 사지로 오르는 일만 남았는데 무슨 바람이 그리도 센지 절벽을 오르는데 집중해야 할 손이 자꾸 머리에 쓴 모자로 올라가네.
다 올랐는가 했더니 또 반 바퀴 돌아 마지막 2미터 로프잡이 암벽 위가 바로 정상(15:30).
먼저 등정했던 양반들이 어정거리며 내려서는 동안 대기하는데 공간은 좁고 바람은 몸통을 날려 보낼 듯이 세게 불어대니 ‘고소공포증+α’ 급 공포가 온몸을 싸고돌아 부르르 떨리고 소름이 돋는다.
겨우 정상 암봉에 올라서니 너무 좁아 옳게 서 있을 공간도 없거니와 거센 바람 효과와 까마득한 발아래를 보니 일어설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게다가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으나 정상 암봉엔 머리 크기만 한 바위들이 올려져 있어 안 그래도 좁은 정상부에 우리 대원들이 디딜 공간이 부족하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으니 사위를 조망하기엔 더 말할 나위가 없이 좋은데, 동쪽으론 대마도 비행장과 해안, 북쪽으론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 채 안쪽으로 깊숙이 바다가 침투한 아소만, 서쪽으론 현해탄, 그리고 남쪽으론 아리아케와 하대마의 짙은 녹색의 삼림......
가까이엔 남북으로 대마도의 장축 방향과 같은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시라다케 정상의 암석과 동일한 밝은 색 암봉들이 줄지어 연결되어 있어, 이 암봉들이 대마도 기반을 관입한 마그마가 암맥상으로 형성시킨 석영반암의 일부임을 대번에 알겠네.
대마도를 이루는 암석은 아주 단순한데, 약 2천5백만~천5백만 년 전에 생성된 셰일, 셰일과 사암의 호층, 그리고 이들을 관입한 소규모의 화강암, 석영반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적암들은 우리나라 포항과 울산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 제3기 지층과 같은 시기에 형성되었고 구성 암석들도 비슷하다.
일본 열도는 동북아시아에 붙어 있다가 동해가 생기면서 떨어져나간 땅덩어리인데, 이 시기에 이 암석들은 육지 내부로 바다가 밀려들어오는 초기에 생성된 것으로 우리 부산-경남 지역의 퇴적암들과는 시기적으로나 생성 장소가 판이하게 다르다.
일본이 떨어져 나가면서 유라시아대륙과 일본열도 사이에 동해가 생성되었는데, 동해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은 대략 천6백만 년 전부터이니 대마도의 암석들은 좀 이른 시기에 바다에 퇴적된 것이다.
이들이 퇴적된 뒤에 대마도 남부에 소규모로 화강암을 만들 수 있는 마그마가 뚫고 들어와 하대마의 아유도모시 자연공원에 노출되어 있는 화강암이 생성되었고 크고 작은 암맥들이 일부 지역에 관입하여 형성되었다.
시라다케 정상의 암봉을 포함해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뻗은 암체가 바로 석영과 장석을 반정광물로 포함한 암석, 즉 석영반암이다.
대마도의 암석들은 뒤에 필리핀 판이 북상하면서 가한 횡압력 때문에 심하게 습곡 되고 육화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정상에서 세찬 바람에 맞서 겨우 사진 몇 장 박고 내려가는데 이것 또한 만만찮은 게 아래를 내려다보니 눈앞이 아찔한데 다리까지 후들거리네.
겁난다고 정상 등정을 포기한 가이드는 저 아래 일찌감치 내려가 있는데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어 두 팔 두 다리를 한껏 뻗어 디디고 잡을 곳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겨우 내려와서 올랐던 암봉을 치어다보니 또 한 번 더 아찔하네.
우리가 올랐던 그 암봉은 쳐다보고 있는 방향으로 약간 경사진 절리들이 촘촘히 발달되어 있어 여차하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는데, 당장이사 어찌 될까마는 언젠가 와르르 붕괴되어 떨어져 내릴 것이라.
해서 사진 몇 장 박고 같이 내려온 홍청곤 대원을 봉우리 배경으로 그려주다 보니 앞 선 대원들을 놓쳐 뛰따라 가느라 서두르다 보니 어째 하산길이 좀 이상타.
암만 봐도 오를 때와 다른 것이 잘못 내려선 같은 느낌이라, 다시 안부로 올라가 넘어서니 바로 그 길이다.
맞어, 분명 오를 때 정상 봉우리가 왼쪽에 있었으니 이제 보니 방향이 옳네그려.
잠시 정상 언저리에서 알바를 한 탓에 선두에 상당히 뒤처진 모양인지 꽁무니도 아니 보이고 불러도 대답도 없네.
다시 급한 산길을 바위타고 내려가는데 한무더기 산꾼들이 기진맥진한 상태로 꾸역꾸역 올라온다.
‘10분이면 정상에 닿을 것이다’고 홍대원이 이야길 하니 ‘좀 전에도 10분이라던데 아직도 10분이냐’며 허탈해 한다.
앞서 내려가던 우리 팀이 이들에게 10여 분쯤 남았다고 언질을 줬겠지만 산길이란 게 통상 200m가 2km 되는 게 예사더라꼬.
띄엄띄엄 지친 발걸음으로 중년층의 산꾼들이 계속 올라오는 걸 보며 ‘왜 애써 저리 올라가는고.’ 하며 쓴웃음을 지어보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
로프가 설치된 곳이나 바위가 길을 막아서는 곳에선 스틱이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물기가 있는 미끄러운 사면에선 네 다리가 얼마나 좋은지 오늘 스틱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거의 갈림길 가까이 이르자 이제사 아래서 위로 향해 뒤처진 우리 이름을 불러댄다.
시라다케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경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시라다케를 답파했다는 실감이 나고 금번 대마도 원정의 보람을 느낀다.
이제 스모 쪽 날머리를 향해 내림길을 가야하는데, 재작년 산행 때 기억으론 스모 등산 입구에서 이곳에 이르는 길이 카미자카에서 이곳에 이르는 길보다 넓기는 하지만 암석들이 깔린 길이 많아 좀 불편했는데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고 잘 주파하기만 바랄뿐이로세.
발 밑의 돌에 잔뜩 신경을 쓰며 걷는 중에도 주위 풍광을 놓칠 순 없어 숲 속의 이런 저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후미에 처져 따라간다.
길길이 자란 고사리류, 우리 천연기념물 송이처럼 바위를 타고 오르는 이상한 나무, 손톱의 1/2 정도 크기의 잎을 가진 넝쿨식물이 이끼긴 바위에 바싹 붙어서 휘감고 있는 모습, 쭉쭉빵빵 시원하게 하늘로 치솟은 편백이나 삼나무들, 때를 잘못 알고 나왔는지 이름 모를 분홍색 꽃, 싱싱한 숲을 보니 마음도 따라 싱싱해지네.
한참을 가다보니 완만한 계곡과 계류가 나타나고 이제 웬만큼 내려선 건지 길도 제법 평탄해져 한결 걷기가 수월하다.
계곡을 건너는 곳에 쉴 수 있는 나무벤치가 있어 일단 전원 휴식.
옆에 서 있는 간판에 이 숲의 수종을 새겨두고 설명문이 붙어있지만 일어라 완전 해독을 불가하지만 몇몇 눈에 들어오는 한자를 챙겨보니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수종들이 두엇 표기되어 있다.
대마도의 생물상엔 대륙종도 있고 대마도 고유종이 있는데, 현해진달래, 이팝나무, 은행나무, 백운원추리(하쿠운키스게), 고려꿩, 쓰시마야마네코(일본에서는 쓰시마에만 서식하는 야생고양이) 등이 대륙종이고, 쓰시마말(일본 재래종 말), 쓰시마사슴, 쓰사마담비 등은 이곳에만 서식하는 귀한 생물종이라고 한다.
김상현 대원의 통통한 배낭에서 노란 감귤이 무더기로 나오는데, 농산물은 통관상 검역을 하게 되어 있고 허가 없이 상륙시킬 수 없다는데 어찌 저 많은 걸 가져왔을꼬.
목도 마를 즈음에 적시에 귤이 공급되니 생기가 싸악 돌아오고 멋진 삼나무를 배경으로 그림도 몇 장 그려둔다.
길은 평탄하고 왼쪽에 개울 같은 계곡을 끼고 걸으니 깊은 산속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전혀 없고 멋진 숲과 맑은 계곡을 보고 시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원시림 같은 자연을 예찬할 수밖에.
길이 많이 익숙한 느낌이 드니 임도에 가까워지는 모양이라.
이윽고 자그마한 폭포가 보이니 이제 산길은 끝이다(16:15).
임도 끝에 우리가 탈 미니버스와 두어 대의 승합차가 대기 중이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륙악 현수막을 펼쳐 전체 사진을 두어 장 박는다.
여기서 스모 등산 입구 주차장까지가 3.2km이니 40여 분 남짓 걸어야 할 길을 버스로 10여 분만에 이동하니 시간이 많이 단축되는 셈이다.
재작년에 시라다케를 찾았을 땐 스모 쪽 등산 입구에서 이곳까지 6월 말 땡볕 아래 걸어서 닿았던 기억이 새롭다.
가이드 미스 조가 큰 버스가 아닌 소형 미니버스를 이동 차량으로 택한 것이 바로 이 구간에 걷지 않고 이동하기 위함이었으니 참으로 기특한 처자로고.
이 거리를 도보로 왕복한다면 대략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될 터이라 미니버스가 1시간이란 시간을 아껴서 우리에게 줬을 것이라.
스모 시라다케 등산 입구 주차장에서 바라본 시라다케는 정상부에 하얀 암봉이 마치 마이산 두 봉우리처럼 솟아 있어 멀리서 바라보아도 멋진 산이다.
이제 시라다케 산행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면세점 한 곳을 들러 간다고 하는데, 그곳은 2년 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이고 어서 돌아가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을 뿐.
당일 부산을 출발해서 이렇게 시라다케를, 그것도 정상을 오르리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출발이 두 시간이나 앞당겨지는 행운(?) 때문에 명산 시라다케를 온전히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셈이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허리는 뻐근하고, 이제 고마 돌아가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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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출장과 입시 등으로 산행기가 너무 늦게 게시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억도 가물거리고 짬짬이 끄적그려 둔 것 연결시키려니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데 더 미루어 둘 수 없어 산행을 중심으로 기록을 남겨 봅니다.
그 심정을 누가 아랴?
수고 많이 했습니다. 중앙지 특판 역사 탐방 기행문이네요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가슴은 온전하지요.^^
역시 맛갈나는 산행기여~ 잘 봤습니다.
맛있는 글 잘 읽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산행기를 읽으니 그 날의 고행이 눈에 선하고 白嶽(시라다께), 산이름에 왜 흰 백자가 들어갔는지 이해가 됩니다. 부산 산사나이들이 호부, 꼴랑 519m 고봉(?) 등정에 새하얗게 질려서..하여간 사서 고생 많이 하셨소이다.
사서 고생하는 게 산행아님감???
바닷가에 있는 산은 그야말로 해발로 시작이니 호부,꼴랑하다 큰 낭패를 보기 싶소.^^
역시 이교수의 산행기는 역사와 지리 그리고 지학시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갑자기 아주 급한 일이 생겨서 하루전 날 취소했지만 산행기를 읽으니 내가 마치 등산에 참여한 느낌이 들만큼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항상 고맙고, 수고 했습니다^_^
정말 대단하오.산행중 한이야기 다시한번 신중히 생각해보쇼.멋진일이 되지않겠소.정말 애많이써셨소.....감사하오.
ㅎㅎ 천천히 고려해 보지요.
이륙악의 해외탐방을 축하합니다. 산케는 몇년전 휴전선 넘어 금강산을 다녀온 게 전부...언젠가 경부합동을 해외에서도 함 해야지요.
한편의 대하소설을 잘 감상하고 갑니다. 생각보다 많이 가깝다는 생각과 함께 참 즐겁고 의미있는 산행이라 여겨집니다.
마우스 하나로 상세하게 對馬嶋를 등산하고 있으니 팔다리가 참으로 편안하네 누구는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내가 작년 여름에 간 코스와 똑 같네요. 산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산행을 마치고 들린 대한제국의 면암 최익현 선생의 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수님 언제나 고맙습니다. 생생하네요. 명해+.
별 말씀을.. 고정 독자님이라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부럽소 이륙악들....서울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1박2일은 안되겠지요....돌허사비님의 후기 재밌게 보고갑니다.
1박 3일은 가능하겠는데.. ㅎㅎ 새벽에 부산역 도착, 오전 출항, 다음 날 오후 입항, 귀경. 인적 구성 때문에 못하는 건 아닐 터...
대단한 26악 칭구들...26산케도 가볼 기회가 있을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