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한 선생님으로부터 수학 K쌤 목격담을 듣게 되었다. 수학 K쌤은 작년에 3학년 담임이었으나 올해는 1학년 담임을 맡으셨다. 입학식을 마친 1학년 꼬마(?) 학생들을 뒤로 하고 피켓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데 마치 관광 가이드 같으셨다고 한다... 못 봤는데 그냥 생각만 해도 웃김. ㅋㅋㅋ 작년에는 (학원에서 배워서 다 안다고 착각하며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3학년 학생들이, 재작년에는 1학년 학생들이 수학 K쌤을 화나게 했다. 우리 1학년 학생들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올해는 수학 K쌤이 화나지 않게 해드려야 할 텐데...
- 어제 학생들이 집에 가고 나 혼자 남아서 교실 정리를 하는데 세 명 정도의 남학생들이 지나가다 인사를 했다. 불현듯 작년의 '너희'가 생각났고, 순간 '너희'인가 하는 마음에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 자석 시간표를 학교에서 마련해 주었다(거금을 들였다고 한다). 매우 무거워서 칠판에 겨우 붙였다. 시간표 자체가 자석이고 그 시간표의 빈칸에 수업 이름 자석들을 붙이는 형식이다. 그런데 '영어' 2개가 모자라고 대신 '영어A'와 '영어B'가 있다. '기술'도 하나 부족하고 대신 '가정'이 있다. 그래서 '영어A', '영어B'의 A와 B에 수정테이프질을 했다. '가정'은 수정테이프와 네임펜을 이용하여 '기술'로 제작했다...
- 수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교사 첫 해에 나의 수업에 드높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수업 끝날 때 박수 치는 것에 상처받았고(속상해서 울었음...-.-)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이 위로해 주셨다. 그 때 그 선생님께서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나이를 먹으면서 삶이 한정되어 있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그 선생님 말씀이 새삼 공감된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짧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하지. 당시 그 선생님은 나보다 몇 살 많지도 않으셨는데 어떻게 이미 알고 계셨을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에 나이가 필수 요소는 아니다. 나는 학생들로부터 많이 배워왔다. 올해 학생들이 나에게 줄 가르침이 기대된다. 해맑은 모습 자체가 큰 선물이기도 하고.
- 어제 자기 소개서를 쓰는 시간에 정성껏 차분하게 쓰는 모습이 인상적인 학생이 많았다. 새롭게 주어진 시작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방학 때 여행 유튜브에 눈을 떴다. 이미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여행 관련 유튜브를 뒤늦게 정주행하는데 재미있다(나는 예나 지금이나 뒷북이다). 그 중에서도 역시 말맛이 있는 유튜브가 재미있다. 여행을 가서 직접 그 곳의 공기를 느끼는 것이 당연히 가장 좋지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간접적으로라도 느껴 볼 수 있으니 좋다. 꼭 외국이 아니라도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점에서 출근은 여행과 속성이 닮아 있다. 우리는 매일 새롭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와 다르다. 나는 너희라는 세상으로 매일 여행을 가.
-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아파트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와 인사 나누었다. 대신 버려주시겠다고 해서 깜짝 놀라 내가 버린다고 했다. 다정하기도 하시지. 아침부터 훈훈한 마음으로 출근.
<315> - 다시 만나고 싶었던 학생들이 교실에 딱 앉아 있다! 기분이 너무 좋다! 그 학생들을 바라보고 수업하면 된다. ㅋㅋ - 교실에서 눈을 들어 창 밖을 보니 체육관이 보인다. 그 곳은 졸업식을 했던 곳이고 너희와 헤어진, 헤어질 곳이다. 그 때까지 후회없이 시간을 보내야지. - 오리엔테이션 시간 후 약 10분 미만의 시간이 남아서 '지금의 감정, 좋아하는 단어, 학습에서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각자 메모하고 마쳤다. 다음 시간에 바로 발표할 예정. 뭐라고 썼을까 매우 궁금하다.
<313> - 여기도 다시 만나고 싶었던 아이들이 생글거리고 앉아 있다. 오모나. - 태호가 만나서 반갑다고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는데 뭉클했다. 그 미소. - 예지는 여전히 얼굴에 한가득 미소 짓고 있다. 어쩜 저렇게 행복한 웃음을. 저렇게 웃으니까 더 행복할 것 같다. 기분 좋게 살면 그게 좋은 삶이지. 그는 좋아하는 단어로 '향'을 뽑아서 인상적이었다. 한 여행 관련 유튜버가 자신은 여행 시 '향수'를 챙긴다고 한 것이 기억났다. 좋은 향과 함께 여행하면 더 기분 좋다고. 다양한 감각을 풍부하게 느끼며 살면 좋겠다. - 정보화 도우미 태혁이는 축구하다 팔을 다쳤다고 한다. 저런... 10일 정도 있으면 기브스를 푼다고 한다. 새 학년을 시작하며 다소 긴장되는데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는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것도 보기 좋았다. - 학습에서 성장한다는 것에 대해 '지식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발표가 대부분인 가운데 '정신과 태도면에서 성숙해지는 것'(수빈, 예지)라고 한 발표가 있어 인상적이었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 발표에 대해 '더 나은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지 추가로 질문하였고, 답변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더 나은 인간'은 더 행복한 인간과 연결된 듯했다. 우리는 배우기 위해 학교에 오고, 그 목적은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있다. 이것을 배움으로써 어떻게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그 화두를 1년간 안고 수업에 임해 보자. - 새로운 시작에 대해 긴장이나 불안으로 대할 수도 있고, 기대와 설렘으로 대할 수도 있는데 각자 어떠한지 궁금했다. 나의 경우는 대체로 두려워하며 시작했는데 작년의 (사랑스러운) 학생들로 인해 매일 설레며 학교에 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해주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기회인지' 더 실감한다고도 말했다(말하면서 눈물 날 뻔했다). - 좋아하는 단어로 '안녕'을 쓴 친구가 있었다. 네이버 사전에서 찾은 '안녕'의 뜻은 다음과 같다. 안녕安寧어휘등급
1.
명사아무 탈 없이 편안함.
2.
감탄사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
편안하다는 뜻,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삿말이라는 뜻 모두 좋구나.
<314> - 웃고 있는데 긴장했다고, 안 웃는데 즐겁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표정만으로 알 수 없는 내면. - '학습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다른 필터로 볼 수 있다는 것,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라는 발표가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학습은 좀 더 선명한 필터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내가 보는 관점만이 전부가 아님을 수업을 통해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활발히 의견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 다연이는 기분 좋게 하는 단어로 '(맛있는 것) 먹기, 놀기' 등을 떠올렸다. 그렇지. 단순하지만 확실한 행복. 집에 가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잘 쉬기를. - 운동을 좋아한다는 학생이 많아서 보기 좋았다. 운동은 정서를 안정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p.s. 개구진 웃음 한가득인 혁준이가 복도를 지나가다 14반 되고 싶었다고 말하며 인사하고 갔다. ㅋㅋ 말도 예쁘게 해. 저절로 머리를 쓰다듬게 되는 귀여움. 발음이 또박또박해서 들으면 속시원해지는 고운이는 10반이구나. 반갑게 인사해 주어서 고마웠다.
p.s.2. 목동고에 간 정은이와 우연히 마주쳤다. 다시 1학년이 된 아기 고등학생. ㅎㅎ 어디 가든 잘할 정은이. 그 씨익 웃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화이팅! :)
p.s.3. 방학 지나고 오랜만에 7교시를 해서 힘들었을 듯. 모두 수고 많았어! 내일 또 만나.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