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 누구나 알다시피 스마트폰 분야 최강의 라이벌이다. 두 업체는 그간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는 엎치락뒤치락하며 1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왔다. 특허 소송 역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온 게 사실이다.
또 올 가을 두 업체의 차세대 스마트폰인 '갤럭시 노트5'와 '아이폰6s'의 한판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그럼 점유율은 어떨까? 두 업체의 전세계 스마트폰 점유율은 무려 40%(2014년 기준). 중국 업체의 약진으로 전년보다는 7% 떨어진 수치지만 전세계 스마트폰 사용자 10명 가운데 4명은 삼성 아니면 애플 제품을 쓰고 있단 얘기가 된다.
이 두 라이벌의 지난날은 어땠을까? 이들의 역사를 잠시 들여다보자.
창업
- 삼성
삼성전자는 1969년 고(故) 이병철 씨가 창업해 현재 3남인 이건희 회장이 맡고 있다.
- 애플
애플은 1976년 고(故) 스티브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자택 차고에서 설립했다.
< 출처: 위키백과 >
1970년대
- 삼성
삼성은 창업 이듬해인 1970년 흑백TV 생산에 나선다. 이를 시작으로 1974년에는 세탁기와 냉장고를 생산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
1977년에는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는 등 국내 반도체 제조의 선두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기 시작한다.
< 출처: 브랜드리뷰 >
- 애플
애플은 1976년 애플I의 성공과 함께 거액의 대출을 받는데 성공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듬해인 1977년 1월 3일 법인 등록을 했다. 이후 워즈니악이 애플I의 처리 속도를 향상시키고 내장 키보드를 탑재한 애플 II를 출시한다.
당시 1298달러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애플 II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고 1980년 설치대수가 무려 10만대에 이른다.
< 출처: 위키백과 >
1980년대
- 삼성
1980년대 삼성은 반도체 생산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였다. 1970년대 출시한 흑백TV의 판매율은 계속 성장했고 삼성은 이를 기초삼아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다.
1983년 2월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DRAM 사업에 진출한다는 동경 선언을 발표, 본격적인 반도체 생산에 돌입한다. 그리고 같은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RAM을 개발하게 된다.
1984년 2월 현재의 상호인 '삼성전자'로 변경한다. 1987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를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연구, 개발을 목적으로 한 삼성 종합기술원(SAIT)을 설립하고 1988년 11월 삼성반도체통신을 흡수하게 된다.
- 애플
같은 기간 애플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83년 잡스는 당시 '마케팅의 귀재'로 알려진 존 스컬리 펩시콜라 사업 부분 사장을 영입해 맥킨토시를 출시한다.
슈퍼 컴퓨터 개발과 유능한 경영자 초빙 등 애플은 승승장구할 것처럼 예상됐지만 1984년 크리스마스 시즌 수요를 잘못 예측해 맥킨토시의 공급 과잉 사태를 낳게 된다.
이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존 스컬리는 잡스에게 맥킨토시 부분에서 손을 뗄 것으로 요구했고 결국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나게 된다.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 일화에 대해 "애플에서 해임된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언급했다.
이후 존 스컬리의 지휘 아래 애플은 1987년경 아이폰의 모태가 되는 '뉴턴 메시지 패드(Newton Message Pad)'를 출시하게 된다.
지금의 스마트폰보다는 PDA에 가까운 기기였지만 화면에 터치나 글씨를 써서 입력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 스마트폰의 원형으로 불리고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
1990년대
- 삼성
1990년대 삼성은 급격한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1992년 64M DRAM을 최초로 개발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했으며, 이듬해인 1993년에는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DRAM 생산 업체가 된다. 또 1994년, 1996년에는 256M과 1G DRAM을 연속 최초 개발, 반도체를 한국의 대표산업으로 키워나간다.
반도체 시장에서의 성공은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90년대 초 약 2조 원이었던 매출이 1993년에는 9조 원을 돌파하고 이후 1996년에는 2배, 1999년 3배로 성장하며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로 명성을 이어간다.
삼성전자의 64K DRAM은 지난 2013년 등록문화재제 563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
- 애플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퇴진시킨 후 새로운 체제를 구축했지만 한동안 부진한 실적을 이어갔다. 파워북 100이나 Macintosh Performa, Power macintosh 6100 등의 제품을 출시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급속한 성장은 아니라 매년 7조 원 정도의 매출을 유지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그동안 애플의 전 CEO 잡스는 넥스트를 창업하고 픽사를 설립하는 등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1996년 부진에 빠져있던 애플은 잡스의 넥스트 인수에 합의했고 이듬해인 1997년 잡스는 임시 CEO로 12년 만에 애플에 복귀하게 된다.
잡스는 이때부터 '성미급한 사람'보다는 '사업가'의 면모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라이벌이자 기피 대상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제휴 등을 통해 흑자 전환을 달성하고 탄탄한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2000년 ~ 현재
- 삼성
2000 년대 초 삼성전자는 NAND 플래시 분야에서도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며 매출을 늘려간다. 또 90년대 이후 반도체 생산에서 얻은 막대한 이익을 LCD 사업과 휴대폰 사업에 재투자해 이 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특히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으로 2009년 삼성전자는 매출 136조3000억원을 기록한다. 2012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매출 200조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 출처 : 위키백과 >
스마트폰 출하대수로 오랫동안 세계 넘버원 자리를 지켜오던 삼성은 그러나 지난해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전자업체의 등장으로 매출이 급감, 9년 만에 성장세가 멈추고 만다.
스마트폰 매출이 줄어 수익성은 악화됐지만 차기 모델인 '갤럭시 노트5'의 출시 시점을 9월에서 오는 8월 중으로 앞당기는 등 재기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사진 출처 : cdn.webtekno.com>
- 애플
애플은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한다. 당시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는 플래시 메모리형이 주류를 이뤘지만 아이팟은 대용량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가 탑재돼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가격이 비싸고 맥킨토시 버전 밖에 출시되지 않아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이후 윈도용 출시로 점차 인지도를 높여갔고 2004년 아이팟 미니가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2007년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해, 매년 사상 최대 매출 기록을 갈아치우며 성장한다. 2011년에는 미국 증시에서 엑손 모빌을 누르고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이후 2011년 잡스는 팀 쿡을 새 CEO로 지명하고 애플을 떠났고 같은 해 10월 4일 만 5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잡스가 떠났지만 애플. 하지만 애플은 여전히 수많은 매니아를 낳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분기(2014년 12월 28일~2015년 3월 28일)에는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 출시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3% 오른 136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애플은 이 기간 동안 총 6100만대의 아이폰을 팔아치웠는데 이 수치 역시 전년 같은기간보다 40% 늘어난 수치다.
또 지난 4월에는 스마트밴드 '애플워치'를 선보이며 스마트 워치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올 가을에는 포스터치 기능이 장착된 아이폰6s(가칭)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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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IT업계의 큰 별로 추앙받던 애플 스티브 잡스가 타계하면서 그의 일생과 제품 등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지난 KBS스페셜 ‘iSad 스티브 잡스(1955~2011)’라는 주제로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다시 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언제부터 애플이 우리에게 이러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느냐’라는 부분일 것입니다.
국내에서 애플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불과 2년전입니다.
지난 2009년 애플 아이폰3Gs가 국내에 출시되면서‘애플’이라는 기업이 재조명된 것입니다.
그전까지 국내에서 애플 제품을 쓰는 사람들은 일부 애플 아이팟 시리즈를 사용하던 얼리어답터, 디자인 계통 종사자, 개발자에 국한됐습니다.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업적이 아이튠즈, 앱스토어, 아이폰 등에 맞춰져있으나 저는 스티브 잡스가 1990년대 말 무너져가는 애플을 ‘어떤 제품’으로 되살렸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어떤 제품’에 대해 이야기해 볼 까 합니다.
◆스티브 잡스, 최초의 GUI 운영체제를 만들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했습니다. 그는 개인용컴퓨터 애플I를 시작으로 개인용컴퓨터 애플Ⅱ를 만들어 시장에 내놨습니다.
이후 1984년 시스템(System, 현 OSX) 운영체제(OS) 기반 매킨토시(Macintosh)를 내놓으면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보급을 선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었던 GUI 기술을 훔쳐서 매킨토시를 내놨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실제로 1983년 스티브 잡스는 천재화가 피카소의 말을 인용 “훌륭한 예술가는 남의 작품을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남의 작품을 훔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애플 시스템 GUI를 본받아 윈도3.0을 내놓기도 했죠.
스티브 잡스는 기업 혁신(이윤 추구, 판매 촉진 등을 위한)을 위해 당시 펩시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를 영입합니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잡스가 던진 “언제까지 설탕물만 팔 것이냐”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죠.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컴퓨터의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매킨토시를 시장에 내놨으나 ‘애플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는 매킨토시의 가격을 더욱 내려야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이사회로부터 경질을 당합니다.
◆쫓겨난 스티브 잡스, 소프트웨어로 새롭게 도전하다
1985년 자기가 만든 회사, 자기가 영입한 사람들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솔루션 회사인 넥스트(NeXT)사를 세워 세계 최초의 객체지향OS 넥스트스텝(NeXTstep)을 개발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는 1997년 애플에 인수됐고 넥스트가 개발한 넥스트스텝은 당시 경영난에 허덕이는 애플을 구하고 지금 OSX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어떤 제품’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스텝 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넥스트스텝이 없었다면 애플은 경쟁사인 IBM, HP에 인수됐을 것이고 지금의 아이폰도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잡스 없는 애플, 경영난에 허덕이다
다시 돌아와서, 1990년대 중반 애플의 경영난에 대해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1994년 애플은 매킨토시용 OS인 시스템7을 업그레이드 하기위해 ‘코플랜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대표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드웨어의 성능이 높아지고 경쟁사인 MS가 다양한 기능을 담은 운영체제를 내놓자 조바심이 난 거죠.
당시 시스템7에는 멀티태스킹과 같은 기능이 탑재되지 않아 사용자들의 불만이 쇄도했습니다. 경쟁제품이던 윈도95는 시스템7이 지원하지 않는 수많은 기능을 담고 있었습니다.
코플랜드는 메모리 보호나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비롯해 당시 하드웨어의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 기능이 담길 ‘예정’이었던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나 개발하는 도중 난관에 부딛쳤고 이는 애플에게 있어 최악의 재정난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후 애플은 코플랜드를 1996년 8월에 공식적으로 취소하고 시스템7의 마이너업데이트를 통해 맥OS8(이때까지 클래식 맥 체계)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습니다.
물론 맥OS8은 형편없는 OS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MS 윈도95에 비교했을 때 정말 ‘이게 OS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가히‘애플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잡스, 넥스트스텝으로 애플을 회생시키다.
애플은 위기가 지속되자 1996년 12월, 스티브 잡스가 만든 넥스트사를 인수합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스티브 잡스가 개발한 객체지향OS 넥스트스텝을 노린 것이죠.
코플랜드가 제대로 출시되지 못하자 다른 회사의 OS를 매킨토시용으로 포팅해서 내놓을 생각을 한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피인수를 통해 1997년 임시 CEO자리에 다시 복귀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월가를 비롯한 IT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플이 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잡스가 임시 CEO에 오르고 1년이 지난 뒤 애플의 분위기는 반등하기 시작합니다. 1997년 애플은 맥OS8, 소나타를 발표하고 같은해 10월 랩소디를 내놓으면서 시장에 애플의 이미지를 다시 각인시킵니다.
이듬해 애플은 맥월드 엑스포에서 1/4분기 4700만달러 흑자를 발표하고 아이맥을 내놓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애플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스티브 잡스가 1998년에 랩소디와 아이맥(iMac)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애플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후 2001년, 애플은 넥스트스텝을 매킨토시용으로 포팅한 OSX을 내놓고 지금까지 8번의 업데이트를 진행했습니다. 2001년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정식 CEO로 취임한 해입니다.
CEO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애플은 아이팟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입니다. 사실 지금의 그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지금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의 9할 이상은 2000년대 그가 발표한 것들에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애플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아이튠즈, 앱스토어, 아이팟이 아닌 넥스트스텝에 있다고 봅니다.
스티브 잡스가 다시 CEO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한 기회였고, 애플의 분위기가 반등될 수 있었던 제품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아이폰과 같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Betanews 박은주님과 delighIT dev_님의 글입니다.
* 전세계인을 목디스크 환자로 만든 그를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