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풀이는 김세레나가 부른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하는
첫 대목이 깊은 충격과 울림을 주었던 곡으로 김세레나가 부른 곡이 원곡을 그대로 부른 것인 줄
알았었다.
"성주풀이"는 남도잡가 민요이며 또한 굿을 하면서 성주신을 부르며 읽는 축문이 "성주풀이"로
남도잡가는 이 무속신앙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은 대표적인 남도 민요 잡가인 "성주풀이"를 찾아 본다.
무속신앙에서 가택신(家宅神)인 성주신(城主神)과 그 부인인 터주신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무가(巫歌) 또는 무속신화.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한 경우 집의 신인 성주신을 모시는 굿을 하거나
독경(讀經)을 할 때 부르거나 읽는 것이 성주풀이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터를 관장하는 신령인 성주신과 그의 아내인 성주부인 등이 가옥의
건축이나 집안의 복과 덕을 도맡아 다스린다고 믿어 왔다. 따라서 집안의 무사태평과 번영을 빌기
위해, 혹은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한 뒤에 성주굿을 했는데, 성주풀이는 이 성주굿에서 무당이
부르던 무가(巫歌)가 민가에 퍼져 민요화된 것이다. 이후 전문 소리꾼들이 가사를 많이 개작해
부르면서 신(神)을 기리는 본래의 내용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굿거리장단에 맞춰 꿋꿋하고 시원스럽게 부른다. - [네이버 지식백과]
아래의 이 곡은 1936년 녹음된 곡으로 당대 명창 조명수와 김소희, 김세준과 임소향이 주고받으며
부른 곡으로 당대 4명의 명창을 만날 수 있어 더할나위 없이 귀한 곡이다.
창 조명수, 김소희, 김세준, 임소향 "성주풀이(1936)"
https://youtu.be/dxvmnSY87dE
조명수 : 어~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로구나
낙양성(洛陽城) 십리허(十里許) 높고 낮은 저 무덤의 영웅호걸(英雄豪傑)이 몇몇이며
절대 가인(絶代佳人)이 뉘기뉘기 유락중혼(遊樂中琿) 미청년(美靑年) 소년행락(少年行樂)이
편시춘(片時春)이라. 에라, 만수
김소희 : 어~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로구나
왕왕한 왕왕한 북소리는 태평연월(太平煙月) 자랑하고
둘이 부는 피리소리 쌍봉황(雙鳳鏡)이 춤을 추고
소상 반죽(瀟湘斑竹)의 젓대 소리 좌상(座上)의 오신 손님
일만(壹萬) 근심이 비행기 타누나. 에라, 만수
김세준 : 화초(花草)도 많고 많다 팔월(八月) 부용(芙蓉)의 군자룡(君子容)
만당추수(滿塘秋水) 홍련화(紅蓮華) 암향부동(暗香浮動)에 월황혼(月黃昏)에
소식(消息) 전(傳)턴 한매화(寒梅花) 진시유랑(盡是劉郞) 거후재(去後哉)라
붉어짔난 홍도화(紅桃花)로다. 에라, 만수
임소향 : 어~ 에라 만수
아침의 돋는 해는 팔도마다 비쳐있고
일시 좋이 돈는 해는 중나 태평이 좋을시고
달 밝은 밤에 저 소리 흥을 진정을 못이기어
오늘 여기 오신 손님 어깨춤이 절로나누나, 어라, 만수
좋다.
이 "성주풀이" 의 가사는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위의 "상주풀이"가사는 무속의 "성주풀이"애서 차용한 1절(조명수), 2절(김소희)과 화초타령을
차용한 3절(김세준) 그리고 무대를 감안해 관객과 조응하는 가사를 부를 4절(임소향)로 되어 있다,
창자에 따라 무대에 띠리 조금씩 달리 불린 것이다. 그중에 많이 불린 가사를 찾아 보았다.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야 대활령(大活靈)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로구나. 놀고 놀고 놀아 봅시다.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대 가인이 그 뉘기며 운하춘풍(雲霞春風)은 미백년(未百年) 소년행락(少年行樂)이
편시춘(片時春) 아니 놀고 무엇 하리.
한송정 솔을 베어 조그맣게 배를 무어 만만고 띄워 놓고
술이며 안주 많이 실어 술렁술 배 띄어라 강릉 경포대로 가자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로구나.
이 댁 성주는 와가(瓦家) 성주, 저 댁 성주는 초가 성주
한테 간에 공댁 성주, 초년 성주, 이년 성주
스물일곱에 삼년 성주, 서른일곱 사년 성주
마지막 성주는 쉰 일곱이로다.
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로구나
성주야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원이 본이 되야
제비원에다 솔씨 받어 동문 산에다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밤이며는 이슬 맞고 낮이며는 볕에 쐬어
청장목(靑長木) 황장목(黃長木) 도리 지둥이 다 되었구나
에라. 만수 에라, 대신 대활령으로 설설이 내리소서
= [네이버 지식백과] 성주풀이(국립국악원)
"에라, 만수(萬壽) 에라 대신(大神)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로구나 놀고놀고 놀아봅시다 아니 노지는 못허리라"
이댁 성주는 와가(瓦家)성주 저댁 성주는 초가(草家)성주 한테간에 공대성주
초년성주 열일곱 이년성주 스물일곱의 삼년성주 서른일곱 사년성주
마지막 성주는 쉬흔 일곱이로다
대활연으로 설설히 나리소서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에 솔씨받어 봄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黃腸木)이 되었구나 돌이 기둥이 되었네
낙락장송이 쩍 벌어졌구나
왕왕헌 왕왕헌 북소리는 태평연월(太平烟月)을 자랑허고
둘이 부는 피리소리 쌍봉황이 춤을 추고
소상반죽(瀟湘斑竹) 젓대소리 어깨춤이 절로 나누나
청천에 뜬 기럭아 니가 어디로 행허느냐
소상(瀟湘)으로 행허느냐 동정(洞庭)으로 행하느냐
소상동정 어디다 두고 여관한등(旅館寒燈)에 잠 못 이루나
반갑네 반가워 설리춘풍(雪裏春風)이 반가워
더디도다 더디도다 한양행차가 더디어
남원(南原) 옥중(獄中) 추절(秋節)이 들어 이화춘풍(李花春風)이 날 살렸구나
세월아 가지마라 아까운 청춘이 다 늙는다
천증세월(天增歲月) 인증수(人增壽)요 춘만건곤(春滿乾坤)에 복만가(福萬家)라
어이타 세속인심 나날이 달라 변곤이로다
낙양성(洛陽城) 십리허(十里許)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대가인(絶代佳人)이 그 누구냐
운하춘풍(雲霞春風)은 미백년(未百年) 소년행락(少年行樂)이 편시춘(片時春) 아니놀고 무엇하리
한송정(寒松亭) 솔을 베어 조그맣게 배를 모아 한강에 띄어놓고
술이며 안주 많이 실어 술렁술렁 배 띄워라 강릉 경포대로 가자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 [네이버 지식백과] 성주풀이 (창악집성, 2011. 07. 04., 하응백)
이곡을 1970년대 현대화하여 대중화 시킨 공로는 김세레나에게 있다.
김세레나는 데뷔초부터 이곡을 대중가요로 편곡해 부르고 여러 장의 앨범에도 실었다.
음반에 취입할 때마다 편곡자가 달라지기도 했지만, 이곡을 처음 대중가요로 소개된 것은
김세레나 독집음반으로 1969년 1월 발표한 "김세레나 스테레오 앵콜 힛트 앨범 No.1"에
"성주푸리"로 실으며 당시 아세아레코사 사장이던 최치수가 구전가사를 다듬고 작곡가 김종유가
편(보작)하여 대중에 선보인 것이다.
구전 가사(최치수 개사), 민요(김종유 보작, 편곡), 노래 김세레나 "성주풀이(1969. 1)"
https://youtu.be/sEbV83m_-GU
이렇게 이어지다가
아래 소개한 1974년 1월 발표한 음반에는 민인설 편곡으로 조금은 민요풍에서 벗어난 듯한 발전된
편곡과 소리로 기존의 나긋나긋한 민요조에서 이곡의 핵심인 씩싹한 느낌이 보강되었다.
구전 가사(최치수 개사), 민요(민인설 편곡), 노래 김세레나 "성주풀이(1974. 1.28)"
https://youtu.be/aivO-Q1zkb8
https://www.youtube.com/watch?v=VXouExM4BRA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 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저 건너 잔솔밭에 솔솔 기는 저 포수야
저 산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는 나와같이
님을 잃고 밤새도록 님을 찾아 헤맸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한 송정 솔을 베어 조그맣게 배를 지어
술렁술렁 배 띄워놓고 술이나 안주 가득싣고
강릉 경포대 달구경 가세 두리 둥실 달구경 가세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그리고는
노고지리가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밴드음악으로 편곡해 부르기도 했다.
노고지리는 1979년 고등락교(안양예고)를 졸업하고 바로 듀엣밴드를 구성해
서라벌레코드에서 데뷔 앨범(SR-0143) "노고지리가 부른 우리민요"을 발표하는데 이 음반의
타이틀곡이었다.
이 음반은 모두 민요를 듀엣밴드에 맞춰 편곡해 부른 곡들로 채워졌는데 반응을 이끌어내는데는
실패. 이어 발표한 2집은 전작과는 분위기가 180도 바뀐 음반으로 별 홍보도 없이 발표했는데
김창완의 곡으로로 모두 채운 이 음반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찻잔"이 큰 사랑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먼저 발표한 1집도 재조명되었다. 이곡의 편곡자는 찾지 못했는데 김종유 편곡을 이어받았다.
요즘 정치판엔 무속이니 역술이니 워니 하며 한창 난리다.
우리는 스스로도 잘 모르는 과거의 전통이 배어있어서 은연 중 그걸 호기심 삼아 찾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것들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생활애 큰 영향을 주던 시대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다.
혹시 점을 보고 사주를 보고 역술을 풀어본다고 해도 과거처럼 전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사회환경도 아니다.
이런 민요나 판소리, 한복과 한식 같은 전통 문화를 간수하지 못하고 제대로 젖어본 사람들도
적어지는 마당에...
자꾸 무시하게 되는 듯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버리는 상활이 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