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외적으로 드러내는 스타일은 곧 그 사람의 인성을 반영한다고 한다.
서태지와 존 레논이라는 뮤지션을 상호 비교했을 때 두사람은 같은 감성과
정반대의 양태를 보였던 인물이다. 즉흥적이고 우발적이었던 존 레논에 반해서
태지는 보다 철저했었고 계획적 이었다. 시니컬하면서도 감정적인 존에 반해서
태지는 이성적이며 강(인)한 인물이었고, 귀족형의 태지에 반해 존은 노동자형
이다.
이들의 음악적 성향이 자유 이데아와 진보적 틀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단지 인성적으로 봤을때, 매우 개방적이었던 존 레논에 반해서
태지는 완강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간에 슈퍼스타로서의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개인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사탄설및 상업성 시비등 현역시절 내내 X색
언론과 (가짜) 음악비평가들의 도마위에 올랐었던 태지는 본인의 의지와는 전연
상관없는 분쟁에 휘말렸으나, 존 레논의 경우는 나는 예수보다도 더 인기가 있다
는 식으로 스스로 분쟁을 야기했다.
전에 누군가가 존 레논은 천재형은 아닌것 같다,라고 쓴 글을 언뜻 본적이 있는
데, 완전하게 동의할 수 없지만 서태지와 비교해서 말하자면 존은 확실히 천재형
은 아니다. 그럼 비틀즈 시절의 신화나 그룹해체 이후 존의 명성은 대체 뭔가?
하고 묻는다면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이부분은
태지에게도 해당한다.
나 역시도 태지를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미 핸드랙스나 짐 모리
슨에 비하면 확실히 태지는 천재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음악적
재능이 보통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말이 없다. 지금 이
피상적 비교글 역시도 '캐빈 클럽(하이텔, 비틀즈 팬클럽)' 회원들이이 봤다면
그들은 나를 죽이려고 들것이다. 같은 이치로 나야 태지 골수팬으로서 서태지를
짐 모리슨과, 커트 코베인, 모짤트, 하다못해 불란서 시인 랭보까지 동일선상에
올려다놓고 보지만 과연 이사실을 미국에 있는 코베인 팬클럽 회원이 알고있다면
어떨까? ....두말할 것 없이 나는 총맞아 죽는다.―
음악적 면으로 본다면 비틀즈 시절에는 존의 철학적 가사와 폴메카트니의 대중적
기호에 딱 들어맞는 작곡스타일에 있으며 그외에 링고스타와 조지 해리슨이라는
훌륭한 동료가 있었고 더불어 제작자였던 조지 마틴의 뛰어난 사업 수완에 있다.
그리고 사회적 측면으로 본다면 비틀즈는 대중의 관심을 약물과 인도음악과
초월적 명상으로 옮겨 놓았으며, 젊은이의 문화를 촉발 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활
을 하였다. (비틀즈 시절의 대표적인 청년문화는 아무래도 'return to nature
순수에로의 회귀'를 기치로 내건 hippie문화의 탄생이 그것인데, 히피 문화를
이야기할 때, 아무리 마마앤 파파스가 어떻고 짐 모리슨이 저떻고 떠들어봐야
비틀즈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비틀즈 신화와 존 레논이 가진 벨류의 결정적 핵은 그가 현역
에서 활동할 당시 마치 화두로 가지고 있었던, '어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 정신이다. 바로 이점에서 '비틀즈의 존 레논'과 '태지들' 의 서태지는
등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존 레논과 서태지는 음악적 감성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특히 존 레논의 <이매진>과 서태지의<슬픈아픔>을 동일선상에 올려
놓고 보면 자기만의 인성과 개성, 음악적 정서면에서 매우 비슷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매진과 슬픈아픔은 그들의 음악적 능력의 베스트와 영혼을
집약적으로 응집시켜 놓고 있다.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 우드>를 보면 정신휴양소를 나온 이시다 레이코 여사
가 소설의 화자인 '나(와타나베)' 집으로 와서 수많은 비틀즈의 명곡들을 차례
로 연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확실히 인생의 슬픔이라든가 아름다움 같은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이매진>이 세상에 대한 존의 아름다움을 말하려고 했다면 <슬픈아픔>은
세상에 대한 태지의 슬픈 눈이다.
아래는 존이 작사 작곡한 '이매진'의 의미풀이를 시도해 보았다. 다소 억측이
난무하긴 하지만 존의 팬이라면 한번 시도해 볼만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남들
다 데이트하는 피같은 주말에 이러고 앉아서 있다.
단, 주지할 것은 이 노랫말 풀이는 학력고사 세대들이 지겹게 해온 영문 독
해식
풀이는 아니다. 그런 식의 구문 풀이로는 존이 <이매진> 속에 담고 싶어한 메시
지를 결코 추론해 낼 수가 없다. 바꿔 말해서 그런 식의 구문 풀이는 태지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슬픈아픔>을 자기나라 말로 번역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 IMAGINE -So peaceful. peace, peace, peace.
ⅰ)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ⅱ)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u-huh)
ⅲ) Imagine no possession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nor hunger a brother 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u-huh)
R²)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Imagine there's no heaven'이라는 구문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구문이 함의만 알게되면 나머지 구문의 의미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결코 의문형은 아니지만 보컬은 타인(청취자)에게건 혹은 자신에게
건간에 무언가를 묻고 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언뜻, 천국이 없는 세상이
라면 지옥을 연상하기 쉬운데, 다분히 반어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위의 구문은
그러나 뒤이어서 'no hell...' 어쩌구 저쩌구 했으므로 천국의 반대급부를
묻는 것은 아닌 것같다.
만약, 이 구문에서 존이 천국이 없는 세상, 즉 지옥같은 세상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면 ⅰ연의 종장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A-ha)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지옥같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속에 오늘을 위해
살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전체적인 노래 말에서 'Imagine there's no
heaven'에 가장 근접하는 답을 y으려한다면 ⅱ연의 두번째 줄의 구문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면
존이 자문한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는 천국이 없는 지옥같은 세상을 생각해
보란 것이 아니라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는 말이된다.
그리고 이 해석은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와 가
장 잘
호환된며 또한 나머지 문장도 쉽게 파악된다. 다시 말하자면 Imagine there's
no heaven의 궁극적인 뜻은 '서로 죽이고 죽는일이 없고, 광신적인 믿음이 없는
세상' 혹은 '천국도 지옥도 존재치 않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는 식이다.
ⅱ연은 ⅰ연에 이어서 또다시 대상없는 독백형 자문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는 세상' 만들기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질문의 대답에 대해서 존은 Imagine there's no
countries라고 말한다. 그리고 'no countries'라는 의미에 대해서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라고 정의해 놓는다.
그런데 no countries를 '국가가 없는 상태'로 해석해서는 곤란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국가와 국가가 하는게 아니라, 정부와 반정부 세력(교전 당사자가 외국
군대라고 해도)가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정부(정권)를 구성한 소수 권력
집단의 이익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no countries는 '정부가 없는
상태'의 메타포이며, 다시말해서 ANARCHISM을 말한다. 그리고 존이 말한
no countries의 궁극적인 의미는 '아무런 죄책감도 못느끼면서 인류를 말살하고
분쟁을 야기 시키며, (극우적) 광신이 준동하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국가가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 바로 이 상태를 존
은 no countries 라고
말한다. (여기서 보듯이 존은 아나키즘anarchism적 정치성향 내지는 국가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말하자면 히피적 정신이랄까?)
다음 ⅲ연에서는 ⅰ연의 no heaven과 ⅱ연의 no countries를 완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이 없는 세상
(천국도 지옥도 없는 세상)을 말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여기에 존은 대안으로서 No possession을 제안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
(혹은 소유물을 가지려는 욕심)이 없어야 하는데, ⅲ연에서 가정법 미래(I won
-der if you can) 통해서 그렇게 되기(네가 소유물에 집착하지 않기)를 희망한
다고 피력한다. 소유물possession이 없다는 것 혹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유물을 쟁취하려고 하는 (욕심)분쟁도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분쟁이
없는 무정부주의 상태의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가 되지 않겠느냐, 하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두 번의 반복을 통해서 존은 말하길,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는 순전
히 꿈같은 일만은 아니라, (당신과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며, 그런 평화로운 세상이 올수 있기를 소망(hope) 한다고 말한다.
··················
결국 이매진의 테제는 '무정부주의를 전재로한 개인주의적 평화'를 희구하는
마음을 말한 것이 된다. 흠...기왕하는 김에 이런 식으로 서태지의 <슬픈아픔>
도 해석해 볼까나? 하긴 돌만 날아오지 않는다면야 무언들 못할까....^^
another...
`. 존 레논의 (가짜) Tribute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
비디오 대여점갔다가 쇼케이스에 잠들어 있는 비디오중에서 존 레논 TRIBUTE
라고 씌여 있는 비디오(상·하로 되어 있음)를 빌려 본적이 있다. 오프닝으로
엘튼 존이 '이매진'을 부르고, 존과 요꼬사이에서 태어난 Sean Ono Lennon이
'Dear pardence'을 부르며 끝나는 이 뮤비는 마이클 잭슨, 로링 스톤즈, 데이빗
보위... 하다못해 연로하신 레이 찰스 할아버지까지 나와서 상체를 심하게 흔들
어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이제까지 보았던 뮤비라고는 태지들과 기타
외국 뮤지션들의 것 몇개 밖에 안돼는 나로서는 뭐가 뭔지 감조차 안오지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뮤비는 존 레논의 Tribute와는 거리가 멀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국내의 어느 뮤비 생산업체가 해마다 벌어지는 존의 추모
공연장면과 과거 비틀즈의 기존 공연장면을 교묘하게 짜집기 해놓은 것에 불과한
거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이 찰스가 'Let it be'를 부르거나 마이클 잭슨이 'Come Together'를
부른 것이 이 뮤비가 TRIBUT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들은 '존 레논의
노래'를 부른게 아니라 '비틀즈의 노래'를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 뮤직비디오가 존 레논의 Tribute든 아니든 내게 있어서 그건 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이 나오고 롤링 스톤즈가 등장해서 모두들
저마다
의 개성을 뽐내며 목청 높여봤자 내 관심은 오로지 생전의 존이 가택연금 시절을
생각하며 오노와 함께 하얀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며 부른 '이매진'에
머물러 있다.
암튼 이 뮤비에 나온 장면들 중에서 레이 찰스가 상체를 몹시 심하게 흔들어가며
재즈 스타일로 Improvisation해서 부른 'Let it be'와 함께 존이 오노와 함께한
자리에서 부른 '이매진'을 질리도록 되풀이해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