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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가 필자. (사진: 김종수 제공) |
대전환의 시대, 기독 NPO 운동의 딜레마
개인적으로 볼 때, 기독 NPO 운동의 딜레마는 대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30-40대 실무자가 한 기관의 장으로 책임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지금의 40대 실무자는 중견 관리자 위치에 머물러 결정권을 위임받지 못하고 당면한 문제에만 매달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 초고령화 사회 속에 만들어진 고성장 시대의 수직적 리더십 구조에서, 이제는 저성장 시대 수평적 리더십으로 구조 변화가 있어야 함에도 예전 리더십 구조로 인해 조직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일상생활사역연구소도 이런 리더십 전환의 일환으로 풀뿌리 방식의 리좀(Rhyzome)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중견 리더십을 가진 실무자들이 자신의 사역에 결정권을 가지며 협업과 상생의 리더십 구조로 개편했다. 개인적으로든 기관 차원에서든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는 시기이다. 한 사람의 수직적 리더십이 대전환 시대의 변화와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면, 이젠 수평적인 협업과 리더십 위임을 통해 운동의 지속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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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쇄한 화물기차 선로를 공원으로 재생시킨 하이라인 파크. (사진: 김종수 제공) |
‘하이라인’과 ‘패스트포워드’에서 얻은 것
이번 한국공익경영센터 기획·주관으로 실시한 해외연수는 이런 고민을 가진 기독 NPO 실무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역할, 앞으로 기독 NPO의 구조와 운영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천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이었다. 특히 생태교육공동체 운영과 마을 공동체 운동 차원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하이라인(High Line)이었다. 하이라인은 뉴욕시에 있는 길이 1마일(1.6 km)의 공원이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에서 영감을 얻어, 고가 화물기차 노선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 공원으로 재이용한 장소이다. (최근 박원순 시장의 아이디어로 추진된 ‘서울로 7017 프로젝트’도 하이라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오래된 뉴욕의 모습을 새롭게 디자인해 도심 한가운데 머물며 느린 삶에 대해 생각하고, 여유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이 참으로 부러웠다. 특히 하이라인에 심겨진 여러 식물은 한 철 식물이 아닌 다년생 식물로 심어 좀 더 지속가능한 식물 생태계를 만들었다.
하이라인은 1999년에 지역 주민 조슈아 데이비드(Joshua David)와 로버트 해몬드 (Robert Hammond)가 창립한 ‘Friend of the Highline’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도시재생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퍼머컬쳐 디자인(Permaculture design) 원리 중 ‘재생할 수 있는 자원과 용역을 사용하고 소중히 여기라’와 ‘작고 느린 해결책을 사용하라’ ‘변화를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그에 반응하라’ 등을 하이라인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생태 감수성이 적용된 도시재생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다음 인상적인 곳은 비영리 스타트업을 기술로 지원하는 패스트포워드(Fast Forward)였다. 패스트포워드는 기술(Tech) 기반 비영리스타트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하며, 그들의 역량을 가시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임팩트 확산을 돕는 비영리 기관이다. 기술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영리 단체들을 지원하는데, 특히 다섯 가지 기준인 리더십(Leadership), 테크 역량(Tech Talent, 단체의 핵심사업 중심에 기술이 있어야 함), 임팩트 잠재력(Potential for Impact), 확장성(Scalability), 다양성(Diversity)을 통해서 참가단체를 선정하는 것이 독특했다.
이 다섯 가지 기준을 통해 비영리 단체가 가져야 할 미래 역량을 생각해 보았다. 패스트포워드가 인공지능, 가상화폐,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클라우드 서비스 등의 기술로 공유, 소통, 참여 등의 가치를 창출하는 비영리 단체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비영리 단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다음세대재단’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비영리스타트업을 지원, 육성하는 비영리 단체가 절실한 현실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이번 연수는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기독 NPO 활동가인 나에게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인생 여행이었다. 일상을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와 음식에도 불구하고 함께한 여행 동무들에게서 위로와 격려, 새로움과 생의 통찰, 인생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생태교육운동가로서 미국의 의식주 문화를 생태적 감수성으로 관찰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풍성한 음식, 분리수거하지 않는 문화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달라 낯설었다. 미국 사람들이 쓰는 자원과 여유를 조금만 다른 나라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편으로는 풍요로운 자연을 누리는 미국이 부러웠다. 만일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아닌 ‘자연환경 보호관’ 역할을 했다면 오늘의 세계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삶의 시스템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에어비앤비 본사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유호현 선생은 ‘포스트 모템(post-mortem)’이라는 개념으로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삶의 시스템을 설명해주셨다. 사고를 쳐도 혼나지 않지만 ‘포스트 모템’이라는 부검과 같은 과정을 통해 왜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는지 집단지성으로 성찰하고 함께 격려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대해 들었다. 생산과 소비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4차 산업혁명에서의 일터, 삶터로 보냄 받은 자리에서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삶의 태도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혼자’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연수 시작하는 날, 6.12 북미정상회담을 보며 진짜 전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꼈다. 앞으로 풍성하고 상생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협업하는 사람, 네트워크하는 사람, 전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통섭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삼위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통섭, 협업, 네트워크의 DNA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는 새로운 전환의 사람이 필요하다. 그 전환의 파도를 잘 타고 넘는 슬기를 발견하면 좋겠다.
이번 연수 동안 미국에서 살아가는 기독 NPO 단체와 실무자들, 비영리 단체, 공유경제 기업을 돌아보면서 많은 질문과 답을 들었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모작을 ‘미션얼 라이프’로, 생태교육운동으로, 마을공동체삶으로, 일삶구원운동으로 어떻게 구현하며 살아갈까 하는 질문에 해답을 찾는 마중물이 되었다. 이제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와 ‘보냄 받은 자리에서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적극적인 답을 찾으며,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김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