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豫測)
조 흥 제
사람이 살아가는데 앞일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80년대 중반 주식 붐이 일어 주식을 샀다. 할 줄을 몰라 회사 직원이 추천하는 것 3가지 중 한 개를 골랐다. 하지만 예상하는 대로 되지 않아 손을 떼었다.
90년에 동서독이 통일이 되었다. 그때 써 놓은 글이 있어 열어 보았다. 90년 10월3일 : 동서독이 오늘 모든 국경초소를 없애고 자유왕래를 하기로 했다. 화폐도 서독 마르크화로 동독의 모든 것을 변상해 주기로 하였다는 신문보도다. 이 기사를 보면서 같은 분단국가인 한반도를 대입해 보았다. 2000년에는 한반도도 완전히 통일 국가가 될 것이다. 10여 년 전 독일이 통일이 됐던 것과 비슷한 순서로 우리도 남한이 주도가 되어 북한의 모든 조직을 남한 식으로 바꾸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김일성은 죽거나 실각되고 김정일이 정권을 잡아도 무력통일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불가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예측이 얼마나 틀렸나를 알 수 있다.
앞일을 예측하는 것이 점(占)이다. 점쟁이한테 가서 돈을 주고 물으면 앞으로 잘될 거라는 괘가 나오면 기분 좋다. 지나고 나면 말짱 꽝이지만. 점과는 달리 희망사항을 절대자에게 이루어 주십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종교다.
전통적으로 우리 생활에 주역(周易)이 큰 영향을 미쳤다. 주역에 세시풍속을 대입해 만든 것이 태세(太歲)다. 각 달(月)을 주역으로 풀이한 건 월건(月建), 날수로 풀이한 것이 일진(日辰)이다. 태세는 그해의 간지(干支)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辛酉戌亥) 12이다. 子(자)는 쥐, 丑(축)은 소, 寅(인)은 호랑이, 卯(묘)는 토끼, 辰(진)은 용, 巳(사)는 뱀, 午(오)는 말, 未(미)는 양, 辛(신)은 원숭이(잔나비), 酉(유)는 닭, 戌(술)은 개, 亥(해)는 돼지다.
주역을 달력에 대입하여 吉凶禍福(길흉화복)을 논한 학문이 土亭秘訣(토정비결)이다. 토정비결은 조선 명종 때의 토정 이지함이 지었다고 하는 일종의 圖讖(도참)서다. 주역의 음양설에 기초하여 일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데 쓰인다. 토정비결은 지금도 정초에 보는 사람도 많다. 나는 보지 않아 방법을 모른다.
마포에는 토정동과 토정 길이 있다. 마포대교를 건너기 전 우측 한강변 일대를 토정동이라고 하고 그 옆을 통과하는 길을 토정길이라고 한다. 토정비결을 지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이 여기서 태어났고, 집터가 있어 도로를 토정길이라고 지었다.
서울 시내에는 역사상 이름을 남긴 선조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길 이름이 많다. 세종로는 세종대왕에게서, 을지로는 을지문덕장군에게서, 퇴계로는 퇴계 이황에게서, 율곡로는 율곡 이이에게서···…. 하지만 거리 이름 뿐 아니라 동명까지도 같은 사람의 호를 따서 지은 예는 드문데 마포에는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진 이름이 있으니 그 고장 사람들이 토정 선생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다.
토정 이지함(1517~1578)은 중종~선조 조에 살았던 사람으로 경사자전, 수학에 통달했으며 의약, 복서, 천문, 지리, 음양, 술서에 모두 능통했다. 때문에 괴상한 거동, 기지, 예언, 술수에 관한 일화가 많다. 김정빈씨가 쓴 ‘단’소설에 보면 어느 날 밤 토정 이지함이 조카를 데리고 어디를 가는데 앞에 처음 보는 넓은 호수가 있어 어디냐고 물었더니 중국의 동정호라고 하였다. 동정호는 중국 대륙의 가운데 있는 큰 호수인데 하루 저녁에 갔다 오기는 어려운데 토정에게는 가능했다.
그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있고 정감록을 저술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토정비결은 신라 말 도선에 의한 도참 학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는 새해에 신수를 보는 예언서이다. 정감록도 국가 운명, 민생존망에 대한 예언서로 선조 때 이담(李湛)이란 사람이 이씨의 대흥자가 될 정씨의 조상 정감(鄭鑑)이란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씨조선 이후에는 정씨의 계룡산 몇 백 년, 그 다음에는 조씨의 가야산 몇 백 년 등등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계승될 것을 논하고, 그 중간에 언제 어떤 큰 재난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 오늘날 전해지는 정감록은 이 두 사람의 문답 외에 도선, 무학, 토정, 격암 등의 예언에서 발췌한 것을 추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감·이담 양인이 실존인물이라는 증거는 없다.
토정은 돈이 안 되는 이런 학문을 좋아하여 평생 가난한 생활을 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선조 6년인 1573년 6품 벼슬에 올라 포천현감, 아산 현감이 되었다. 아산 현감 때에는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다가 재직 중 사망했다. 사망 원인이 독살되었다고 전한다. 부하 관원이 공금을 착복하여 볼기짝을 곤장으로 때렸더니 그가 앙심을 품었다. 토정은 매일 아침 지네의 독을 내어 마셨는데 그것을 마신 후 곧 생밤을 먹으면 독이 중화가 되었다. 그 시중을 볼기를 맞은 관원이 들었는데 어느 날 아침 비서는 버드나무로 밤의 모양을 깎아 놓았다. 현감이 지네의 독을 마시고 얼른 생밤을 먹었는데 입안에서 딱하고 깨져야 할 밤이 깨지지 않아 그 사이 독이 온 몸에 퍼져 죽었다. 속 좁은 부하를 믿은 것이 화를 당한 원인이었다. 이렇게 천지조화와 앞일을 훤히 꿰뚫었던 그이지만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공부는 안했던가 보다. 이런 행적이 토정에 대한 대강의 기록이다. 사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이건 답이 없는 영원한 숙제이다. 사람을 자기 뜻대로 잘 부리면 성공한 사람이 되고, 잘못 부리면 그 죄까지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이 요즘 정치인들이 당하는 곤욕이다.
마포 사람들은 이런 토정 이지함의 행적을 높이 사서 그를 숭앙하여 도로명뿐 아니라 동명까지 지었으니 사당이나 향교에 유림으로 모셔 유명인 제를 올리는 일반적인 예보다도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