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피겨여왕 김연아, 그리고 제빵왕 김탁구
2010.08.31▲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요즘 '제빵왕 김탁구'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TV드라마가 최고 시청률을 올린다. 엄마 찾느라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거리에서 자라난 청년 김탁구가 명장(名匠) 제빵사를 스승으로 만나 제빵인생을 개척한다는 얘기다. 남편의 혼외(婚外)자식과 아내의 혼외자식의 대결 등 무리한 설정이 많은데도, 시청자들이 브라운관 앞에 앉는 이유는 찡한 감동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주인공 김탁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믿는 가치를 향해 시련을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성공이란 더 많은 부와 같은 물질로 측정되거나 종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배부른 빵, 재미있는 빵, 행복한 빵처럼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꿈에 쉼 없이 도전하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드라마에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올 초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김연아 드라마'는 이 시청률 1위 드라마보다 훨씬 더 온 나라를 열광시킨 '국민드라마'였다. 그녀의 금메달에 온 국민이 찬사를 보낸 건 사상최고점수의 화려한 기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겨 불모지(不毛地)에서 앳된 한국소녀가 혹독한 훈련과 인내의 세월을 거쳐 일본의 라이벌을 물리치고 세계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는 과정자체가 한 편의 근사한 드라마였다.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Kotler)에 따르면, 평판(評判)산업에서 남다른 인지도를 갖고 스타로 불리는 최고의 '퍼스널브랜드(Personal Brand)'는 탁월한 재능, 매력적인 외모와 카리스마, 대중의 관심을 끄는 깊은 스토리 등을 갖추고 극적인 현실을 구현할 때 가치가 치솟는다. 어려운 여건에서 분투한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유독 김연아 선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것도 '퍼스널 브랜드'로서의 성공요인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한 젊은이의 미완성 성장스토리인 '제빵왕 김탁구'를 시청하는 안경(眼鏡)을 쓰고, 나이 스물에 높은 고지에 오른 '피겨여왕 김연아'를 바라보니 갑자기 '김연아의 꿈이 무엇일까'가 궁금해졌다. 올림픽금메달이라는 목표를 함께 이룬 브라이언 오서코치와의 매끄럽지 못한 결별, 20편 가량의 광고에 겹치기 출연했는데 올림픽 이후의 불투명한 진로에 광고주들이 계산기를 다시 두드린다는 보도 등을 접하며 든 생각이다. 그런 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피겨사를 새로 쓴 김연아선수의 탁월한 성취가 훼손되는 건 아니지만, 온 국민이 감동했던 '김연아드라마'는 김이 새버린 것도 사실이다.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지도와 관심을 받는 '퍼스널브랜드'는 이루기도 힘들지만, 유지하기도 그만큼 힘들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 번 따고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피겨전설로 기억되는 동독출신의 카타리나 비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특별한 성공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메달이 인생목표는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게 힘들고 지루하면 언제든 그만 두라고 했다. 스케이팅이 너무 좋아 선수생활을 계속 했다. 나는 올림픽무대의 그 엄청난 중압감조차 사랑했다." 그는 "금메달이 평생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걸어가야 더 많은 걸 성취한다."는 말도 했다.
드라마 주인공 김탁구처럼, 쉼없이 도전하며 꿈꾸며 개척하는 삶을 산 것이다. 한국피겨사에 특별한 역사를 쓴 김연아선수에게도 그런 남다른 후속편을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