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가자
베드로전서 2장 4-5절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도입) 패스트넷 등대입니다. 이 등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 중 하나라고 불리 웁니다.
영국 아일랜드 남서 해안가에 세워진 등대인데 육지에서 떨어진 무인 등대입니다. 처음에는 철판으로 만들었는데, 부식되어 그 기능을 할 수 없어서 수석 공학진인 윌리암 더글라스가 설계해 7년 만인 1904년 6월에 완공되었습니다.
2~3톤 되는 화강석을 채석장에서 정확한 모양으로 잘라진 다음 바닷가 외딴 바위섬으로 옮겨 짜 맞춰 세웼습니다.
그 갯수가 2,047개 화강석이 맞물려 오차없고, 빈틈없이 정확히 지어진 건축물이라서 놀랍다. 100년이 넘는 지금도 파도와 싸우지만 여전히 건재하며 빛을 품어내어 배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정말 놀랍지 않는가?
-> 교회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의해 창세전부터 설계되었고, 2000년 전에 탄생하셨고, 지금도 흔들림 없이 이어져 가고 계십니다.
오늘의 주제는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가자! 입니다.
본문인 베드로전서 2장 4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 여기서 ‘버린 바가’(아포데 도키마스 메논)는 말은 ‘배척하다, 버리다, 거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시고, 배척을 당하셨다.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까지 내 몰리셨다.
이 때 당시 고난으로 핍박당하는 그들에게도 주님이 그러하셨음을 상가시킨다. 우리 또한 세상으로 버린바 되고,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면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다.
->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께 선택받으신 보배로운 분이십니다.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 또한 가치없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께서 택하고, 보석과 같이 여기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비록 세상에서는 배척당하고, 거부 당하며, 버려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과 같이 우리를 보배롭게 여기시고 계심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여기서 '돌'에 해당하는 헬라어 '리 도스' 는 잘 다듬어지고 손질된 돌을 말한다. 다음 구절들에 주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표현하고 있듯 건축을 위해 설계되어 다듬어진 돌을 말하고 있습니다.
-> 주님을 살아 있는 돌’로 표현하고 있다. 돌이 살아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생명을 가진 돌 그것은 우리 주님 만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연결되어 그 안에 있는 자들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지금 사라진 돌로 만든 성전이 아닌, 산돌을 통해 만들어진 성령의 살아있는 성전인 교회와 우리 자신을 말씀하기 위해 이와 같이 말씀 한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을 잠시 보자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 성경은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신다. 성전은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다. 결코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 못하듯 세상 곳과 하나님은 함께 거할 수 없다. 우리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함께 거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과 깊은 사귐을 같거나, 멍에를 메는 것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운데 거하시고, 두루 행하고 계신 주님이 계심을...
다시 본문인 베드로전서 2장 5절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너희도 “산 돌 같이”라고 말씀하며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로 '산 돌'이라고 표현됐지만,
원어로는 조금 다르다. 4절에 주님을 가리킬 때 '산 돌'은 단수로 표현되었으나 성도들을 가리킬 때는 복수 '리도이'가 쓰였다. 즉 “살아있는 돌들”의 무리다. 이는 성도 홀로는 거룩한 집을 지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는 말은 성도는 신령한 집의 기초이자 모퉁이 돌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성도들과 연합할 때 비로소 아름답고 신령한 집인 교회를 세워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 건축물을 생각해 보자. 벽돌 하나가 집을 완성할 수 없다. 여러 벽돌들이 이어져 건축물을 완성하듯 신령한 집인 교회도
그러하다. 지난주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것이 성경적 원리이다.
->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 산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개개인 성도들도 산 돌들로서 함께 연합하여 신령한 집, 곧 하나님 의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를 이루어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
-> 우리는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의 산 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 자체가 거룩한 산돌이며, 그 산돌들이 모여 신령한 집을 이루어 간다. 우리 개인의 성화와 더불어 함께 성화를 이루어 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 그리고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도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 부르실 뿐 만 아이라,
그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다.
-> 우리말 성경에는 베드로전서2장 4-5절 “4 사람에게는 버림을 당하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여러분 자신도 산 돌들처럼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시오.”라고 번역되어 있다.
끝으로) 에베소서 2장 19-22절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하나님께서 외인이였고, 이방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고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즉 하나님의 거하실 처로 삼기 위함입니다.
-> 22절을 자세히 보면,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산 돌로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 몸의 지체가 각각 그 기능을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서로 연합되지 않고서는 온전한 역할 수 없듯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결론) 리빙스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에 태어났고, 아프리카 지역 의료 선교사로 생애를 드린 분입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침대에서 기도한 체로 죽었고, 그의 몸은 영국으로 옮겨졌지만,
그의 심장은 주민들에 의해 잠비아 무푼두 나무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의 심장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잠비아 행정수도 이름이 리빙스톤입니다.
그가 생전에 아내 메리를 병으로 아프리카에 묻고 무덤 옆에 서 울면서
"나의 예수님. 나의 왕 나의 모든 것! 저를 다시 당신께 드립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도 가치를 두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의 나라와 주님을 섬기는 것, 그리고 세상 끝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만 가치를 두겠습니다." 다시 선교의 일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 그는 자신과 자신의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어떤 것도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의 생명조차도... 그의 진정한 가치는 주님 이었습니다. 주님 또한 자신의 생명보다 저희를 더 사랑하셨습니다.
-> 이제 주님이 살아있는 돌로 자신을 드림같이, 우리 또한 리빙스톤, 그의 이름의 뜻과 같이 살아있는 산 돌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신령한 집을 이루는데 드리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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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입니까?
베드로전서 2장 6-10절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도입) 진품명품에 황당한 일
어떤 한 남자가 고대물건의 가치를 가리는 TV 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출연을 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문서를 들고 나와서는 자랑을 했다. 그런데 감정한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노비문서입니다.
-> 노비와 같이 우리 또한 조상 대대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였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심으로 자녀가 되었음을 감사!
주님은 우리들에게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가며 우리 또한 산돌들로 함께 신령한 집을 세워가며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산돌이신 주님이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심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고 보배로우심을 받은 우리 주님과 같이 우리 또한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로는 택하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배롭게 여기심을 기억하십시요.
베드로전서 2장 6절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약속하셨다.
-> 이사야서 28장 16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라”
-> 이사야 28장은 에브라임의 불순종과 불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사 28:1-3).
당시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의지하게 됩니다.
애굽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들과 맺은 언약이 헛되게 될 것이며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물론 애굽을 의지했던 그들은 멸망 당했습니다.
-> 쉬운 성경에는 뒷부분에 "누구든지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 그렇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기초석으로 삶의 근거를 둔 자는 절~대로 실망하거나, 다급한 일이 일어나게 되거나,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 성경은 성도들에게 주님에 대해 "너희에게는 보배"라고 말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버린 모퉁이 돌"이라고 표현합니다.
-> 우리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보배롭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너희에게는 보배"라고 말한 표현이 맞습니까?
정말 주님은 성도님들께 가장 귀하고 가치가 있으신 분이십니까?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진짜 귀한 보배가 되십니까?아니면, 평소에는 어디 두었는지? 어디에 버려둔 지 알지 못하다가, 급한 일이 생기거나 아쉬울 때 찾는 그러한 분이 아니신가요?
베드로전서 2장 8절을 보면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는 올무나 함정처럼 숨겨져 있다가 사람을 죽이는 돌을 말합니다.
이 돌은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돌이 됩니다.
-> 말씀처럼 주님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자! 즉,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자들은 예수님을 인해서 부딪치게 되며 넘어지게 됩니다. 그들의 영혼은 멸망에 처하며, 영원한 고통과 비참함과 괴로움 가운데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다급한 가운데 결코 건짐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 정하심입니다.
-> 주님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무릎을 그의 앞에 꿇게 하시고 그들을 심판의 주로 세우셨습니다.
-> 건축자들의 버린 돌처럼 주님이 그러한 취급을 당했지만, 건축물에 가장 중요하고 없어서는 않되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을 모퉁이 머릿돌로 삼으신 것 같이, 우리 또한 세상에서 핍박당하고, 무시 당하며, 버림받는 자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0절을보면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주님을 알기 전 우리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받은 민족이었습니다.
우리의 신분과 처지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의 신분은 변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영어성경에는 9절 앞부분을 "But you are a chosen people," ->>우리는 선택받은 조선 사람들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신분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해 부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 구원받은 우리들은 택하신 족속이며, 하나님의 가족 입니다.
로마서 8장 17-18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라고 하십니다. 곧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세상으로 부터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 하지만, 성경은 지금은 고난 가운데 있지만,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상속받는 상속자 자라는 것을 잊지마시길 바랍니다.
● 성경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칠십인 역은 ‘바실레이온 히에류마타’라고 번역했으며 “ 그 뜻은 왕이요 제사장들” 이란 말입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왕이요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들이요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지 알아야 합니다.
-> 또한 우리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분을 자유롭게 섬기는 제사장의 특권 주어졌습니다.
사실 구약에나 신약 성경에도 하나님께 나아길 수 있는 신분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히10:19).
● 또한 우리를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거룩은 구별하다는 의미라고 말씀드렸다. 단순한 구별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특별히 따로 구별하고 소유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을 잃은 거룩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 소유하시고, 거룩한 나라로 구별하셨나요?
● 그리고 우리를 통해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요기에 있습니다. 성경 분명히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어떤 분은 “덕을 선포한다는 것을 낮과 밤이 어떻게 달라진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분명하게 변했는 지를 알리는 것이다.“고 하여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광고판으로, 또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덕이 선전되어지고, 자랑되어지길 기대 하셨습니다. 그런데 진작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론)
오늘날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목적 없는 신앙을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분명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바라시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잊어버린다면 목적 없이 떠다니는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다시금 질문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택하여 부름 받은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왕의 신분으로 부름 받은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놀라운 직분을 받은 이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결코 잊지 마시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