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좋은 붓
조 흥 제
우리 조상들은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소중하게 여겨 항상 곁에 두었다. 글씨를 쓰는데 필요한 네 가지로 붓과 먹과 벼루와 종이다.
붓의 종류는 쥐의 수염으로 만들어진 청서필(靑鼠筆), 족제비 털로 만들어진 황모필(黃毛筆), 노루의 겨드랑이 털로 만들어진 장장액 등 그 쓰인 재료에 따라 이름이 각각 붙여졌다. ‘청서필 한 자루만 있으면 일평생 쓴다’는 말이 있다. 수백 년 동안 붓 생산지로 전해 오는 지방은 광주 백운동(白雲洞) 철로변으로 아직도 30여호에서 붓을 만든다. 먹(墨)은 소나무, 기타 식물의 기름을 연소시켜 생긴 그을음을 아교로 굳혀 만든 것으로 중국의 용상봉무(龍翔鳳舞)를 최고로 친다. 우리나라에선 해주지방에서 좋은 먹이 나오지만 남북이 가로 막혀 구할 길이 없다. 중국산 먹이 가끔 들어오긴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산 먹이란 방향묵(芳香墨)으로 벼루에 갈면 향내가 나고, 이 먹으로 글씨를 쓰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글씨에서 은은한 향내가 난다. 벼루는 중국 위원의 단계석(丹鷄石)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충청도의 남포석(南浦石)도 그에 못지 않다. 벼루를 만드는 돌은 수중석(水中石)이 좋다. 너무 단단해도 못 쓰고 물러도 못 쓴다. 좋은 벼룻돌은 먹이 잘 갈리고 먹물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 지나치게 단단하면 먹물에 윤이 나지 않고 탁해진다. 서산대사가 썼었다는 용무석(龍舞碩)이 진품으로 알려졌다. 김천 직지사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종이는 전주와 장성산 한지(韓紙)를 상품으로 친다. 옛날에는 중국이나 일본으로 건너 갔을 정도로 품질이 좋다. (조상의 멋, 이철호)
나는 붓글씨를 ‘배운다, 배운다.’하면서도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 잘 알던 것도 글을 쓰려고 하면 입에서 뱅뱅 돌면서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치매의 일종으로 글을 쓰는 것으로는 회복되지 않아 그보다 더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서예를 해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붓글씨 쓴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서당에 다닐 때 집에 있던 분판(粉板)에 썼던 것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습자 시간에 써 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깨알 같은 작은 붓글씨를 쓰시는 것은 많이 봤다. 아버지도 연초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글씨는 써서 남도 주고 우리 집에도 붙였다. 붓글씨를 쓸땐 붓을 꽉 잡고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개성 남대문 글씨를 한석봉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썼는데 장난꾼들이 사다리를 치웠다. 한석봉은 붓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좋은 붓과 나쁜 붓의 차이는 글씨를 쓰고 종이에서 떼었을 때 붓이 펴지면 좋은 붓이고, 구부러진 채로 있으면 나쁘다고 하셨다. 우리 집에는 얼룩덜룩한 노루 털 붓이 많았는데 글씨를 쓰고 떼면 구부러진 채로 있어서 나쁜 붓이라고 했다. 족제비 털로 만든 붓은 어느 정도 일어난다. 제일 좋은 붓은 쥐 수염으로 만든 붓이라고 했다. 쥐 수염은 몇개 안 된다. 붓 한 자루를 만들려면 수십 마리를 잡아야 하니 만들기가 쉽지 않으리라. 쥐 수염 붓은 보지 못했다. 종이에서 떼었을 때 얼마나 일어날까?
벼루 좋은 것은 물속에 있는 돌로 만든 것이라는 기록이 눈에 들어 왔다. 나에게는 뚜껑에 용의 형상을 새긴 멋 있고 책만한 큰 벼루가 있다. 붓 글씨도 쓸 줄 모르면서 멋있어서 직장 다닐 때 샀다. 하지만 거기에 먹을 갈아보지 않아 성능이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손바닥만 한 벼루, 화투장만한 작은 벼루도 있다. 조그만 벼루들은 밑이 뚫어졌으니 얼마나 많이 쓰셨을까. 서산대사가 사용하던 벼루가 얼마나 좋으면 보관한 사찰에서 일반에 공개하지도 않을까? 오래 전에 일가 모임에서 대전 인근의 족보박물관에 갔다가 일가 교수분이 경영하는 벼루박물관에 갔었다. 모양도 가지가지인 크고 작은 벼루 수백 개가 있었다. 중국산도 많았다.
이제 문방사우는 일상생활에 필요 없게 되었다. 볼펜만 가지면 붓, 먹, 벼루를 대신 할 수 있고, 종이도 공장에서 생산되어 귀하지 않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다. 벼루만한 얇은 기기에 문방사우가 다 들어 있어 볼펜도, 종이도 필요 없다. 사전도 들어 있고, 전화기도 들어 있고, 편지도 들어 있고, 길 안내도 들어 있고, 공책도 들어 있고, 등불도 들어 있고, 카메라도 들어 있고……., 입이 아파서 다 세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건 전기가 없는 곳에선 쓸 수가 없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할지라도 문방사우라는 말만 들어도 따뜻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옛것에 대한 향수는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먹기 살기가 어려울 땐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까 문화재나 골동품에 관심을 가진다. 김정희의 세한도도 살기 어려울 때는 한지에 아무렇게나 그린 먹 그림이었다. 그것이 요즘에 와서 무한대의 값어치가 나가는 것은 유명한 사람이 그린 것이고, 사제지간의 따뜻한 정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방사우는 시대가 바뀌어 비록 우리 곁을 떠났을지라도 우리네 정서(情緖)에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던 것이 붓이다. 붓 중에서 가장 좋은 붓으로 자리매김한 쥐 수염 붓은 얼마나 좋을까. 어렸을 때 아버님께 들었던 최상의 붓, 1980년 대 이철호 선생이 쓴 수필에서 최상의 붓으로 취급받은 쥐 수염 붓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언제 인사동 붓 가게 골목에 가 보고 싶다. 거기는 쥐 수염 붓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