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은 아름답다. 화려한 색깔이, 유려한 선이, 그리고 입었을 때의 자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완벽한 의상이다. 한국인들 눈에만 한복이 그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한국 전통 문화 행사를 취재하며 만났던 현지인들은 하나 같이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해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라 했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Vogue)》에서도 이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해 주목했다. 사실 비한국인들이 한복에 매료되어 한 벌 큰마음 먹고 장만한다 하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입을 일이 뭐 그리 있겠는가. 개량 한복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이번에 《보그》지에 나온 기사는 웨딩드레스를 한복으로 선택한 브라질 거주 한인 여성 패션 디자이너를 소개함으로써 한복의 이벤트 패션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제안한 점이 특이하다. 《보그》지에 실린 신부 가브리엘라 송(GabrielaSong)과 신랑 새뮤엘 김(Samuel Kim) 커플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를 한 번 들여다보자.
패션 디자이너인 가브리엘라 송은 소셜 미디어 상에서 새뮤엘 김의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다. 훗날 가브리엘라와 새뮤엘은 양쪽 모두를 알고 있었던 친구가 이 둘을 엮어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한국인 부모를 둔 이들은 둘 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한인 2세로 현재 상파울로에서 살고 있다. 3년째 만남을 이어오던 이들은 새뮤엘 김의 청혼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보그》 지에 실린 새뮤엘 김의 청혼 방법은 부유층이라야 가능한 이야기라 폭넓은 공감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이지만 “이런 삶도 있구나.”라 해석하고, 흥미 있는 이야기 거리로 여기면 좋을 듯하다.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새뮤엘은 가브리엘라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극장에 도착해 좌석에 앉아 예고편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 예고편은 여느 영화의 예고편이 아니었다. 새뮤엘이 지난 3년 동안 가브리엘라와 데이트를 하면서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들로 엮은 짧은 영화가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웃고 먹고 춤추는 저의 모습이 80여 명의 관객 앞에서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었어요. 영상이 끝난 후 그는 제게 청혼을 했죠.”
그녀의 답은 당연히 “예스(Yes)”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가브리엘라가 저와 결혼하겠다고 승락했어요.”라며 기쁨에 가득차 외쳤고 밖에서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와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이들은 약혼식 후 곧바로 결혼 계획에 착수했다. 한인 2세인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와 전통인 한국적 요소를 결혼식에 반영하고 싶어 했고 동시에 현대 브라질의 미니멀리즘 스타일도 가미하길 원했다. 가브리엘라의 부모님은 브라질 교외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무화과 나무들로 잘 가꿔진 그 집의 정원은 친지들과 친구들을 초대할 결혼식에 딱 맞는 장소로 보였다.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점점 더 부모님 나라, 조국 한국의 전통 문화와 자연, 삶의 방식, 그리고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반하게 되었어요.” 신랑 새뮤엘의 말이다.
수많은 한복 사진들을 살펴본 후 가브리엘라는 서울 사는 친구를 통해 유명 한복 디자이너인 한은희씨를 소개받는다. 《보그》 지는 비한인 독자들을 위해 한복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한복이란 한국의 전통 드레스로, 화려한 색감, 주머니 없는 심플한 라인으로 특징지어진다.” 가브리엘라는 결혼식 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 했다.
“저와 제 부모님의 한국적 배경을 표현한다는 건 매우 중요했어요. 그래서 한은희씨와 만나, 유행 타지 않고 집안의 가보가 될 만한 꿈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기 시작했죠.”
한복 웨딩드레스의 유일한 치장은 머리에 올린 족두리이다. “너무 아름다워요. 옛스러워 보이는 것이 정말 특별해요.” 결혼식에서는 신부인 가브리엘라뿐만 아니라 여동생과 들러리인 줄리아(Giulia)도 화사한 색감의 한복을 입었다. 결혼식이 진행되자 신랑의 친구는 한국식 혼인의 차이와 의미를 설명했다.
“정말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약 1년간의 계획이 감사하게도 이 한 순간을 위해 순조롭게 진행되었네요.”신부가 벅찬 가슴을 가다듬으며 말한다.
종교적 예식을 마치고 난 후에는 한국 전통 방식의 폐백이 치러졌다. 본래 폐백은 하객들이 리셉션을 즐기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신랑신부 가족들끼리 치루는 것이지만 이 커플은 한국인이 아닌, 다른 문화적 전통의 친구들에게 한국적 전통의 폐백을 보여주고 싶어 하객들 앞에서 폐백을 했다. 모든 예식을 마친 후 하객들은 파티를 위해 특별히 설치된 장소로 안내됐다. 가브리엘라는 저녁 식사가 시작되기 전, 하객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또 다른 전통 한복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샴페인으로 건배가 이뤄지고 이 커플은 플로어 위에서 부부로서 첫 번째 춤을 추었다. 이들은 여흥을 위해 퍼큐션 주자를 따로 고용했는데 그가 이 커플을 무대 위로 초청해 드럼을 연주하게 했던 것을 가브리엘라는 결혼식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으로 꼽았다. 드럼 뒤에 뿌려두었던 반짝이들이 공중 위로 튀어오르며 일대 장관을 연출했던 것이다. 하객들은 완전 축제 모드로 접어들었다. 결혼식의 모든 순서를 마치고 밤이 깊자 하객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뒤풀이를 즐겼다.
“아침까지 춤을 추며 라면까지 먹고 막을 내렸어요.” |
한국 문화가 전해지는 것은 이처럼 사람을 통해서이다. 그 사람들이란 한국인일 수도 있고 한국인 2세일 수도 있으며 한국인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현지인일 수도 있다. 가브리엘라와 새뮤엘 부부의 결혼식 기사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한복을 활용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K패션의 한 계단 진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1980년대,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가서 예식을 치렀던 적이 있었다. 일본인들 뿐만 아니라 색다른 결혼식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전 세계 럭셔리 소비층을 위해 한복 드레스, 폐백, 고궁에서의 사진 촬영, 제주도로의 신혼여행 등의 웨딩 패키지를 상품화 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과 한류의 위상이 높아진 지금,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만도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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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한복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
<단아한 한복 웨딩드레스의 아름다움(좌)과 신부의 동생이 입은 화사한 색감의 한복(우)>
<한복 웨딩드레스와 베일, 족두리로 장식한 신부>
<폐백을 올리고 있는 신랑 신부(좌)와 한복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 앞에 선 신랑 신부(우)>
※사진 출처: Photo Credit, Alexandra Ma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