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암~선암사] 구간 탐방로 도중의
백련암과
그 뒤로 보이는 조계산 최고봉인 장군봉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 일주문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건물로서,
조선시대 일주문의 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선암사 범종루
선암사 만세루 뒤편의
육조고사(六朝古寺) 현판
[육조고사(六朝古寺)는
중국 선종의 법통을 6번째로 이은 六朝 혜능선사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고찰이란 뜻이다.]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선암사 대웅전 현판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글씨다.
임금만이 대웅전 현판 글씨 앞에 이름을 새기는 것인데,
자신의 이름을 글씨 앞에 쓴 것은
당시 안동김씨 김조순의 세도가 어떠했는지를 웅변해 준다.]
선암사 삼층석탑
안내문
선암사 대웅전 내부 모습
[선암사 대웅전의 특이한 점은 석가모니만 모셔져 있다. 보통 좌우로 협시보살이 함께 하기 마련인데, 선암사 대웅전에는 협시보살이 없다.
대웅전 협시보살과 함께 선암사에는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사천왕문이다. 보통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을 만나게 되는데,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대웅전에 어간문이 없다. 선암사는 어간문과 협시보살, 그리고 사천왕문이 없는 ‘3無’의 절이다.
그렇다면 선암사에는 왜 이 3가지가 없을까? 선암사는 조계산에 자리하고 있다.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인데 이 장군봉이 선암사를 지켜주고 있어 사찰을 지켜주기 위해 사천왕이 자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웅전에 협시보살이 없는 이유는 대웅전에 자리한 석가모니불이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대웅전에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선암사 불조전
선암사 조사당
선암사 팔상전
선암사 원통각
정조는 왕위에 오른 지 13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자 왕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선암사의 두 스님이 기도를 시작했고 눌암 스님은 원통전에서, 해붕 스님은 대각암으로 들어가 100일 기도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1790년 훗날 순조가 된 '이공'이 태어났다. 훗날 왕위에 오른 순조가 선암사에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 편액과 은으로 만든 향로, 금병풍, 가마 등을 선물했다고 전해지며, 인(人), 천(天)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대복전은 원통각 내부에 걸어놓았다.
선암사 장경각
선암사의 600년 된 토종 매화
절의 제일 끝단 칠전선원과 종정원인 무우전 사이 차밭 가는 돌담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대략 10그루. 3월 말부터 4월 초 예의 고고한 자태를 다소곳하게 뽐내고 빛을 발한다.
아름다운 자태 못지않게 선암사 토종 매화는 향이 아주 짙다. 절정인 4월 초쯤이면 경내가 온통 매화향으로 진동한다. 선방의 한 스님은 돌담 너머 가지를 뻗친 홍매화의 진한 향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오전 9시 전후해선 집중이 안 될 정도라고 말한다.
선암매 안내문
선암사 응진당의
출입문 현판에 쓰인
호남제일선원(湖南第一禪院)
선암사 응진당
2022년10월02일(일요일) 순천시 조계산 [선암사&선암사 부속 5암자&송광사&송광사 부속 4암자] 순례기 산 : 순천시 조계산 [선암사&선암사 부속 5암자&송광사&송광사 부속 4암자] 순례 산행코스: [ 선암사 주차장-승선교-대승암 3거리-백련암-대승암-대승암 3거리-선암사- 운수암-선암사-대각암-장군봉과 비로암의 갈림길 3거리-비로암-작은굴목재- 보리밥 원조집-송광굴목재 직전의 천자암 3거리-천자암-운구재-송광사- 부도암-감로암-불일암-무소유길-송광사 주차장 ] (약 17km) 일시 : 2022년 10월 02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최저기온 : 17도C, 최고기온 : 27도C]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5시간50분 소요) * 07:03~11:07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755-3 번지에 있는 선암사 주차장으로 이동 (321km) [4시간 소요] * 11:07~11:20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755-3 번지에 있는 선암사 주차장에서 산행 출발하여 선암사 승선교(仙巖寺 昇仙橋)로 이동 (이동거리 : 1.5km) [선암사 입장요금 : 3,000원] [승선교는 조선후기 승려 호암대사가 축조한 무지개 형태의 다리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7m, 길이 14m, 너비 3.5m. 길다란 화강암으로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연결하여 반원형의 홍예(虹蜺: 무지개)를 쌓았는데, 결구 솜씨가 정교하여 홍예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 11:20~11:30 대승암 3거리를 거쳐서 선암사 백련암(白蓮庵)으로 이동 [선암사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도 나오는 백련암(白蓮庵)은 선암사에서 송광사 넘어가는 길과 대승암 중간 우측 계곡에 있다. 현재 템플스테이 건물로 사용하는 백련암 건물은 최근에 신축복원한 것이다. 백련암을 찾아가려면 선암사 입구에서 대승암을 향해 약 180m 거리의 대승암 삼거리에서 70m가량 더 올라간 지점부터 우측 길 옆을 따라가며 대나무 숲에 가린 석축이 60여 미터 가량 계속된다. 이 축대의 뒤편이 백련암이다. ‘승주항리지’ 괴목마을편에 이곳의 명칭을 백련암 들판으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약 150m 거리는 제법 넓은 들 모양을 하고 있다. 선암사가 융성했던 고려시대부터 절에서 직접 경작한 넓은 채마전이었다고 전한다. 또 백련암 터 뒤편에는 옛날 선암사에서 운영했던 기와 가마터가 산재해 있다.] * 11:30~11:37 ‘남암’이라고도 불리는 선암사 대승암(大乘庵)으로 이동 [대승암은 ‘南庵’이라 불리는데 순천 선암사를 대표하는 강원이 있던 곳이다. 대승암 강원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상월(霜月) 새봉(璽封)[1687~1767]이 1754년(영조 30) 화엄대회를 개최한 이후로 보인다. 특히 침명(枕溟) 한성(翰醒)[1801~1876]이 1829년(순조 29)부터 선암사 대승암 강원(講院)에서 약 30년 동안 후학들을 가르침으로써 더욱 번창하였다. 침명 한성의 전강(傳講)제자는 함명(函溟) 태선(太先)이었고, 함명 태선은 1866년(고종 3) 가을에 경붕(景鵬) 익운(益運)에게 강학을 전하였다. 또 경붕 익운은 경운(擎雲) 원기(元奇)에게 강학을 전하고, 경운 원기는 금봉(錦峰) 병연(秉演)에게 전하여 대승암의 강맥이 근세까지 이어짐으로써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4대 강맥으로 평가받았다. 현재는 1998년에 신건한 ㄷ자형 대승암 건물 한 채와 산신각만이 남아 있다. ㄷ자형 건물 중앙을 법당으로 사용하고 거기에는 아미타삼존상과 탱화를 모시고 있다. 나머지 측면 공간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선암사에서 나와서 부도밭과 임선교(臨仙橋)를 지나자면 대승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선암사 0.6㎞, 송광사 6.1㎞, 대승암 0.5㎞)를 보고 대승암 방향으로 가면 된다.] * 11:37~11:40 사진촬영 * 11:40~11:53 대승암 삼거리로 회귀한 후 선암사(仙巖寺)로 이동 [조계산 기슭 동쪽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 1년 도선국사가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했다. 선암사 주위로는 수령 수백 년 되는 상수리, 동백, 단풍, 밤나무 등이 울창하고 특히 가을 단풍이 유명하다. 또한, 절 앞에 아치형의 승선교가 있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삼층석탑도 유명하다.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절의 하나로 보물 7점 외에도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료, 일주문 등 지방 문화재 12점이 있고, 선암사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높이 7m, 넓이 2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2009년 12월에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 11:53~12:00 선암사 관람 * 12:00~12:07 선암사 운수암(雲水庵)으로 이동 [운수암은 선암사의 북쪽에 위치해서 ‘北庵’이라 불리는데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이 수행하는 곳이라 하여 ‘운수암’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해붕, 월파, 다오, 벽파, 청호 등 강백들이 거처하며 대승암[남암]에 겨룰 만한 강원을 운영했으나 일제강점기와 조계종과의 분규를 거치며 거주하는 승려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만성화상이 최일 월광 보살과 최일 심화 보살의 도움을 받아 현재는 1979년 초겨울부터 불사를 시작하여 1980년 겨울까지 1년에 걸쳐 암자를 중창했으며, 1997년에 그 중창비를 세웠다. 선암사의 북동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1km가량 오르면 운수암에 이른다. 주불전인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간결한 민도리 집이다. 그 외에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관음전의 뒷면에는 산왕대신지위라는 위패를 모셔놓은 단이 조성되어 있다.] * 12:07~12:11 사진촬영 * 12:11~12:17 선암사로 회귀 * 12:17~12:31 선암사 대각암(大覺庵)으로 이동 [대각암은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머물렀고 또 대각국사 의천의 대각암 승탑(대각국사 의천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 보물 제1117호)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대각국사는 11살에 출가한 고려 문종의 넷째 왕자로 송나라에 유학해 수많은 장경을 수집하고 천태종을 개창한 고려 불교의 선각자다. 1644년(인조 22)에 탄원(坦元)이 중창(重創)하고, 1735년(영조 11)에 벽천(碧川)이 3창, 1939년 춘광과 성암 등이 4창하였다. 법당이 있는 건물은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을 이은 ‘ㄱ’자 형태이며 승방이 함께 있다. 그 맞은편 아래쪽에 대선루(待仙樓)가 있는데, 1719년(숙종 45)에 처음 짓고 1860년(철종 11)에 중수했다.] * 12:31~12:36 사진촬영 * 12:36~13:12 이 날 방문한 암자 중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인 선암사 비로암(毘盧庵, 해발 550m)으로 이동 [비로암(毘盧庵)은 역사가 깊다. 백제 성왕 7년(528년)에 아도화상이 지금의 조계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청량산 해천사라 하였다. 후에 조계산 비로암으로 개칭하였으며, 선암사의 모태가 된 암자다. 버려져 있던 암자를 1977년 선암사 고승 지허 스님이 토담 움막을 지어 수행처로 삼았다.] * 13:12~13:16 사진촬영 * 13:16~13:39 작은굴목재로 이동 * 13:39~14:01 보리밥 원조집으로 이동 * 14:01~14:10 간식 * 14:10~14:30 송광굴목재 직전의 천자암 3거리로 이동 [천자암 3거리에서 천자암까지의 거리는 1.8km다.] * 14:30~14:53 천자암봉(755m)을 지나서 송광사 천자암(天子庵, 해발 520m)으로 이동 [송광사 16 국사 중 제9세 국사인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창건한 천자암은 천연기념물 제88호 쌍향수로 유명하다. 쌍향수는 수령 800년에 높이 12.5m에 이른다. 조계종을 창시해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준 고려 의종 때의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금나라 장종(章宗) 왕비의 불치병을 치료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왕자 담당(湛堂)을 제자로 삼아 데리고 귀국한 뒤, 짚고 온 지팡이들을 암자의 뒤뜰에 꽂아둔 것이 자라 나무가 된 것이라고 전한다. 담당이 금나라 천자의 아들이라 하여 암자 이름을 천자암이라 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온다. 그러나 보조국사와 담당국사의 연대적 차이가 100여년에 이르므로 이 전설을 믿기는 어렵다. 천자암은 대표적인 조계종 참선도량의 하나로서 수행자들의 정진 장소로 쓰여 왔다. 천자암이 자리한 곳은 큰 절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하며, 선암사로 향하는 길목과도 빗겨나 있다. 평생 참선 수행하며 견성했던 활안(活眼) 스님이 주석한 암자로 유명하다.] [천자암 조실[祖室: 선방(禪房)의 수행(修行) 지도(指導) 선사(禪師)]이셨던 활안 스님(1926.3.13.~2019.9.18.)은 평생 빈틈 없는 수행으로 일관했다. 매년 100일간 방문을 잠그고 수행하는 폐관정진(閉關精進)도 출가 이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열 아홉 살에 출가해 ‘나고 죽는 그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生滅未生前 是甚麻)’를 화두로 참선 정진했다. 스님은 천자암으로 오기 전 오대산에서 적멸보궁과 북대를 오가며 30여 년 간 수행하면서 머물렀었다.] * 14:53~15:00 사진촬영 후 물을 마시면서 휴식 * 15:00~15:33 운구재로 이동 * 15:33~15:58 순천 송광사(松廣寺)로 이동 [순천 송광사는 불교의 세 가지 보배, 부처님(佛), 부처님가르침(法),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僧) 중 승보(僧寶)로 불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法寶)사찰 해인사, 자장율사가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佛寶)사찰 통도사와 함께 삼보사찰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보조국사 지눌이 간화선을 선양한 이래 16국사를 배출하는 등 수많은 고승이 배출되었다. 유서 깊은 승보사찰 송광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귀중한 문화재가 많다는 점이다. 국가지정문화재 36건과 시도지정문화재 10건 등 지정문화재 46건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중에서도 국보가 4건, 보물이 27건에 이른다. 송광사의 문화재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은 목조 삼존 불감(木彫三尊佛龕, 국보 제42호)과 고려 고종제서(高宗制書, 국보 제43호)와 국사전(국보 제56호)과 그리고 순천 송광사 화엄경 변상도(국보 제314호)이다. 목조 삼존 불감(국보 제 42호)은 나무로 만든 불감(佛龕)인데, 불감은 작은 불상을 모신 집을 뜻한다. 이 불감은 높이가 13㎝, 문을 열었을 때 너비가 17㎝에 불과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년)의 원불(願佛)로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없으며, 지눌의 활동연대가 고려시대이므로 그 전래 경위와 연관을 짓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한때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것이다. 불감은 3쪽이 경첩으로 이어진 구성으로, 닫으면 포탄형(砲彈形)을 이룬다. 중앙의 감(龕)에는 본존인 불좌상이, 좌우 감에는 각각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고려 고종제서(국보 제 43호)는 고려 고종 3년(1216)에 고종이 조계산(曹溪山) 2세 진각 국사 혜심(慧諶, 1178~1234)에게 대선사(大禪師)의 호를 내린,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 사령장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 56호)은 천축식(天竺式) 영향이 짙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건립 당시의 단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송광사(松廣寺) 국사전(國師殿)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국보 정식 명칭은 ‘순천 송광사 국사전’이다. 순천 송광사 화엄경 변상도(국보 제314호)는 ‘화엄경’의 7처9회(七處九會)의 설법내용을 그린 변상도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이다. 건물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앞서 살펴본 약사전·영산전이 있다. 그 외 능허교 및 우화각, 보조국사 비, 자정 국사 사리함, 능견난사(能見難思), 금강저(金剛杵), 고봉국 사주 자원 불(高峰國師廚子原佛), 팔 사파 문자(八思巴文字) 등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송광사의 3대 명물이 유명하다. 문화재청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로 선정한 ‘곱향나무 쌍향수’와 쌀 일곱 가마의 밥을 담아 저장할 수 있는 ‘목조용기 비사리구시’, 어느 순서로 포개도 크기가 오묘하게 들어맞는데 장인들이 아무리 만들어 보려고 해도 만들지 못했다는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의 祭器(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때 음식을 담는 용기)가 송광사 3대 명물로 손꼽힌다. 곱향나무 쌍향수는 천연기념물 제88호이고, 능견난사의 재료는 동철이고, 지름이 16,7㎝이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비사리구시는 1724년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지자 이를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조선 영조 이후 국재(國齋)를 모실 때 절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쌀 7가마에 해당하는 약 4,000명의 밥을 담을 수 있는 목조용기이다. 송광사 승보전 옆에 있다.] * 15:58~16:07 송광사 관람 * 16:07~16:10 송광사 부도암(浮屠庵)으로 이동 [부도암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에 있다. 송광사에서 불임암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암자로 부도전(승탑원) 옆에 있는 작은 암자이다. 부도전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먼 발치로 부도들을 바라보기만 해서 아쉬웠다. 현재 현대기의 부도까지 합하여 부도 29기, 석비 5기가 건립되어 있는데, 앞부분에 배치된 일부 부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송광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면서 많은 불도를 운집시킨 부휴대사(浮休大師) 선수(善修, 1543~1615)와 선수의 법맥을 잇는 제자들의 부도를 한 장소에 지속해서 건립하여 현재와 같은 무리가 형성되었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 유행한 팔각당형, 원구형, 석종형 등 여러 유형의 부도가 건립되었다. 부도전의 모양과 담장의 규모는 가로가 18m인데, 오른쪽에 문간이 있고, 세로가 39m인 직사각형이다. 흙돌담의 높이는 1.5m이고, 위에 기와를 얹어 모양이다. 탑비는 4단으로 나누어 조성된 잔디밭의 제일 위쪽 중앙에 ‘보조국사 비’(지방유형문화재 제91호)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사적비가 서 있다. 各 단은 1세기를 의미한다. 모든 부도는 부휴 계열로서 각 단별로 종횡 세순에 따라 안치되었고, 중앙 열은 부휴대사의 적통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처음 부도 밭을 조성할 때부터 계획적으로 안배했음을 알 수 있다. 부도암은 본당과 누각[聚淨樓],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통행로는 일주문 약 80m 앞 다송원에서 개천(낙하담)을 건너 편백림 옆으로 난 자동차 길을 따라 약 200m 오른 지점이다. 큰절에서는 무무문 앞 언덕으로 스님들만 왕래하는 길이 따로 있다. 부도암은 조선 숙종15년(1689년) 백암 노선사의 지시에 따라 설명(雪明)선사가 창건하여 1775년 초가을부터 약 1년 간 묵암대사가 주석하였다. 1924년에는 석정을 만들었으며, 1925년 건물을 다시 지어 1942년 공루를 철거하였다는 내용이 부도암에 관한 기록의 거의 전부이다. 1969년 송광사가 조계총림이 되면서 율원으로 바뀌었다.] * 16:10~16:12 송광사 감로암(甘露庵)으로 이동 [송광사 본 절 바로 뒤에 위치한 감로암은 송광사 제6세 국사인 원감국사(1226 ~ 1293)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국사의 비가 절 앞에 있다. 제8세 자각국사 도영, 제16세 고봉국사 법장스님도 이 곳에 머물렀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절에 20년이 지난 뒤 부산에서 온 진일심화(陳一心華) 보살이 수행처로 삼아 정진했다. 진일심화 보살의 가족인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이 시멘트 블록으로 암자를 지어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1987년 일심화보살이 떠난 뒤 송광사 스님들이 다시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보조국사 지눌의 전통을 따라 참선 수행 정진하던 송광사의 기도처로 삼았으며 지금은 조계총림의 염불원이다.] * 16:12~16:26 송광사 불일암(佛日庵)으로 이동 [불일암의 원래 이름은 자정암(慈靜庵)이다. 고려 충렬왕 19년(1293)부터 27년(1301)까지 송광사의 주지승으로 있었던 자정국사(慈靜國師)가 처음 세웠다고 전해오고 있다. 조선 숙종 34년(1708년) 봄에 중수되었고, 헌종 11년(1845년)에 기봉 장오(奇峰 藏旿, 1776~1853)가 9년간 면벽 수련을 하였으며, 1860년대에는 연봉 봉린(連峰 鳳麟, 1833~1912)이 주석했다. 고종 3년(1866년)에 칠성각이 세워졌고, 1867년 칠성탱화 3폭이 조성되었으며, 고종 16년(1879년)에 지장탱화가 봉안되었는데, 이 불화들은 송광사에 남아 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중수를 거듭하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퇴락하였다. 불일암이란 이름은 1975년 법정 스님이 중수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지금 불일암을 법정 스님을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지금도 이곳에는 법정 스님의 자취가 곳곳에 배어 있다.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나무 의자가 주인을 잃은 채 놓여 있고, 그 뒤쪽 벽에는 웃는 모습의 법정 스님 사진이 말없이 걸려 있다. 법당 앞 후박 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법정 스님이 잠들어 계신다.] * 16:26~16:37 사진촬영 후 휴식 * 16:37~16:57 무소유길을 거쳐서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32-2 번지에 있는 송광사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암자 순례 완료 * 16:57~17:00 “좋은사람들“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 17:00~21:20 “좋은사람들“ 버스로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32-2 번지에 있는 송광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이동 (314km)[4시간20분 소요] 조계산 암자 위치도 조계산 도립공원 탐방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