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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와 그녀의 어머니는 특별 차량의 부속 침대칸을 차지했다. 챈도스는 데미안의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자기 마음대로 그의 소지품을 들어내고 숙 녀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물론 데미안 역시 그 처리에 불만이 없었지만 몇 마디 질문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음 며칠은 계속 그 모양이었다. 케이시의 부모님은 마음껏 특별칸의 호사 를 누렸고, 케이시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부모님과 말했을 뿐, 입을 꼭 다물 었다. 데미안은 별 어려움 없이, 케이시와 부모님의 관계가 지극히 원만하다 는 사실을 알았다. 그 세 사람 중에서 그나마 데미안의 숨통을 트게 해준 사람을 코트니 스트 래튼이었다. 딸이나 남편과 대조를 이루는 그녀의 예의범절은 처녀 시절의 사교적인 성장 배경을 보여줬다. 그녀는 계속 데미안을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했고, 그를 부추겨 신상이나 아버지, 그리고 회사에 대한 말을 하게 했 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까지 했다... 코트니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케이시는 얼굴을 붉혔다. 당신 어머님이 시카고에 살고 계신다고 케이시가 말해줬어요. 우리가 그곳 에 있는 동안 그분을 만나 볼 수 있겠지요? 데미안은 왜 당신 부모님과 상관없는 일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지? 하 는 표정으로 케이시를 쳐다보고 점잖게 대답했다. 그건 힘들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방문은 사교적인 게 아니라서요. 숙녀들이 데미안과 챈도스만 남겨두고 침실로 물러간 다음에는 고문처럼 어색한 밤이 이어졌다. 첫날 밤의 분위기가 나머지 날을 결정지었다. 즉, 그 들이 서로 무시해버렸던 것이다. 딱 한 번 챈도스가 의자에 자리를 잡고 데 미안에게 말을 건넸다. 내 아내는 자네에게, 이미 자네가 표명한 결심을 의심하고 다시 생각할 기 회를 줄 거야. 하지만 난 판단을 유보하겠네. 데미안은 그 냉소적인 말을 그냥 놓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 혼자 알아내게, 신출내기. 그 말을 끝으로 챈도스는 몸을 돌려 잠들었다. 다음 사흘은 챈도스의 말 그대로였다. 스트래튼 식구 중에서 말을 하는 사 람은 유일하게 코트니뿐이었고, 기차가 시카고에 도착할 즈음 데미안은 그녀 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친해졌다. 그에 반해 다른 두 사람은 데 미안의 존재를 겨우 참는다는 식이었다. 게다가 그는 케이시와 단둘이서만 대화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항상 케이시의 부모님 중 한 분이 곁을 지켰다. 그래서 데미안은 케이시와 함께 할 기회를 잡을 속셈으로 전에 묶었던 호 텔을 추천했다. 하지만 케이시의 표정으로 봐선 그들이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코트니는 그 제안을 열렬하게 받아들였고 케이시도 별 이의 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실 케이시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절대로 혼자 잭을 잡을 생각을 하 지 말라고 챈도스가 엄하게 명령했기 때문에 그녀는 데미안에게 중간 보고 를 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 말인즉, 그들이 잦은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코트니가 도와준답시고 매일 밤마다 함께 모여 식사하자고 제의했다. 데미안에게는 하나도 고맙지 않은 제의였지만 지금은 입맛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케이시의 수사 계획도 데미안의 희망을 꺾어놨다. 잭은 당신의 돈을 흥청망청 쓰고 돌아다니는 데 익숙해졌어요. 은밀하게 몸을 숨긴 지금도 제 버릇 남 주지 못할 거예요. 그러므로 나는 우선 고급 호텔과 상류층 전담 부동산 직원부터 탐문할 생각이에요. 그 말은 곧 처음 며칠 동안 데미안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고 딸의 계획을 쾌히 승낙했다. 데 미안은 그저 매일 케이시를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도 못했다. 케이시는 빨리 집에 돌아갈 욕심 에, 잭을 찾는 일에만 전념한 나머지 첫날 저녁식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둘 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 다 메시지는 똑같았다. 만날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풀코스 식사를 하는 대신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챈도스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우리 딸은 한 번 손을 대면 끝장을 본다네. 데미안은 대놓고 불만을 터뜨릴 수 없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잭을 찾고 싶었다. 한편으로 케이시가 다시 떠나기 전에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 녀가 협조를 거절했기 때문에 데미안으로서는 이제나저제나 그녀를 기다리 며 함께 식사할 시간을 학수고대했다. 셋째 날, 그녀가 나타났다. 그것도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아 한 호텔 레스토랑은 투숙객뿐 아니라, 값비싼 보석과 정부를 비롯해 뭐든 자 랑할 거리를 가진 시카고 시민들이 부와 권력을 경합하는 장소였다. 때문에 이곳에 모인 사람들, 특히 숙녀들의 옷차림과 장신구는 휘황찬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케이시는 간소한 라벤더색 실크드레스와 목을 장식한 검정색 리본 로켓으로 다른 여인네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녀는 볼 때마다 점점 아름다워지고 광채가 났다. 오늘밤 케이시는 부모님보다 한 발 앞서 식당으로 내려왔는데, 그 사실을 깨닫고 발걸음을 늦추며 다시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그녀를 응시하는 데미 안의 표정에 마음을 돌렸다. 그는 필요하다면 당장 일어서서 그녀를 끌어올 참이었고, 그녀는 소동을 피울 생각이 없었다. 참으로 현명한 결정이었다. 왜 냐하면 데미안은 주변의 시선에 관계없이 뜻을 이룰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어서서 케이시를 자리에 앉혔다. 웨이터가 당장 나타나 음료수를 권 했다. 데미안은 그들이 물러나기를 기다리지 못했다. 케이시, 오늘밤 당신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구려. 칭찬을 기대하지 않았던 그녀의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데미안은 말할 틈 을 주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청바지와 판초 차림도 좋소. 케이시는 놀란 기색이 완연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웨이터가 물러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단둘만 되자, 데미안이 현명치 못한 말을 덧붙 였다. 사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당신이 가장 좋소. 이제 케이시의 얼굴이 타오르듯 붉어졌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힐책했다. 나를 창피하게 만들 작정이에요? 그렇지 않소. 나는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오. 그녀의 황금색 눈이 데미안의 눈과 얽혔다. 데미안은 케이시가 마음속으로 자신의 나체를 생각하고 있다는 묘한 감이 들었다. 그 역시 케이시의 그런 모습을 그려보며 그들이 나눈 마지막 밤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케이시를 데리고 당장 방으로 올라가고 싶 었다. 당장... 데미안..., 당신 데미안 아니에요? 달뜬 목소리가 탄성을 올렸다. 어머, 당신이군요!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여기 시카고에 웬일이세요? 오라, 당신은 오늘밤 이곳에 도착해서 내일 아침에 나를 만나러 올 생각이셨군요. 데미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루엘라 밀러를 맞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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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 납니다